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47화. 새로운 주마왕
위잉!
제단에 균열이 일더니 몇 갈래 빛을 발했다가 한데 모여 성광이 반짝이는 동경을 이뤘다.
지극히 오래된 동경에는 세월의 흔적이 고스란히 담겨 있었고 거울면은 함부로 보면 안 될 것 같은 느낌을 주었다. 그러나 한 조각이 떨어져 완벽하지 않은 것이 아쉬웠다.
위잉!
동경이 나타나자 성부도탑도 격렬하게 진동하며 무한의 신성한 빛을 발했는데 이는 혈강 천마제에게 향한 것이 아니라 전부 동경에게 향했다.
슉!
신성한 빛을 받은 동경이 파르르 떨더니 수많은 오래된 부적이 깃든 수십만 장의 방대한 신성한 빛을 내뿜었다.
“봉마도(封魔圖)!”
부도노조의 나지막한 소리와 함께 만 장 크기의 족자가 나타났다. 족자는 공간을 가르며 혈강 천마제의 위쪽 하늘에 나타나 펼쳐져 녀석의 주위를 감쌌다.
슈슉!
족자에서 무서운 흡인력이 폭발해 혈강 천마제의 육신을 조금씩 흡입했다.
녀석도 족자를 보자마자 미친 듯이 마의 기운을 방출하며 족자에서 벗어나려 했지만 어느새 안정을 되찾았다.
“하하, 내가 자네 봉마경(封魔镜)을 부숴 더는 완벽하지 않으니 나를 빨아들일 수 없을 것이네.”
혈강 천마제가 호탕하게 웃으며 말했다.
봉마도의 힘도 시간이 지날수록 약해졌기 때문이었다.
“아쉽군.”
무도노조도 가볍게 한숨을 쉬며 말했다.
봉마경이 완벽했더라면 혈강 천마제를 다시 봉인하는 건 결코 어려운 일이 아니었을 것이다.
그런데 목진은 허공에 떠 있는 봉마경의 부서진 곳을 보더니 흠칫 놀라 무언가를 꺼냈다.
그것은 바로 반듯한 동편으로 목진이 일전에 거래 구역에서 구매한 신비로운 동편이었다.
“선배님, 내가 일전에 우연히 얻은 물건이 있는데…….”
목진의 말이 끝나지도 않았는데 부도노조의 의식이 격렬하게 진동하더니 한껏 흥분된 목소리로 말했다.
“이…… 이건 봉마경의 파편이 아니냐?”
“봉마경 파편이라니!”
반듯한 청동 파편의 출현에 부도노조는 이내 화색이 되었다. 그도 갑작스러운 변고에 화들짝 놀랐다.
목진은 생긋 웃으며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그가 구매한 청동 파편이 바로 봉마경 조각이었다.
해당 파편은 부도노조의 물건이라 목진 체내의 부도탑에 이상한 움직임이 생겼던 것이었다.
“허허, 너와 나의 인연이 엄청나구나.”
부도노조는 이내 감탄했다. 목진한테 봉마경의 파편이 없었다면 그는 혈강 천마제의 잔혼을 제압할 수 없었을 것이다.
“선배님, 이제 천마제의 잔혼을 제압할 수 있는 건가요?”
목진의 질문에 부도노조는 바로 답했다.
“그렇단다!”
비록 봉마경의 위력이 어느 정도 타격을 입었지만 혈강 천마제도 잔혼일 뿐이라 실력이 전성기 때의 1할도 안 되었다.
부도노조의 말에 청동 파편은 하늘 높이 날아올라 허공에 떠 있던 봉마경의 부족한 부분을 메꾸더니 균열이 난 곳이 점차 사라졌다.
위잉!
봉마경이 복원되자 어두운 거울 면에 물결이 일었고 이는 전부 거대한 족자에 내려앉았다.
이와 동시에, 족자에서 빛의 사슬을 내뿜더니 신속하게 공간을 가르며 날아가 혈강 천마제의 사지를 감쌌다.
오래된 부적에 새겨진 빛의 사슬은 마의 기운을 억제하는 특수한 효과가 있어 혈강 천마제의 실체와 같은 마의 기운이 확 줄어들었다.
쏴아아아!
혈강 천마제는 안색이 확 어두워진 채 발버둥 쳤지만 빛의 사슬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
“봉마도록, 회수하라!”
부도노조의 나지막한 외침에 함께 빛의 사슬은 포효하는 혈강 천마제를 봉마도록에 조금씩 끌어들였다.
허공에 떠 있던 봉마도록이 파르르 떨리더니 표정이 한껏 일그러진 채 마의 기운을 방출하는 검은색 그림자가 나타났다. 그는 바로 혈강 천마제였다.
“빌어먹을 노인네!”
혈강 천마제는 자유를 되찾은 지 하루도 채 안 되어 부도노조 때문에 다시 봉마도록에 봉인될 줄 몰랐다.
“너무 좋아하지는 말게. 사성탑 중 하나가 부서졌으니 다른 두 층만 무너지면 난 여전히 이곳을 벗어날 수 있네!”
혈강 천마제는 잔뜩 화가 나 외쳤다.
“선배님, 녀석을 완전히 죽일 수는 없는 건가요?”
목진은 봉마도에 봉인되었지만 여전히 미쳐 날뛰는 혈강 천마제를 보며 물었다.
보아하니 부도노조는 혈강 천마제를 봉인할 수밖에 없는 것 같았다. 그런데 또 다른 변고가 생겨 녀석이 도망가면 어쩐단 말인가?
이에 부도노조도 한숨을 쉬며 답했다.
“역외사족의 생명력은 지극히 완강하고 마혼도 대천세계 사람들보다 훨씬 단단하단다. 하여 저들의 마혼을 철저히 없애려면 많은 힘이 필요하단다. 상고 시기에도 우리는 대부분 저들을 봉인한 뒤, 오랜 시간을 이용해 천천히 없애곤 했단다.”
목진은 역외사족의 마제가 대부분 봉인 상태였던 이유를 이제야 깨달았다. 그러나 이런 방법은 힘을 많이 절약할 수는 있지만 너무 불안했다.
“혈강 천마제의 마혼은 오랜 시간 봉인과 억제 때문에 상당히 취약해졌으니 없애기에는 지금이 가장 적합할 때긴 하다. 하지만 내 의식에 깃든 힘이 많이 소모되어 녀석을 완전히 죽을 수는 없구나.”
부도노조가 아쉬운 듯 말했다.
“봉마경이 있어도 안 된단 말인가요?”
목진은 허공에 떠 있는 봉마경을 힐끗 보며 물었다. 그는 봉마경이 분명 절세의 성물일 거란 생각이 들었다.
“봉마경은 나를 도와 혈강 천마제를 봉인한 지 오래되어 힘을 많이 소모했단다.”
부도노조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말하더니 잠시 머뭇거리다가 다시 입을 열었다.
“선급 절세의 성물이 한 가지만 더 있으면 혈강 천마제를 죽일 수 있을 것이다.”
“선급 절세의 성물이라…….”
목진은 절세의 성물도 등급이 나눠진다는 걸 처음 알았다.
“절세의 성물은 천지존의 물건이라 네가 모르는 것도 정상이다. 절세의 성물은 천지존처럼 영급, 선급, 성급 등 세 가지 등급으로 나뉜단다.”
부도노조가 가볍게 웃으면서 말했다. 그 말에 목진은 가볍게 고개를 끄덕이며 수중에 있는 절세의 성물에 대해 생각했다. 이 또한 힘을 많이 소모했지만 지금 같은 상황에서는 한 번 시도해보는 수밖에 없었다.
이러한 생각에 목진은 수수한 수정 장검을 꺼냈는데 검에서 영롱한 빛을 발하며 비범한 위압감을 내뿜었다.
“음?”
부도노조는 흠칫 놀라 말했다.
“이건…… 천제의 천제검이 아니냐?”
“이걸 아십니까?”
목진도 흠칫 놀랐다.
“내 어찌 이걸 모를까? 나와 천제는 서로 아는 사이인데 그의 검이 너한테 있을 줄은 몰랐구나.”
“제가 운 좋게 천제 선배님의 계승을 받아 이 검을 저한테 주셨습니다.”
부도노조의 말에 목진이 자세히 해명했다.
“허허, 사람 보는 눈이 제법이군. 부도족 후손이면 그의 계승을 받기에 충분하지.”
부도노조는 흐뭇하게 웃으며 말했다.
“선배님, 천제검의 힘도 얼마 남지 않았는데 괜찮을까요?”
“괜찮단다!”
부도노조는 미소를 지으며 말을 이어갔다.
“천제검은 예리하기 그지없어 악마를 베는 데 이보다 좋은 무기는 없단다. 비록 힘이 대부분 소모되었지만 내가 있으니 어느 정도 위력을 발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니 혈강 천마제를 없애기엔 충분하단다.”
목진은 그제야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부도노조의 의식이 목진의 몸으로 천제검을 꽉 쥐고 혈강 천마제를 바라보며 씨익 웃었다.
“자네가 과연 그때까지 버틸 수 있을까?”
“하하, 자네 상태로는 날 절대 죽일 수 없을 것이네!”
혈강 천마제는 피식 웃으며 말하다가 부도노조 수중에서 갑자기 폭발한 만 장의 검광에 표정이 확 굳었다.
그는 그 검에서 치명적인 위협감을 느꼈다.
이는 봉마경 못지않은 무기인 듯했다.
“자네와 만 년도 넘게 싸웠는데 오늘에서야 완전히 없앨 수 있겠군. 참 통쾌하군.”
부도노조가 호탕하게 웃으며 말한 뒤, 천제검을 힘껏 내던졌다. 그러자 수많은 검광이 휘몰아치며 천제검은 한 갈래 검광이 되어 신비롭고도 엄청난 위력과 함께 허공을 가르며 혈광 천마제한테 날아갔다.
크으으으!
봉마도에 갇힌 혈강 천마제는 생명의 위협을 느끼고 미친 듯이 포효하며 발버둥 쳤다. 그는 도천의 마의 기운을 내뿜어 족자를 부식시켜 도망가려 했다.
위잉.
그러나 허공에 떠 있는 봉마경이 방출한 신성한 빛 때문에 봉마도의 봉인이 더욱 단단해져 혈강 천마제가 아무리 발악해도 아무런 소용이 없었다.
슉.
바로 그때, 앞쪽 공간이 부서지더니 액체 같은 검광이 나타났다.
수수해 보이는 검광에 혈강 천마제는 겁에 질려 몸 둘 바를 몰랐다.
“완전히 사라지게!”
부도노조의 한기 어린 목소리와 함께 검광은 사정없이 날아가 봉마도에 깃든 마의 그림자를 찔렀다.
으악!
처량한 비명이 울려 퍼지더니 마의 안개가 퍼져나갔다가 금세 흡수해 사라졌다. 혈강 천마제의 육신은 김빠진 공처럼 힘을 잃었고 생기도 빠르게 줄어들었다.
역외사족의 강자들은 혈강 천마제의 비명을 듣더니 사색이 되어 미친 듯이 도망갔다.
혈강 천마제가 죽게 생겼으니 그들은 이곳에서의 기회를 완전히 잃은 거나 마찬가지였다.
그러나 대천세계의 강자들은 도망가려는 역외사족 강자들을 가만두지 않고 앞을 막아 나섰다.
제단에 서서 생기를 잃어가는 혈강 천마제를 바라보던 목진은 갑자기 무언가 생각나 부도노조에게 말을 전했다.
“선배님, 혈강 천마제는 곧 죽겠죠?”
“그렇단다. 이번엔 녀석을 완전히 없앨 수 있게 되었구나.”
부도노조의 말에 목진은 잠시 고민하다가 미소를 지으며 대천궁의 주마령을 꺼냈다.
“선배님, 잔혼을 조금 취해도 될까요?”
대천궁의 규칙에 따르면 역외사족 한 명을 죽일 때마다 녀석의 잔혼을 주마령에 넣어 주마점을 획득해 승급할 수 있는데 천마제 한 명을 죽이면 주마점 만 점을 획득해 대천궁의 주마왕이 될 수 있다!
혈강 천마제는 비록 목진이 직접 죽인 것은 아니지만 힘을 어느 정도 보탠 것은 사실이라 주마점을 획득할 수 있는지 한번 시도해보고 싶었다.
“주마령이구나.”
부도노조의 의식은 흠칫하더니 피식 웃으며 말을 이어갔다.
“네 이 녀석, 이걸 노렸던 것이냐? 하하, 상위 지지존급 주마왕이라…… 하하, 흥미롭구나. 대천궁 녀석들이 알면 또 어떤 표정을 지을지 궁금해지는구나!”
말을 마친 부도노조가 옷깃을 휘날리자 봉마도에서 한 갈래 검은색 안개가 날아오더니 주마령이 빛을 번쩍이며 이를 흡수했다.
목진과 부도노조는 주마령을 뚫어져라 쳐다봤는데 아무런 반응도 없던 주마령이 갑자기 파르르 떨리더니 미친 듯이 금광을 발했다. 검은색 주마령은 순식간에 황금색으로 변했고 아래쪽에 적혔던 저급 주마사의 글귀는 어느새 사라지고 금광을 발하는 위험천만 한 세 글자가 새로 나타났다.
“주마왕!”
목진은 황금빛을 발하는 세 글자를 뚫어져라 쳐다보더니 입이 떡 벌어졌다.
성공했다!
성연성 대천궁의 매대 앞에서 조심스럽게 정교한 옥병을 닦고 있던 회색 도포를 입은 노인이 갑자기 손을 파르르 떨며 고개를 번쩍 들었다. 혼탁했던 눈동자에서 빛을 발했는데 성연성의 중심에 있는 주마비가 바로 보였다.
바로 그때 거대하기 그지없는 주마비가 갑자기 격렬하게 진동했다.
갑작스러운 변고에 다들 깜짝 놀라 눈길을 모았다. 그들은 주마비가 이렇게 움직이는 걸 처음 보는 모양이었다.
“어떻게 된 일이지?”
주마비의 정상에서 갑자기 태양처럼 눈부신 금광을 발하며 도성 전체를 비췄다.
이에 성연성의 주마사들마저 은은한 위압감을 느꼈다.
1각 정도가 지나서야 금광이 서서히 사라졌는데 사람들은 주마비에 새로 나타난 이름을 보고 두 눈이 휘둥그레졌다.
퍽!
매대 앞에 서 있던 회색 도포 노인 역시 수중의 옥병을 떨군 채 멍하니 주마비를 쳐다봤다.
퍼퍽!
거래 구역에 있던 주마사들도 멍하니 주마비를 바라봤다.
“저…… 저건 도대체 뭐란 말인가?”
누군가 중얼거렸다.
주마비의 정상에 적힌 주마왕 진천의 이름 아래에 황금색 글자가 새로 생겼다.
주마왕, 목진!
한참 지나서야 다시 정신을 차린 사람들은 갑자기 나타난 주마왕의 이름에 화들짝 놀랐다.
성연성에 있는 이들은 대부분 대천궁의 주마사라 주마왕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잘 알았다.
그들 일생의 목표가 바로 주마왕이었다. 이는 대천궁의 고위층 지도자로 비범한 지위를 누릴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대천세계의 정예 세력들마저 감히 무시하지 못할 정도의 존재였다.
대천궁의 주마왕은 정예 세력의 우두머리 못지않았다.
주마사들은 주마왕이 되지 못해 안달이었는데 시기가 시기인지라 주마점 만 점을 획득하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지 잘 알았다. 천마제 한 명만 죽이면 되긴 했지만 아무도 감히 이 방법을 시도해보려 하지 않았다.
천마제는 성급 천지존과 비슷한 존재라 역외사족과 대천세계에서 최정예급 강자나 다름없어 아무도 감히 그를 상대하려 하지 않았다.
하여 주마왕이 되는 일은 훨씬 어려웠는데 갑자기 주마비에 낯선 주마왕이 나타나 깜짝 놀란 것이었다.
“목진은 대체 누구란 말인가? 왜 지금까지 그에 관한 정보를 접한 적이 없는 거지?”
“고급 주마사에 그런 사람은 없네!”
“없다니? 설마 중급이나 저급 주마사였던 녀석이 바로 주마왕이 되었단 말인가?”
“말도 안 되는 소리. 녀석이 마제를 동시에 몇 명이나 죽였단 말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