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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주재-872화 (871/1,000)

872화. 혈마장(血魔將)

목진은 옷깃을 휘날려 미친 듯이 머리를 조아리던 사람들을 일으켜 세우고 주위를 쓰윽 훑으며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걱정하지 말게, 내가 당신들을 구해 줄 것이네.”

하위면은 비록 대천세계보다 등급이 낮지만 여전히 대천세계의 일부였고 아무도 하위면을 무시하지 않는다. 하위면은 비록 등급이 낮지만 일단 위면의 한계를 뚫고 대천세계에 이른 천재들은 진정한 강자로 거듭나 엄청난 성과를 이루기 때문이었다.

염제나 무조처럼 말이다.

하여 대천세계 사람인 목진은 혈사족 때문에 짐승만도 못한 생활을 하는 사람들을 못 본 척 지나칠 수가 없었다.

“고맙습니다, 천신님!”

소녀의 얼굴은 이미 눈물범벅이 되었고 다른 사람들도 감동해 다시 절을 올리려 했는데 목진이 영력으로 사람들을 일으켜 세웠다.

“저 안에 누군가 있는 것 같군.”

목진은 도성의 가장 깊숙한 곳을 가리키며 대수롭지 않게 말했다.

그는 도성의 깊숙한 곳에서 은밀하고도 강력한 기운을 발견했는데 녀석은 깊은 잠에 빠져든 것 같았다.

목진의 말에 소녀는 순간 사색이 되더니 너무 두려워 목소리마저 파르르 떨렸다.

“천신님, 그 사람은 혈마장으로 실력이 상당합니다. 다행히 지금은 자고 있으니 깨기 전에 최대한 빨리 도망갑시다.”

다들 혈마장을 두려워했다. 녀석은 잠에서 깨어날 때마다 사람 수천 명의 피를 흡입하는 극악무도한 놈이었다.

“혈마장이라…….”

목진은 가볍게 웃으며 주먹을 쥐고 백 장 정도의 거대한 영력 광구를 만들더니 도성의 가장 깊숙한 곳을 향해 힘껏 던졌다.

쿵!

영력 광구가 폭발하자 도성의 깊숙한 곳에 있던 건물들이 순식간에 무너졌고 한 갈래 혈광이 솟구치더니 살기로 가득 찬 목소리가 주위에 울려 퍼졌다.

“누가 감히 잠든 나를 깨운 건가?”

녀석의 말소리에 원주민들은 다리에 힘이 풀려 자리에 주저앉았고 이내 사색이 되었다. 도성에서 가장 무서운 마왕이 왜 지금 깨어났단 말인가?

“우린 전부 죽을 것이네…….”

누군가 절망스러운 듯 말했다. 원주민들은 아무리 신비로운 천신님이라도 강대한 혈마장의 상대가 안 될 거라 여겼다.

“천신님, 혈마장을 상대하기 어려우면 부디 먼저 도망가야 합니다!”

소녀가 얼굴이 하얗게 질린 채 소리쳤다. 그 말에 목진은 어이없다는 듯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혈마장의 실력은 대천세계의 지지존 대원만급 강자로 목진의 상대가 아니었다.

“혈사족에서 혈마장은 어느 정도 등급이냐?”

목진의 질문에 소녀는 흠칫하더니 조용히 고개를 저었다. 그들한테 혈마장은 이 세상에서 가장 강한 존재나 다름없어 이보다 더 강한 존재란 상상도 한 적 없었다.

이에 목진은 조금 아쉬운 듯한 표정을 지었다. 그들한테서 얻을 수 있는 정보는 상당히 제한적이었다.

“천신님, 우리는 혈사족의 내부 상황을 잘 모르지만 여왕님께서는 분명 아실 겁니다!”

“여왕?”

소녀의 답변에 목진은 흠칫 놀랐다. 여왕은 또 누구란 말인가? 원주민들한테 여왕이란 존재도 있단 말인가?

그때 도성의 깊숙한 곳에서 솟구쳤던 혈광이 갑자기 내려앉았다. 그는 새하얀 피부에 빨간색 도포를 입은 사내로 몸 표면에 선홍색 무늬가 가득 난 것이 상당히 괴이해 보였다.

녀석은 혈마장으로 뒤쪽에 도천의 혈무가 득실거렸다.

“너희가 감히 우리 종족 사람을 죽인 것이냐?”

“도대체 누가 한 짓이냐, 당장 나오지 못할까?”

녀석의 포효가 음파를 형성해 주위에 퍼지자 원주민들은 겁에 질려 온몸을 파르르 떨었다.

“피를 빨아 먹을 줄밖에 모르는 버러지 같은 녀석들이 죽으면 그만이지. 뭐가 대수라고 그러는지 모르겠군.”

목진이 고개를 들고 미소를 지으며 상대방을 바라보았다.

“자네가 한 짓인가? 겁도 없는 녀석!”

혈마장은 혈광이 득실거리는 눈으로 목진을 쏘아보며 체내에서 만 장의 혈광을 방출했다. 그러자 뒤쪽에 도천의 혈해가 휘몰아치는 것이 그야말로 장관이었다.

그러나 목진은 들끓는 혈해를 보더니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다가 정색하며 대수롭지 않게 주먹을 휘둘렀다.

쿵!

수정의 빛이 깃든 권광이 휘몰아치는 혈해를 힘껏 때렸다.

퍽!

양자가 부딪치자 공간이 파르르 떨렸고 대지는 와르르 무너졌으며 도천의 혈해는 폭발했다. 처량한 비명과 함께 녀석은 맥없이 튕겨 나갔다.

퍽! 퍽!

녀석은 지면에 수만 장 정도의 깊숙한 흔적을 남기며 도성 밖까지 튕겨 나갔는데 그가 지나간 곳의 건물은 와르르 무너졌다.

녀석을 바라보던 목진이 다시 주먹을 쥐자 튕겨 나갔던 녀석은 금세 그의 손에 빨려 들어갔다.

목진은 고개를 숙여 수중의 차가운 시체를 바라봤는데 녀석은 잔뜩 놀란 듯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목진은 혈마장이 이렇게 쉽게 죽울 줄 몰라 저도 모르게 눈가를 파르르 떨었다. 어찌 지지존 대원만급 강자가 한주먹에 바로 죽는단 말인가?

“무능한 녀석, 정보를 알아내려 했더니…….”

목진은 투덜대며 고개를 흔들더니 혈마장의 시체를 쓰레기 버리듯 휘익 던져버렸다.

이렇게 도성은 다시 쥐 죽은 듯 조용해졌다.

한편, 혈마장의 등장으로 잔뜩 겁에 질려 온몸을 파르르 떨던 사람들은 표정이 확 굳었다. 그들은 오늘 벌어진 모든 일이 꿈만 같았다.

그는 평소 악마의 신과도 같았던 혈사족 강자들을 벌레 죽이듯 쉽사리 죽였고 그들의 우두머리인 혈마장마저 한주먹에 없앴다.

“너무 힘들어 환각이라도 보는 건가?”

누군가 씁쓸하게 웃으며 중얼거렸다. 그는 눈앞에서 벌어진 일을 도무지 믿을 수가 없었다. 이 세상에 이처럼 강대한 사람이 있다니!

“천신님!”

수려한 소녀는 이글거리는 눈빛으로 목진을 바라보며 외쳤다. 말로만 듣던 천신이 아니고서야 절대 이토록 강할 리 없었다.

설마 천신께서 그들의 절망스러운 상황을 발견하고 구원하러 오셨단 말인가?

“얼른 이곳을 떠나거라.”

목진은 가볍게 웃으며 말을 건넨 뒤 바로 사라졌다. 그 모습에 원주민들은 순간 당황했지만 이내 그가 사라진 곳을 향해 큰절을 올렸다.

그들은 한참 지나서야 다시 자리에서 일어나 잽싸게 도성을 떠났다. 곧 다른 혈사족 강자들이 몰려올 거라 지금 떠나지 않으면 다시 녀석들한테 잡힐 것이다.

목진은 그들이 떠난 것을 확인하고 나서야 다시 허공에 모습을 드러냈다.

“일전에 말한 여왕은 누구란 말인가? 여왕이란 사람은 혈사족에 대해 잘 안다고 들은 것 같은데…….”

“혈사족이 점령한 세계에서 몰래 세력을 구성해 반항을 도모하고 있단 말인가?”

“그런데 저들의 힘만으로는 혈사족의 상대가 안 될 텐데…….”

“일단 몰래 따라가 봐야겠군.”

겁에 질린 사람들은 악마들이 쫓아올까 봐 뒤쪽을 힐끗거리며 산맥을 건너 어딘가로 향했다.

그들은 목진이 구해 준 원주민들로 도성에서 빠져나온 뒤, 다시 잡힐까 봐 미친 듯이 도망갔다.

하여 누군가 무리에서 떨어져도 멈추지 않고 계속해서 앞으로 나아갔다.

한편, 목진은 영력을 거둔 채 몰래 숨어 위쪽 하늘에서 그들을 살폈다.

녀석들은 어디로 가야 안전한지 아는 것처럼 거침없었고 명확한 목적지가 있는 것 같았다.

“저들이 언급했던 여왕이 있는 곳인가?”

목진은 어리둥절해졌다. 원주민의 힘이 그 정도로 강대하단 말인가?

그런데 목진은 그럴 가능성은 없을 거라 여겼다. 그러지 않고서야 혈사족이 장악한 곳에서 어찌 무리를 지은 채 생활할 수 있단 말인가?

그는 모습을 드러내지 않고 몰래 사람들을 따라가 여왕이란 사람을 찾을 생각이었다.

그는 상대방의 정체를 제대로 알아내기 전까지 그들을 상대할 생각이 없었다. 홀로 혈사족의 땅에 들어왔으니 신중해야만 했다.

생각을 마친 목진은 다시 고개를 숙여 사람들을 살폈다.

그렇게 이틀이 지나자 사람들은 드디어 속도를 줄였다. 목진은 저 멀리 앞쪽을 바라보다 커다란 도성이 나타난 것을 발견하고 흠칫 놀랐다. 도성 내부는 제법 떠들썩했고 성벽은 상당히 높아 멀리서 보면 아주 크고 강대한 도성 같았다.

대충 보아도 그 속에서 생활하는 원주민이 적어도 수억 명은 될 것 같았다.

혈사족은 왜 이렇게 많은 원주민을 살려둔 걸까?

목진은 이리 생각하며 사람들을 따라 도성으로 향했다.

“어디서 왔느냐?”

그때 수백 명이나 되는 수비들이 나서 사람들의 앞길을 막았다.

“우리는 철혈성(鐵血城)에서 왔습니다.”

일전에 목진이 구해줬던 소녀가 나서 큰 소리로 말했다.

“철혈성이라…….”

수비들은 흠칫 놀라 물었다.

“그곳에는 혈마장이 있는데 어찌 도망쳐 나왔단 말이냐?”

“천신님께서 나타나 철혈성의 혈사족 강자를 전부 죽이셨고 혈마장까지 단번에 죽이셨습니다!”

소녀의 말에 수비들은 두 눈이 휘둥그레져 버럭 소리를 질렀다.

“말도 안 되는 소리!”

혈사족을 누구보다 잘 아는 수비들은 녀석들의 무서운 힘은 절대 막아낼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여겼고 혈마장은 훨씬 무서운 존재라 확신했다. 그런데 누군가 그들을 단번에 죽였다니, 이보다 우스울 수는 없었다!

그런데 원주민들도 나서서 사실이라며 증언하자 수비들은 깜짝 놀랐다.

“대장, 저들의 말이 정녕 사실일까요?”

수비 한 명이 대장한테 속삭였다.

정녕 사실이란 말인가?

대장은 미간을 한껏 찌푸린 채 생각했다. 그는 이 일이 당최 믿기지 않았지만 많은 사람이 동시에 증언해 무시할 수 없었다.

“만약 이 일이 사실이라면 즉시 여왕님한테 알려야 한다.”

대장은 눈가를 파르르 떨며 잠시 고민하더니 손을 휙 휘두르며 말을 이어갔다.

“이들을 들여보내거라.”

대장은 소녀한테 따로 말을 건넸다.

“너는 나를 따르거라. 이 일은 네가 직접 여왕님한테 알려 드리거라!”

말을 마친 대장이 뒤돌아서자 성문이 서서히 열렸고 도성 밖에 서 있던 사람들은 그제야 안심한 듯 환호했다.

* * *

수비대장이 도성의 중심에 있는 웅장한 궁전에 들어가 이 사실을 알리자 급히 종소리가 울려 퍼졌고 도성의 고위층 간부들이 신속하게 모였다.

목진은 몰래 숨어 대전을 쓰윽 훑더니 흠칫 놀랐다. 그는 대전에 모인 사람들한테서 범상치 않은 힘의 파동을 느꼈다. 이는 당연히 원주민들과 비교한 것이었다.

일부는 확실히 실력이 막강해 보였는데 이 정도면 혈마장 정도는 될 것 같았다. 대천세계의 정예급 상위 지지존과 비슷했다.

그런데 그들을 자세히 살펴보던 목진은 녀석들의 체내에서 음산한 기운을 느꼈는데, 바로 혈사족의 기운이었다.

“체내에 혈사족의 힘이 깃들어 있는 건가?”

목진은 미간을 살짝 찌푸린 채 중얼거렸다. 해당 도성은 독립된 것 같지만 여전히 혈사족의 감시를 받고 있었다.

“여왕님을 뵙습니다!”

대전에 소리가 쩌렁쩌렁 울려 퍼지더니 다들 한쪽 무릎을 꿇고 인사를 올렸고 하얀색 치마를 입은 여인이 서서히 모습을 드러냈다. 목진은 여왕이 아리따운 여자아이인 것을 보고 흠칫 놀랐다.

새하얀 피부에 영롱한 몸매는 하얀색 치마로 적당하게 가려졌고 위엄 있는 눈으로 주위를 쓰윽 훑자 자연스레 위압감을 형성했다.

그런데 목진은 그녀의 나이와 미모에 놀란 것이 아니라 그녀가 내뿜는 힘의 파동에 놀랐다. 소녀의 실력은 혈마장 못지않았다.

“저 아이의 체내에는 혈사족의 음산한 기운이 깃들지 않았군. 그럼 스스로 저 정도의 실력을 갖췄단 말인가? 그런데 체내의 힘이 하나로 아우러지지 않은 것을 보면 일부는 외력인 것 같군.”

목진은 이내 감탄했다. 하위면에서 여자아이 정도의 실력을 갖추는 것은 엄청난 운과 천부적 재능이 필요한 일이었다.

아마 여자아이는 하위면 원주민 중 실력 최강자일 것이다.

어디서든 한 종족이 멸망의 위기에 닥치면 실력이 뛰어난 누군가가 나타나 동족을 구원해주곤 하는 건 똑같군.

그때 하얀색 치마를 입은 소녀가 자리에 앉아 자신을 향해 무릎을 꿇은 소녀를 바라보며 물었다.

“철혈성에서 벌어진 일을 나한테 자세히 말해줄 수 있느냐?”

이에 소녀는 흥분된 마음을 간신히 가라앉히며 하얀색 치마를 입은 소녀를 바라봤다. 혈사족의 땅이 된 이곳에서 그녀만이 발 벗고 나서서 비로소 해당 도성을 지켜냈다.

절망스러운 시기에 다들 그녀를 최후의 구세주라 여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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