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60화. 대회의 날
북역 자운종의 한 대전에 자천비 등이 사색이 된 채 온몸에서 보랏빛을 발하며 서 있었다. 그들 머리 위에는 보라색 안개가 요동치고 있었는데 한참 지나자 그들 뒤쪽에서 누군가 갑자기 손을 거뒀다.
“종주님!”
자천비 등이 황급히 돌아서자 보라색 도포를 입은 곱상한 사내가 뒷짐을 쥐고 서 있었다. 그는 눈동자마저 보라색이었는데 서 있는 자체만으로 지극히 무서운 위압감을 형성해 주위의 공간이 파르르 떨렸다.
“참 강력한 봉인이구나.”
사내는 안색이 조금 어두워져 말했다.
“종주님도 이 봉인을 없애지 못하는 건가요?”
자천비 등은 화들짝 놀랐다.
목부의 부주가 정녕 이토록 무서운 존재란 말인가? 종주님도 그가 친 봉인을 없애지 못한단 말인가?
이에 자운진군도 안색이 어두워져 답했다.
“이 사람은 봉인술에 능통해 내가 강제로 없애려 했다가는 너희 몸에 해가 될 거란다. 다행히 1년만 지나면 사라지니 조금만 참거라.”
자천비 등은 금세 죽상이 되었다. 그럼 그들은 1년 동안, 하위 지지존의 실력으로 살아야 한단 말인가? 이럴 줄 알았으면 죽어도 목부에 가지 않았을 것이다.
“목부를 너무 쉽게 생각했구나. 티끌만 한 북계에 그런 인물이 나올 줄 누가 알았을까?”
자운진군이 미간을 찌푸리며 한 말에 자천비는 이내 정색했다.
“종주님, 목부의 주인은 자운종을 상대로조차 취급하지 않더군요. 그는 우리가 가져간 자운서(紫雲書)를 갈기갈기 찢어버렸을 뿐만 아니라 북역의 패주가 되어 우리 자운종과 어깨를 나란히 할 생각을 하고 있었어요!”
“말도 안 되는 소리!”
자운진군은 미간을 찌푸리며 피식 웃었다.
자운종, 뇌음산, 금조부가 북역의 지역을 대부분 나눠 가져 목부가 패주가 되면 이들한테서 일부 지역을 뺏어 가야 할 것이다.
이는 그 누구도 용납할 수 없었다.
“목부의 머리에 피도 안 마른 녀석이 야심만만하다고 하니 북역 대회의 초청장을 보내야겠구나. 녀석이 도대체 무슨 수로 북역의 패주가 된다는 건지 보자구나!”
자운진군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말했다.
북역의 형세는 쉽게 바뀌지 않겠지만 목부에서 기어이 나서겠다고 하면 기존의 패주들이 그의 야심이 얼마나 쓸모없는지 제대로 가르쳐줄 것이다.
* * *
북계 사람들은 요즘 들어 유난히 의기양양해졌다. 이는 전부 목부의 신비로운 부주, 목진의 출현과 그가 북역 패주가 되려는 포부를 밝혔기 때문이었다.
그의 야망에 북계 전체가 들썩였고 다들 열띤 의논을 펼쳐 자연스레 떠들썩해졌다.
한편, 북계의 어느 도성에 있는 주점도 이러한 분위기에 흠뻑 젖어 있었다. 그곳에 있던 사람들은 점점 치열하고 직접적인 토론을 펼쳤다.
“흥, 난 우리 부주가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하고 있다고 생각하네. 이렇게 크고 넓은 북역에서 목부는 기껏해야 중급 세력밖에 안 되는데 다른 3대 패주를 상대하려 했다가 무슨 험할 꼴을 당할지 누가 알겠는가?”
“그때 가서 자운종, 뇌운산, 금조부가 대노하면 북계 전체가 피바다가 될 것이네!”
“퉷, 우리 부주님께서는 비록 젊긴 하나 영락없는 천재라네. 일전에 부주님께서는 지지존 대원만의 실력만 믿고 목부에서 우쭐거리는 자운종의 장로 세 명을 손쉽게 쓰러뜨리지 않았나? 내가 보기에 부주의 실력은 자운진군, 뇌음존자(雷音尊者), 금조황(金雕皇) 못지않네!”
“옳소! 부주님의 실력으로 굳이 북계에만 계실 필요가 없네. 그리고 전쟁이 일어나면 어떤가? 허허, 난 공로가 없어 올해의 천하수련령을 받지 못할까 봐 걱정이었는데 마침 잘되지 않았나?”
“천하수련령이야말로 좋은 물건이지. 그곳은 상고의 천궁의 수련 성지인 데다 신비로운 장경루까지 있다는 소문이 있네. 운만 좋으면 장경루에 들어가 대신통도 마음대로 가질 수 있다네!”
“허허, 아무리 좋아 봐야 이를 누릴 목숨이 있어야 하지 않는가? 북역 3대 패주의 뒷배는 대천세계의 엄청난 세력이라네. 부주님께서 패주 쟁탈전에서 승리한다고 한들 자칫 잘못하면 북계 전체가 화를 입을 수도 있네.”
“부주님께서 자기 야망을 이루기 위해 북계 전체를 희생하는 것은 절대 좋은 일이 아니네.”
* * *
사람들은 주점에서 치열한 토론을 펼쳤고 그곳의 구석진 곳에 만다라와 천취황, 유천도 등이 인상을 잔뜩 찌푸리고 앉아있었다.
“만다라 대인, 북계 전체가 북역 패주 쟁탈전에 대해 의논하고 있고 날이 갈수록 치열해지고 있다고 들었어요. 이건 왠지 수상해요.”
천취황이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요즘 들어 북역 패주 쟁탈전에 관한 논쟁이 빠르게 북역의 곳곳에 퍼지고 있었다. 그런데 그 확산 속도가 이상하리만큼 빨랐다.
“누군가 몰래 일을 키우고 있단 말이냐?”
만다라가 눈가를 파르르 떨며 한 말에 천취황은 서서히 고개를 끄덕였다.
“목부가 한마음으로 움직이는 것을 못마땅하게 생각하는 누군가가 여론으로 북계의 민심을 흔들려는 것 같네요.”
“자운종의 수단이구나.”
만다라도 어느 정도 눈치를 채고 몰래 조사를 진행했다. 최근 자운종 사람들이 몰래 북계에 들어와 일을 크게 키우고 있는 것이 사실이었다.
이는 비록 목부에 치명적인 타격을 입히지는 못하지만 그 행동이 상당히 역겨웠다. 그러다 목부가 북역 대회에서 패배라도 하면 북계의 민심을 모으기는 훨씬 힘들어질 것이다.
그때가 되면 목부를 호시탐탐 노리고 있던 세력들이 하나둘씩 나설 것이다. 목부에는 상고의 천궁이 있어 다들 눈여겨 본지 오래되었다.
“비겁한 자식들.”
유천도는 이내 욕설을 퍼부었다. 그는 자신을 목부 사람으로 생각했기에 자운종의 비열한 수단에 저절로 화가 났다.
“북계 휘하의 모든 도성을 몰래 조사하거라. 일단 자운종 사람을 발견하면 바로 잡고 북계 민심을 동요시키려 했다면 그게 누구든 전부…….”
만다라는 이내 정색하며 손을 가볍게 흔들었다.
자운종에서 그따위로 나온다면 목부에서도 당하고만 있지 않을 것이다. 목부는 그들이 사람을 파견하는 만큼 죽여버릴 것이다.
유천도 등은 만다라의 매서운 수단에 흠칫 놀랐다.
“난 목진이 목부를 북역 패주로 만들려는 것을 전적으로 도와줄 거란다. 비록 최종 대결은 그가 직접 나서야 하겠지만 이런 것쯤은 우리가 대신 해결할 수 있지 않느냐? 그렇지 않으면 목부가 이렇게 많은 사람을 휘하에 둘 필요가 있을까?”
“네!”
만다라가 무덤덤하게 말했고 유천도 등이 이구동성으로 답했다.
“만다라 대인, 부주님께서 정녕 자운진군, 뇌음존자와 금조황을 상대할 수 있다고 생각하시나요?”
유천도가 더는 참지 못하고 물었다.
아무리 유천도 등이라도 목부가 북역 대회에 참가해 3대 패주와 대결을 펼치는 것이 걱정되었다. 저들은 곧 천지존경에 이를 강자들로 북역에서 상당히 유명한 사람들이었기 때문이다.
반면, 목진은 부쩍 강해지긴 했지만 저들과 비교하면 조금 뒤처졌다.
이에 만다라가 힐끗 쳐다보자 유천도는 머쓱하게 웃으며 말을 이어갔다.
“만다라 대인, 우리는 부주님을 못 믿는 것이 아니라 이번 일이 너무 중요해서 그러는 겁니다. 이건 목부의 미래가 걸린 일이니까요.”
만다라는 유천도를 나무라지는 않았다. 목진의 결정이 확실히 갑작스럽긴 했고 3대 패주는 북역에서 이름을 날린 지 오래된 것도 사실이었다. 여태껏 저들의 권위에 도전하는 세력들이 제법 있었지만 성공한 사람은 단 한 명도 없었다.
하여 북계에서 만다라를 제외하면 목진의 결정에 절대적인 자신이 있는 사람은 아마 없을 것이다.
목진은 도박하는 거나 마찬가지였다. 만약 북역 대회에서 목진이 정말 자운종, 뇌음산, 금조부 등 3대 패주 세력이 북역을 차지한 국면을 바꾼다면 목부는 자연스레 강대해질 것이고 언젠가 북역의 유일한 패주로 거듭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다 언젠가 실력을 충분히 갖추면 목부는 심지어 천라대륙의 주도권도 넘볼 수 있을 것이다. 일단 성공하면 무한의 화역, 무경처럼 대천세계의 엄청난 세력이 될 수도 있다.
대신, 목진이 북역 대회에서 처참하게 패배하면 목부가 받는 타격은 치명적일 것이다. 그때 가면 자운종, 뇌음산과 금조부도 모두 목부를 집어삼키려고 애를 쓸 것이다. 저들은 목부에 있는 상고의 천궁을 탐낸 지 오래되었다.
그럼 목부는 완전히 와해될 가능성도 있었다. 그러니 유천도 등이 걱정하는 것도 당연했다.
그러나 만다라는 위로하기는커녕, 가볍게 웃으며 말했다.
“너희가 어떻게 생각하는지 모르겠지만 목진은 천제께서 선택한 사람이고 염제, 무조 등의 인정을 받았다는 것을 잊지 말았으면 좋겠구나. 너희와 저들의 안목 중 누가 더 뛰어나다고 생각하느냐?”
말을 마친 만다라가 손을 휘익 저으며 주점을 떠나자 유천도 등은 오히려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천제, 무조, 염제 등은 진정한 거장이라 안목이 여간 높은 것이 아닌데 목진을 인정한 것을 보면 잠재력이 상당한 것만은 사실이었다.
그러니 그들은 마음 편히 목진을 따르면 될 터, 성심을 다해 그를 모시다 보면 후회할 일은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 * *
시간은 소리 없이 흘러갔고 북역 대회의 날이 임박할수록 북계는 떠들썩해졌다. 다행히 만다라 덕분에 목부 강자들의 의지는 활활 타올랐고 유언비어들은 어느새 완전히 사라졌다.
그러나 북계만 이럴 뿐, 북역의 다른 세력들은 연민과 비웃음을 보내며 상황을 지켜보았다.
북역에서 중급 정도에 속하는 북계는 여태껏 혼잡한 상태였다가 통일한 지 얼마 되지 않았는데 감히 자운종, 뇌음산, 금조황의 패권에 도전장을 내민 기고만장한 목부가 나타났기 때문이었다.
목부처럼 야심만만한 세력들은 결국 전부 소리소문없이 사라졌는지라 북역의 다른 세력들은 목부도 결국 북역 대회의 웃음거리로 남을 거라 여겼다.
이렇게 북역 대회의 날은 사람들의 열띤 토론 속에서 드디어 임박했다.
북계에 있는 목부 본부는 오늘따라 유난히 떠들썩했는데, 목부의 강자들이 모두 모여 신생 세력의 생기를 선보였다.
그런데 만다라는 대전 밖에 서서 주위 광장의 웅장한 영력 파동을 느끼다가 위쪽에 있는 상고의 천궁을 바라보며 인상을 찌푸렸다.
목진은 그날, 장경루에 들어간 뒤로 여태껏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오늘은 북역 대회에 참석하러 가는 날이라 목부의 강자들이 한자리에 모였다. 그런데 목진이 나타나지 않으면 한 달 동안 끌어모은 민심은 와르르 무너질 것이다.
“이 녀석이!”
만다라는 이를 악물며 주먹을 꽉 쥐었지만 최대한 아무렇지 않은 척 서서 하늘만 바라봤다. 본부에 모인 강자들이 많아질수록 다들 수군대기 시작했다.
그 광경에 만다라는 무안한 듯 한숨을 쉬며 나서려 했는데 옆쪽 공간이 파르르 떨리더니 늘씬한 청년이 드디어 모습을 드러냈다.
“부주님을 뵙습니다!”
목진의 등장에 목부의 강자들은 하늘이 떠나가라 외쳤다.
목진도 규모가 상당한 강자 부대를 보며 고개를 끄덕이더니 옆에 서 있는 만다라를 바라보며 웃다가 손을 가볍게 흔들며 외쳤다.
“출발!”
북역은 크고 넓지만 자운종, 뇌음산, 금조부가 8할 정도의 땅을 나눠 가졌고 북계는 마침 남은 2할에 속했다.
북계가 무사할 수 있었던 가장 큰 이유가 자원이 우월하지 않고 외진 곳에 있기 때문이었는데 목부가 북계를 통일하면서 일이 복잡해졌다.
또한, 목부가 상고의 천궁을 확보했단 소식은 퍼져나가 북계를 넘어 자운종, 뇌음산과 금조부에도 알려졌다.
한때, 천라대륙의 지배자였던 상고의 천궁은 수련 성지로 유명했는데 이를 획득할 수만 있다면 세력에 엄청난 도움이 될 것이다.
북계의 목부가 1년 사이에 실력이 폭등하고 수많은 강자를 영입할 수 있었던 가장 중요한 이유도 상고의 천궁 때문이었다.
하여 자운종, 뇌음산, 금조부는 몰래 기회를 찾아 목부를 집어삼키고 상고의 천궁을 빼앗으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