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52화. 방해
영광이 사라지자 주위가 다시 떠들썩해졌다. 목진이 주위를 쓰윽 훑자 그는 이미 사성탑 밖에 서 있었다.
사성탑에 들어갔던 사람들 모두 나온 모양이었다.
“목진아!”
누군가의 맑은 목소리에 목진이 고개를 돌리자 낙리 등이 자신을 향해 달려오는 것이 보였다.
“어때?”
목진이 먼저 물었다.
“다행히 기대를 저버리지 않았어.”
낙리가 생긋 웃으며 한 말에 목진은 흠칫 놀랐다.
“넌 어때?”
이에 목진은 낙리의 차가운 손을 가볍게 잡으며 씨익 웃었다.
“우리 모두 최후의 승자야.”
그때 현라와 묵심이 목진 쪽을 바라보더니 서로 마주 보며 중얼거렸다.
“승자? 네가 과연 성연대륙을 무사히 떠날 수 있을까?”
말을 마친 녀석들이 옥 부적을 꺼내 부수자 번쩍이는 영광이 온몸을 감싸더니 빠르게 사라졌다.
사성탑 임무가 끝나자 상고의 성연 쟁탈전도 점차 막을 내려 사람들은 하나둘씩 떠나기 시작했다. 일부 사람들만 얼마 남지 않은 시간을 이용해 또 다른 기회를 얻고자 탐색을 계속했다.
한편, 수확이 가득한 목진 등은 바로 옥 부적으로 상고의 성연을 떠났다.
성연대륙 어딘가의 공간이 일그러지더니 한 무리가 나타났고, 여전히 까마득한 천지를 보더니 자연스레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상고의 성연은 오래된 감옥처럼 존재만으로도 숨이 막혔다.
“일단 성연성으로 돌아갑시다.”
목진이 손을 휘익 저으며 말했다. 적염노선은 아직 성연성에서 낙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이에 다들 동의하듯 고개를 끄덕였다. 상고의 성연은 위험천만한 곳이라 무사히 성연성에 들어가야 완전히 시름이 놓일 것 같았다.
목진 등은 전력을 다해 비행에 집중했다. 몇 시진 뒤, 해가 떠오르자 저 멀리 대지에 놓인 웅장한 도성이 어렴풋이 윤곽을 드러냈다.
슈슉!
빛줄기가 부단히 사방에서 날아와 성문 앞에 내려앉았다가 도성에 들어가자 도성은 생기로 흘러넘쳤다.
그 모습이 상고의 성연과 현저한 차이를 이뤄 목진 등도 조금이나마 긴장이 풀렸다.
그들은 서로 마주 보며 가볍게 웃더니 성문 앞에 내려앉아 성연성으로 들어갔다.
도성은 여전히 번화했고 사람으로 가득 찼으며 생기발랄했는데 다들 고개를 들고 복잡미묘한 눈빛으로 어딘가를 바라보고 있었다.
하여 목진 등도 사람들의 시선을 따라 고개를 돌렸는데 도성 중심에 놓인 주마비의 정상에 적힌 이름을 보고 화들짝 놀랐다.
“저건 뭐지?”
용상은 주마비의 정상에서 주마왕이 두 명이나 적혀 있을 뿐만 아니라 그중 한 명의 이름이 목진인 것을 발견하고 차마 믿기지 않아 눈을 비비며 다시 한번 확인했다.
온청선, 온자우 등도 두 눈이 휘둥그레진 채 주마비를 보더니 한참 지나서야 괴이한 눈빛으로 목진을 쳐다봤다.
“설마 주마비에 적힌 목진이 너는 아니지?”
그들은 주마왕이 뭘 의미하는지 잘 알았다. 주마왕은 대천궁의 진정한 고위층 지도자로 객경이나 장로보다 지위가 훨씬 높았다.
온가 같은 엄청난 세력이라도 주마왕을 함부로 대하지 못했다.
낙리도 어리둥절하여 목진을 바라봤다. 목진은 낙리와 함께 주마령을 수령했는데 아직도 저급 주마사인 낙리와 달리, 목진을 어떻게 한순간에 주마왕이 되었단 말인가?
목진은 씁쓸하게 웃으며 얼굴을 만지작거리더니 혈강 천마제의 마혼을 주마령에 주입한 일에 관해 설명했다.
“그래도 돼?”
자초지종을 들은 사람들은 입이 떡 벌어졌다.
“그래도 되나 봐.”
목진은 어깨를 들썩이며 답했다.
목진은 비록 온전히 스스로 천마제를 죽인 건 아니지만 아무나 이를 해낼 수 있는 것도 아니었다. 사성탑만 해도 천마제의 잔혼이 네 개나 있었는데 주마왕이 된 사람은 목진 밖에 없으니 말이다.
다만…… 목진의 실력이 너무 뒤처졌다.
“대천궁에 너 같은 주마왕은 없을 거야. 넌 아마 주마왕 중 최약체일 거야.”
온청선이 피식거리며 한 말에 목진은 무안한 듯 웃기만 했다. 그는 그냥 아무런 생각도 없이 시도해본 것이었는데 정말 성공할 줄은 몰랐다.
“일단은 대천궁에서 네 신분을 인정해줘야 해.”
낙리가 나지막하게 한 말에 다들 동의하듯 고개를 끄덕였다. 대천궁에서 목진을 주마왕으로 받아들이지 않으면 그의 이름은 다시 주마비에서 사라질 것이다.
그러나 목진은 전혀 개의치 않았다. 어차피 큰 기대를 하지 않은 일이라 대천궁에서 자신을 인정하지 않으면 괜한 번거로움을 덜 수 있을 거란 생각이 들었다.
어느새 목진 등은 웅장한 대천루에 도착했다.
대천루는 여전히 사람으로 붐비며 북적였는데 대부분이 새로운 주마왕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었다.
이에 목진은 어쩔 수 없다는 듯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그는 이번 일이 이렇게 크게 번질 줄 몰랐다. 주마사들은 새로운 주마왕이 얼마나 대단한지 확인하고 싶은 듯했다.
“하하, 저 사람이 바로 새로운 주마왕이 아닌가?”
누군가의 비아냥거리는 목소리에 대천루는 순간 조용해졌고 다들 이글거리는 눈빛으로 목진을 바라봤다.
“저 사람이 바로 새로운 주마왕 목진이란 말인가?”
“어찌 반보 지지존 대원만급 밖에 안 된단 말인가?”
“저 녀석은 도대체 어떻게 주마왕이 되었단 말인가?”
* * *
정적은 순식간에 깨졌고, 다들 새로운 주마왕을 의심스러운 눈빛으로 바라봤다.
목진은 괜히 멀지 않은 곳에서 피식거리며 서 있는 적염노선을 쏘아보고는 낙리 등과 함께 그에게 다가갔다.
“태령통천광을 원하긴 해요?”
적염노선은 순간 정신이 번쩍 들었다.
“정말 성공한 것이냐?”
그는 낙리가 성공할 확률이 높을 거라 예상했지만 직접 확인하니 더없이 기뻤다.
그런데 낙리는 미소를 지으며 목진을 바라보기만 했다.
“허허, 녀석들이 이 노인네를 괴롭히기로 작정을 했구나.”
낙리가 목진의 편을 들자 적염노선은 금세 시무룩해지더니 돌아서서 수군대는 주마사들을 상대로 버럭 소리를 질렀다.
“그만 입을 다물지 못할까!”
순식간에 퍼져나간 천지존의 위압감에 대천루는 바로 조용해졌다. 아무리 대단한 주마사라도 천지존한테는 꼼짝 못 했고 감히 눈도 마주치지 못했다.
잇따라 적염노선은 히쭉 웃으며 낙리를 바라봤다.
“운이 좋게도 제가 태령노조의 계승을 받았네요.”
낙리가 생긋 웃으며 가볍게 고개를 끄덕이자 적염노선은 이내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태령고족을 여러 해 동안 괴롭힌 문제가 드디어 해결되었다.
후우.
“그럼 이만 떠나볼까? 낙리야, 너는 나와 함께 태령고족으로 가자꾸나. 앞으로 넌 우리 태령고족의 성녀란다!”
적염노선이 자신을 태령고족으로 데리고 가려 하자 낙리는 흠칫 놀랐다. 그럼 이대로 목진과 헤어져야 한단 말인가? 이러한 생각에 낙리가 뭐라 말하려 했는데 누군가의 차가운 말소리가 대천루에 울려 퍼졌다.
“어딜 가려는 건가? 당신들이 과연 마음대로 이곳을 떠날 수 있을까?”
이에 다들 대문 쪽으로 눈길을 돌렸는데 한 무리가 기세등등하게 걸어 들어왔다. 가장 앞쪽에 서 있는 사람은 바로 부도신족의 천지존인 묵은과 흑광 장로였고 뒤쪽에는 현라와 묵심이 음산하기 그지없는 눈빛으로 목진을 노려보고 있었다.
두 명의 천지존도 목진을 노려보며 다가가 천지존의 위압감을 형성했다. 이에 목진의 몸은 더없이 무거워졌다.
이건 현라와 묵심이 벌인 일이 분명했다. 이에 목진은 한기 어린 눈빛으로 녀석들을 쏘아봤다.
“허허, 나이를 가득 쳐드신 두 분이 새파랗게 젊은 아이를 괴롭히려 하다니, 이게 말이나 된단 말인가?”
창로한 누군가가 목진 앞에 나타나 흑광과 묵은이 형성한 천지존의 위압감을 전부 막아냈다.
그는 다름 아닌 적염노선이었다.
“적염, 이건 부도신족 내부의 일이니 자네가 끼어들 자리가 아니네.”
흑광이 이내 정색하며 말하자 묵은 장로는 한기 어린 눈빛으로 목진을 노려보며 외쳤다.
“네 이놈, 팔부부도를 우리한테 넘기지 않으면 내 오늘 당장 너를 잡아 부도신족으로 끌고 갈 것이다!”
“저 녀석들이 부도노조의 인정을 받지 못해 계승을 받지 못한 것을 왜 저한테 뭐라 하는 건가요?”
목진이 피식 웃으며 한 말에 현라와 묵심의 안색이 확 어두워졌다.
“그건 노조께서 악마를 죽인 너를 달래려 한 말일 뿐이다. 팔부부도는 너 따위가 가질 만한 물건이 아니란다!”
묵은 장로는 이내 정색하며 말했다.
“묵은, 자네 너무 뻔뻔한 것 아닌가? 부도노조가 이 일을 알면 너무 화가 나 다시 살아날지도 모르겠군.”
적염노선이 이내 감탄하며 한 말에 묵은 장로의 눈가가 파르르 떨렸다.
“적염, 자네 정녕 이 일에 끼어들 셈인가?”
묵은 장로는 안색이 확 어두워져 적염노선을 노려보며 물었다.
“목진은 내가 데려왔으니 절대 당신들한테 빼앗기지 않을 것이네.”
적염노선은 묵은의 말에 살기를 느꼈지만 여전히 피식 웃으며 아무렇지 않게 말했다.
“그렇다면…….”
묵은과 흑광은 서로 마주 보더니 이내 살기를 품었다. 그들은 오늘 반드시 목진을 데려가야만 했다. 절대 팔부부도를 목진한테 빼앗길 수 없기 때문이었다.
이에 두 사람은 더는 천지존의 기운을 숨기지 않았다. 성연성의 위쪽 하늘은 순식간에 어두워졌고 무서운 위압감이 대천루에 휘몰아쳤다. 그들은 칼같이 예리한 눈빛으로 적염노선을 쏘아봤다.
“그럼 우리가 저 녀석을 강제로 끌고 가는 수밖에 없겠군!”
쿵!
묵은과 흑광이 말을 마치자 주위의 공간이 와르르 무너졌고 그들이 형성한 무서운 위압감에 대천루 전체가 파르르 떨렸다.
다행히 두 사람은 대천루를 망가뜨리지 않고 일정한 범위에만 위압감을 형성했다. 이곳은 대천궁으로 아무리 부도신족이라도 감히 무시할 수 없었다.
두 명의 천지존이 형성한 위압감은 지지존 대원만 정상급 강자를 물리치기에 충분했다.
“당신들이 나한테서 사람을 데려갈 수 있는지 모르겠군!”
적염노선은 녀석들의 반응에 피식 웃으며 무서운 위압감을 형성했다. 그러자 빨간색 영력이 암장처럼 들끓어 대천루가 순간 후끈거렸다.
그는 목진 앞쪽에 서서 묵은과 흑광이 형성한 천지존의 위압감을 전부 막아냈다.
한편, 묵은과 흑광은 적염노선의 태도를 확인하더니 안색이 점차 어두워졌지만 이대로 멈출 생각은 없었다. 그들은 오늘 무슨 수를 써서든 반드시 목진을 잡아야 했다!
팔부부도를 절대 목진한테 빼앗길 수 없었다.
생각을 마친 흑광은 묵은을 힐끗 보더니 먼저 나서서 장풍을 쐈다. 수수해 보이는 그의 공격에는 먹물처럼 까만 영력이 미친 듯이 압축되어 형성된 검은색 태양이 깃들어 있었는데 아무런 빛도 발하지 않은 자그마한 검은색 태양은 상당히 무서운 힘을 지녔다.
만약 이를 아무렇게나 내던지면 성연성은 순식간에 사라질 것이다.
천지존의 공격은 상상 그 이상이었다.
적염노선도 흑광 수중의 검은색 태양을 보더니 얼굴이 빨갛게 달아오른 채 입을 쩍 벌려 암장 같은 불씨를 내뿜었다.
불씨는 파르르 떨려 바람만 불면 사라질 것 같았지만 내뿜는 무서운 고온에 주위의 공간마저 그을렸다.
이는 적염노선이 힘을 억제한 것으로 무턱대고 화염을 방출했다면 주위 만 리 범위가 불바다가 되었을 것이다.
치익!
검은색 태양과 불씨가 한데 부딪치자 서로를 미친 듯이 집어삼켰고 맞닿은 공간은 계속해서 무너져내렸다.
그때 묵은이 한기 가득한 눈빛으로 목진을 바라보며 씨익 웃더니 그를 향해 돌진했다.
적염노선은 순간 안색이 어두워졌다. 그는 현재 흑광과 치열하게 싸우고 있어 대결에서 먼저 빠지려 하면 오히려 제압되고 말 것이다.
“정말 너무한 것 아닌가? 설마 태령고족의 적이 되려는 건가?”
적염노선의 질문에 묵은은 피식 웃으며 답했다.
“적염, 말은 함부로 하는 것이 아니네. 자네가 어찌 태령고족을 대표할 수 있단 말인가?”
말을 마친 묵은은 사악하기 그지없는 눈빛으로 목진을 노려보며 말을 이어갔다.
“네가 오늘, 무슨 수로 이곳을 떠날 수 있나 보자꾸나.”
뒤쪽에 서 있던 현라와 묵심은 득의양양하게 서서 히쭉거리며 상황을 살폈고 가여운 눈빛으로 목진을 바라봤다. 제아무리 노조의 인정을 받았다 한들 팔부부도를 지켜낼 능력이 없지 않은가?
목진은 살기 가득한 얼굴로 자신에게 향하는 묵은을 보고도 전혀 두렵지 않았다. 어차피 두려워해봤자 아무런 소용도 없다는 걸 잘 알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