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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주재-846화 (845/1,000)

846화. 혈강(血僵) 천마제

치익!

마제의 정혈이 빠르게 스며들자 석관은 부단히 진동하며 진득하기 그지없는 마의 기운을 방출했다.

석관을 감은 오래된 쇠사슬이 마의 기운에 부식되어 녹아내렸다.

“이런, 석관이 곧 뚫릴 것 같아!”

목진이 안색이 어두워지며 외쳤다.

한편, 대천세계의 강자들도 이상한 낌새를 눈치채더니 순간 사색이 되었다.

만약 천마제의 잔혼이 봉인을 뚫고 나오면 지지존 대원만급 강자들만으로는 상대할 수 없을 것이다.

위잉!

그때 제단의 정상에 놓인 네 개의 석비도 천마제 잔혼의 이상한 파동을 느낀 듯 눈부신 빛을 발하며 녀석을 제압하려 했다.

퍽!

이에 다들 조금이나마 안심하고 있었는데 석비 하나가 갑자기 폭발하더니 위쪽에 빛이 모여 화면을 이뤘다.

화면도 제단을 가리키고 있었는데 제단 위쪽에 거대한 악마가 피를 뚝뚝 흘리는 누군가의 머리를 쥔 채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고 있었다. 목진과 대천세계의 강자들은 머리의 주인을 알아보고 깜짝 놀랐다.

“저건 백축(百逐)이네!”

목진의 안색이 어두워졌다. 백축은 대천궁의 고급 주마사로 창조가 있는 층고에 들어갔고 해당 층에 들어간 대천세계 사람 중 최정예급 강자였지만 지금은 사망했다.

즉, 창조가 있는 층은 역외사족의 강자가 점령했고 석비가 부서졌다는 것은 그곳의 천마제의 잔혼이 석방되었다는 뜻이었다.

“천마제의 잔혼 하나가 이미 석방되었으니 하나만 더 풀리면 정말 위험하네. 그러면 사성탑의 봉인의 힘도 확 줄어들 것이네.”

하여 그들은 절대 천마제의 잔혼이 빠져나오게 둘 수 없었다!

쿠쿵!

그때 석비 하나가 부서져 일전에 제압되었던 석관이 다시 격렬하게 진동했다. 석비 세 개로는 녀석을 완전히 제압할 수 없었다.

목진은 눈가를 파르르 떨며 상황을 살폈다. 그도 돕고 싶었지만 방법이 없었다.

석비가 부서진 것이 사성탑에게는 제법 큰 타격이었는지 시간이 지날수록 마제의 정혈을 흡수한 석관이 내뿜는 마의 기운이 점차 난폭해졌다.

쿵!

그러다 석관에서 만 장의 마광을 내뿜더니 결국 폭발했다.

도천의 마광과 함께 뇌명 같은 목소리가 주위에 쩌렁쩌렁 울려 퍼졌다.

“하하, 만 년이나 지난 후에 나 혈강 천마제가 다시 봉인을 뚫고 나오는 날이 있을 줄이야!”

사정없이 휘몰아치던 마의 기운은 한데 모여 백 장 정도의 그림자를 이뤘다. 그는 검은색 머리를 풀어헤친 재 무서운 기운을 내뿜는 사내였다.

다른 대천세계의 강자들은 너무 무서워 다리에 힘이 풀릴 정도였고 목진도 상대방한테서 엄청난 위협감을 느꼈다. 천마제는 잔혼이지만 그들이 맞설 수 있는 존재가 아니었다.

반면, 역외사족의 강자들은 하늘이 떠나가라 환호했다.

“네가 나를 풀어준 것이냐?”

혈강 천마제는 고개를 숙여 시천유를 바라보며 말을 이어갔다.

“그럼 너한테 보상을 내리는 겸, 네 육신을 사용해주겠다!”

혈강 천마제는 시천유가 대답하기도 전에 한 갈래 마광이 되어 녀석의 머리를 통해 육신에 스며들었다. 그는 잔혼일 뿐이라 실력을 더 잘 끌어올리기 위해서는 육신이 필요했다.

시천유의 눈동자가 점점 시뻘겋게 변했고 메마른 몸은 한철 같은 빛을 발하기 시작했다.

적응을 끝낸 혈강 천마제는 느긋하게 기지개를 켜며 씨익 웃었다.

“시마족의 녀석이었군. 육신이 제법인걸? 내 실력을 조금이나마 선보일 수 있겠군.”

그는 돌아서서 살기 가득한 눈빛으로 제단 쪽을 노려보며 외쳤다.

“몹쓸 녀석, 나를 이렇게나 오래 가두다니. 내 오늘 반드시 이곳을 부술 것이다!”

쿵!

말을 마친 혈강이 힘껏 손을 휘두르자 마의 기운은 엄청난 힘이 깃든 만 장 정도의 마인이 되어 제단으로 향했다.

위잉!

그런데 그때, 제단의 중심에 놓인 석비에서 오래된 빛을 발하더니 창로한 그림자가 나타나 옷깃을 휘날려 마인을 막아냈다.

“혈강, 자네가 결국 도망쳐 나왔군.”

창로한 그림자가 가볍게 한숨을 쉬며 말했다.

“노조!”

대천세계 강자들은 흠칫 놀랐는데 현라, 묵심, 청상 등은 이내 화색이 되어 소리쳤다.

그는 다름 아닌 부도노조의 의식이었다.

“하하, 우리를 죽이려던 계획이 틀어졌나 보군. 사성탑 중 하나가 부서졌으니 나만 자네를 죽이면 우리 넷은 곧 다시 이곳을 벗어날 수 있겠어!”

시천유의 몸을 장악한 혈강 천마제가 부도노조의 의식을 바라보며 호탕하게 웃었다.

“과연 자네 생각대로 될까?”

부도노조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말했다.

“의식 따위가 무슨 수로 날 막는단 말인가?”

혈강 천마제가 씨익 웃으며 물었다.

“시마족 녀석의 육신이 나와 아주 잘 어울리니 이번만큼은 자네를 이길 자신이 있네!”

“그건 모르는 일이지.”

부도노조는 가볍게 웃으며 주위를 쓰윽 훑었다.

슉! 슉!

그때 현라와 묵심이 갑자기 날아가 인사를 올렸다.

“노조, 우리가 노조를 도와 악마를 베겠습니다!”

말을 마친 녀석들이 바로 체내의 부도탑을 소환하자 광명과 암흑의 특이한 빛을 발하는 두 부도탑이 나타났다.

부도노조를 도와 절세의 신통인 팔부부도를 획득하려고 그러는 것이었다.

“저것들이!”

청령은 몰래 욕설을 퍼부었다. 목진이 목숨을 걸고 싸워 그나마 이 정도 상황을 만들어놨는데 저들은 날로 먹으려 하고 있었다.

“부도족에 이렇게 훌륭한 이들이 있었다니…….”

부도노조는 두 사람 머리 위에 나타난 부도탑을 보더니 조금 놀란 듯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이에 현라와 묵심은 이내 화색이 되었는데 부도노조는 바로 목진한테 눈길을 돌렸다.

“저 아이야말로 나와 함께 싸울 최선의 선택인 것 같구나.”

“아이야, 네가 한 일을 전부 목격했단다. 넌 아주 훌륭한 아이구나. 상고 시절에도 부도족에 너 같은 사람은 얼마 없었단다.”

목진은 순간 흠칫하더니 조용히 서 있기만 했다.

그런데 부도노조가 상냥하게 웃으며 목진을 바라보자 현라와 묵심은 순간 표정이 굳었다.

“노조, 저 녀석은 부도신족의 죄인이라 절대 함께하면 안 됩니다!”

부도노조도 흠칫 놀라 미간을 찌푸린 채 목진을 쓰윽 살피더니 현라와 묵심한테 고개를 돌렸다.

“저 아이는 마제의 유골을 상대하는 것마저 두려워하지 않는 강인한 성품을 가졌는데 어찌 죄인이란 말이냐?”

“저 녀석의 어머니가 외부 사람과 사통하여 혈맥을 유출한 큰 죄를 지었습니다.”

현라와 묵심은 멈칫하더니 조심스럽게 답했다.

“말도 안 되는 소리, 그따위 일로 이렇게 훌륭한 사람을 죄인 취급하다니! 부도족이 언제부터 그렇게 우매한 종족이 되었단 말이냐!”

부도노조가 버럭 화를 내자 현라와 묵심은 순간 말문이 막혔다. 부도노조는 청연정이 저지른 일을 전혀 죄로 여기지 않았다.

“아이야, 나를 도와 악마를 없애겠느냐?”

부도노조는 다시 부드러워진 눈빛으로 목진을 바라보며 물었다.

“최선을 다해 돕겠습니다!”

목진의 표정이 복잡미묘해졌다. 그는 자신을 죄인 취급하지 않는 부도족 사람은 처음이라 깊게 숨을 들이켜며 외쳤다. 그 말에 현라와 묵심은 얼굴이 붉으락푸르락해졌다.

“최선을 다해 돕겠습니다.”

목진은 바로 부도노조의 제안을 받아들였다. 그 역시 팔부부도를 얻기 위해 상고의 성연에 들어왔다.

이에 부도노조도 흐뭇하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반면, 현라와 묵심은 안색이 확 어두워졌다. 그들은 목진의 죄인 신분을 밝혔는데도 노조께서 그를 선택할 줄 몰랐다.

그럼 팔부부는 목진이 차지하게 될 거란 말인가?

이러한 생각에 현라와 묵심은 질투가 나 참을 수가 없었다.

“쌤통이다!”

청령이 피식 웃으며 말했다. 목진이 아니었다면 시천유가 제단을 장악했을 것이고 현라와 묵심은 부도노조한테 아부를 떨 기회조차 없었을 것이다.

그런데도 녀석들은 목진을 깎아내리지 못해 안달이었으니, 역겨울 뿐이었다.

다행히 부도노조는 지금의 부도신족 장로들과는 전혀 다른 현명한 사람이었다.

옆에 서 있던 청상도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그녀는 팔부부도의 욕심을 버린 지 오래라 다툴 생각조차 없었다. 목진이 그 수련법을 가졌으면 하고 바랐다.

“목진과 노조가 함께 천마제의 잔혼을 없앴으면 좋겠어. 안 그럼…….”

청상은 자못 걱정되었다. 역외사족이 이미 사성탑 중 한 층을 차지해 이들까지 실패하면 상당히 위험해질 것이다.

그러다 천마제의 잔혼이 정말 사성탑을 벗어나기라도 하면 그 후과는 엄청날 것이다.

그때 부조노조의 의식이 갑자기 날아가 목진의 머리에 스며들자 눈에서 만 장의 눈부신 빛을 방출했다.

목진은 순간 체내에 무서운 힘이 휘몰아치는 것이 느껴졌는데 너무 강력한 힘에 그의 육신에도 혈흔이 생겨났다.

“힘이 엄청나군.”

목진은 체내의 무궁무진한 힘을 느끼고는 소름이 쫙 돋았다. 이전의 실력과 비교하면 천지 차지였다.

부도노조의 잔존한 의식에 깃든 힘마저 이 정도라면 전성기 때의 실력은 얼마나 강했단 말인가!

성급 천지존은 역시 대단했다.

“난 네 육신을 빌려 혈강 천마제와 싸울 거란다.”

부도노조의 의식이 전한 말에 목진은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상대방의 힘이 너무 강대해 스스로 장악할 능력이 없었다.

이는 꼭 갓난아이한테 장도를 쥐여준 것과 같았는데, 아무리 애를 써도 휘두를 수 없어 진정한 힘을 발하기란 불가능했다.

“어이, 절대 자네가 나를 다시 제압하도록 내버려 두지 않을 것이네!”

혈강 천마제가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더니 뒤쪽에 마의 기운이 미친 듯이 모여 사람 머리 정도 크기의 검은색 마구를 이뤘다.

이는 한껏 압축한 마의 기운이었다.

수수해 보이는 마구의 출현에 주위의 공간은 견디지 못하고 바로 무너졌다.

목진은 마구를 보자 심장이 파르르 떨렸다. 그가 불후금련을 사용해도 마구에 깃든 힘은 막아내지 못할 것이다.

쿵!

마제가 마구를 내던지자 마구가 지나간 곳의 공간이 모조리 무너졌고 예리하기 그지없는 공간 파편은 마구에 스며들어 그 위력이 점차 강해졌다.

상대방의 간단한 공격에도 천지를 부술 만큼의 위력이 깃들어 있었다.

이에 ‘목진’이 합장하자 손바닥에 부도탑이 나타났는데 분명 목진 체내의 성부탑이었지만 그가 소환했을 때와는 완전히 다른 형태였다.

부도탑이 눈부신 수정빛을 발하는 태양처럼 나타나자 하늘에 걸린 태양마저 순간 어두워 보였다.

성부도탑은 파르르 떨며 탑 끝을 휘청이더니 지극히 오묘한 힘이 깃든 수정의 빛을 발하며 상대방의 공격에 맞섰다.

역시나 경천의 폭발은 일어나지 않았다. 수정의 빛은 마구와 부딪치자마자 녀석을 감쌌고 검은색 마구는 육안으로도 보일 정도로 어두워지더니 결국 부서졌다.

“참으로 강대한 봉인의 힘이군!”

그 광경에 목진은 흠칫 놀랐다. 부도노조가 선보인 봉인의 힘은 엄청났다.

크으으으!

혈강 천마제가 버럭 소리를 지르자 시천유의 몸에 검은색 모발이 자라났고 손끝에는 어두운 빛을 발하는 1촌 정도의 뾰족한 손톱이 자라났다. 천지존이라도 감히 닿지 못할 만큼 날카로워 보였다.

혈강 천마제는 근신 육박전이 특기라 목진을 가까이해서 부도노조를 제압하려 했는데 그럴 기회를 줄 노조가 아니었다.

부도노조는 뒤로 물러나며 부도탑을 순간 만 장 정도로 키우더니 혈강 천마제한테 내던졌다.

탕! 탕!

혈강 천마제는 차마 피하지 못하고 주먹을 휘둘렀는데 경천의 소리와 함께 극강의 충격을 받아 계속해서 뒤로 물러났다.

십수 차례의 방어를 거쳐 드디어 화가 난 혈강 천마제는 갑자기 한쪽 팔을 자르더니 입을 쩍 벌려 검은색 화염을 내뿜어 팔을 태웠다.

“강마모(僵魔矛)!”

잠시 후, 혈강 천마제가 활활 불타오르는 팔을 들자 검은색 골창이 나타났는데 그 속에서 상당히 짙은 피비린내가 났다.

탕!

검은색 골창을 든 혈강 천마제는 다시 자신을 향하는 부도탑에 맞섰는데 견고하기 그지없는 부도탑 표면에 깊은 흔적이 생겼다.

흥!

그 광경에 부도노조가 콧방귀를 뀌며 신속하게 결인하자 제단 전체가 격렬하게 진동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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