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37화. 진불패(秦不敗)
후우.
묵심은 깊게 숨을 들이켜며 마음을 간신히 가라앉히고 음산한 눈빛으로 목진을 쏘아보며 말했다.
“내 반드시 자네를 부도신족에 데려가 대장로한테 바칠 것이네!”
“얼마든지.”
목진이 피식 웃으며 한 말에 묵심은 그를 지그시 쳐다보다가 휙 돌아섰다.
부도신족의 강자들은 안색이 한껏 어두워졌다. 그들은 부도신족 젊은이 중 최정예급 강자인 묵심이 죄인한테 꼼짝 못 한 것도 모자라 화를 꾹 참고 철수하는 모습을 보고 깜짝 놀랐다.
“역시 청연정의 아들답군. 녀석이 죄인이니 참 다행이지 않나? 안 그럼 소주님은 현라가 아니어도 목진이란 강력한 상대가 생겼을 것이네.”
부도신족의 강자들은 몰래 수군대더니 묵심을 따라 떠났다.
이렇게 곧 폭발할 것 같았던 상황이 흐지부지되자 사람들은 못내 아쉬워했다. 그들이 싸우면 분명 누군가는 크게 다칠 것이고 그럼 뭐라도 얻을 수 있을 줄 알았기 때문이었다.
멀리서 상황을 지켜보던 청상, 청령 등도 이만 떠나려 했다. 그들은 목진과 인사를 나눌 생각이 없었다. 목진의 태도로 보아 그들을 썩 반기지 않을 것이다.
그런데 그들이 돌아설 무렵, 목진은 청상을 바라보며 가볍게 고개를 끄덕이며 인사를 건넸다. 청상 등이 목진을 도와주려 했다는 걸 알아챈 것이다.
목진은 부도신족 사람들과 엮이고 싶지 않았지만 자신한테 호의를 베풀려 하는 청상 등까지 내칠 생각은 없었다.
이에 청상도 가볍게 고개를 끄덕이며 인사를 나눈 뒤, 청령 등과 함께 그곳을 떠났다.
“이만 갑시다. 더는 뭐가 없을 것 같네.”
먼 곳에 서 있던 현라도 미소를 지으며 옆에 서 있는 백형아한테 말을 전했다.
“형아 아씨는 내가 곧 알려줄 정보에 더 관심이 있을 것 같네만…….”
백형아는 까만 눈동자를 굴리며 생긋 웃었다.
“설마 네 분의 성급 천지존에 관한 정보인가?”
현라는 그저 미소만 지은 채 뒤돌아섰고 백형아는 입을 삐쭉 내밀고 뒤따라 갔다.
목진은 신비로운 동편을 꽉 쥔 채 점차 흩어지는 사람들을 자세히 살펴보았다. 묵심이 갑자기 나선 걸 보면 목진처럼 동편 때문에 체내에 부도탑에 이상한 움직임이 생긴 것이 분명한데 직접 수중에 넣은 목진보다는 느낌이 강렬하지 않은 것이 분명했다.
안 그럼 녀석은 절대 이토록 쉽게 동편을 포기하지 않았을 것이다.
이 물건은 부도신족과 관계가 있는 물건이 분명했다. 부도신족의 조상님에 관한 정보를 알아낼 가능성도 있었다.
“이 물건을 잘 연구해 봐야겠군.”
목진은 조용히 중얼거렸다.
“목진아, 넌 역시 어딜 가나 말썽을 부리는구나.”
온청선이 피식 웃으며 말했다. 헤어진 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목진이 또 누군가와 싸움을 벌이고 있으니 말이다.
“어때, 뭐 좀 알아냈어?”
목진이 미소를 지으며 물었다. 그는 당연히 성급 천지존의 유적지에 관한 정보를 묻는 것이었는데 온청선 등이 이렇게 빨리 유용한 정보를 알아냈을 거라 생각하지 않았다.
그런데 온청선이 고개를 가볍게 끄덕이는 것을 보고 흠칫 놀랐다.
“정말 있어?”
온가의 정보통이 이렇게 강대하단 말인가?
“내일, 도성에서 군웅회를 개최할 거야. 그때 가서 성급 천지존 네 분에 관한 정확한 정보를 공개할 거라고 들었어.”
온청선은 이내 정색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공개한다고?”
목진은 금세 미간을 찌푸렸다. 도대체 누가 이렇게 진귀한 정보를 공개하려 한단 말인가?
“무료 공개는 아니야.”
온청선이 생긋 웃으며 다섯 손가락을 내밀었다.
“지존영액 5천 방울을 내야 군웅회에 참석할 수 있어.”
* * *
이튿날, 그들은 군웅회에 갔다. 하지만 온청선의 말대로 지존영액 5천 방울을 내지 않고 그냥 입장했는데 수비가 신분을 확인하자 그냥 그들을 통과시켜 준 것이었다 .
조금 허름해 보이는 대전에 들어가자 목진 등은 사람들이 무리를 지은 채 서 있는 것을 발견했다. 소조마다 지지존 대원만급 강자가 서 있었다.
그중에는 그들과 어제 마주쳤던 묵심, 현라, 청상 등도 있었다.
“지존영액 5천 방울이 있어야 군웅회에 참석할 수 있었다고 한 것은 이도 저도 아닌 사람들을 배제하기 위해서인 것 같군.”
목진은 그제야 깨달았다.
“그런데 군웅회를 소집한 사람은 도대체 뭘 하려는 걸까? 그는 왜 사람들을 한곳에 모아 정보를 공유하려는 걸까?”
목진은 금세 미간을 찌푸렸다. 그가 정말 네 명의 성급 천지존 유적지에 관한 정보를 알고 있다면 혼자 보물을 찾으러 가면 될 것이지 굳이 정보를 공유할 필요는 없었다. 이는 경쟁자만 늘릴 뿐, 그한테 전혀 좋을 것이 없어 보였다.
목진은 이리 생각하며 낙리, 온청선 등을 바라봤는데 이들도 비슷한 생각을 하는 것 같았다.
그들은 적당한 자리를 잡고 조용히 서서 기다리기로 했다. 어차피 누군가 나와 이들의 의문점을 해결해줄 것이다.
잇따라 실력이 막강한 사람들이 부단히 입장했는데 갑자기 사람들이 수군대기 시작했다. 목진 등이 고개를 돌려보니 누군가가 사람들을 이끌고 천천히 대전에 들어왔다.
사람들의 시선을 끈 이는 유난히 튼실한 사내로 호탕하게 웃으며 들어오고 있었는데 눈에서 발하는 예리한 빛을 보면 절대 예사롭지 않은 인물이란 걸 알 수 있었다.
또한, 상대방한테서 느껴지는 강대한 영력 파동으로 볼 때, 사내는 절대 일반 지지존 대원만급 강자가 아닌 듯했다.
“하하, 다들 한자리에 모였군. 난 삼성종(四聖宗)에서 온 진불패라고 하네.”
사내는 껄껄 웃으며 사람들한테 인사를 건넸다.
“삼성종?”
목진은 흠칫 놀랐다. 그는 삼성종에 대해 어느 정도 알고 있었는데 이는 대천세계의 엄청난 세력 중 하나로 그중에서도 일류에 속했다.
그건 삼성종에 천지존이 세 명이나 있어서인데 그들은 무려 선급 천지존이었다!
사람들의 표정을 보니 다들 진불패를 아는 눈치였다.
“진불패는 삼성종의 수석 제자로 천부적 재능이 상당히 뛰어난 사람이야. 그는 현재 지지존 대원만 정상급에 이르러 실력이 막강하고 대천세계에서 제법 유명한 존재야.”
옆에 서 있던 온청선이 나지막하게 한 말에 목진은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보아하니 진불패는 현라, 묵심 등에 전혀 뒤처지지 않는 것 같았다. 하긴, 그러니 이런 상황에도 여유롭게 대처할 수 있었던 것이었다.
“진불패, 우리가 왜 여기 모였는지는 자네도 잘 알 것이네. 그러니 유적지에 관한 정보를 알고 있으면 어서 알려주게.”
현라가 미소를 지으며 입을 열자 다들 동의하듯 고개를 끄덕였다.
“여러분, 난 확실히 천지존 네 분의 유적지에 관한 정보를 알고 있고 어디 있는지도 파악했네.”
진불패가 가볍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이자 다들 의심스러운 눈길로 그를 노려봤다. 유적지에 관한 정보를 알고 있다면 왜 이를 공유하려는 걸까?
“다들 내가 왜 혼자서 보물을 찾으러 가지 않고 정보를 공유하려 하는 건지 궁금할 것이네.”
사람들의 표정을 읽은 진불패는 피식 웃으며 말을 이어갔다.
“삼성종 사람들만으로는 턱없이 부족하여 그런 것이네.”
“누구에 관한 정보를 알고 있는 건가?”
누군가 질문을 던졌다. 상고 시기, 사망한 네 명의 성급 천지존 중에는 부도신족과 태령신족의 조상님도 있었다.
“난 어느 한 사람에 관한 정보가 아닌 네 명의 천지존에 관한 정보를 확보했네. 이번에 이 네 분의 유적지가 한 곳에 나타났네.”
진불패가 가볍게 웃으며 한 말에 다들 화들짝 놀랐다. 상고의 성연에서 성급 천지존의 유적지는 이동할 뿐만 아니라 영성까지 있어 이를 찾는 것이 가장 어려웠다. 그런데 네 분의 유적지가 한 곳에 나타났다고 하니 믿기 어려울 법도 했다.
“못 믿을 것도 없네. 성급 천지존 네 분의 유적에는 생전의 의지가 담겨있어 어떤 이유로 한곳에 모였을 수도 있지 않은가?”
“도대체 왜 한데 모였단 말인가?”
진불패의 말에 목진이 입을 열었다.
이에 진불패는 목진한테 눈길을 돌렸는데 그가 상위 지지존 밖에 안 된다고 무시하지 않았다. 아마 그는 어제 목진과 묵심의 대결에 대해 전해 들은 듯했다.
“상고의 성연에서 성급 천지존 네 분이 의지를 모아 상대하려는 존재가 뭐가 있겠나?”
진불패의 말에 목진은 잠시 고민하다가 조심스럽게 답했다.
“사망한 네 명의 천마제겠군.”
“그렇네. 네 명의 천마제의 유적도 한곳에 모였다네.”
진불패가 이내 정색하며 한 말에 현라, 묵심을 포함한 모두가 안색이 어두워졌다.
“그렇군. 그들은 이미 사망했지만 남은 의지는 여전히 상대방을 천적으로 여길 테지. 게다가 우연히 마주쳤으니 당연히 친구들을 불러모아 의지마저 철저히 없애려 하겠지.”
목진은 그제야 알 것 같았다.
이런 일이 일어날 확률은 엄청 낮았지만 마침 목진 등이 상고의 성연에 들어왔을 때 벌어졌으니, 운이 좋다고 해야 할지…….
“난 상고의 성연에 들어오자마자 시공풍(時空風)에 휩쓸려 어딘가로 전송되었는데 알고 보니 마침 성급 천지존 네 분의 유적지가 있는 곳이었네. 하여 곧바로 들어가 보려고 했는데 저들의 의지의 저항을 받아 실패했네. 사람들을 더 많아 모아야 유적지에 들어갈 수 있을 것 같네.”
진불패는 미소를 지으며 사람들을 바라봤다.
“이것이 바로 내 목적이네.”
“왜 사람을 그렇게나 많이 소집하려는 건가?”
묵심은 조금 가라앉은 목소리로 물었다.
“네 명의 천마제의 의지도 역외사족의 강자들을 소집했을 것이고 저들의 목적 역시 성급 천지존 네 분의 의지를 철저히 없애려는 게 아닐까?”
목진이 묵심을 힐끗 쳐다보며 한 말에 다들 눈가가 파르르 떨렸다. 성급 천지존 네 분의 계승을 받으려면 역외사족을 정면으로 상대해야만 했다.
놀라운 사실에도 목진은 태연하게 서 있었다. 그는 일전에 시마족의 시천유와 마주쳤었는데 녀석은 상고의 성연에 들어온 역외사족 강자 중 한 사람일 뿐이었다.
“생각보다 일이 커졌군.”
목진이 이내 감탄하며 말했다.
여태껏 상고의 성연에 들어온 대천세계의 강자들은 역외사족의 강자들과 싸우긴 했어도 마주쳤을 때만 싸우면 됐는데 이번엔…….
보물을 얻으려면 목숨을 걸고 싸워야 한다.
옆에 서 있던 낙리, 영계, 온청선 등은 이내 정색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들은 보물을 찾으러 상고의 성연에 들어온 것뿐인데 어느새 대천세계와 역외사족 젊은이들 사이의 목숨을 건 대결로 변하고 말았다.
역외사족의 강자들은 수단이 괴이할 뿐만 아니라 실력이 막강해 제압하기 여간 어려운 게 아니었다.
그러나 목진은 이대로 포기하고 싶지 않았다. 그는 36가지 절세의 신통 중 한 가지인 팔부부도만 얻을 수 있다면 얼마나 위험한 상황이든 뛰어들 생각이었다.
대전에 모인 기타 소조 중, 실력에 자신이 있는 사람들도 눈가를 파르르 떨며 정색했다. 성급 천지존의 계승이 상고의 성연에 있는 것만 아니었으면 이들한테 기회조차 주어지지 않았을 거라 운 좋게 계승을 얻기라도 하면 천지존이 되어 대천세계의 최정예급 강자로 거듭날 수 있을 것이다.
천지존경은 대천세계 수련자들이 꿈에도 그리는 경지였다.
진불패는 대전을 조용히 쓰윽 훑더니 한참 지나서야 가볍게 웃으며 다시 입을 열었다.
“네 명의 성급 천지존의 계승을 얻으러 가고 싶지 않은 이들은 지금 물러나도 좋네.”
사람들은 여전히 아무런 말도 없었지만 아무도 자리를 떠나지 않았다. 상고의 성연에 들어온 사람들은 모두 자기 실력에 자신이 있었다. 역외사족이 아무리 교활해도 싸워는 봐야 한다고 여겼다.
또한, 대천세계의 천적인 역외사족을 상대하는 일에 물러날 이유가 없었다.
조용히 서서 기다리던 진불패는 아무도 떠나지 않자 흐뭇하게 웃으며 외쳤다.
“물러날 사람이 없는 것 같으니 오늘은 일단 준비하고 내일, 나와 함께 유적지로 갑시다!”
진불패가 말을 마치자 대전에 모인 사람들의 의지가 활활 타올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