823화. 영접단선(靈蝶丹仙)
“목진? 낙리야!”
갑자기 나타난 목진의 등장에 흠칫 놀랐던 온청선은 이내 화색이 되었다.
“흥, 어디서 온 놈들이냐? 썩 꺼지지 못할까?”
목진 등과 가장 가까이 있던 주마사 두 명이 버럭 소리를 지르더니 난폭한 영력 홍류로 목진을 공격했다.
두 사람은 상위 지지존이라 함께 힘을 합쳐 목진을 죽여 기선을 제압할 작정이었다.
“버러지만도 못한 녀석들이 감히 우리 소주님을 공격하다니!”
용상이 귀신처럼 앞쪽에 나타나 씨익 웃으며 두 주먹을 휘두르자 용과 코끼리의 맑은 울음소리가 들리며 용상의 힘이 깃든 권풍이 날아갔다.
퍽!
상위 지지존 두 명은 순간 얼굴이 빨갛게 상기된 채 피를 토했고 팔은 용상의 무서운 힘에 부서졌다. 또 지면에 긴 흔적을 남기며 멀리 튕겨 나갔다.
“네 이놈!”
그 광경에 동산은 안색이 조금 어두워진 채 장풍을 쏘았는데 웅장한 영력이 화산처럼 솟구쳤다.
“감산신장(憾山神掌)!”
동산의 공격에 지지존 대원만급 강자의 놀라운 힘이 깃들어 산골짜기에 수많은 거대한 균열이 일었다.
장풍이 날아오자 영계가 바로 손을 들었다. 그러자 손바닥에 영광이 번쩍이더니 눈 깜짝할 사이에 앞쪽에 거대한 영진이 만들어졌다.
영진은 빛의 방패처럼 목진 등의 앞쪽을 가렸고 강력한 장풍의 위력에도 끄떡없었다.
“고급 영진 종사라니!”
동산은 순간 두 눈이 휘둥그레졌다. 영진으로 그의 공격을 이토록 쉽게 막아낼 정도의 영진사는 고급 영진 종사밖에 없었다.
아무리 동산이라도 고급 영진 종사는 함부로 대할 수 없는지라 뒤쪽 숲을 힐끗거렸다. 뒤쪽 숲에 몰래 숨어있던 친구들까지 나선다면 전혀 승산이 없는 것은 아니었다.
“친구들을 찾는 건가? 우리가 방금 없애고 왔으니 그만 찾게.”
동산이 몰래 숨어있던 친구들을 부르려 하자 목진이 미소를 지으며 말을 건넸다.
목진 등은 온청선 등이 산골짜기에 갇힌 것을 발견하자 몰래 숨어들어 숲속에 숨은 녀석들을 먼저 없앴다.
동산은 안색이 확 어두워지며 목진을 쏘아봤다.
“나 동산한테도 이런 날이 있다니. 오늘 일은 내 반드시 기억했다가 언젠가 꼭 복수하겠네. 다음번에 만나면 내 반드시 자네 목을 따서 친구들한테 제물로 바치겠네!”
말을 마친 동산은 목진이 뭐라 하기도 전에 옷깃을 휘날리며 철수했고 다른 주마사들도 바로 그 뒤를 따랐다. 그들은 1각도 안 되는 사이, 그곳에서 완전히 사라졌다.
목진은 동산이 뒤도 안 돌아보고 도망가는 것을 발견하고 흠칫 놀라 몰래 만들어내고 있던 영인을 없앴다.
동산이 조금만 더 늦었다면 목진이 친 영진 때문에 이곳을 벗어나지 못했을 것이다.
그런데 녀석은 이상한 낌새를 느꼈는지 바로 철수했다.
“참 판단이 빠른 녀석일세. 다시 만나게 되면 반드시 없애야겠어.”
목진은 미간을 찌푸린 채 동산 등이 사라진 곳을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동산 등이 과감하게 철수하자 온청선 등은 강력한 영력을 점차 거뒀다. 그들은 오늘, 대전을 치를 거라 여겼는데 목진 등이 제때 나타나 동산을 물리쳐 주었다.
“괜찮아?”
목진이 미소를 지으며 묻자 온자우도 생긋 웃으며 감사 인사를 전했다.
“고마워, 목진아. 너희가 아니었다면 오늘 제법 치열하게 싸웠을 거야.”
“흥, 정말 싸웠어도 손해를 보는 건 저들이었어.”
온청선은 콧방귀를 뀌며 말했다. 그녀는 동산을 쉽게 용서할 수 없었다.
그 말에 목진은 흠칫 놀랐는데, 온청선이 센 척하는 것으로 보이지 않았다. 온가네는 이번에 상고의 성연에 여섯 명을 들여보냈고 최강자가 반보 지지존 대원만급 강자인 온자우이니 지지존 대원만급 강자인 동산을 상대하려면 버거웠을 것이다.
하지만 온청선이 저리 말한 것을 보면 분명 엄청난 수단이 있었을 것이다.
목진의 표정을 읽은 온청선은 괜히 으쓱해졌다.
“우릴 무시하지 마. 이 정도 수단도 없이 어찌 상고의 성연에 들어왔을까?”
“그런데 넌…… 설마 영계 언니랑 용상만 믿고 온 건 아니지?”
온청선은 입꼬리를 씰룩거리며 목진을 흘겨봤다.
상위 지지존의 실력이 괜찮은 축에 끼지만 상고의 성연에 들어온 사람 중, 이 정도 실력을 갖추지 않은 사람은 거의 없었다. 지지존 대원만급은 되어야 압도적인 우세를 차지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목진 등을 보면 영계만 그 정도 실력을 갖췄기에 저리 말한 것이었다.
정작 목진은 온청선을 흘겨보더니 바로 화두를 돌렸다.
“너흰 누구 눈 밖에 난 거야?”
주마사 소조는 온청선 등의 앞길을 막았을 뿐만 아니라 몰래 숨어 습격까지 준비했다.
“저들은 아마 막북 무가의 지시를 받았을 거야.”
온청선은 금세 정색하더니 한기를 품은 채 답했다.
“막북 무가라…….”
낙리는 미간을 살짝 찌푸리며 말을 이어갔다.
“막북의 무가도 엄청난 세력으로 실력이 온가 못지않고 대천세계에서 제법 유명하다고 들었어.”
“우리가 엄청난 대가를 들여 천지존 유적지에 관한 정보를 획득했는데 무가네가 몰래 끼어든 탓에 엿듣게 되었어.”
온청선은 가볍게 고개를 끄덕이며 말을 이어갔다.
“이 정보는 우리 두 세력밖에 모르는데 동산 등이 무슨 수로 알고 찾아왔을까? 그것도 마침 여기서 기다렸다가 우리 앞길을 막았으니 말이야. 이건 분명 무가네 짓이야.”
옆에 서 있던 온자우도 동의하듯 고개를 끄덕였다.
“무가의 지지가 없었다면 동산은 절대 저렇게 겁 없이 덤비지 못했을 거야.”
“무가네도 지금쯤 전력을 다해 목적지로 향하고 있을 거야.”
이에 목진은 가볍게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너희가 알고 있는 천지존 유적지에 관한 정보를 알려줄 수 있을까?”
천지존 유적지의 가치는 엄청났다. 온가의 정보가 아니었다면 목진 등은 아마 큰 공을 들여도 찾아내기 어려웠을 것이다. 목진은 비록 온청선 등을 도와줬지만 이를 빌미로 캐묻고 싶지 않아 최대한 유연하게 물었다.
상세한 정보를 파악해야 앞으로 일어날 일을 예측할 수 있기 때문이다.
다행히 온청선은 정보를 숨기려는 마음이 없어 보였다.
“너흰 우리와 협력 관계니까 당연히 알려줘야지.”
“이 천지존 유적지는 상고 시기, 영접단선이라 불리는 천지존이 사망한 곳일 거야.”
“영접단선?”
목진과 낙리가 마주 보며 중얼거렸다.
“그래, 영접단선은 단약 제련술로 이름을 날렸는데 영급 천지존의 실력으로 성급 천지존마저 탐낼 단약을 만들어내곤 했다고 들었어.”
“해당 유적지에 신단이 많이 남아있을 거야. 게다가 전부 가치도 상당해서 다들 엄청나게 욕심낼 거야.”
“그중에서 성령단(聖靈丹)은 반보 지지존 원만급 강자를 바로 대원만급 강자로 만들 수 있다고 들었어. 온자우는 성령단을 얻는 것이 목표야.”
온청선은 옆에 서 있는 온자우를 가리키며 말했는데 성령단이란 말에 녀석의 눈에서 탐욕의 빛이 어렸다.
그뿐만 아니라 용상도 침을 꼴깍 삼켰다. 용상도 반보 지지존 원만급이라 성령단의 유혹에 눈을 빛냈다.
성령단만 있으면 몇 년 동안 힘들게 수련하지 않아도 바로 대원만급에 이를 수 있으니 말이다.
“그런데 성령단은 영접단선이 가장 귀하게 여긴 단약이 아니야. 들은 바에 의하면 그녀는 승화단(升華丹)을 가장 귀하게 여겼는데 해당 신단은 수련한 신통의 경지를 임의로 한 단계 승급할 수 있다고 들었어. 심지어 절세의 신통도 가능해.”
목진은 순간 솔깃해졌다. 듣기에는 평범해 보여도 절세의 신통의 경지를 끌어올리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지 잘 알기에 그는 상당히 구미가 당겼다. 그가 수련한 불후금신만 봐도 불후신문, 불후지련, 불후생사변 등 세 가지 지존신통이 있는데 지금까지 수련해도 아직 첫 번째 경지일 뿐이었고 두 번째 경지인 불후지련은 아직 본 적도 없었다.
승화단을 얻으면 불후금신의 두 번째 지존신통을 열 수 있지 않을까?
이러한 생각에 그는 가슴이 뜨거워졌다.
“그 밖에 영접단선이 해당 유적지에 남긴 신단이 수두룩한데 전부 가치가 어마어마한 자원이라 우리 온가도 탐낼 정도야.”
온청선의 말에 목진은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단약 제련술에 능숙한 천지존이 남긴 단약은 보물이나 다름없으니 온가네 같은 세력한테는 엄청난 도움이 될 것은 분명했다.
“그래서 무가네가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너희 앞길을 막았던 거구나.”
낙리가 이내 감탄하며 말했다. 무가가 해당 천지존의 유적지를 획득하면 실력이 폭등할 거라 온가네의 미움을 사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은 것이다.
“이번에 우리가 성공하면 유적지의 신단을 절반씩 나누자.”
온청선이 가볍게 고개를 끄덕이며 한 말에 다들 깜짝 놀랐다. 온가네 강자들마저 두 눈이 휘둥그레졌다. 온가네는 해당 정보를 얻기 위해 엄청난 대가를 치렀는데 절반이나 준다니!
온청선이 유적지의 절반을 줄 것을 알았더라면 그들은 목진 등보다 훨씬 강한 소조를 협력자로 정했을 것이다.
그런데 온청선은 온가네 강자들이 뭐라 반박하기도 전에 그들을 노려보며 말했다.
“해당 천지존 유적지에 가는 건 우리뿐만 아니니 그곳 물건이 처음부터 우리 몫이란 선입견은 버려. 무가네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서라도 영접단선의 유적을 얻을 것이고 우리는 이미 뒤처졌으니 저들이 없으면 우린 빈손으로 돌아가는 수밖에 없어.”
“그리고…….”
온청선은 의미심장한 눈빛으로 목진을 노려보며 말을 이어갔다.
“난 왠지 저 녀석이 그 값어치를 할 것 같아.”
온청선은 비록 목진을 비웃긴 했지만, 왠지 영계보다는 상위 지지존 밖에 안 되는 목진이 제일 강할 것 같았다.
온가에서 지위가 상당히 높은 온청선의 말에 다들 바로 그 뜻을 따랐고 온자우도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그럼 모든 건 목진한테 달렸군.”
이에 목진도 생긋 웃으며 온청선을 지그시 바라보다가 서서히 입을 열었다.
“우리가 확실히 많이 가져가는 것으로 보이겠지만 분명 그럴 가치가 있다는 걸 보여줄게.”
목진의 목소리에 깃든 결연함과 자신감에 온가네 강자들은 저도 모르게 안심되었다.
그들은 목진이 정말 예상을 훨씬 뛰어넘을 정도의 실력을 선보일 수도 있다고 믿기로 했다.
온청선도 목진을 지그시 바라봤는데 그의 자신만만한 모습이 오대원 대전 때와 똑같다고 생각했다. 그때 목진은 수많은 강적 속에서도 끝까지 자신감 넘치는 모습을 보여주었고 결국 녀석들을 물리쳤다. 그의 자신감은 자신을 더 강하게 만들 뿐만 아니라 주위 사람들한테까지 영향을 주었다.
그런데 몇 년이 지난 지금도 목진은 여전히 그 모습을 간직하고 있었다.
자신을 믿어 의심치 않고 어떤 고난이 닥치든 끝까지 버텨 넘기는 사람이야말로 정상에 오를 자격이 있다.
이러한 생각에 온청선은 생긋 웃었는데 그 모습이 낙리 못지않게 아름다웠다.
그녀는 가녀린 손을 내밀며 말을 건넸다.
“그럼 잘해봅시다.”
목진도 미소를 지으며 차갑고 나른한 여인의 손을 가볍게 잡았다.
“우리는 반드시 성공할 거야.”
* * *
첩첩산중으로 둘러싸여 나무가 무성하게 자란 한 산봉우리에 누군가 뒷짐을 지고 서 있었다. 그는 산속 깊숙한 곳을 한참 바라보더니 갑자기 미소를 지으며 뒤돌아섰다.
“이렇게 온 걸 보면 계획이 실패했나 보군.”
그때 뒤쪽 숲에서 목진 등을 상대했던 동산이 안색이 어두워진 채 모습을 드러냈다.
“무통, 자네 계획이 실패했네. 온청선은 눈치가 너무 빨라 우리 사이를 바로 알아채더군.”
동산이 나지막하게 말했다.
한편, 나무 아래에 서 있던 빨간 머리 무통이란 사내는 손으로 오묘한 무늬가 새겨진 황금 구슬 두 알을 가볍게 돌리며 웅장하기 그지없는 영력 파동을 내뿜었는데 실력이 제법 뛰어난 것 같았다.
그는 대수롭지 않게 웃으며 말했다.
“난 처음부터 잘 될 거라 여기지 않았네. 그리고 계획이 틀어졌다고 해도 온가네가 제법 타격을 받지 않았나?”
“끄떡없네. 낯선 소조가 갑자기 끼어들었는데 온청선이 미리 찾아둔 협력자인 것 같았네.”
동산은 안색이 훨씬 어두워져 답했다.
“그렇단 말인가?”
무통은 굴리던 황금 구슬을 잠시 멈추고 물었다.
“실력은 어떻던가?”
“고급 영진 종사 한 명과 반보 지지존 원만급 강자가 있었네.”
동산은 상위 지지존인 목진과 낙리는 아예 무시해 버렸다.
“고급 영진 종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