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38화. 사성탑(四聖塔)
이튿날, 집거지가 갑자기 떠들썩해졌다. 실력이 막강한 사람들이 도성 밖에서 모여 함께 어딘가로 향했기 때문이었다.
대규모의 이동이 순간 사람들의 이목을 끌었지만 군웅회에 참석하지 않은 이들은 회의 내용을 알 수가 없어 그들이 왜 이러는지 짐작도 못 했다.
일부 영리한 소조 사람들만 신속하게 그들의 뒤를 따랐다.
대부대는 꼬리가 달렸는데도 전혀 개의치 않았다. 진불패의 말대로라면 유적지에는 역외사족 강자들이 있을 것이고 싸움이라도 벌어지면 욕심에 눈이 멀어 따라붙은 사람들은 분명 대가를 치를 것이다.
* * *
목진, 온청선 등도 대부대를 따라 떠났고 기타 소조와 안전거리를 둔 채 날아갔다.
그들은 잠시나마 같은 편이긴 했지만 천지존의 계승은 네 개뿐이라 계승을 받을 때가 되면 서로 다시 경쟁자가 될 것이다.
“엄청나군.”
목진은 호호탕탕 나아가는 무리를 쓰윽 훑더니 감탄을 금치 못했다. 정예급 소조가 적어도 수십 개는 되었는데 그들은 상고의 성연에서 실력 최강자라고 말해도 절대 과언이 아니었다.
“유적지가 그만큼 위험하단 거야.”
옆에 있던 낙리가 이내 정색하며 말했다. 이번에는 영접단선의 유적지 때와는 비교할 수조차 없을 정도로 위험했는데 목진이 팔부부도를 획득하려면 기타 경쟁자들뿐만 아니라 괴이한 역외사족과도 싸워야만 했다.
“아직 유적지의 상황을 잘 모르니 우리가 갈라지기라도 하면 절대 무리하지 마.”
목진은 엄숙하게 말을 건넸다. 낙리도 태령고족의 태령멸천광을 얻어야 하는데 실력이 겨우 하위 지지존일 뿐이라 지지존 대원만급 강자가 널린 상고의 성연에서는 전혀 그들의 상대가 아니었다.
목진이 계속 낙리와 함께 할 수 있다면 좋겠지만 갈라지기라도 하면 무슨 일이 일어날지는 아무도 모를 것이었다.
목진의 걱정 어린 말에 낙리는 가볍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이었는데 아름다운 얼굴에서 빛이 발하는 것 같았다.
“걱정 마, 절대 무리하지 않을게.”
“그리고…… 내가 하위 지지존이라고 무시하지 마. 나한테도 방법이 있어.”
낙리가 한쪽 눈을 깜빡이며 생긋 웃자 목진은 멈칫하더니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낙리도 태령고족의 계승을 받기 위해 미리 준비한 모양이었다.
“내 추측대로라면 현라 옆에 있는 여인이 태령고족의 준성녀가 분명해. 그럼 나처럼 태령멸천광이 목표일 거야.”
낙리가 현라 쪽을 힐끗 보며 나지막하게 말했다.
“그래?”
목진도 현라 옆에 있는 요염한 여인을 발견했는데 그녀의 모습도 꽤 아름다웠다.
“그건 어떻게 안 거야?”
“여인의 육감이라고나 할까? 저 여인이 나를 계속 훔쳐봤거든.”
낙리가 가볍게 웃으며 말했다. 그 말에 목진은 어쩔 수 없다는 듯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여인의 육감이란 정말 무서웠다.
“저 여인은 조금 영악한 것 같아.”
목진은 그녀를 잠시 살펴보다가 말했다. 그는 여인을 상대한 적은 없지만 주위에 지지존 대원만급 강자가 많은 것만 봐도 바로 알 수 있었다.
그것만 봐도 여인은 낙리와 완전히 달랐다. 낙리는 미모를 보고 자신에게 접근한 정예급 강자들을 전부 물리쳤다. 그녀는 그들을 곁에 두고 이용할 생각이 전혀 없었지만 상대방은 달랐다.
낙리도 동의하듯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걱정 마. 꼭 조심할게.”
준성녀가 영악한 건 사실이지만 낙리도 절대 호락호락한 상대는 아니었다. 낙리는 곧 멸망할 낙신족을 되살렸을 뿐만 아니라 계속해서 발전하는 모습을 보여준 것만 봐도 지혜가 미모 못지않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경계를 늦추지 않으면 결코 크게 위협이 되지 않을 것이다.
목진과 낙리가 대화를 마치자마자 대부대의 속도가 갑자기 빨라져 그들은 속도를 끌어올렸다.
그들은 저녁이 되어서야 적당한 곳을 찾아 휴식하고 이튿날 해가 뜨자마자 다시 목적지로 향했다. 그날 황혼 무렵, 속도가 다시 줄어들었다.
“여러분, 이제 곧 목적지에 도착할 것이네!”
진불패의 웅장한 목소리가 뇌명처럼 울려 퍼지자 사람들은 수군대며 먼 곳 앞쪽을 바라봤다. 그곳 대지에 끝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깊게 파인 균열이 보였다.
멀리서도 크기를 가늠할 수 없을 정도로 거대한 검은색 구멍이 보였는데 보는 것만으로도 소름이 끼쳤다.
한편, 구멍 한쪽에 뜬 눈부신 태양은 무한의 빛을 발했고 다른 한쪽은 어둠이 깃든 마역처럼 마의 기운으로 가득 차 있었다.
광명과 어둠은 부단히 서로를 집어삼키며 주위의 공간이 부서졌고 가끔 무서운 시공 돌풍이 휘몰아쳤다.
“이곳은 추신연(墜神淵)이야!”
온청선은 커다란 구멍을 멍하니 바라보는 목진 등에게 정색하며 말을 건넸다.
“추신연이라…….”
목진은 흠칫 놀랐다.
“상고 시기, 네 명의 성급 천지존이 이곳에서 역외사족의 천마제들과 결전을 펼쳤어. 우리 앞에 펼쳐진 몇백만 리 정도 되는 깊숙한 구멍이 바로 그날, 대전의 흔적이야.”
“여긴 대전이 끝난 지 만 년도 넘는 시간이 지났지만 남아 있는 의지가 전부 이곳에 모인 것 같아. 그들은 상대방을 없애려는 집념이 너무 강했던 거야.”
온청선의 말에 목진도 고개를 끄덕이더니 미간을 찌푸린 채 어둠 속을 바라봤다. 지금쯤이면 그곳에도 역외사족의 강자들이 집결하지 않았을까?
어느덧 거대한 구멍에 접근한 대부대는 밝은 빛을 온몸에 감싼 채 서서히 내려앉았는데 창로한 목소리가 시공간을 뚫고 그들의 뇌리에 스며들었다.
“대천세계의 구원자들이여, 드디어 왔구나…….”
목진 등은 화들짝 놀랐다. 창로한 목소리의 주인은 아마 네 명의 성급 천지존 중 한 사람의 남은 의지일 것이다.
“선배님, 우리가 어떻게 하면 될까요?”
진불패가 공손하게 물었다.
“네 명의 천마제의 잔혼은 그해, 우리 네 명이 각자 한 명씩 책임지고 제압했다. 시간의 힘을 빌려 완전히 없애려 했는데 자신이 곧 사라질 걸 직감했는지 역외사족 사람들을 소환해 잔혼을 석방하려 하고 있단다.”
“저들이 성공하면 역외사족과 성연대륙이 이어져 마의 구역이 될 것이고 그곳은 바로 우리 대천세계를 공략하는 발판이 될 거란다.”
사람들은 그 말에 깜짝 놀랐다. 그의 말이 사실이라면 그들도 마의 구역으로 끌려들어 갈 수도 있었다.
“하여 너희는 반드시 역외사족의 사성탑을 파괴해야 한단다!”
상대방의 말에 목진 등이 고개를 들어보니 광명과 어둠이 닿은 곳에 흑백 거탑이 떠 있는 것이 보였다.
탑은 4층까지밖에 되지 않았지만 절대 무너지지 않을 것처럼 단단해 보였다.
“층마다 천마제의 잔혼을 제압했는데 그중, 잔혼이 하나라도 새어 나오면…… 우리 네 사람 중 누군가의 의지가 사라졌다는 걸 의미한단다. 일단 세 명의 천마제의 잔혼이 풀리면 사성탑은 무너질 것이고 그들은 완전히 자유를 되찾을 거란다.”
상대방의 목소리가 한껏 묵직해졌다.
“너희가 두 층만 지켜낸다면 사성탑은 무너지지 않을 것이고 천마제의 잔혼이 완전히 사라지면 대성공이란다.”
“이번 일은 전부 너희한테 달렸다.”
그 말에 다들 안색이 확 어두워졌다. 아무도 상황이 이 정도로 복잡할 줄 몰랐다. 이건 목숨을 걸지 않으면 안 될 싸움이었다.
“봉인을 지켜내는 자에게 해당 봉인 수호자의 계승을 전수할 것이다!”
사람들은 의지가 순간 활활 타올랐다. 마지막까지 봉인을 지켜낸 사람이 성급 천지존의 계승을 얻게 될 것이다.
목진도 깊게 숨을 들이켜더니 이글거리는 눈빛으로 낙리 등을 바라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준비합시다.”
그는 팔부부도를 얻기 위해서라면 현라, 묵심, 심지어 역외사족도 전혀 두렵지 않았다.
재물은 사람의 마음을 움직일 뿐이지만 절세의 신통은 목숨마저 바치게 한다.
슉!
성급 천지존의 말이 끝나자마자 사람들은 동시에 구천에 있는 사성탑으로 향했다.
“갑시다!”
목진 등도 바로 움직였다.
전력 질주한 덕분에 그들은 1각도 안 되는 사이 사성탑 앞에 도착했는데 가까이에서 보니 사성탑은 생각보다 더 크고 웅장했다.
그런데 이는 사성탑의 절반일 뿐이었고 나머지 절반은 끝없는 어둠의 빛에 잠겨 보이지 않았다.
아마 사성탑의 다른 편에는 역외사족의 강자들이 잔뜩 모여있을 것이다.
꽈르릉!
꼭 닫혔던 사성탑의 대문이 서서히 열리더니 묵직한 소리가 뇌명처럼 울려 퍼졌고 오래된 기운이 휘몰아쳤다.
사람들은 대문이 열리자 바로 영력을 끌어올렸지만 아무도 먼저 들어가지 않고 눈치만 봤다.
“여러분, 선배님께서 하신 말씀은 다들 들어서 잘 알겠지만 우리는 사성탑 중 두 층만 지켜내면 되네. 그러지 않으면 천마제의 잔혼이 방출되어 우리도 죽을 수 있네.”
이번 일을 주최한 진불패가 목소리를 가다듬고 먼저 입을 열자 다들 동의하듯 묵묵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니 우리는 층마다 일정한 수와 일정한 실력의 사람을 들여보내야 하네. 한곳에 몰리는 것은 절대 안 되네.”
사람들이 한곳에 모여있으면 다른 층의 봉인이 뚫릴 확률이 높을 뿐만 아니라 아군 사이의 경쟁도 훨씬 치열해질 것이다.
“난 부도신족 사람이니 당연히 우리 조상님께서 계신 곳에 갈 것이네.”
현라가 미소를 지으며 한 말에 묵심은 무덤덤한 표정으로 녀석을 힐끗 쳐다보며 입을 열었다.
“나도 마찬가지네.”
이에 진불패는 태연하게 서 있는 듯했지만 몰래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현라와 묵심은 강적이라 그들과 같은 곳에 가지만 않으면 계승을 얻을 확률이 훨씬 높아질 것이다.
“그럼 난 경천노조(擎天老祖)한테 가겠네.”
진불패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난 창조(槍祖)한테 가겠네.”
그때 튼실한 사내가 나섰는데 온몸에서 엄청난 살기를 내뿜는 것으로 보아 사람을 수도 없이 많이 죽인 모양이었다.
목진은 상대방의 살기를 느끼고는 녀석이 무려 고급 주마사란 것을 바로 알아챘다!
고급 주마사도 지지존 대원만 정예급 실력자라 현라, 묵심, 진불패 못지않았다.
“그럼 난 태령노조한테 가겠네.”
현라 옆에 서 있던 어여쁜 여인이 생긋 웃으며 말했다.
잇따라 기타 소조 사람들도 각자 원하는 층을 선택했다.
“온청선, 영계 누이, 용상 형님은 낙리와 함께 태령노조가 있는 곳으로 가. 나는 부도노조 있는곳으로 갈거야.”
목진이 돌아서서 온청선 등한테 말을 건넸다.
낙리는 비록 준비해둔 바가 있다고 했지만 만일의 경우를 대비해 모든 전력을 그녀한테 넘겨주기로 했다.
정작 그는 영계 등의 도움이 필요 없었다. 목진한테는 일기화삼청이 있어 상위 지지존 두 명과 함께인 거나 다름없었고 수중에 현룡군까지 있었다.
목진의 말에 낙리는 잠시 고민하더니 결국 받아들였고 목진의 관심에 마음이 따뜻해졌다.
“너도 조심해.”
낙리는 목진을 지그시 바라보며 말했다.
1각도 안 되는 사이, 각 층에 들어갈 사람들의 분배가 끝났다. 층마다 지지존 대원만급 강자가 있었는데 그들이 곧 계승을 받을 가장 유력한 사람들이었다.
목진과 낙리도 의향을 밝혔지만 상위 지지존과 하위 지지존의 말에 귀를 기울이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현라와 묵심만 피식거리며 목진을 바라봤다.
백형아 역시 미소를 지은 채 낙리를 노려봤다.
결정을 마친 사람들은 바로 한 줄기 빛이 되어 오래된 고탑으로 향했다.
“갑시다!”
목진은 손을 휘두르며 먼저 나섰고 낙리 등도 바로 뒤를 따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