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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주재-857화 (856/1,000)

857화. 복종

대전은 쥐 죽은 듯 조용했고 다들 대수롭지 않게 서 있는 젊은이한테서 느껴지는 기운에 매료되었다. 겁에 질린 자운종의 강자들도 목부의 강자들도 모두 말이다.

유천도 등도 아직 목진의 강대함이 실감이 나지 않은 듯 멍하니 서 있기만 했다.

그들은 목진과 알고 지낸 지 제법 오래되었다. 유천도와 목진의 첫 만남은 아들과 원한 관계가 있어서였는데 그때까지만 해도 목진은 별 볼 일 없는 존재라 그를 죽이는 건 식은 죽 먹기였다.

그런데 이제 별 볼 일 없던 존재는 몇 해 만에 놀라운 속도로 성장해 지금은 유천도를 훨씬 초월했다.

그는 젊은 청년을 바라보더니 이내 한숨을 쉬었고 마음속 깊은 곳에 숨겨뒀던 언짢은 감정을 완전히 지웠다.

만성노조, 유명궁 궁주 등도 목진을 바라보는 눈빛에 경외의 뜻이 깊어졌다.

북계 연맹을 목부로 만들고 목진을 부주로 인정하라고 했을 때, 그들은 사실 썩 내키지 않았지만 만다라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시키는 대로 했었다. 1년 전까지만 해도 목진은 막 하위 지지존에 이른 것뿐이었으니 말이다.

그런데 목진이 지지존 대원만급 강자 세 명을 대수롭지 않게 처리하는 것을 보고 만성노조 등은 불만이 싹 가셨다.

그들은 그제야 만다라가 왜 목진을 목부의 주인으로 앉혔는지 알 것 같았다. 목진의 잠재력은 무서울 정도였다.

그런 존재를 주인으로 모시는 것은 곧 거장이 될 사람을 모시는 거나 마찬가지였다.

그들의 실력으로 천지존을 보유한 세력에 가입하려면 쉽지 않다. 커다란 세력에서 하위 지지존은 기껏해야 중급 지도자밖에 될 수 없기 때문이다.

목진의 잠재력으로 보아 북계 따위에 만족하지 않을 것이고 언젠가 북역을 통일할 가능성도 있었다. 심지어 천라대륙의 주인이 되어 목부를 대천세계에서 유명한 최정예급 세력으로 만들 수도 있다.

그때가 되면 그들은 목부를 세울 때, 바로 고위층 지도자가 된 것을 천만다행이라 생각할 것이다.

이러한 생각에 만성노조 등은 만다라가 참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들 만다라의 선견지명에 적잖게 놀랐다.

한편, 그들의 눈빛을 느낀 만다라는 입을 삐쭉 내밀었다. 그녀는 목진의 잠재력이 남다르다는 걸 알긴 했지만 이렇게까지 뛰어날 줄은 몰랐다. 목진은 2년도 안 되는 사이에 하위 지지존에서 반보 지지존 대원만급 강자가 되어 돌아왔다.

만다라는 복잡미묘한 눈빛으로 목진을 바라봤다. 왠지 목진의 전투력은 이미 그녀를 뛰어넘은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여태껏 자신이 목진을 지켜줬는데 이제부터는 상황이 뒤바뀔 거란 생각에 마음이 이상해졌다.

정작 목진은 만다라가 이런 생각을 하는지도 모른 채 고개를 숙여 온몸을 파르르 떨고 있는 자천비 등을 노려봤다.

“목주, 우리는 사절단일 뿐이네. 두 세력 사이의 원한 관계가 어떻든 사절단은 죽이지 않는단 말도 있지 않은가!”

자천비는 목진의 무덤덤한 눈빛을 보더니 온몸을 파르르 떨며 말했다. 그는 영력이 봉인되어 일반 노인이나 다름없었고 목진이 화가 나 자신을 죽일까 봐 겁이 났다.

“일전에는 그리 말한 것 같지 않은데…….”

목진은 입꼬리를 씰룩거리며 말했다. 자천비는 일전에 기고만장하여 목부에서 우쭐댔다.

목진의 말에 자천비는 아차 싶었다. 자그마한 목부에 이렇게 엄청난 인물이 있을 줄 누가 알았을까? 목진은 순식간에 자천비 등을 쓰러뜨렸는데 전투력이 공포스러울 정도였다.

자천비가 미리 알았더라면 절대 그러지 않았을 것이다.

“일전에는 내가 무식하여 그런 것이니 목주께서 혼낼 만도 하네.”

자천비는 괜히 머쓱하여 웃더니 아부를 떨기 시작했다.

“참 가지가지 하는군.”

목진은 노인네의 갑작스러운 돌변에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목부의 강자들도 속이 확 트이는 것 같았다.

“돌아가 자운종에 알리게. 목부는 누굴 먼저 건드리진 않지만 먼저 시비를 거는 상대를 두려워할 만큼 호락호락하지 않다고 말이네. 우리를 쉽게 봤다가는 큰코다칠 것이네.”

목진이 가볍게 웃으며 한 말에 자천비는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그만 가보게.”

목진은 그들과 더 이상 말을 섞고 싶지 않았다. 어차피 그들은 체내의 봉인 때문에 1년 동안 영력을 사용하지 못할 것이다.

“알겠네, 당장 물러나겠네.”

자천비는 다른 두 노인과 함께 황급히 도망갔다. 그들은 체내의 봉인에는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 어차피 자운종에 돌아가 종주한테 부탁드리면 쉽게 없앨 수 있을 거라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목진은 시들시들해져 떠나가는 녀석들을 보더니 입꼬리를 씰룩거렸다. 목진의 봉인을 그렇게 쉽게 없앨 수 있는 거라 여기다니, 자운종의 종주가 천지존경에 이르지 않았다면 절대 그의 봉인을 뚫을 수 없을 것이다.

“구유는 어디 있어?”

목진은 자운종의 사절단을 완전히 물리친 뒤에야 돌아서 만다라한테 질문을 던졌다.

그는 목부에서 구유의 기운이 전혀 느껴지지 않아 물었다.

“구유는 네가 서천대륙에 가자마자 구유족으로 돌아갔어. 네 수련 속도에 자극을 받았는지 진화를 계속하기로 했나 봐. 그러다 상고의 불사조가 될 수도 있으니 말이야.”

만다라의 말에 목진은 고개를 끄덕였다. 구유의 체내에는 상당히 짙은 불사조의 혈맥이 깃들어 있어 진화에 성공할 확률이 꽤 높았다. 그러다 그녀가 진화에 성공하면 천지존이나 다름없는 진정한 상고의 불사조로 거듭날 것이다.

신수들의 수련은 특이해 진화하지 못하면 천백 년 동안 실력이 늘지 않는데 일단 진화에 성공하면 한꺼번에 확 늘어난다.

“수고 많았어.”

목진은 규모가 상당한 목부의 강자들을 쓰윽 훑더니 이내 감탄했다. 만다라가 그동안 목부를 키우기 위해 꽤 애를 쓴 모양이었다.

그런데 만다라는 목진을 흘겨보기만 했다. 하긴, 목진이 모든 걸 떠넘기고 떠나버렸으니 할 말이 없었다.

“히히, 네가 여태껏 한 고생에 보답해주려고 선물을 준비했어.”

목진이 바로 옷깃을 휘날리자 한 줄기 흑광이 만다라에게 향했다.

이에 만다라가 입으로 가볍게 바람을 불자 흑광이 그녀 앞에 멈춰 서서 형태를 드러냈는데 가시가 잔뜩 돋은 검은색 채찍이었다.

“이건…….”

만다라가 멈칫하더니 흠칫 놀라 물었다.

“상고의 만다라 꽃의 가지로 만든 준절세의 성물이잖아?”

그녀의 본체도 상고의 만다라 꽃이라 채찍 주인의 생전 실력이 천지존경에 이르렀단 걸 바로 알아챘다.

“성진진마탑도 더는 도움이 안 될 테니까 이번 기회에 이것으로 바꿔.”

목진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만다라 채찍을 든 만다라의 실력은 대폭 상승할 것이다.

“쯧쯧, 이번에 많은 걸 얻었나 보네.”

만다라는 혀를 끌끌 차며 말했다. 준절세의 성물은 진정한 보물로 지지존 대원만급 강자들이 꿈에도 그리는 물건이었다.

대전에 모인 강자들도 이글거리는 눈빛으로 목진이 만다라한테 준 선물을 유심히 바라봤다. 다들 목진의 씀씀이에 깜짝 놀랐다.

준절세의 성물을 경매에 넘기면 적어도 지존영액 수억 방울은 할 것이다.

“그래도 양심은 있는 편이네? 그럼 잘 쓸게.”

만다라가 생긋 웃으며 말했다. 그녀는 목진이 준 선물이 상당히 마음에 들었다.

목진은 미소를 지으며 돌아서 천취황, 수황과 영동황한테 눈길을 돌렸다. 그들은 아직 9급 지존경 정상이었고 하위 지지존까지 얼마 남지 않았다.

목진은 준비를 마친 뒤 세 사람한테 영광을 쐈는데 그것은 똑같이 생긴 영단 세 알이었다.

“이건 파존단(破尊丹)으로 9급 지존경에서 경지를 돌파할 때 겪게 될 문제점을 해결해주는 작용이 있어요. 세 분은 실력이 충분하니 이것만 있으면 무리 없이 경지를 돌파할 수 있을 거예요.”

목진은 생긋 웃으며 말을 건넸다.

그들은 대라천역 때부터 만다라를 따른 사람들이라 충심을 믿어 의심치 않았다. 하여 목진은 능력이 될 때, 조금이나마 도움을 주고 싶었다.

천취황 등은 앞쪽에 떠 있는 영단에서 느껴지는 순수한 영력에 이내 화색이 되었다. 그들은 적당한 기회만 있으면 경지 돌파를 마칠 수 있을 텐데 기회란 것이 쉽게 찾아오지 않아 여태껏 9급 지존경에 머물러 있었다. 이제 파존단만 있으면 그들은 지금 당장이라도 경지를 돌파할 수 있을 것이다.

“고맙습니다, 부주님!”

세 사람은 감탄을 금치 못하며 감사 인사를 전했다. 목진이 막 대라천역에 왔을 때까지만 해도 통령일 뿐이라 그들과 신분 차이가 엄청났는데 이제는 실력도 엄청난 차이가 났다.

대전에 모인 강자들은 부러운 눈빛으로 수황 등을 바라봤다. 경지 돌파에 도움을 주는 영단은 상당히 드물었고 경매장에서도 거의 볼 수 없을 정도였는데 부주님께서는 이토록 쉽게 부하들한테 하사해주셨다.

잇따라 목진은 유천도 등한테 눈길을 돌렸다. 일전에 자천비를 상대할 때, 그는 유천도 등이 나서려 했던 걸 눈치챘다.

비록 그들은 목진과 사이가 좋지 않았지만 목부에 가입한 뒤로 큰 실수를 한 적이 단 한 번도 없었다. 어느 정도 자기 실속을 챙기려는 생각은 있겠지만 대체로 믿을 만한 사람들이었다.

이에 목진은 영단 다섯 알을 유천도 등 다섯 사람한테 건넸다.

이는 목진이 영접단선의 유적지에서 얻은 거라 상당히 진귀한 것이었다.

“당신들도 만다라를 도와 목부를 관리하는 데 공이 있으니 상을 내려야 마땅하죠.”

목진은 가볍게 웃으며 말을 이어갔다.

“이건 도액단(度厄丹)으로 하위 지지존경에서 상위 지지존경에 이를 확률을 높여주는 효과가 있어요. 대신, 성공 여부는 자신한테 달렸겠죠?”

유천도 등은 순간 온몸을 파르르 떨더니 이내 화색이 되었다. 그들은 하위 지지존경에 머무른 지 오래되었기 때문에 그 누구보다 도액단이 필요했다.

또한, 도액단은 천취황 등한테 준 영단보다 더 진귀했는데 경매장에 나타나면 피바람이 불 것이다.

“고맙습니다, 부주님!”

유천도 등은 조심스럽게 영단을 거두고 정중하게 인사를 올렸다. 사실 이건 목진이 앞으로 목부에 충성을 맹세하며 일전에 있었던 불쾌한 일은 충분히 덮어줄 수 있다는 뜻이나 마찬가지였다.

목진은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목부의 강자들은 천취황, 유천도 등이 보상을 받은 것을 보고 너무 부러웠지만, 그들은 목부를 세울 때부터 있던 사람들이라 그 누구보다 고생을 많이 했기에 보상받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했다.

“목부는 상과 벌을 분명하게 내릴 것이다. 앞으로 누구든 공을 세우면 그에 맞은 보상을 해줄 것이다.”

목진은 사람들을 쓰윽 훑으며 천천히 말했다.

“네!”

목부 강자들은 이구동성으로 외쳤다.

이를 지켜보던 만다라는 이내 미소를 지었다. 목진은 보상을 통해 한 해 동안 사라져서 생긴 부하들의 불만을 뿌리째 뽑아버렸고 자신의 말에 힘도 실었다.

앞으로 그의 말이라면 다들 최선을 다할 것이다.

“그럼 자운종에서 도대체 뭘 하려 했는지 말해볼까?”

목진은 고개를 끄덕이며 돌아서서 만다라한테 말을 건넸다.

“자운종이라…….”

목진의 말에 만다라도 이내 정색하더니 대전 밖을 힐끗 쳐다봤다.

“목부에 온 노인네들은 자운종의 장로라 지위가 상당할 텐데 이대로 풀어주다니, 너무 대범한 거 아니야?”

저들은 지지존 대원만급 강자라 목부에 남겨두면 자운종에서도 함부로 어쩌지는 못할 것이다.

“저들은 1년 동안 잘해 봐야 실력이 하위 지지존 정도라 폐인이나 다름없어.”

목진은 가볍게 웃으며 대수롭지 않게 말했다.

“내가 그들의 몸에 남긴 봉인은 천지존이 아니고서는 절대 없앨 수 없어.”

목부의 강자들은 목진의 수단에 적잖게 놀랐다. 반보 지지존 대원만급의 실력으로 친 봉인을 풀려면 무려 천지존이 나서야 한다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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