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77화. 모조리 없애다
목진은 며칠 동안 도성에서 수련하며 최강의 전투력을 발휘할 수 있도록 상태를 회복하는 데 전력을 다했다. 백소소도 도성에서 일어난 일이 새어나가지 않도록 애를 썼고 외부에서 순찰하고 있는 대량의 인원을 동원해 두 명의 혈마왕에 관한 정보를 알아내느라 여념이 없었다.
끝내 백소소는 목진과 약속한 일을 해냈다.
한편, 수련실에서 두 눈을 꼭 감고 수련하고 있던 목진이 눈을 번쩍 뜨더니 바로 밖으로 나왔다. 그는 조용히 서서 기다리고 있던 백소소한테 다가갔다.
“정보를 입수했어요.”
백소소의 말에 목진은 몰래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시간이 얼마 없어 정보를 애타게 기다렸지만 민심이 흔들릴까 봐 다그치지 못했다.
“혈마왕 한 명이 서북 구역에 있는 천원성에 있다고 해요. 녀석이 천원성에 반나절 정도 머문다고 들었어요.”
“타격이 컸나?”
목진의 질문에 백소소는 흠칫하더니 입술을 살짝 깨물며 답했다.
“일부 발견된 사람들은 전부 죽었어요.”
목진은 순간 말문이 막혔다. 백소소는 대수롭지 않게 말했지만 목진은 천원성 때문에 얼마나 많은 이들이 목숨을 잃었는지 잘 알고 있었다.
“내 당장 천원성으로 가겠네.”
“저도 함께 갈 수 있을까요?”
백소소는 목진을 뚫어져라 쳐다보며 말을 이어갔다.
“만약 녀석을 죽이는 데 성공하면 바로 새로운 정보를 수집해 두 번째 혈마왕의 위치를 찾을 수 있어요.”
“대신 실패하면…….”
백소소는 생긋 웃으며 말했다.
“죽는 것밖에 더 있겠어요?”
목진은 잠시 고민하더니 묵묵히 고개를 끄덕였다. 백소소가 함께 가면 두 번째 혈마왕에 관한 정보를 가지러 다시 도성에 돌아올 필요가 없었다.
이에 백소소는 활짝 웃으며 목진의 앞에 섰는데 치마에 가려진 아름다운 몸매가 적당히 드러나 매혹적이었다.
“그럼 잘 부탁드려요!”
목진은 잠시 고민하더니 백소소의 가녀린 허리를 잡고 하늘 높이 날아올랐다.
* * *
천원상 밖의 한 산봉우리에 도착하자 목진은 품에 안긴 여인을 풀어주었다. 백소소는 부끄러워 얼굴이 빨갛게 달아오른 채 뒤로 물러났다.
“역시나 극강의 파동이 느껴지는군. 이건 분명 혈마왕일 것이네.”
목진이 저 멀리 있는 한 도성을 바라보며 말했다. 백소소도 주먹을 꽉 쥐고 고개를 돌렸는데 그곳에서는 수많은 이들이 죽어 피비린내가 진동했다.
“바로 가서 혈마왕을 산속으로 끌어들일 것이니 자네는 내가 돌아올 때까지 여기 숨어있게.”
목진의 말에 백소소는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목진은 바로 저 멀리 허공에서 다시 모습을 드러내더니 체내의 영력을 끌어올렸는데 순간 강력한 영력 파동이 치솟았다.
그때 도성의 깊숙한 곳의 대전에서 선홍색 도포를 입은 중년 사내가 온몸을 파르르 떨고 있는 여인들의 피를 흡입하려다 흠칫하더니 바로 여인들을 내팽개치고 목진한테 달려갔다.
멀리서 한 갈래 빛줄기가 깊숙한 산속으로 향했다.
“이것들이 겁도 없이 감히 나를 몰래 훔쳐보다니!”
중년 사내가 씨익 웃자 발에서 혈광을 내뿜더니 바로 하늘을 가르며 빛줄기로 향했다.
백소소는 멀리 떨어진 산봉우리에서 산속 깊숙한 곳에 들어간 두 사람을 보고는 깊게 숨을 들이켜며 자리를 잡고 앉았다.
그녀는 몰래 따라가 지켜볼 생각은 하지도 않았다. 그녀도 최대한 빨리 대결 결과를 알고 싶었지만 목진한테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아 바로 그 생각을 접었다.
더구나 목진이 혈마왕과의 대결에서 패배하면 그들의 희망은 산산이 부서질 것이고 백소소는 혈사족한테 잡혀 죽기보다 못한 삶을 살아가게 될 것이다. 그러기 전에 그녀는 이곳에서 자폭하는 것을 택하기로 했다.
이러한 생각에 그녀는 오히려 마음이 진정되어 가볍게 웃고는 두 팔을 벌려 느긋하게 기지개를 켜고 자리에 누워 하늘을 지그시 바라봤다.
한때, 이곳의 하늘은 상당히 맑았고 역겨운 피비린내도 나지 않았었는데…….
그녀는 옛날이 너무 그리웠다.
백소소는 미소를 지으며 서서히 눈을 감았다.
눈을 감은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 그녀는 무언가를 발견하고 눈을 번쩍 떴다. 눈앞에는 늘씬한 청년이 미소를 지으며 서 있었는데 수중에 엄청난 혈기를 내뿜는 선홍색 광구를 쥐고 있었다.
“천신님, 자꾸 이러시면 정말 당신을 사랑하게 될 것 같아요.”
백소소는 생긋 웃었지만 눈가는 어느새 촉촉해졌다.
* * *
커다란 호수는 은어가 요동치듯 영롱한 빛을 발했고 목진은 영광으로 두 사람의 기운을 모두 감춘 채 백소소와 함께 그 위에 서 있었다.
“최신 정보에 따르면 두 번째 혈마왕은 순찰할 때, 반드시 이곳을 지나간다고 해요. 혈마산에 가는 거라고 하니 반드시 여기서 죽여야 해요.”
백소소가 서남쪽을 바라보며 작은 목소리로 말했고 목진은 미간을 살짝 찌푸렸다.
“저들이 설마 발견한 건가?”
이에 백소소는 잠시 생각하더니 이내 정색하며 답했다.
“두 번째 혈마왕은 여러 곳을 다니며 순찰하기 때문에 정보를 보다 빨리 접할 가능성이 있어요. 하지만 소문만 들었을 뿐, 확실한 증거가 없으니 혈마산에 있는 나머지 세 혈마왕과 의논해 보려고 찾아가는 게 분명해요.”
“그럼 절대 이대로 보내면 안 되겠군.”
목진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녀석이 혈마산에 가면 저들은 어느 정도 준비를 하고 목진을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그의 말에 백소소는 가볍게 고개를 끄덕이더니 조용히 서 있었는데 눈을 꼭 감고 있던 목진이 눈을 번쩍 뜨며 서남쪽을 바라봤다.
“왔네.”
잇따라 서남쪽에서 갑자기 혈운이 휘몰아치더니 몸이 쇠사슬로 묶인 거대한 영수들이 커다란 행궁을 이끌고 전진했고 그 주위에 혈사족 강자 수비도 제법 있었다. 이는 상당히 호화로운 전장이었다.
녀석들은 목진 등을 향해 직진했는데 그들의 존재를 발견하지 못했는지 속도를 줄이지 않았다.
목진은 커다란 행궁이 머리 위에 닿았을 때, 웅장한 영력 빛기둥으로 행궁을 공격했다.
쿵!
커다란 행궁은 순식간에 폭발했고 영력이 휘몰아치며 일부 혈사족 강사들은 즉사했다. 주위는 아수라장이 되었다.
“누가 감히 내 앞길을 막는 건가!”
그때 마력이 깃든 목소리가 울려 퍼지자 떠들썩했던 혈사족 강자들이 바로 조용해졌다.
“여인이었다니!”
목진은 미간을 살짝 찌푸렸다. 그는 두 번째 혈마왕이 여인일 줄 몰랐다.
그때 폭발한 행궁에서 한 여인이 걸어 나왔는데 치마 사이로 어렴풋이 보이는 속살에 다들 심장이 쿵쾅거렸다.
그들은 다들 황급히 고개를 숙이고 경외의 뜻을 전했다.
한편, 요염한 혈마 여왕은 살기 가득한 눈빛으로 주위를 쓰윽 훑더니 아래쪽 거대한 호수로 눈길을 돌렸다.
“저 여인은 나한테 맡기고 나머지는 네가 알아서 처리하거라. 한 놈도 도망가게 해서는 안 된다.”
목진은 혈마 여왕이 자신을 발견한 것을 바로 알아채고 영광을 거둔 뒤, 백소소한테 말을 건넸다.
백소소도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의 실력은 혈마장보다 훨씬 강력했다. 더구나 목진은 일전에 이미 혈마장을 전부 죽여 그녀의 임무는 그리 어려운 것이 아니었다.
말을 마친 목진은 서서히 혈마 여왕한테 다가갔다.
“참으로 훤칠한 사내로군. 설마 이 누이와 하룻밤을 함께 보내려고 내 앞길을 막은 것이냐?”
혈마 여왕은 생긋 웃으며 목진을 바라보더니 치마를 쓰윽 거둬 속살을 비췄다.
그러나 목진은 스님처럼 무덤덤하게 서 있기만 했다. 혈마 여왕은 표정이 점차 굳더니 다시 살기를 품었다.
“혈수왕(血手王)과 혈명왕(血冥王)이 갑자기 연락이 안 되던데 혹시 네가 한 짓이냐?”
“역시나 발견했군.”
목진은 흠칫 놀라며 상대방을 바라봤다.
“그들과는 계속 연락하며 지냈는데 며칠 전부터 갑자기 연락이 끊겨 이상하다고 생각했어. 그런데 그 상대가 대천세계 사람일 줄은 몰랐군.”
혈마 여왕은 목진의 강력한 영력에서 그의 출신을 바로 알아챘다.
“여인을 속이는 건 역시 어렵군.”
목진이 피식 웃으며 말했다. 혈마 여왕은 한기 어린 눈빛으로 그를 노려보더니 혈기를 내뿜으며 무서운 위압감을 형성했다.
다들 대전이 폭발할 거라 여겼던 그때, 혈마 여왕은 갑자기 한 갈래 혈광이 되어 엄청난 속도로 도망갔다.
혈사족 강자들은 갑작스러운 변고에 순간 두 눈이 휘둥그레졌고 목진도 멈칫하더니 씨익 웃으며 말했다.
“역시 여인들은 사람을 잘 속인다니까.”
목진이 혈마왕을 두 명이나 쓰러뜨렸단 말은 극강의 수단이 있다는 뜻이었다. 홀로 상대하면 승산이 크지 않을 거라 여긴 혈마 여왕은 곧바로 도망간 것이다.
그녀는 목진의 정체를 알아챈 처음부터 싸울 생각이 전혀 없었고 적당한 기회를 틈타 도망가려 했다.
혈마산에 돌아가 나머지 세 명의 혈마왕과 뭉쳐야지만 그나마 목진을 상대할 수 있을 것이다.
“내가 여기서 자네를 얼마나 오래 기다렸는데 이대로 놓칠 리가?”
이곳에서 오랜 시간 혈마왕을 기다린 목진은 절대 혈마 여왕을 놓칠 수 없었다. 그는 미소를 지으며 한 갈래 빛줄기가 되어 공간을 가르며 날아갔다.
두 갈래 빛줄기가 빠르게 하늘을 가르며 날아가더니 순식간에 천 리 밖에 나타났다. 그러자 주위의 공간이 계속해서 일그러졌다.
그런데 혈마 여왕은 아무리 애를 써도 절대 목진을 떨쳐내지 못했고 거리는 계속 좁혀지기만 했다.
“젠장, 왜 이렇게 떨쳐내기가 힘든 거야!”
혈마 여왕은 얼굴이 하얗게 질린 채 이를 갈며 외쳤다. 이따위 하위면에 갑자기 대천세계의 강자가 나타날 줄이야.
쿵!
그런데 그때, 위쪽 공간이 파르르 떨리더니 커다란 수정탑이 내려앉았고 혈마 여왕은 꼼짝없이 수정탑에 갇혔다.
반 시진 후, 공간이 파르르 떨리더니 조용히 떠 있던 수정탑이 한 갈래 빛줄기를 내뿜었는데 이는 다름 아닌 목진이었다.
그는 선홍색 광구 하나를 쥐고 있었는데 요염했던 혈마 여왕의 얼굴은 어느새 잔뜩 겁에 질려있었다.
“나리, 살려만 주신다면 평생 당신의 노예가 되겠습니다!”
혈마 여왕은 유혹과 애원의 뜻을 가득 담아 말을 전했다. 그녀는 최후의 발악을 하고 있었다.
“자네 같은 존재는 곁에 두는 게 아니네.”
목진은 가볍게 웃더니 선홍색 광구를 부도탑에 넣었다. 그는 언젠가 기회가 되면 혈마왕들을 완전히 죽일 계획이었다.
목진은 드디어 조금 긴장을 풀었다. 모든 건 그의 계획대로 되어가고 있었다.
이제 하위면에 남아 있는 혈마왕 세 명만 없애면 임무가 완성된다. 그러면 백룡지존이 말했던 엄청난 보상을 받을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혈마왕 세 명을 봉인하기 위해 벌써 지존영액을 3억 방울이나 사용했다니…….”
목진은 왠지 마음이 아팠다. 그는 목부의 지존영액을 탈탈 털어서 가져왔는데 만다라는 이해한다고 했지만 안색이 썩 좋지 않았다. 목부 사람들도 지존영액을 사용해야 하는데 목진 때문에 다들 허리띠를 졸라매고 생활해야만 하기 때문이었다.
“이번 기회에 꼭 천지존경에 이르기를! 안 그럼 이번 투자는 대실패야.”
목진은 씁쓸하게 고개를 흔들고는 돌아서서 커다란 호수로 향했다. 호숫물은 어느새 빨갛게 물들어 있었고 수면 위에는 시체들이 둥둥 떠 있었다. 그리고 백소소는 음산한 기운을 내뿜은 채 수면 위에 서 있었다.
목진을 발견한 그녀는 바로 생긋 웃으며 말을 건넸다.
“승리를 다시 한번 축하드려요.”
목진이 가볍게 웃으며 백소소한테 다가가 그녀의 어깨에 손을 대고 영력을 주입했다. 그러자 새하얀 피부에 선홍색 반점이 나타나더니 조금씩 사라졌다.
이와 동시에, 그녀가 내뿜던 음산한 기운도 함께 사라졌다.
“혈독이라니…….”
백소소는 안색이 확 어두워졌다. 그녀는 언제 체내에 혈독이 깃들었는지조차 몰랐다.
“자네의 실력은 제법이긴 하지만 기반이 단단하지 않으니 주의하게. 그렇지 않으면 앞으로의 수련에 해가 될 것이네.”
“네!”
목진이 말에 백소소는 고분고분 답했다.
“혈마산에 있는 세 혈마왕도 모든 걸 알게 될 테니 곧 치열한 싸움이 벌어지겠군.”
목진은 고개를 끄덕이더니 묵묵히 동쪽을 바라보다가 다시 입을 열었다.
그는 앞으로 곧 천지존경에 이를 강대한 적을 동시에 세 명이나 상대해야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