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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주재-839화 (838/1,000)

839화. 염마족 통령

사성탑에 들어간 순간, 주위의 공간이 파르르 떨리더니 환경이 완전히 바뀌었다.

앞쪽은 황량한 숲으로 나무는 시들시들한 것이 전혀 생기가 느껴지지 않았다.

주위를 대충 훑던 목진은 저 멀리 동쪽에서 웅장한 파동을 읽었는데 그 파동에 엄청난 압박감이 느껴졌다.

또한, 그는 상대방한테서 사악함이 담긴 음산한 기운을 느꼈는데 온몸에 소름이 끼칠 정도였다.

“저쪽은 아마 부도노조(浮屠老祖)의 잔존한 의지와 천마제 잔혼을 봉인한 곳일 거야.”

목진은 최대한 빨리 목적지로 달려가야만 했다. 그러다 역외사족의 강자들이 먼저 도착해 봉인을 뚫고 천마제의 잔혼을 방출하면 그들이 맡은 층은 분명 무너질 것이다.

슉!

이러한 생각에 목진은 발을 굴러 굵직한 나무 위에 올라탄 뒤, 속도를 한껏 끌어올린 채 숲속을 거닐었다.

나무 위에서 달리는 것은 자신을 드러내는 거나 마찬가지였지만 역외사족에서 사람을 얼마나 파견했는지 모르기 때문에 절대 좋은 선택은 아니었지만 그의 속도는 상당히 빨랐다.

퍽!

목진은 흐릿한 그림자만 남긴 채 귀신처럼 휙 지나갔는데 한 구역을 지나던 순간, 갑자기 움직임을 멈췄다.

퍽!

그의 앞쪽에 있는 메마른 나무에서 갑자기 검은색 화염이 활활 타오르며 엄청난 고온을 방출해 주위의 공간이 일그러지기 시작했다.

짝짝!

그러다 갑자기 박수를 치는 소리와 함께 두 사람이 화염 속에서 천천히 걸어 나왔다.

상대방의 머리에서 괴이한 검은색 화염이 타오르고 있었다.

“일전에 마주친 대천세계의 두 여인은 큰형님이 쫓으러 가셨는데 우리도 뒤편에서 운 좋게 이 녀석을 만났군.”

녀석들은 살기 가득한 눈빛으로 목진을 노려보며 말했다.

“실력이 너무 뒤처지는 것 아닌가? 대천세계의 등급으로 겨우 상위 지지존일 뿐이니 죽이는 게 너무 쉽네.”

다른 한 녀석이 무덤덤하게 목진을 바라보며 말했다.

“역외사족?”

목진이 가볍게 웃으며 물었다.

상대방의 실력은 확실히 그보다 뛰어났지만 일반 지지존 대원만급일 뿐이었다.

“아니네. 우린 염마족이네. 역외사족은 대천세계 사람들이 함부로 지어준 이름일 뿐이네.”

“상관없네. 곧 죽을 사람인데 호칭이 뭐가 그리 중요할까?”

목진이 가볍게 고개를 끄덕이며 한 말에 염마족 강자들은 멈칫했다가 씨익 웃었다. 목진을 바라보는 눈빛이 훨씬 차가워졌다.

“난 마염으로 저 녀석을 천천히 구워버리겠네.”

그중 한 녀석이 머리를 기웃거리며 말했다.

“참, 일전에 말했던 두 여인은 어떻게 생겼던가?”

목진이 가볍게 웃으며 한 말에 염마족 강자들은 듣는 척도 하지 않았다.

“억지로 입을 여는 수밖에 없겠군.”

목진은 어깨를 들썩이며 말했다.

쿵!

염마족 강자의 체내에서 난폭한 검은색 마염이 화산처럼 폭발하자 숲이 순식간에 불타올랐다.

“주제도 모르는 녀석, 곧 죽기보다 못한 것이 무엇인지 알게 될 것이네!”

두 명의 염마족 강자들은 마염과 함께 목진에게 향했다.

그들은 상위 지지존 밖에 안 되는 목진을 상대하는 데도 상당히 신중하게 행동했다.

그런데 목진은 자신을 향하는 녀석들을 보더니 이내 미소를 지었다.

“사람이 많으면 대수인가?”

목진이 말을 마치자마자 그 옆에 그와 똑같게 생긴 목진이 두 명 나타났다. 이에 염마족 강자들은 화들짝 놀랐다.

“젠장!”

염마족의 강자 두 명은 아차 싶었다.

이번에는 사람을 잘못 건드렸다.

활활!

황량한 숲에서 나지막한 소리와 함께 검은색 화염이 돌풍처럼 휘몰아쳐 주위를 잿더미로 만들었는데 이는 바로 사그라들었다.

사악.

까맣게 그을린 숲에서 누군가 걸어 나왔는데 그는 다름 아닌 목진이었다. 그는 고개를 숙여 손바닥이 거뭇거뭇해진 것을 발견하고 영력을 끌어올렸는데 화상이 놀라운 속도로 치유되었다.

그의 뒤에는 염마족의 두 강자가 고개를 푹 숙인 채 무릎을 꿇고 있었고 머리에서 활활 타오르던 검은색 화염도 어느새 완전히 숨이 죽었다. 그러나 여전히 두 눈이 휘둥그레진 채 목진을 바라보고 있었다.

“역시 저들이었어.”

목진은 시체를 뒤로한 채 고개를 들어 다른 쪽을 바라보고는 미간을 살짝 찌푸렸다.

일전의 대결은 역시나 목진의 승리로 끝났다. 그는 비록 상위 지지존일 뿐이지만 전투력은 일반 지지존 대원만급 강자보다 뛰어났다. 지지존 대원만급에 이른지 얼마 안 된 두 염마족 강자들은 절대 그의 상대가 아니었다.

목진은 그들한테서 두 여인에 관한 정보를 들었는데…….

역시나 그의 예상대로 두 여인은 부도신족의 청상과 청령이었다. 이곳에 들어온 여인은 그들을 제외하면 다른 사람은 없는 듯했다.

청상과 청령은 염마족의 우두머리한테 걸린 것 같은데 실력은 잘 몰라도 청상이 낭패를 볼 정도면 아마 지지존 대원만 정예급 강자일 것이다.

그는 부도신족에 호감이 거의 없었기 때문에 나설지 말지 고민되었다.

비록 그의 어머니인 청연정이 청상이 있는 청맥 출신이지만 여태껏 그녀를 거들떠보지 않은 것을 생각하면 너무 화가 났다.

그런데 그는 결국 입을 삐쭉 내밀며 청상이 있는 쪽으로 향했다.

목진은 부도신족 사람들이 밉지만 자신이 곤경에 빠졌을 때, 청상이 도와주려 했던 것이 생각나 그냥 지나칠 수 없었다.

부도신족에 대한 한을 애꿎은 사람한테 쏟아부을 필요는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목진은 그렇게 속 좁은 사람은 아니었다.

* * *

쿵!

검은색 화염이 활활 타오르는 권광이 운석처럼 추락하자 파멸의 기운이 깃든 무서운 위압감에 주위의 공간이 와르르 무너졌다.

청상은 청령의 손목을 잡은 채 영광을 발하며 속도를 한껏 끌어 올렸다.

슉!

그러다 화염 권광에 적중한 산맥은 순간 폭발했고 수많은 바위가 검은색 화염에 불타 없어졌다.

청령은 권광의 무서운 파괴력에 이내 사색이 되었다.

“허허, 미인들이여, 당장 반항을 멈추고 내 품에 안기게. 대천세계의 미인은 어떤지 제대로 느껴봅시다!”

염마족 통령은 껄껄 웃으며 쫓아왔는데 그 또한 검은색 화염이 활활 타오르는 머리를 한 튼실한 사내였고 얼굴에 화염 무늬가 새겨져 있었다.

그는 음탕한 눈빛으로 청상과 청령을 바라보며 입맛을 다셨다.

“청상 언니, 혼자라도 얼른 도망가요!”

뒤쪽에서 느껴지는 뜨거운 파동에 청령은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 그들은 운이 너무 나빴다. 사성탑에 들어오자마자 염마족 강자를 만난 데다 청상이 다치기까지 해서 지금은 도망가는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그들을 쫓고 있는 염마족 강자의 실력이 너무 강해 청상이 다치지 않았어도 겨우 상대할 수 있을 정도였다. 다친 청상이 청령까지 지켜내기란 거의 불가능했다.

“안 돼!”

청상은 이를 악물고 외쳤다. 그녀는 염마족 강자의 눈에서 흘러넘치는 욕망과 포악함을 발견했다.

“내가 저 녀석을 상대할 테니까 넌 먼저 도망가!”

청상은 한기 가득한 눈빛으로 상대방을 노려보며 말했다.

“청상 언니는 절대 저 녀석의 상대가 아니에요!”

청령이 황급히 말을 건넸다.

“이대로라면 우리 둘 다 잡힐 거야.”

청상의 말에 청령은 눈물을 머금은 채 힘껏 고개를 끄덕이더니 바로 도망갔다. 청상은 뒤돌아서 차가운 눈빛으로 자신을 향해 다가오는 염마족 강자를 노려봤다.

“허허, 자신을 희생해 타인을 구한다 이건가? 참 감동적이군.”

염마족 강자도 속도를 점차 줄이더니 히쭉거리며 청상을 바라봤다.

“일단 자네부터 마음껏 즐기도록 하지.”

염마족 강자는 청상의 영롱한 몸매를 탐욕스럽게 바라보며 입맛을 다셨다.

이에 청상은 이내 정색하며 파란색 장검을 꺼냈는데 검신에서 극한의 한기가 방출돼 주위의 공기마저 얼어붙었다.

이는 한빙으로 빚은 검으로 나타나자마자 주위를 한빙의 세계로 만들었다.

그건 진정한 고급 성물이었다.

그 광경에 염마족 통령은 히쭉 웃으며 손을 들었는데 검은색 화염이 모여 검은색 화염 구슬이 만들어졌다.

무한의 열기를 내뿜는 화염 구슬은 사람 마음속 깊숙한 곳에 있는 사악한 기운을 끌어내듯 오래 있으면 아무리 착한 사람이라도 사악해질 것만 같았다.

화염 구슬도 보통 물건은 아닌 듯했다.

크으으으!

염마족 통령이 나서자 화염 구슬에서 수많은 거대한 화염 흑사가 나타나 입을 쩍 벌리더니 암장 같은 검은색 화염을 내뿜었다.

청상이 수중의 한빙 장검을 휘두르자 한기가 모여 흑사가 닿기 직전에 한빙 감옥을 이뤄 녀석들을 가뒀다.

“허허.”

그런데 염마족 통령은 이를 발견하고 괴이하게 웃기 시작했다.

퍽!

온몸에서 검은색 화염이 활활 타오르는 거대한 흑사가 갑자기 폭발하자 검은색 화염이 휘몰아쳐 청상이 만든 한빙의 세계가 순식간에 무너졌다.

풉.

청상은 결국 피를 토했다. 이미 상처를 입은 그녀는 염마족 통령의 꼼수에 넘어가 더 심하게 다쳤고 체내의 영력이 무질서하게 움직여 온몸이 지끈거렸다.

“하하, 미인이여, 얼른 내 품에 안기게!”

염마족 통령은 껄껄 웃으며 청상한테 달려가 그녀의 목을 덥석 잡았다.

멀리 떨어져 그 모습을 지켜보던 청령은 순간 절망에 빠졌다.

정작 청상은 아무렇지 않게 염마족 통령을 보더니 결연하게 결인했는데 체내의 영력이 미친 듯이 요동쳤다.

그녀는 자폭하려 했다.

“청상 언니!”

청령은 천지의 영력이 난폭해진 것을 발견하고 사색이 되어 외쳤다.

“네 이년!”

염마족 통령도 안색이 확 어두워져 바로 물러나려 했는데 갑자기 어디선가 두 사람이 나타나 수정의 빛을 발하는 주먹을 휘둘러 그의 가슴팍을 때렸다.

갑작스러운 공격에 염마족 통령은 황급히 검은색 화염이 활활 타오르는 손을 내밀어 상대방을 물리치려 했지만 수정의 빛을 발하는 주먹은 여전한 기세로 그의 손으로 향했다.

쿵!

나지막한 소리와 함께 염마족의 통령은 멀리 튕겨 나갔는데 녀석은 상대방의 힘보다 자신의 손에 닿은 수정의 빛에 적잖게 놀랐다. 수정의 빛이 지나가자 그의 검은색 화염이 빠르게 어두워졌다.

마치 봉인되는 것처럼 말이다.

“이건 도대체 뭐란 말인가!”

염마족 통령은 버럭 소리를 지르며 미친 듯이 체내의 영력을 끌어올려 괴이한 수정의 빛을 없애려 했다.

한편, 목진의 본체는 체내의 영력이 미친 듯이 요동치는 청상 앞에 나타나더니 미간을 찌푸리며 그녀의 가슴팍을 가볍게 때렸다. 그러자 수정의 빛이 퍼져 청상의 폭주한 영력을 잠시 봉인했다.

영력이 사그라들자 청상은 꼭 감았던 눈을 비스듬히 떴는데 눈앞에 낯익은 청년이 서 있는 것을 발견하고 흠칫 놀랐다.

“목진아…….”

그녀는 말을 마치기도 전에 픽 쓰러져 목진은 바로 그녀의 허리를 잡고는 어쩔 수 없다는 듯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어디서 온 녀석이 감히 내 일을 망치려는 것이냐?”

목진이 청상을 끌어안자 뒤쪽에서 잔뜩 화가 난 듯한 포효가 울려 퍼졌다.

뒤에서 들려오는 포효에 목진은 청상의 가녀린 허리를 잡고 돌아서서 검은색 화염을 뒤집어쓴 염마족의 통령을 노려봤다.

녀석도 사악한 야수처럼 이글거리는 눈빛으로 목진을 쏘아보았다.

그런데 그때, 목진은 녀석을 무시하고 먼 곳을 힐끗 쳐다봤다. 도망갔던 청령이 갑작스러운 변고에 다시 돌아온 것이다.

“목진?”

그녀는 목진을 발견하고 흠칫 놀라더니 쓰러져 그의 품에 안긴 청상을 보고 표정이 복잡미묘해졌다. 청령은 그들을 구해준 사람이 목진이라는 사실에 깜짝 놀랐다.

“잘 돌보고 있어.”

목진은 영력으로 청상의 몸을 감싸 청령한테 건네주며 말했다.

“고마워!”

청령은 언니를 조심스럽게 건네받고는 입술을 깨물며 말했다.

그녀는 일전에 상위 지지존 밖에 안 되는 목진의 실력에 탐탁지 않아 했고 그가 자신의 도움을 거절한 것에 화가 났었는데 지금은 그런 생각을 한 자신이 부끄러울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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