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80화. 혈황 탄생
그때 혈마산의 깊숙한 곳, 선혈로 가득 찬 깊은 못에 갑자기 혈수가 모이더니 안색이 창백한 누군가가 모습을 드러냈다. 그는 바로 목진이 일전에 죽이려 했던 대혈마왕이었다.
육신이 흐릿해진 것이 크게 다친 듯했다.
“젠장, 이렇게 강력한 수단이 있었다니.”
녀석은 음산하기 그지없는 눈빛으로 외부를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그는 탑에 나타난 여덟 폭의 그림에서 소름 끼칠 정도의 위압감을 느꼈다. 그가 깊은 못에 육신의 반을 남겨두지 않았다면 지금쯤 목진의 손에 죽었을 것이다.
비록 지금도 상황이 썩 좋지는 않고 전투력이 확 줄어들었지만 말이다.
더구나 그가 잠시 전장에서 빠져나와 목진은 나머지 두 혈마왕을 상대할 것이 분명했고 녀석들은 머지않아 패배할 것이다.
혈사족은 더는 우세를 차지하기 어려울 것이다.
대혈마왕은 음산한 눈빛으로 깊은 못에 떠 있는 선홍색 알을 바라봤는데 표면에 사악한 광문이 번쩍이는 것이 꼭 배태가 숨을 쉬고 있는 것 같았다.
“녀석은 너무 괴이해. 오늘, 저 녀석을 죽이려면 우리 종족의 황을 최대한 빨리 일깨우는 수밖에 없겠어.”
대혈마왕은 깊게 숨을 들이켜고는 이를 악물고 소리쳤다.
이에 못 주위에 서 있던 혈사족 강자들은 사정없이 못에 뛰어들었다. 그들의 육신은 혈수에 닿자마자 녹아 들끓는 선혈이 되어 혈수와 아우러졌다.
철퍼덕! 철퍼덕!
수많은 혈사족 강자들이 깊은 못 사방에 피를 튀기며 뒤도 안 돌아보고 뛰어들었다.
수많은 혈사족 강자들이 뛰어들자 사악한 선홍색 알 표면에 새겨진 광문이 밝아지더니 미세한 균열이 일기 시작했다.
혈마산 밖 허공에 조용히 떠 있던 거대한 수정탑이 파르르 떨더니 빠르게 작아졌고 누군가 다시 모습을 드러냈다.
“천신님!”
백소소와 원주민들은 흥분한 나머지 소리를 질렀고 이내 화색이 되었다.
그들은 목진과 대혈마왕의 대결이 이렇게 빨리 끝날 줄 몰랐다.
반면, 혈사족 강자들은 안색이 확 어두워진 채 상황을 살폈다. 그들은 혈사족의 최강자인 대혈마왕마저 목진의 상대가 안 될 줄 몰랐다.
그러나 목진은 이를 무시한 채 혈마산의 깊숙한 곳을 유심히 바라봤다. 더 이상 대혈마왕의 파동이 느껴지지 않았는데 녀석은 일부러 파동을 숨긴 것 같았다.
이에 목진은 기쁘기는커녕, 오히려 불안해졌다.
“일단 나머지 두 혈마왕부터 없애자.”
목진은 눈가를 파르르 떨며 중얼거리고는 바로 나머지 두 혈마왕한테 다가갔다. 대혈마왕이 무슨 꿍꿍이가 있는 지금은 나머지 두 혈마왕을 없애는 것이 중요했다. 그래야 녀석이 다시 모습을 드러냈을 때, 최강의 전투력을 선보일 수 있을 것이다.
목진은 먼저 전의의 바다가 휘몰아치며 전의 홍류가 부단히 솟구치는 전장에 뛰어들어 상대방의 퇴로를 막았다.
두 명의 목진에게 포위된 혈마왕은 안색이 확 어두워졌다.
목진의 본체가 여기 나타났다는 것은 대혈마왕이 대결에서 패배했단 말인데…….
“이럴 리가!”
녀석의 입이 순간 떡 벌어졌다. 대혈마왕은 실력이 이들보다 훨씬 강한데 어찌 지지존 대원만 밖에 안 되는 목진과의 대결에서 졌단 말인가?
목진은 녀석의 반응 따위는 무시한 채 무덤덤하게 손을 휘둘렀고 불후금신이 뒤쪽에 나타나 불후신문을 형성했다.
그는 팔부부도를 더 이상 사용하지 않았다. 나머지 두 혈마왕은 화신과 힘을 합치면 충분히 해결할 수 있었다.
쿠쿵!
역시나 목진의 본체가 등장하자 겨우 버티고 있던 혈마왕은 사정없이 뒤로 물러났다. 녀석이 한 갈래 전의 홍류에 튕겨 나가자 불후금신이 자금색 장창으로 가슴팍을 찔러 육신에서 자금색 빛을 발하며 모든 생기를 앗아갔다.
녀석을 죽인 목진과 검은색 도포를 입은 목진은 빠르게 마지막 전장으로 향했다. 하얀색 도포를 입은 목진은 마지막 혈마왕과 치열하게 싸우고 있었다.
녀석은 목진의 본체와 검은색 도포를 입은 목진이 다가오는 것을 발견하더니 순간 사색이 되었다. 그는 더 이상 대결에서 이길 수 없다는 걸 깨달았다. 하여 녀석은 이를 꽉 깨물었는데 육신이 팽창하다가 순식간에 폭발했다.
쿠쿵!
엄청난 소리와 함께 커다란 빨간색 태양이 떠오른 것처럼 난폭한 혈색 홍류가 휘몰아쳐 이곳 천지를 집어삼킬 것 같았다.
목진은 혈색 홍류가 퍼지기 전에 부도탑을 소환해 무한의 수정의 빛으로 혈색 홍류를 선홍색 결정체로 바꿨다.
하늘에서 선홍색 결정체가 우수수 떨어지고 있는데 한 갈래 선홍색 빛줄기가 혈마산의 깊숙한 곳으로 도망가려는 것을 발견했다.
“어딜 도망가는 건가?”
다행히 목진은 바로 녀석의 앞쪽에 나타나 피식 웃더니 손바닥에 수정의 빛을 모아 녀석을 잡았다.
그는 수정의 빛에 갇힌 혈마왕을 보더니 바로 녀석을 죽이려 했다.
“너무 우쭐거리지는 말게. 혈사족의 황이 탄생하면 당신들은 모두 죽을 수밖에 없네!”
탈주에 실패하자 녀석은 낄낄거리며 말했다. 그러나 목진은 무덤덤한 표정으로 녀석을 죽이고 뒤돌아섰다.
세 명의 혈마왕은 전부 목진과의 대결에서 패배했다.
뒤쪽에서 이를 지켜보던 원주민 강자들은 하늘이 떠나가라 환호했고 일부는 너무 기쁜 나머지 무릎을 꿇고 울기 시작했다. 지금까지 그들은 혈마왕의 손아귀에 숨통이 잡혀 있었고 아무리 발버둥 쳐도 소용이 없었다.
그런데 천신님께서 혈사족의 여섯 명의 혈마왕을 전부 죽여 사람들에게 새로운 희망을 주었다.
“천신님, 혹시 뭐가 잘못되었나요?”
백소소는 목진이 그리 기뻐하지 않는 것을 발견하고 달려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대혈마왕은 죽은 것이 아니라 도망갔네.”
목진은 눈가를 파르르 떨며 웅장하기 그지없는 산맥들을 살폈다. 그는 최대한 빨리 대혈마왕을 찾아내고 싶었다.
백소소도 흠칫 놀라더니 작은 목소리로 말을 건넸다.
“혈마산은 혈사족의 본부가 되었으니 대혈마왕은 분명 혈마산에 있을 겁니다.”
목진도 동의하듯 고개를 끄덕이더니 한기 어린 눈빛으로 혈마산을 바라보다가 부도탑을 소환했다. 이는 눈 깜짝할 사이에 십수만 장 정도로 커져 혈마산의 위쪽에 내려앉았다.
원주민 강자들은 순간 두 눈이 휘둥그레졌고 혈사족 강자들도 어쩔 바를 몰랐다.
흑백 목진도 동시에 결인해 웅장한 영력을 부도탑에 주입하자 수정의 빛이 혈마산 전체를 비췄다. 이에 닿은 혈사족 강자들은 육신이 놀라운 속도로 작아지더니 손바닥 정도의 큰 수정 결정체로 변했다.
쨍그랑.
혈마산에 수정이 떨어지는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는데 그 소리가 상당히 괴상했다.
한편, 혈마산의 깊숙한 곳에 숨어있던 대혈마왕도 거대한 수정탑을 바라보더니 안색이 확 어두워졌다. 그는 수정의 빛이 혈마산을 샅샅이 훑고 있는 것이 느껴졌다. 목진은 곧 그를 발견할 것이다.
“반드시 속도를 끌어 올려야 해.”
대혈마왕은 중얼거리며 깊은 못에 떠 있는 빨간색 알을 바라봤다. 알 표면에 생긴 균열이 점차 많아졌고 무서운 파동이 느껴지기 시작했다.
이에 대혈마왕이 다시 이를 악물고 소리치자 못 주위에 모인 혈사족 강자들이 다시 못에 뛰어들어 빨간색 알에게 힘을 제공해주었다.
목진은 혈마산이 아수라장이 되었는데도 대혈마왕이 나타나지 않자 미간을 살짝 찌푸렸는데 순간 혈마산의 깊숙한 곳에서 그마저 위협감을 느낄 정도의 파동을 읽었다.
쿵!
목진이 이내 정색하며 한 손으로 결인하자 허공에 떠 있던 부도탑에서 만 장 정도의 거대한 수정의 빛기둥이 뿜어져 나와 해당 파동이 느껴진 곳을 공격했다.
목진은 그것이 무엇인지 모르지만 파괴하는 것이 최선의 선택이라고 판단했다.
쿠쿵!
대혈마왕도 고개를 들어 사정없이 내려앉는 빛기둥을 보더니 안색이 확 어두워졌다. 그는 두 손을 있는 힘껏 휘둘렀다.
쏴아아.
그때 깊은 못에서 무한의 혈수가 솟구치더니 커다란 혈막을 이뤄 못 전체를 감쌌다.
쿵!
수정 빛기둥이 닿자 혈막은 미친 듯이 떨렸지만 깊은 못의 힘이 깃들어 끝까지 잘 버텨냈다.
“찾았다.”
혈마산 밖에 서 있던 목진이 바로 부도탑을 움직이자 수많은 수정의 빛기둥이 벼락처럼 똑같은 자리에 떨어졌다.
쿠쿵!
깊은 못의 위쪽 하늘에 난폭하기 그지없는 돌풍이 휘몰아쳤고 대혈마왕은 상대방의 공격에 빠르게 얇아지는 혈막을 보더니 표정이 점차 일그러졌다.
그는 목진이 바로 공격할 줄 몰랐다. 녀석은 분명 이곳에 뭐가 있는지도 모를 텐데 말이다.
이에 대혈마왕은 재빨리 빨간색 알을 바라봤는데 알은 여전히 깨지지 않았다. 이는 꼭 무언가 부족하다고 말하는 것 같았다.
대혈마왕은 잠시 고민하더니 고개를 들고 독한 눈빛으로 혈마산 밖을 바라보며 이를 갈았다.
“네 이놈, 우리 혈사족을 협박하려는 것이냐? 어디 혈황의 첫 번째 먹이가 돼 보거라!”
말을 마친 대혈마왕은 자폭했고, 그의 육신은 선홍색 홍류가 되어 빨간색 알에게 향했다.
이와 동시에, 목진도 무언가를 눈치챈 듯 수정의 빛기둥으로 바로 혈막을 뚫고 놀라운 속도로 공간을 가르며 날아가 대혈마왕이 이룬 혈색 홍류를 공격했다.
쿵!
난폭한 충격파와 함께 깊은 못이 와르르 무너졌다.
그런데 그때, 빨간색 알이 하늘 높이 날아오르더니 혈마산 정상에 멈춰 섰다.
목진은 괴이한 알을 보더니 눈가가 파르르 떨렸다. 그는 상대방한테서 느낀 위협감에 소름이 쫙 끼쳐 바로 부도탑으로 굵직한 수정 홍류를 내뿜어 공격을 개시했다.
그때 알에서 누군가 창백한 손을 뻗어 가볍게 쥐자 수많은 수정 홍류가 전부 부서졌다.
빨간색 알에서 뻗어 나온 창백한 손이 가볍게 주먹을 쥐자 수많은 수정 홍류를 부쉈고 그 엄청난 위력에 다들 순식간에 조용해졌다.
목진도 안색이 어두워져 예리한 눈빛으로 부서진 알을 쳐다봤다. 그는 알이 부서지자 상대방한테서 놀라운 파동을 느꼈다.
쿵!
그때 알에서 거대한 선홍색 빛기둥이 솟구치더니 허공에 떠 있는 수정 부도탑을 공격했는데 양자가 부딪치자 수정 부도탑은 사정없이 튕겨 나갔다.
이에 목진이 수정 부도탑을 거두고 잔뜩 경계하며 선홍색 알을 뚫어져라 쳐다봤다.
알은 점차 빨리 부서지더니 창백한 손이 껍질을 벗어던지고 알몸의 소년이 모습을 드러냈다.
늘씬한 소년의 눈동자는 혈해가 담긴 것 같은 빨간색이었고 하얀색 장발은 바람에 휘날렸다. 그는 상당히 준수하게 생겼지만 내뿜는 파멸의 기운은 혈마산 전체가 떨릴 정도로 강력했다.
녀석이 무덤덤하게 서서 시뻘건 눈으로 주위를 쓰윽 훑자 주위에 수많은 선홍색 광풍이 휘몰아치며 엄청난 압박감을 형성했고 혈운이 모이더니 선홍색 폭우를 내렸다.
원주민들은 백발 소년을 보더니 온몸을 미친 듯이 떨었다. 그들은 소년이 너무 무서워 금방이라도 정신을 잃을 것만 같았다.
백소소도 사색이 되어 백발 소년을 바라봤다. 그녀는 백발 소년의 실력을 전혀 몰랐지만, 왠지 대혈마왕보다 훨씬 강력할 거란 느낌이 들었다.
그녀는 온몸을 파르르 떨었고, 의지가 굳건하지 않았다면 이미 도망쳤을 것이다.
그때 목진이 그녀의 어깨를 가볍게 두드리자 영력 광막이 형성되어 상대방의 무서운 압박감을 전부 막아냈다.
“천신님…….”
백소소는 감격스러운 눈빛으로 목진을 바라봤다. 그리고 그가 누군가를 이토록 경계하며 보는 모습을 처음 보았다.
“혈사족에 마제가 나타나다니…….”
목진은 이내 정색하며 말했다.
그가 제일 걱정했던 일은 벌어졌다. 혈사족에 실력이 천지존이나 다름없는 마제가 나타났으니, 아무리 목진이라도 위협감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
목진은 그 누구보다 마제의 실력에 대해 잘 알고 있었다. 그는 대혈마왕을 대수롭지 않게 여겼지만 진정한 마제를 상대한다면 승산이 그리 크지 않을 것이다.
“일이 번거로워졌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