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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주재-878화 (877/1,000)

878화. 곧 일어날 대전

하위면의 어딘가에 웅장한 산맥이 우뚝 솟아있었는데, 구름마저 뚫고 오른 산맥은 이 세계에서 가장 높은 산이었다.

이곳은 이 세상의 성산이었지만 지금은 선홍색으로 물들었고 그윽한 피비린내에 하늘마저 암홍색으로 변한 듯했다.

또한, 거대한 산맥에 흐르는 시냇물마저 선혈처럼 빨간색을 띤 것이 꼭 혈마 수라들의 집거지 같았다.

그 외, 거대한 산맥에서 수많은 혈광이 번쩍였고 가장 깊숙한 곳에는 혈기가 가득한 깊은 못이 있었다. 연못 앞에는 세 사람이 뒷짐을 쥐고 서 있었는데 혈기가 요동치자 공간이 부단히 떨렸다.

빨간색 도포를 입은 이들 중 우두머리는 피부가 유난히 하얀 사내로 미간에 빨간색 세로무늬가 있었는데 그 속에서 무서운 살기가 느껴졌다.

나머지 두 사람 역시 표독스럽게 생겼고 눈에서 무한의 사악한 기운을 방출했다.

“누군가 혈사족을 공격하고 있는 것이 분명하네. 혈명왕 등은 아마 녀석한테 잡혔을 것이네.”

미간에 빨간색 세로무늬가 있는 사내가 돌아서서 말을 건네자 다른 두 혈마왕의 안색이 순간 어두워졌다. 그들도 어느 정도 짐작하고 있었지만 직접 들으니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그들은 해당 하위면의 패주로 오래도록 살아왔고 이곳의 강자들은 그들의 상대가 되지 않는데 어찌하여 갑자기 강자가 나타났단 말인가?

“대천세계 사람일 것이다.”

피부가 새하얀 혈마왕이 음산한 눈빛을 하고 말했다.

“젠장!”

나머지 혈마왕들은 입가를 파르르 떨며 욕설을 퍼부었다. 만약 그들의 상대가 정말 대천세계의 강자라면 상황이 썩 좋지 않았다. 대천세계는 해당 하위면과는 완전히 달랐고 대천세계의 강자는 호락호락하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상대방은 천지존은 아닐 것이고 기껏해야 우리와 실력이 비슷할 것이다.”

피부가 새하얀 혈마왕이 미간을 찌푸리며 말을 이어갔다.

“녀석은 아마 혈명왕 등을 홀로 상대했을 것이다. 녀석이 만약 천지존이라면 그럴 필요가 없었겠지.”

이에 두 혈마왕은 조금이나마 안심이 되었다. 대천세계의 천지존만 아니면 이들은 두려울 것 하나 없었다. 그들 셋이 힘을 합치면 상대방도 감히 함부로 덤비지는 못할 것이다.

“그럼 인제 어떡하면 좋을까요?”

두 혈마왕의 질문에 우두머리는 미간을 살짝 찌푸리며 잠시 고민하더니 서서히 입을 열었다.

“혈사족의 강자들에게 모두 혈마산으로 모이라고 하거라.”

“형님, 그럼 우리가 빼앗은 도성들은 어떡한단 말입니까?”

다른 두 혈마왕이 흠칫 놀라 물었다.

“아직 뭐가 더 중요한지 잘 모르겠느냐? 우리가 패배하면 도성들이 무슨 소용이 있단 말이냐?”

“녀석이 그렇게나 강하단 말인가요?”

우두머리가 무덤덤하게 한 말에 나머지 두 사람은 흠칫 놀랐다.

“녀석의 실력이 어떻든 우리는 최악의 상황에까지 대비해야 한다. 우리의 최종 목적이 무엇인지를 부디 기억하거라.”

우두머리는 고개를 숙인 채 앞쪽에 있는 깊숙한 못을 바라봤는데 그곳은 이미 혈해가 되었고 그윽하기 그지없는 혈기는 곧 실체를 이룰 것 같았다.

그곳에는 커다란 빨간색 알이 떠 있었는데 표면에 새겨진 일그러진 무늬에서 엄청난 살기가 느껴졌다. 거대한 알은 무언가를 품고 있는 것 같았다.

세 명의 마왕은 이글거리는 눈빛으로 거대한 빨간색 알을 바라봤다.

“우리는 이 하위면을 어렵게 차지했고 다른 종족 몰래 이곳의 생명의 피로 진정한 황을 만들어냈으니 저분이 일단 태어나면 혈사족에도 마제급 강자가 생길 거란다!”

“그때가 되면 우리 혈사족도 역외사족에서 지위가 높아질 거고 더는 전처럼 앞잡이 인생을 살지 않아도 될 것이다!”

“우리의 계획이 지금 가장 중요한 시기에 이르렀으니 절대 실수가 생기면 안 된다!”

우두머리는 이내 정색하며 말을 이어갔다.

“그렇다고 너무 걱정할 필요도 없단다. 난 만일에 대비하는 것뿐이란다. 녀석이 몰래 혈명왕 등을 습격한 걸 보면 기껏해야 저들보다 실력이 조금 뛰어난 것 같으니 감히 혈마산에 오르지는 못할 것이다.”

나머지 두 혈마왕도 동의하듯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혈마산에는 혈마왕이 세 명이나 있으니 대천세계에서 온 강자가 천지존이 아니라면 산에 올라와도 결국 죽게 될 것이다.

이에 그들은 일단 혈사족의 황이 태어날 때까지 녀석을 가만두기로 했다.

* * *

그 시각, 황원의 한 고봉에 서 있던 목진과 백소소는 먼 곳 도성을 바라보더니 미간을 찌푸리며 말했다.

“녀석들이 계속해서 도성을 버리고 떠나고 있군.”

“전부 혈마산으로 모이고 있어요.”

백소소도 이내 정색하며 말했다.

“세 명의 혈마왕들이 눈치를 챈 모양이에요.”

목진은 크게 놀라지 않은 듯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혈마왕 세 명이 동시에 실종된 일은 절대 보통 일이 아니었다. 녀석들이 바보가 아닌 이상 분명 이상한 낌새를 눈치챘을 것이다.

“그들은 위협감을 느끼고 모든 강자를 혈마산에 끌어모으고 있는 것 같아요.”

“천신님, 인제 어떡할까요?”

혈마산은 혈사족의 강자로 가득했고 3대 혈마왕은 목진이 오기만 기다리고 있었다. 지금 무턱대고 가면 엄청난 대전이 벌어질 것이다.

“어떡하긴, 찾아가는 수밖에…….”

목진은 여전히 대수롭지 않게 말했다.

그는 꼭 절세의 흉지에 가는 것이 아니라 놀러 가는 것처럼 보였다.

백소소는 목진의 말에 피가 끓어오른 듯 입을 가리며 생긋 웃었다.

“천신님께서 그리 자신만만하시다니 저도 기꺼이 함께 가겠습니다.”

이에 목진은 가볍게 웃더니 흠칫 놀라 저 멀리 뒤쪽을 바라봤는데 수많은 기운이 들끓는 홍류를 이뤄 빠르게 그들에게 접근했다.

목진은 홍류를 살피고는 깜짝 놀랐다. 그들은 혈사족이 아닌 원주민들이었다. 보아하니 해당 하위면의 모든 원주민 수련자가 모인 것 같았다.

“천신님, 이번 대결은 우리의 생사와도 연관된 일이니 천신님은 혈마왕들을 상대하시고 나머지는 신경 쓰지 마세요.”

목진이 바라보자 백소소가 입을 가리고 웃었다.

“나머지는 저희가 없앨게요.”

“정말 마음대로군.”

목진은 미간을 찌푸리며 말했다.

혈사족에는 실력을 제법 갖춘 강자가 수두룩해 목숨을 걸고 덤벼야 한다.

“천신님께서는 우리가 혈사족을 얼마나 미워하는지 모르실 거예요. 오늘 저들과 싸우다 전멸한다고 해도 절대 후회하지 않아요.”

백소소는 확신에 찬 목소리로 말을 이어갔다.

“그러니 부디 우리도 함께 가게 해주세요.”

말을 마친 백소소가 공손하게 무릎을 꿇자 수많은 원주민도 한쪽 무릎을 꿇고 외쳤다.

“허락해 주세요!”

놀라운 광경에 목진은 잠시 고민이 되었다. 원주민들한테서 혈사족에 대한 한이 절실하게 느껴졌기 때문이었다. 그들은 당장 죽더라도 녀석들과 싸우고 싶어 했다.

만약 목진이 반대한다고 해도 분명 몰래 따라올 것이다.

“상대방이 움직이기 전까지 절대 함부로 움직이지 말게. 내가 혈마왕들을 없애면 혈사족은 자연스레 와해될 테니.”

목진은 가볍게 한숨을 쉬며 말했다.

백룡지존의 집념을 소환했는데 사람들이 전부 죽는다면 슬픔에 잠겨 약속을 지키지 않을 수도 있었다. 목진은 만일을 대비해 최대한 원주민들을 살려 두기로 했다.

“명 받들겠습니다!”

사람들은 공손하게 외치더니 경외의 뜻이 깃든 눈빛으로 목진을 바라봤다.

이에 목진은 백소소를 향해 가볍게 고개를 끄덕이고는 한 갈래 빛줄기가 되어 떠났고 호호탕탕한 홍류가 대지를 흔들며 뒤따랐다.

며칠 뒤, 천지에 휘몰아치던 홍류의 속도가 드디어 늦춰졌으니…….

다시 모습을 드러낸 목진은 뒷짐을 쥔 채 허공에 서서 저 멀리 대지에 우뚝 솟아오른 산맥을 지그시 쳐다봤다.

거대한 산맥은 구름을 뚫고 하늘 높이 솟아오른 채 이곳 천지를 지키고 있었다. 피비린내가 가득한 산에는 수많은 혈사족 강자들이 혈기를 내뿜으며 대기하고 있었다.

백소소도 목진의 옆에 서서 한때는 성산이었던 곳을 바라보고는 눈가가 촉촉해졌다.

그런데 그때 거대한 산맥에서 갑자기 세 갈래 혈광이 솟구치더니 도천의 혈기를 내뿜는 세 개의 선홍색 마영이 만들어졌다. 이와 동시에, 살기로 가득 찬 음산한 목소리가 주위에 쩌렁쩌렁 울려 퍼졌다.

“멍청한 녀석, 감히 혈마산에 찾아오다니. 저승길을 자초하는구나!”

“그리 죽고 싶으면 원하는 대로 해줘야지!”

피비린내가 진동하는 혈마산 앞에 세 혈영이 사악한 기운을 내뿜으며 서 있었다. 멀리서 보면 꼭 악마의 신처럼 보였다.

뒤에 서 있는 원주민들은 혈사족에서 실력이 가장 강한 세 명의 혈마왕들의 출현에 두려워 온몸을 파르르 떨었다.

그들 손에 죽은 원주민 중 정예급 강자들이 수도 없이 많았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그때, 앞쪽에 서 있던 목진이 옷깃을 휘날리자 영광이 요동치며 반쪽 하늘을 차지하더니 녀석들의 사악한 기운을 모조리 막아냈다.

백소소 등은 그제야 안심을 했고 긴장을 풀더니 경외의 눈빛으로 목진을 바라봤다.

“지지존 대원만 주제에 감히 여기 와서 우쭐거리다니, 겁도 없구나!”

혈마왕 중 우두머리인 대혈마왕이 음산한 눈빛으로 목진을 노려보며 말했다.

대혈마왕은 목진이 내뿜는 영력 파동에서 그의 실력을 파악하고 자못 어리둥절해졌다. 지지존 대원만급 강자는 기껏해야 혈마장과 비슷한데 세 명의 혈마왕은 어찌 목진과의 대결에서 패배했단 말인가?

“당신들을 상대하기에는 지지존 대원만 정도면 충분하네.”

“말도 안 되는 소리!”

목진이 피식 웃으며 한 말에 대혈마왕 옆에 서 있던 다른 두 혈마왕이 예리한 눈빛으로 목진을 흘겨보며 입을 열었다.

“형님, 곧 죽을 녀석과 말을 섞을 필요가 있을까요? 우리 함께 저 녀석을 죽이고 원주민들을 못에 넣읍시다.”

녀석들은 사악한 눈빛으로 목진 뒤쪽에 서 있는 원주민들을 바라봤다.

“그럼 함께 나서자꾸나.”

대혈마왕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목진이 지지존 대원만 밖에 안 된다고 비웃었지만 만일에 대비해 세 명이 함께 그를 상대하기로 했다.

쿵!

만 장 정도의 거대한 혈광 세 갈래가 솟구치자 선홍색 광풍이 휘몰아쳤고 피비린내가 진동했다.

세 명의 혈마왕이 동시에 나서자 천지마저 뒤흔들렸다. 백소소도 안색이 어두워지며 주먹을 꽉 쥐었다. 그녀는 목진이 강하다는 것을 알고 있지만 한 명씩 상대했던 혈마왕을 지금은 세 명이나 상대해야 한다는 사실에 걱정이 앞섰다.

그들은 혈마왕들 중에서 실력이 최강자인 자들이었다.

슉!

녀석들이 방출한 세 갈래 만 장의 선홍색 홍류는 더러운 피바다처럼 공간을 가르며 목진에게 향했다.

이에 목진이 옷깃을 휘날리자 영력 광막이 나타나 온몸을 감쌌다.

쿠쿵!

피바다가 영력 광막을 힘껏 때리자 피가 사방으로 튀었고 무서운 힘이 하늘을 찢어버릴 것만 같았다.

세 명의 혈마왕은 씨익 웃으며 상황을 살폈다. 그들이 이룬 피바다는 상당히 치명적이라 영력이 닿으면 빠르게 부식될 것이다.

그러나 녀석들의 표정이 금세 굳었다. 갑자기 수정의 빛이 번쩍이더니 피바다가 빠르게 무너졌기 때문이었다.

녀석들은 순간 눈가가 파르르 떨렸다.

그러다 목진이 서 있던 곳에서 수정의 빛이 광막을 형성하더니 옆쪽 공간이 일그러지며 검은색 도포와 하얀색 도포를 입은 두 사람이 나타났다.

목진과 똑같게 생긴 두 사람은 심지어 목진과 실력도 똑같았다.

“저건 영력 화신이란 말인가? 어찌 실력이 본체와 똑같단 말인가?”

혈마왕 하나가 화들짝 놀라 말했다. 보아하니 녀석도 대천세계의 수단에 대해 어느 정도 알고 있는 것 같았다.

“형님, 인제 어떡할까요?”

“화신의 실제 전투력이 과연 본체와 똑같을까? 본체는 내가 상대할 테니 너희는 두 화신을 없앤 뒤, 합류해 나와 함께 녀석을 처리하자꾸나!”

대혈마왕은 눈가를 파르르 떨며 잠시 고민하더니 씨익 웃으며 말했다.

“네!”

다른 두 혈마왕도 동의하듯 고개를 끄덕였다. 화신을 이루고도 전투력에 전혀 영향을 주지 않는다는 건 아무리 역외사족에서도 보기 드문 수법이었다. 그런데 지지존 대원만 밖에 안 되는 녀석이 무슨 수로 이 엄청난 수단을 장악한단 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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