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40화. 염마족과의 대전
목진은 체내에 부도신족의 혈맥이 깃들긴 했지만 부도신족의 도움을 전혀 받지 못했다. 그런데도 무려 상위 지지존경에 이르렀고 실제 전투력은 묵심, 현라 등 소주들 못지않았다.
어찌 보면 현라, 묵심 등보다 훨씬 대단한 청년이었다.
“조심해, 녀석은 아주 강해.”
청령은 청상을 데리고 물러나며 귀띔해 주었다. 염마족 통령의 강대한 실력을 몸소 체험한 청령은 전성기 때의 청상이라도 겨우 그를 상대할 정도라는 걸 깨달았다.
이에 목진은 가볍게 고개를 끄덕이며 염마족 통령을 노려봤다. 그도 상대방한테서 위험한 파동을 느꼈다.
일전에는 습격한 거라 녀석이 어느 정도 타격을 입었지만 더는 그런 효과를 내기는 어려울 것이다.
흑백 목진도 어느새 다가와 목진의 양측에 서서 염마족 통령을 쏘아봤다.
한편, 씩씩거리던 염마족 통령은 이내 정색했다.
그는 목진이 일전에 죽인 염마족 강자들보다 실력이 뛰어났는데 상위 지지존으로 보이는 목진의 실제 전투력이 이를 훨씬 뛰어넘는다는 사실을 바로 알아챘다.
이는 일전에 목진이 한 공격만 봐도 알 수 있었다.
“여인들을 넘겨주면 살려는 주겠네!”
염마족 통령은 눈가를 파르르 떨며 입을 열었는데 목진은 가볍게 웃더니 순간 눈빛이 예리해졌다.
“썩 꺼져라.”
“주제도 모르는 녀석!”
염마족 통령은 버럭 화가 났다. 그는 감히 자신한테 꺼지라고 한 사람을 이대로 용서할 수 없었다!
“일전에는 자네가 습격해서 우세를 차지했던 것뿐이네. 그리 죽고 싶어 안달이면 내가 그 소원을 들어주지!”
말을 마친 염마족 통령이 씨익 웃으며 발을 힘껏 구르자 하늘이 파르르 떨렸다. 녀석의 체내에서 검은색 화염이 휘몰아치자 주위의 온도가 순식간에 상승해 공기마저 연소하기 시작했다.
이와 동시에, 녀석은 강력하기 그지없는 압박감을 내뿜었다.
멀리 물러났던 청령은 녀석이 형성한 압박감에 바로 안색이 어두워졌다. 염마족 통령의 실력은 필경 지지존 대원만 정상에 이르렀을 것이다.
이 정도 실력이라면 현라, 묵심 등마저 버거웠을 것이다.
“염마수(炎魔手)!”
염마족 통령이 이글거리는 눈빛으로 목진을 쏘아보며 공격을 개시하자 도천의 검은색 화염이 한데 모여 하늘을 가릴 정도로 큰 화염 마장을 이룬 뒤, 목진을 향해 사정없이 내려앉았다.
지면은 녀석의 장풍이 닿기도 전에 움푹 파였고 숲도 순식간에 불바다가 되었다.
목진은 자신을 향하는 마장을 보더니 깊게 숨을 들이키고, 한 손으로 결인하며 세 갈래의 웅장한 영력 빛줄기를 내뿜었다.
크으으으!
세 갈래의 영력 빛줄기가 한데 모여 팽창하더니 경천의 기둥처럼 날아가 마장을 공격했다.
쿵!
양자가 부딪치자 천지가 진동했고 검은색 화염과 영력 빛줄기가 부딪쳐 형성한 충격파가 휘몰아쳤다.
슉!
그때 염마족 통령은 귀신처럼 목진의 앞에 나타나더니 수중의 검은색 화염이 요동치는 구슬에서 수많은 화염 광선을 내뿜었다.
“곤령마망(捆靈魔網)!”
광선들은 신속하게 얽히고설켜 커다란 그물을 형성해 세 명의 목진을 감쌌다.
“허허, 내 마망에 갇히면 제아무리 대천세계의 지지존 대원만급 강자라도 반드시 죽을 수밖에 없네!”
목진을 가두는 데 성공한 염마족 통령은 피식 웃으며 말했다.
쿵!
그런데 마망에서 눈부신 영력의 빛이 폭발하더니 방대하기 그지없는 자금색 그림자가 형성되었다.
불후의 기운을 내뿜는 자금색 빛은 화염 마망을 손쉽게 찢어버렸다.
“불후신문, 변화무쌍, 불후신권(不朽神拳)!”
마망이 완전히 찢어지자 나지막한 소리와 함께 만 장 정도의 방대한 자금색 주먹이 무서운 힘을 실은 채 공간을 부수며 염마족 통령한테 날아갔다.
“염마순(炎魔盾)!”
이에 염마족 통령이 황급히 수중의 검은색 화염 구슬을 꼭 쥐자 검은색 화염이 활활 타올라 앞쪽에 거대한 검은색 방패를 형성했는데 그 표면에 해골 모양 무늬가 새겨져 있었다.
쿵!
그러다 자금색 주먹과 염마순이 힘껏 부딪쳤는데 불후의 빛은 염마족 특유의 마염을 억제하는 효과가 있는 것 같았다.
퍽!
염마순은 바로 부서졌고 염마족 통령은 맥없이 튕겨 나가 뒤쪽에 있는 한 산맥에 꽂혔다. 곧 산 전체가 와르르 무너졌다.
그러나 염마족 통령은 바로 하늘 높이 날아올라 음침한 눈빛으로 앞쪽을 바라봤다. 저 멀리 하늘에서 거대한 자금색 그림자가 우뚝 솟아올랐고 어깨에 세 명의 목진이 서서 차가운 눈빛으로 그를 노려보고 있었다.
“이것이 바로 대천세계의 지존법신이란 말인가?”
염마족 통령은 음산한 눈빛으로 목진의 지존법신을 바라보더니 이내 정색했다.
“그럼 오늘, 자네에게 염마족의 수단을 제대로 보여주지!”
말을 마친 염마족 통령이 합장하자 두 눈에서 검은색 화염이 미친 듯이 타올라 곧 눈이 불타 없어질 것 같았다.
위잉!
녀석의 뒤쪽 하늘이 갑자기 미친 듯이 요동치더니 검은색 화염이 모여 순식간에 만 장 정도의 검은색 마상을 이뤘다.
검은색 화염을 뒤집어쓴 마상은 무한의 잔혹한 기운과 더불어 무서운 위압감을 내뿜었다.
멀리서 상황을 지켜보던 목진은 미간을 살짝 찌푸렸다. 그는 염마족 통령이 이렇게 상대하기 버거운 상대일 줄 몰랐다.
일반 지지존 대원만급 강자들이었다면 염마족 통령을 상대하려 하지 않았을 것이다.
후우.
목진은 깊게 숨을 들이켜며 마음을 가라앉혔다. 염마족 통령은 실력이 막강해 쓰러트리려면 치열한 싸움을 벌여야 할 것이다.
잇따라 목진이 한 손으로 결인하자 불후금신에서 자금색 빛을 발하며 강력하기 그지없는 위압감을 형성했다.
그런데 그때, 갑자기 강력하고도 차가운 기운이 나타났다. 목진과 염마족 통령이 흠칫 놀라 고개를 돌려보니 정신을 잃었던 청상이 깨어나 한빙 장검을 쥔 채 녀석을 노려보고 있었다.
“귀찮은 여인이로군!”
염마족 통령은 순간 안색이 어두워졌다. 지금 전력을 다해 목진을 상대하기도 모자란데 청상까지 합세하면 결과가 어찌 될지 알 수 없었다.
“이번엔 운이 좋은 줄 알게. 대신 다음번에 마주치면 마상으로 자네 지존법신을 갈기갈기 찢어버릴 것이네!”
염마족 통령은 눈가를 파르르 떨며 잠시 고민하더니 씨익 웃으며 말했다. 그러더니 아래쪽 마상이 갑자기 검은색 돌풍으로 변했고 돌풍에서 활활 타오른 검은색 화염이 녀석을 감싼 채 멀리 날아갔다.
목진은 녀석이 이렇게 빨리 도망칠 줄 몰랐는지 멍하니 서 있다가 정신을 차리고 인상을 찌푸렸다.
그는 염마족 통령과의 짤막한 대결에서 역외사족 강자들의 괴이한 수단과 뛰어난 실력을 제대로 느꼈다.
녀석은 상고의 성연에 들어온 역외사족 강자 중 정예급에 속할 텐데 이 정도 등급의 강자가 도대체 얼마나 들어와 있을까?
목진은 이리 생각하며 입술을 살짝 깨물었다. 팔부부도를 얻는 일은 역시 쉽지 않았다.
“네가 나서지 않아도 됐어. 나 혼자도 충분히 상대할 수 있었어.”
목진은 염마족 통령이 완전히 시야에서 사라진 것을 확인하고 나자 돌아서서 청상한테 말을 건넸다.
그는 청상이 억지로 일어나 검을 든 것임을 잘 알았다.
청상 옆에 서 있던 청령은 이런 일이 벌어지기 전에 이 말을 들었으면 뭐라 비웃었을 텐데 그의 실력을 확인하고 나서는 묵묵히 고개를 끄덕이기만 했다.
청상은 금세 다시 안색이 창백해졌다.
“녀석은 너를 두려워한 데다 내가 갑자기 개입하자 화들짝 놀랐던 거야.”
녀석은 목진을 상대하면서 청상한테까지 신경 쓸 여유가 없었기 때문에 도망간 것이다.
이에 목진은 머쓱하게 웃으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더니 바로 화두를 돌렸다.
“몸은 좀 어때?”
“조금만 휴식하면 바로 회복할 수 있어.”
청상은 고개를 가볍게 끄덕이며 답했다. 그녀는 지지존 대원만급 강자라 생명력이 강했다.
“이번엔 정말 고마웠어.”
청상은 목진을 지그시 쳐다보며 나긋하게 말을 건넸다.
목진이 제때 나타나지 않았더라면 그녀와 청령은 무슨 꼴을 당했을지 알 수 없었다. 염마족 통령의 잔혹함은 일전의 대결로 충분히 깨달았다.
“일전에 너희도 날 도와주려 했으니 이것으로 대신하면 되지.”
목진은 손을 휘익 저으며 말한 뒤, 바로 떠나려 했다.
“목진아, 우리와 함께 가자. 사성탑에 역외사족 강자가 얼마나 많은지 모르니 함께 다니면 훨씬 안전하지 않을까?”
청령이 황급히 목진을 불러 세웠다.
청상이 아직 다친 상태라 목진을 이대로 보내면 또 언제 어디서 역외사족 강자를 만날지도 모를 일이었다. 그때 가면 그들은 정말 죽을 수도 있었다.
그러나 목진은 조금 고민이 되었다. 청상이 상태를 회복하면 제법 도움이 되긴 할 테지만 그는 완전한 믿음이 없는 사람들과 함께 하는 게 썩 내키지 않았다.
“부도신족에 관한 정보를 알려줄게. 너의 어머니에 관한 정보도 말이야.”
청상은 잠시 고민하다가 다시 입을 열었다.
“그럼 같이 가자.”
목진은 바로 멈춰 서더니 손을 휘익 저으며 말했다. 그리고 영광으로 청상과 청령을 감싸고 함께 앞으로 나아갔다.
* * *
“어머니는 좀 어때?”
목진은 한참 고민하다가 드디어 입을 열었다.
“정 이모는 잘 지내고 있어.”
청상과 청령이 마주 보며 한 말에 목진은 피식 웃었다.
“갇힌 사람이 좋으면 얼마나 좋을까?”
“넌 정 이모가 부도신족에서 지위가 얼마나 높은지 잘 모르지? 아무리 대장로라도 강제로 그녀가 원치 않는 일을 시킬 수는 없어.”
청상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답했다.
“일전에 두 사람이 말다툼을 벌였는데 그날, 정 이모께서 부도신족의 보호 영진을 장악해 대장로는 타협할 수밖에 없었어.”
“결국 부도신족에서 너를 잡는 데 천지존을 파견하지 못하게 되었지.”
청상은 목진을 지그시 쳐다보며 말을 이어갔다.
“정 이모는 너 때문에 부도신족에 갇혀 계신 거야. 안 그럼 부도신족에서 그녀를 그냥 가두려면 엄청난 대가를 치렀을 거야.”
목진은 순간 심장이 철렁 내려앉았다. 그는 언젠가 부도신족의 족지에 들어갔을 때도 어머니께서 몰래 도움을 주신 덕분에 무사히 도망 나왔던 것이 생각났다.
“그래서 부도신족의 천지존들이 나를 발견하고도 나서지 않았던 거군. 그건 전부 어머니 덕분이었어.”
목진의 표정이 복잡미묘해졌다. 그는 비록 어릴 때부터 어머니의 따스한 품을 느껴본 적이 없었지만, 어머니께서는 다른 방식으로 자신을 지켜내고 있었다.
그건 보답 따위를 전혀 바라지 않는 어머니의 사랑이었다.
“우리 어머니가 청맥 사람이라고 했는데 왜 청맥에서는 그녀가 갇힌 걸 보고도 모른 척하는 거야?”
목진이 입술을 깨물며 물었다. 청상은 가볍게 한숨을 쉬며 답했다.
“부도신족에는 파벌이 상당히 많고 그중 가장 강대한 파벌은 현맥(玄脈)와 묵맥(墨脈)이야. 우리 청맥도 강대한 적이 있었지만 그때는 수령이 바로 정 이모의 아버지였어. 네 외할아버지 말이야.”
“그런데 그분이 돌아가시자 청맥은 하락추세를 걷기 시작했고 정 이모까지 부도신족을 떠나 수십 년 동안 종적을 감춘 채 생활하셨지. 정 이모는 아마 그사이, 네 아버지를 만나 너를 낳았을 거야.”
“그러다 정 이모가 다시 돌아오자 혈맥이 유출된 사실이 밝혀져 바로 장로원에 갇히셨어. 현재의 장로원은 대부분 현맥과 묵맥 사람들한테 넘어갔고 청맥도 노력했지만 잘 안 됐어.”
“그리고 아직 청맥의 일부 사람들이 정 이모를 못마땅하게 여기고 있어. 그녀는 청맥의 차기 수장이었는데 책임을 다하지 못했다고 말이야.”
“정 이모는 이러한 이유로 갇힌 거야.”
목진은 미간을 찌푸리며 물었다.
“누구나 청맥의 수장이 되고 싶은 건 아닌데 왜 어머니를 억지로 그 자리에 앉히려는 거지?”
목진은 어머니와 교류가 거의 없었지만 그녀가 한 세력의 수장이 되고 싶어 하지 않는다는 것을 느꼈다.
“구체적인 사정을 아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그런 마음을 아는 건 소수일 뿐이고 대부분 청맥 사람들은 자신이 존경하는 정 이모가 최대한 빨리 풀려나길 바라고 있어.”
청상이 쓸쓸하게 웃으며 한 말에 목진은 잠시 고민하더니 안색이 조금 밝아졌다. 청상은 이런 일로 거짓말할 필요가 없었다. 어차피 목진은 언젠가 진실을 알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