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50화. 일깨우는 방법
사성탑 중, 태령노조가 지키고 있는 층고의 거대한 제단 주위에도 치열한 전쟁이 벌어지고 있었다. 영력과 마의 기운이 부딪쳐 귀청을 찢는 듯한 소리와 함께 천지가 격렬하게 진동했다.
제단을 지키려는 대천세계의 강자들과 제단을 파괴하려는 역외사족 강자들은 목숨을 걸고 싸우고 있었다.
한편, 제단 주위의 서북쪽에 한 무리가 모여 있었는데 그 중심에는 낙리, 영계, 온청선 등이 서 있었다.
그들은 현장에서 전혀 눈에 띄지 않았다. 이곳에 대천세계의 지지존 대원만급 강자만 해도 열 명 정도 되었는데 다행히 시천유 같은 강자는 없었다. 이에 상황이 좋지 않았지만 한시에 승패를 가리기도 어려웠다.
“낙리야, 저 여인은 뭘 하려는 걸까?”
온청선이 낙리를 쿡 찌르며 묻고는 제단 쪽을 바라봤는데 규모가 상당한 전쟁터의 중심에 백의를 입은 한 여인이 서 있었다.
온청선 등은 백의를 입은 여인, 즉 백형아가 낙리의 경쟁 상대인 것을 단번에 알아봤다. 낙리와 백형아의 목표는 태령노조의 계승을 받는 것이었다.
그런데 백형아는 수단이 남달라 주위에 실력이 상당한 강자가 제법 있었고 그중, 지지존 대원만급 강자도 적잖게 존재해 해당 층고에서 실력이 가장 강한 무리에 속했다.
하여 그들은 다른 역외사족 강자들의 공격을 막아내며 제단에 제일 가까운 자리를 차지할 수 있었다.
한편, 백형아는 낙리를 힐끗 보더니 입꼬리를 씰룩거리며 자리를 잡고 앉아 신속하게 결인했는데 머리에 영광이 모이더니 무형의 광파가 환형을 이뤄 주위로 퍼져나갔다.
“백형아는 깊이 잠든 태령노조의 의식을 깨우려는 거야.”
낙리가 미간을 살짝 찌푸리며 답했다.
해당 층고에서는 봉인된 천마제의 잔혼을 방출한 사람이 아직 없어 태령노조의 의식이 아직 깨어나지 않았다.
만약 백형아가 태령노조의 의식을 일깨워 그 힘을 빌려 역외사족의 강자들을 전부 물리치면 대천세계의 36가지 절세 신통 중 하나인 태통령천광은 그녀가 얻게 될 것이다.
“반드시 막아야 해!”
영계가 미간을 찌푸린 채 외쳤다. 백형아가 태령통천광의 수련법을 획득하면 낙리는 임무 완수에 실패한 거나 다름없었다.
목진은 낙리를 도와주기 위해 영계 등을 전부 보냈는데 실패한다면 너무 미안할 것 같았다.
“내가 가서 방해할게!”
용상이 주먹을 쥐고 말했다. 비록 상대편에 지지존 대원만급 강자가 수두룩했지만 그는 전혀 두렵지 않았다.
낙리는 용상 앞을 막아 나서더니 가볍게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백형아가 수련한 공법은 태령고족의 태령경(太靈經)이에요. 태령노조(太靈老祖)도 동일한 공법을 수련했으니 이러한 방식으로 소통하려는 거겠죠. 생각은 좋지만 성공하기는 그리 쉽지 않을 거예요.”
상고 시기, 네 명의 노조 중 태령노조가 가장 빨리 사망해 남아있는 의지가 깊은 잠에 빠져서 깨우기가 상당히 어렵다고 들었다. 그러니 백형아가 태령경을 사용한다고 해도 실패할 가능성이 컸다.
한편, 사람들은 태연하게 서 있는 낙리를 보더니 마음을 가라앉히고 상황을 살피기로 했다.
그때 머리 떨어져 있던 백형아가 낙리 쪽을 힐끗 보더니 미동도 없는 것을 확인하고는 가볍게 웃으며 주위에 서 있던 강자들을 바라보며 손을 휘익 저었다.
이에 낙리 등을 감시하던 강자들은 눈길을 거두고 백형아의 주위를 꽁꽁 둘러쌌다.
“참 철저한 여인이야. 우릴 경계하지 않을 때가 없어.”
온청선이 눈가를 파르르 떨며 말했다.
“태령고족의 준성녀가 된 사람이 호락호락할까?”
낙리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백형아는 혼자지만 사람의 마음을 잘 다스려 주위에 실력이 출중한 강자가 수두룩했다. 이는 아무나 해낼 수 있는 일이 아니었다.
그때 백형아의 머리에서 발하던 오묘한 영광이 점차 눈부시게 빛나더니 어느덧 밝은 달처럼 주위를 밝혔다.
그러다 눈부신 빛이 제단에도 드리웠는데 제단의 중심에 놓인 오래된 석비가 파르르 떨렸다.
이를 발견한 백형아는 이내 화색이 되었다. 그러나 석비가 다시 조용해진 것을 발견하고 이를 악물고 미친 듯이 체내의 영력을 끌어올렸다. 그러자 머리에서 발하는 영광이 계속해서 오래된 석비를 비췄다.
쿵! 쿵!
역외사족 강자들은 백형아의 이상한 움직임에 바로 공격을 개시했는데 주위에 모인 대천세계의 강자들이 전부 막아냈다.
“제발 깨어나세요!”
백형아는 부단히 태령경을 소환해 깊이 잠든 태령노조의 의식과 소통하려 했다. 하지만 끝까지 아무런 반응도 없었다.
잠시 후, 재시도에 실패한 백형아는 안색이 조금 어두워진 채 눈을 뜨더니 언짢은 듯 제단을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제단에 올라가야 노조의 의식을 깨울 수 있단 말인가?”
정말 그렇다면 역외사족 강자들이 더 많이 달려들 것이 분명했다. 그러다 녀석들이 천마제의 잔혼을 방출하기라도 하면 큰일이었다.
“실패한 건가?”
튼실한 사내가 다가와 걱정 어린 눈빛으로 바라보며 묻자 백형아는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고생이 많네.”
사내는 백형아의 부드러운 미소에 정신이 번쩍 들었다.
“괜찮네. 우리가 자네를 제단에 올려보낼 테니 걱정하지 말게. 자네는 분명 태령노조의 의식을 깨울 수 있을 것이네. 그리고 저들은 개의치 말게. 자네도 해내지 못하는 일을 저들이 무슨 수로 해낸단 말인가?”
사내가 말한 저들은 낙리 일행으로 백형아한테서 낙리가 그녀의 강적이란 것을 알게 된 모양이었다.
“그런 말 말게. 낙리는 절대 무시할 수 없는 상대라네.”
백형아는 생긋 웃으며 낙리 등한테 눈길을 돌렸는데 낙리가 갑자기 자리를 잡고 앉는 것을 발견하고 흠칫 놀랐다.
낙리는 백형아의 시선이 느껴진 듯 가볍게 고개를 들고 그녀와 눈을 마주치더니 서둘러 눈길을 거뒀다.
“설마 낙리도 태령노조의 의식과 소통하려는 건가?”
백형아도 눈길을 거두고 미간을 살짝 찌푸리며 중얼거렸다.
그러나 그녀는 금세 의미심장하게 웃었다. 낙리는 최근 몇 개월 사이, 적염노선이 정한 준성녀로 태령고족에서 수련한 적 없어 태령노조와 소통하는 것은 아예 불가능했다.
“낙리야, 괜찮겠어?”
온청선이 걱정되어 물었다. 그녀는 일전에 백형아가 실패한 것을 보고 태령노조의 의식을 깨우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깨달았다.
백형아는 적어도 태령경을 수련했는데 낙리는 태령고족의 공법과 신통을 수련한 적 전혀 없었다.
“적염노선이 왜 내가 태령통천광의 수련법을 획득할 수 있을 거라 확신하는지 알아?”
낙리의 말에 온청선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내가 낙신법신을 수련했기 때문이야.”
낙리가 생긋 웃으며 한 말에 온청선은 어리둥절해졌다. 낙신법신이 태령고족과 무슨 관계가 있단 말인가?
“적염노선께서는 상고 시기, 태령노조께서 한 여인을 지극히 사랑했다고 하셨어.”
낙리가 고개를 들고 오래된 제단을 바라보며 한 말에 온청선은 뭔가 알아챘다.
“그게 누군데?”
“태령노조는 낙신법신의 전주인, 낙신족의 조상님인 낙신을 연모하셨어!”
“그렇군! 미인계를 사용하려는 거야? 아니지, 미인계로 태령노조의 잠든 의식을 깨우려는 거지!”
낙리가 씨익 웃자 온청선은 이내 손뼉을 쳤다.
“태령통천광을 얻기 위해서는 조상님의 얼굴을 팔 수밖에…….”
낙리는 맑고 투명한 눈을 깜빡이며 말했다.
그런데 이게 과연 먹힐까?
말을 마친 낙리가 결인하자 웅장한 영광이 뒤쪽에 휘몰아치더니 우아하고 아름다운 그림자가 서서히 모습을 드러냈다.
낙신법신은 대천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지존법신이었다!
천지에 영광이 번쩍이더니 우아하고 가녀린 그림자가 나타났는데 이에 혼잡했던 전장에 순간 정적이 흘렀다.
다들 아름답기 그지없는 지존법신을 보더니 깜짝 놀랐다.
낙리도 낙신법신 앞에서 영광을 발했고 은하수 같은 장발과 옷깃은 바람 없이도 가볍게 휘날리는 것이 상당히 아름다웠다.
“지금의 낙리는 너무 예쁜 것 같아!”
온청선은 이내 감탄했다. 낙리는 현재 낙신법신과 아우러져 얼굴에서 영롱한 빛을 발했는데 유리알 같은 눈동자도 더 밝고 투명해졌다.
그녀의 압도적인 아름다움에 온청선과 백형아마저 뒤처질 정도였다.
“참으로 아름다운 여인일세…….”
백형아 주위를 감싸고 있던 강자들도 멍하니 낙신법신 앞에 있는 낙리를 바라봤다.
반면, 미소를 짓고 있던 백형아는 표정이 굳어 아름답기 그지없는 지존법신을 뚫어져라 쳐다보더니 한참 지나서야 다시 입을 열었다.
“낙신법신?”
백형아는 태령고족의 준성녀라 박식했기에 낙리의 지존법신이 대천세계에서 상당히 유명한 낙신법신이라는 것을 한눈에 알아봤다.
대천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낙신법신은 강대한 힘까지 겸비하여 수많은 여인이 꿈에도 바라는 지존법신이었다. 백형아도 그중 한 사람이었다.
하여 그녀는 낙리가 낙신법신을 수련해낸 것을 발견하고 괜히 질투가 났다. 자신이 그 지존법신을 수련했다면 분명 대천세계에서 가장 눈부시게 빛나는 존재가 됐을 거라 여겼다.
“그런데 갑자기 낙신법신은 왜 소환한 거지?”
백형아는 바로 미간을 찌푸리며 중얼거렸다.
그녀는 태령노조가 상고 시기, 낙신을 연모한 일을 모르는 듯했다.
낙리는 사람들의 시선은 무시한 채 낙신법신과 완벽히 아우러졌고 낙신법신에서 만 장의 영광을 방출했다. 이는 신속하게 제단으로 향하더니 중심에 놓인 오래된 석비에 쏟아져 내렸다.
그때 끄떡없던 석비가 갑자기 격렬하게 진동했다.
이는 백형아 때처럼 파르르 떨다가 멈춰 선 것이 아니라 점차 격렬하게 떨렸다.
그 광경에 백형아의 안색이 확 어두워졌다. 그녀는 오래된 석비가 낙리의 낙신법신에 이렇게나 빨리 호응할 줄 몰랐다.
“이제 어떡하면 좋은가?”
백형아 주위에 서 있던 강자들이 더는 참지 못하고 묻자 그녀는 한숨을 쉬며 답했다.
“결국 내가 못난 탓이네.”
그녀가 입술을 깨물며 말하자 사람들은 마음이 아팠다.
“조금만 더 기다려 봅시다. 우리가 저들을 방해하는 사이 자넨 제단에 올라가 강제로라도 태령노조의 의식을 깨우면 되네.”
백형아는 순간 기분이 좋았지만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말했다.
“내 어찌 당신들을 위험에 빠뜨릴 수 있겠나? 낙리 주위에도 강자들이 수두룩하지 않은가?”
“하하, 지지존 대원만급 강자가 두 명일 뿐이니 괜찮네.”
백형아와 대화를 나눴던 튼실한 사내가 호탕하게 웃더니 자신만만하게 답했다. 이쪽엔 지지존 대원만급 강자만 해도 네 명이나 있었기 때문이었다.
“이만 갑시다!”
사내는 백형아의 우러러보는 눈빛을 만끽하며 다른 세 명의 지지존 대원만급 강자들과 함께 낙리 등에게 향했다.
한편, 백형아는 입꼬리를 씰룩거리며 녀석들을 바라보더니 낙리를 힐끗 쳐다보며 제단으로 향했다.
“조심!”
온청선 등은 낙리를 향한 네 명의 지지존 대원만급 강자를 발견하고 버럭 소리를 질렀다.
“겁도 없는 녀석들!”
용상이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며 가장 먼저 나섰는데 온몸에서 빛을 발하더니 용과 코끼리가 날아다니며 무서운 힘을 방출했다.
이에 온자우도 바로 뒤따랐고 영계의 손에서는 부단히 영광을 발하며 강대한 영진을 만들어냈다.
반면, 낙리는 여전히 낙신법신을 움직여 그 파동을 계속해서 격렬하게 떨리는 석비에 전하는 데만 집중했다.
위잉.
진동은 점차 격렬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