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53화. 두 번째 주마왕
목진은 낙리의 손을 꼭 잡은 채 그녀를 뒤에 숨기고 한기 가득한 눈빛으로 상대방을 바라봤다.
상고의 성연에 들어가기 전이었으면 천지존을 상대로 도망가는 것이 유일한 선택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반보 지지존 대원만급에 이르렀을 뿐만 아니라 현룡군과 팔부부도란 두 가지의 필살기가 있어 두려워할 필요가 없었다.
그가 정말 목숨을 걸고 싸우면 아무리 묵은이라도 그를 쉽게 죽일 수 없을 것이다.
노인네가 만약 끝까지 그를 잡고 늘어진다면 목진도 절대 호락호락하지 않다는 걸 제대로 보여줄 것이다.
“하파!”
목진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묵은 장로를 상대하려고 할 때 뒤에 서 있던 온청선이 갑자기 버럭 소리를 질렀다.
슉!
빨간색 도포를 입은 온가네 천지존 하파가 귀신처럼 목진 앞쪽에 나타나 한기 어린 눈빛으로 묵은 장로를 노려보며 옷깃을 휘날렸는데 체내에서 하천이 요동치는 소리가 전해지는 것 같았다.
“온가도 부도신족의 일에 끼어들 셈인가?”
묵은 장로는 드디어 멈춰 서더니 한껏 어두워진 얼굴로 하파를 노려보며 물었다.
“온가는 비록 부도신족보다 실력이 뛰어나지는 않지만 은혜를 갚아야 한다는 것쯤은 안다네. 저 아이가 청선한테 큰 도움을 줬으니 내 당연히 파렴치한 당신들이 괴롭히지 못하도록 지켜줘야 하지 않겠는가?”
하파가 아무렇지 않게 한 말에 묵은은 화가 났지만 마음을 가라앉히고 음산한 눈빛으로 목진을 바라봤다.
“너를 지켜주려는 사람이 이렇게 많을 줄 몰랐구나.”
이에 목진은 태연하게 서서 살기를 품은 채 묵은을 쳐다봤다.
“그런데 이를 어쩌나…… 오늘 너를 지켜주려는 사람이 아무리 많아도 소용이 없단다!”
묵은은 히쭉 웃더니 대천루 밖을 향해 인사를 올렸다.
“9 장로님, 이만 모습을 드러내세요.”
“아이고…….”
밖에서 한숨을 쉬는 소리가 들리더니 등 굽은 노인이 검은색 지팡이를 쥐고 천천히 대천루로 들어왔다.
그한테서 강대한 영력 파동은 느껴지지 않았는데 적염노선과 하파는 안색이 확 어두워졌다.
“부도신족의 9 장로, 묵유(墨幽)?”
적염노선의 말에 하파는 눈가가 파르르 떨렸다.
“선급 천지존이란 말인가?”
부도신족에서는 목진을 잡기 위해무려 선급 천지존까지 파견했단 말인가? 이 정도면 부도신족에서도 제법 지위가 있는 인물인데 반보 지지존 대원만급 강자 따위 때문에 직접 나섰단 말인가?
대천루 사람들도 깜짝 놀랐고 주마사들도 두 눈이 휘둥그레진 채 목진을 바라봤다. 대체 목진이 무슨 죄를 지었기에 이렇게 많은 천지존이 나섰단 말인가?
목진도 안색이 완전히 어두워졌다. 그는 묵은과 흑광이 자신을 잡기 위해 선급 천지존까지 모셔왔을 줄 몰랐다!
“네가 그 죄인이냐?”
검은색 지팡이를 쥔 노인은 시꺼먼 눈동자를 굴리며 목진을 바라봤다.
“대장로의 말이 부도신족에서 잘 먹히지 않나 봐요.”
목진은 청상한테서 어머니와 부도신족 대장로 사이의 약속에 대해 들었는데 부도신족의 천지존들은 여전히 그를 잡고자 이곳에 나타났다. 보아하니 그들은 두 사람의 약속을 어기려는 것이 분명했다.
“대장로께서도 분명 우리를 이해하실 거란다.”
묵유는 느긋하게 말을 이어갔다.
“네가 팔부부도만 건네면 당장 너를 풀어주겠다.”
이에 목진은 무덤덤하게 서서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더니 무조가 준 부적을 몰래 꺼냈다.
영급 천지존까지는 어떻게 해볼 만한데 선급이라면…… 현룡군의 최강 전력을 끌어올리지 않고서야 이기기란 불가능했다.
“이건 어디까지나 네가 한 선택이니 부디 내 탓을 하지 말거라.”
묵유가 한숨을 쉬며 검은색 지팡이를 가볍게 두드리자 검은색 광권이 퍼져 공간을 봉쇄했는데 천지의 영력마저 해당 범위에 갇혔다.
목진도 상대방의 구속의 힘을 느끼고 입술을 깨물며 무조가 준 부적을 부수려 했다.
퍽!
그런데 그때, 찻잔이 날아와 광권을 사정없이 부쉈다.
갑작스러운 변고에 묵유는 흠칫 놀라 고개를 들고 대천루 매대 쪽에서 천천히 걸어오고 있는 회색 도포를 입은 노인을 바라봤다.
그는 대천궁 지부의 책임자였다.
“부도신족은 정말 너무하는 것 아닌가?”
회색 도포를 입은 노인이 느긋하게 목진한테 다가가며 한 말에 묵유가 미간을 찌푸리며 물었다.
“설마 대천궁에서도 이 일에 끼어들겠단 말인가?”
부도신족은 비록 5대 고족 중 하나이긴 하지만 대천궁도 대천세계에서 지위가 상당해 그들을 두려워하지 않았다.
“이건 우리 종족 내부 사정이니 대천궁에서 간섭하려 하는 것은 규칙에 어긋나는 일이네.”
묵유가 느긋하게 말했다. 대천궁은 대천세계에서 지위가 상당하지만 각 세력 사이의 일에 간섭하지 않아야 한다는 명확한 규칙이 있었다.
“규칙을 어긴 건 내가 아니라 당신들이네.”
회색 도포를 입은 노인은 고개를 흔들며 한숨을 쉬고 목진을 향해 손을 내밀었다.
“네 주마령을 다오.”
목진은 멈칫하더니 금빛 찬란한 주마령을 건넸다.
“당신들이 내 대천루에서 대천궁의 주마왕을 건드리려 하는데 규칙을 어긴 것이 아니고 뭐란 말인가?”
회색 도포를 입은 노인은 주마령을 들고 미소를 지은 채 묵유를 바라보며 물었다.
대천루에 한 줄기 금광이 피어오르자 다들 눈부신 황금 영패을 바라봤다. 그 아래쪽에 적힌 암홍색 글씨 세 글자에서 특이한 위압감이 느껴졌다.
주마왕!
대천루에 모인 주마사들은 이글거리는 눈빛으로 영패를 바라봤는데 너무 탐 나 침을 흘릴 정도였다. 그들은 주마왕이 대천궁에서 뭘 의미하는지 누구보다 잘 알았다.
주마왕은 대천궁의 진정한 고위층 지도자로 지위가 객경, 장로나 지부의 루주보다 더 높았다.
하여 주마사들은 주마왕이 되기를 바라며 목숨을 걸고 싸우는 것이다.
대천세계에서 대천궁의 주마왕은 엄청난 세력의 주인 못지않았다.
“저 녀석이 정말 주마왕이 되었다니…….”
주마사들은 질투로 가득 찬 눈빛으로 목진을 노려봤다. 특히, 오랫동안 성연대륙에 머물렀지만 여전히 중급밖에 안 되는 주마사들은 눈이 시뻘겋게 상기되었다.
그들은 목진이 상고의 성연에 들어가기 전에 주마령을 수령한 것을 알고 있었다.
한편, 부도신족의 9 장로는 금광을 발하는 주마령을 보더니 창로한 얼굴에 어두운 빛이 드리웠다.
“저 녀석이? 주마왕이란 말인가? 대천궁의 주마왕은 진천 한 사람뿐이라고 들었는데 언제 두 번째 주마왕이 생겼단 말인가?”
묵유가 나지막하게 물었다. 그는 성연성에 온 지 얼마 안 되어 주마비에 일어난 변화를 모르는 눈치였다.
“육 루주, 설마 미친 건가? 자네가 어찌 저 녀석의 주마왕 신분을 인정한단 말인가? 대천궁에 언제 저토록 약해 빠진 주마왕이 있었단 말인가?”
묵은과 흑광은 얼굴이 붉으락푸르락해진 채 물었다.
“이 일이 알려지면 대천궁의 명성에 누가 될까 봐 걱정되지도 않는 건가?”
묵은의 말에 육 루주는 가볍게 웃으며 답했다.
“주마사가 등급을 상승하려면 역외사족의 잔혼을 이용하는 방법밖에 없네. 그러니 목진은 충분한 공헌을 해 주마왕이 된 것이 아니겠나?”
“저 녀석은 운 좋게 주마왕이 된 것뿐이에요. 그가 수집한 천마제의 잔혼은 부도신족의 노조께서 죽인 것이고 저 녀석은 몸만 내줬을 뿐이라고요!”
흑광이 안색이 확 어두워져 한 말에 육 루주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저 아이가 어떻게 천마제의 잔혼을 얻었든 주마령은 해당 방식을 인정했고 그를 주마왕으로 임명하지 않았는가?”
“그리고 결론적으로 놓고 보면 저 아이 손에 천마제가 죽은 것은 사실이지 않나? 비록 그는 잔혼일 뿐이나 철저히 없앤 것만으로도 큰 공을 세운 것이네. 대천궁은 역외사족을 없애는 것을 목적으로 세운 세력이고 저 아이가 그 목적을 달성했으니 우리도 인정해줘야 하지 않겠나?”
육 루주는 흑광, 묵은을 힐끗 보더니 부도신족의 9 장로한테 눈길을 돌렸다.
“이에 난 이 일을 본부에 알렸고 본부에서도 목진을 주마왕으로 인정했네.”
대천루는 순간 떠들썩해졌고 다들 혈안이 된 채 목진을 노려봤다. 이대로 대천궁에 두 번째 주마왕이 생긴단 말인가?
정말 그런 거라면 목진의 지위는 심지어 육 루주보다도 높았다.
육 루주의 말에 흑광과 묵은은 안색이 확 어두워졌고 9 장로도 표정이 한껏 일그러졌다. 만약 대천궁에서 정말 목진을 주마왕으로 인정하면 일은 훨씬 번거로워질 것이다.
대천궁의 주마왕은 대천세계에서 지위가 상당해 그는 물론이고 부도신족의 대장로와도 어깨를 나란히 할 정도였다.
만약 부도신족 9 장로가 오늘, 강제로 목진을 잡고자 한다면 대천궁을 상대해야 할 뿐만 아니라 그 대가 역시 엄청날 것이다.
부도신족의 9 장로인 묵유는 대천궁의 실력과 역사에 대해 잘 알고 있었다. 대천궁의 실력은 부도신족 못지않지만 역외사족을 상대하는 것을 유일한 목표로 하기에 대천세계에서 쉽게 모습을 드러내지 않을 뿐이었다.
육 루주는 주마령을 목진한테 돌려주며 겸손하게 인사를 올렸다.
“성연 지부, 대천루의 루주 육통(陸通)이 주마왕을 뵙습니다.”
목진은 흠칫하더니 어색한 듯 말했다.
“육 루주, 이러지 마세요.”
목진은 대천궁 본부에서 운 좋게 주마왕이 된 그를 이렇게 쉽게 인정할 줄은 몰랐다.
옆에 서 있던 9 장로 묵유, 묵은과 흑광은 안색이 더 어두워졌다. 그들은 육통이 일부러 이런다는 걸 잘 알았다. 육통은 이들한테 주마왕의 신분이 얼마나 고귀한지 재차 확인시켜 주려는 것이다.
“어떡하죠?”
묵은이 눈가를 파르르 떨며 9 장로를 바라보고는 몰래 전음으로 말을 전했다. 9 장로는 입가를 파르르 떨더니 서서히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9 장로!”
흑광이 더는 참지 못하고 버럭 소리를 질렀다. 지금은 목진을 잡는 가장 좋은 시기였다. 오늘 일이 일단 부도신족에 알려지면 이들이 다시 기회를 만들기란 더 어려워질 것이다.
그런데 9 장로는 흑광을 쏘아보기만 했다. 목진이 대천궁의 주마왕이 된 이상, 그들이 강제로 대천루에서 그를 잡으려 한다면 대천궁에서 절대 보고만 있지 않을 것이다.
“목진아, 넌 결국 우리 종족 사람이니 우리를 따라 부도신족으로 돌아가 팔부부도를 바친다면 대장로께서 네 어머니를 풀어주실 수도 있단다.”
9 장로는 눈가를 파르르 떨더니 조금 부드러워진 표정으로 목진한테 말을 건넸다. 그 모습에 다들 몰래 혀를 내둘렀다. 강제로 안 될 것 같으니 회유하기 시작한 것이었다.
그러나 목진은 고개를 숙인 채 대수롭지 않게 말했다.
“언젠가 부도신족에 가겠지만 지금은 아니에요.”
그가 9 장로의 사탕발림에 넘어갈 리 없었다. 목진이 부도신족에 따라가면 팔부부도를 빼앗기는 것은 물론 녀석들은 그를 잡아 어머니를 협박할 것이다.
목진이 천지존경에 이르러 자신을 보호할 능력이 생기면 반드시 부도신족에 갈 것이다!
“너무 우쭐거리지 말거라. 네가 대천궁의 주마왕이 되었다고 부도신족이 너한테 굽신거릴 것 같으냐?”
목진이 꿈쩍도 하지 않자 9 장로의 안색이 금세 어두워졌다.
“그럼 어디 해보시죠.”
목진은 대수롭지 않게 말했다. 9 장로는 선급 천지존이라 실력이 엄청나지만, 그도 전혀 방법이 없는 것은 아니었다. 그러다 방법이 없으면 무조를 모셔오면 된다. 9 장로는 무조 앞에서만큼은 절대 지금처럼 말하지 못할 것이다.
그는 타인의 힘을 빌려 적을 물리치는 것이 전혀 창피하지 않았다. 그것 또한 실력의 또 다른 방법이었다.
이에 9 장로는 눈가를 파르르 떨더니 잔뜩 화가 난 듯 목진을 뚫어져라 쳐다봤다.
정작 목진은 그를 보는 척도 하지 않았다.
잠시 후, 9 장로는 깊게 숨을 들이켜며 마음을 다스리고 다시 입을 열었다.
“후회하지 않길 바란다.”
말을 마친 그는 바로 대천루를 떠났다.
흑광과 묵은은 9 장로가 쉽게 포기한 것이 썩 내키지 않았지만 지금은 확실히 목진을 건드릴 수 없었다. 그들은 목진을 힐끗 쳐다보고는 바로 뒤를 따라갔다.
그 뒤에 서 있던 현라와 묵심도 안색이 한껏 어두워졌다. 그들은 두 명의 영급 천지존과 선급 천지존 한 명이 나섰는데도 목진을 잡지 못할 줄 몰랐다.
“빌어먹을, 운이 왜 이렇게 좋은 거야!”
현라와 묵심은 이를 갈며 서로 마주 봤다. 그들도 목진이 갑자기 대천궁의 주마왕이 될 줄 몰랐고 심지어 대천궁 본부의 인정까지 받을 줄 몰랐다.
일이 이렇게 된 이상, 오늘 목진을 잡아 그한테서 팔부부도를 빼앗는 것은 완전히 불가능해졌다.
팔부부도가 온전히 목진의 것이 될 걸 생각하니 두 사람은 속이 부글부글 끓어올랐다. 하지만 어쩔 수 없이 목진을 쏘아본 뒤 흑광 등의 뒤를 따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