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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주재-883화 (882/1,000)

883화. 보상의 정체

혈마황은 상당히 강했다. 상대방의 공격에도 전혀 두려워하지 않았고 오히려 우세를 차지하기 시작했다.

“부도 조각상은 곧 천지존경에 이르는 실력을 갖췄을 텐데 이것만으로는 부족해.”

목진은 눈가를 파르르 떨며 중얼거렸다. 팔부부도가 천지존의 힘을 되찾으려면 적어도 지존영액이 20억 방울은 필요했고 목진도 반드시 천지존경에 이르러야 했다. 안 그럼 그는 절대 녀석들이 방출한 살기를 견뎌내지 못할 것이다.

“대신 혈마황을 잠시 가두는 것쯤은 해낼 수 있을 거야.”

목진이 잠시 고민하다가 갑자기 두 손으로 결인하자 혈마황을 둘러쌌던 부도 조각상들이 뒤로 물러나더니 흑광을 발하는 손바닥을 맞대고 능형(*菱形:마름모 형태) 의 검은색 광막을 이뤘다.

잇따라 광막이 빠르게 작아지더니 감옥처럼 혈마황을 가뒀다.

이에 혈마황이 주먹을 휘두르자 능형 광막은 격렬하게 진동했다. 보아하니 녀석은 머지않아 광막을 뚫고 나올 것 같았다.

하여 목진이 옷깃을 휘날리자 수정탑에서 강력한 수정의 빛을 발했는데 이는 능형 광막의 표면에 수정 무늬를 이뤘다. 오래된 무늬가 완전히 형태를 이루자 흔들렸던 능형 광막은 다시 안정을 되찾았고 혈마황이 아무리 강력한 공격을 해도 끄떡없었다.

목진은 드디어 안심했다. 그런데 이것은 시간을 끄는 것밖에 되지 않았다. 팔부부도와 부도탑의 봉인의 힘으로 혈마황을 잠시 가두긴 했지만 녀석은 언젠가 이를 뚫고 나올 것이다.

그때 가면 팔부부도도 큰 타격을 입어 사용할 수 없을 것이다. 그러면 목진은 혈마황을 상대할 강력한 수단 한 가지를 잃는 거나 마찬가지였다.

능형 감옥에 갇힌 혈마황도 이것이 목진의 최후의 수단이라는 것을 눈치채고 히쭉거리며 그를 바라봤다

“그만 포기하게. 당장 내 먹이가 되어주겠다고 하면 고통 없이 죽여주지.”

혈마황의 음산하기 그지없는 목소리를 들은 목진은 대수롭지 않게 웃더니 부도탑에서 나왔다.

한편, 멀리서 상황을 살피던 원주민 강자들은 목진이 혈마산 밖에 나타난 것을 발견하고 이내 화색이 되었다. 그들은 목진이 대결에서 승리한 줄 알았다.

그런데 목진이 이내 정색하며 손을 젓자 다들 불안한 듯 바로 조용해졌다.

“천신님, 혈마황은 어떻게 되었나요?”

백소소가 다가가 부도탑을 바라보며 조심스럽게 묻자 목진은 잠시 침묵을 지키다가 답했다.

“내가 잠시 가뒀네. 그런데 녀석이 일단 구속에서 벗어나면 아무리 나라도 더는 당해내지 못할 것이네.”

백소소는 순간 사색이 되었고 밝게 빛났던 눈은 초점을 잃었다.

“천신님, 안 될 것 같으면 기회를 봐서 이곳을 떠나세요.”

백소소는 입술을 깨물며 한참 서 있다가 작은 목소리로 말을 건넸다. 목진이라면 혈마황의 상대는 안 되더라도 도망갈 수는 있을 것이다.

이에 목진은 미간을 살짝 찌푸리며 묵묵히 서 있었다. 그한테는 아직 무조께서 남겨주신 부적이 있었다. 이러다 정말 궁지에 몰리면 그는 부적을 부술 것이다. 비록 무조가 하위면에 제때 나타날지는 모르지만 말이다.

이는 어느 정도 위험 부담이 있지만 최후의 수단으로 사용할 수 있었다. 그러나 지금은 일단 스스로 혈마황을 쓰러뜨릴 방법을 찾아내야만 했다.

목진은 잠시 고민하다가 무언가 생각난 듯 미간을 찌푸린 채 손을 내밀었는데 백광이 번쩍이더니 백룡 영주가 나타났다.

잇따라 그가 손가락을 튕기자 백룡 영주가 서서히 떠 올랐다.

그는 백룡지존의 집념을 소환하는 수밖에 없었다. 백룡지존만 엄청난 보상이 무엇인지 알고 있기 때문이었다.

만약 목진이 이번 기회에 경지를 돌파해 천지존경에 이르면 혈마황을 상대할 수 있게 될 것이다.

그런데 백광을 발하는 백룡 영주는 조용히 떠 있기만 할 뿐, 아무런 변화도 없었다.

역시나 안 되는 건가?

목진은 실망한 듯 가볍게 한숨을 쉬며 백룡 영주를 거두려 했는데 영주가 갑자기 파르르 떨리기 시작했다.

위잉!

백룡 영주는 한 갈래 백광을 내뿜더니 위쪽에 창로한 그림자를 이뤘다.

백룡 영주에 빛이 모이더니 창로한 그림자를 이뤘다.

하얀색 도포를 입은 노인은 한참 지나서야 꼭 감았던 눈을 서서히 떴는데 앞쪽에 우뚝 솟아오른 웅장한 혈마산을 발견하고는 흠칫 놀라 눈가를 파르르 떨었다.

“성룡산이여!”

중얼거리던 그의 눈에 영광이 번쩍이더니 정신을 차리고 돌아서서 목진을 바라봤다.

“선배님, 오랜만이네요.”

목진은 미소를 지으며 상대방을 바라봤다.

“너였구나…….”

백룡지존은 목진을 멍하니 바라보다가 자신이 사라지기 전, 목진과 만났던 일을 기억해 냈다. 그때는 지존경에도 이르지 못했던 목진이 지금은 실력을 파악하기 어려울 정도로 강대해졌다.

“저한테 부탁하셨던 일을 기억하시나요?”

목진의 질문에 백룡지존은 부들부들 떨며 낯익은 장소를 쓰윽 살폈다.

“이곳이 바로 내 고향이로구나!”

“그럼 역외의 악마들은…….”

그는 갑자기 무언가 생각난 듯 안색이 확 변했다.

“이 세계의 혈마왕은 제가 전부 없앴어요.”

목진이 나지막하게 건넨 말에 백룡지존은 순간 두 눈이 휘둥그레졌다. 혈마왕은 대천세계에서 지지존 대원만급 강자와 다름없었다. 이는 그가 살아있었어도 상대조차 하지 못하는 강한 존재였다. 그런데 젊은 청년이 그런 악마들을 전부 죽였다니!

“조상님, 천신님의 말대로 혈마왕은 전부 죽었습니다!”

그때 누군가의 파르르 떨리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백룡지존이 고개를 돌려 보니 백소소가 눈물을 머금은 채 그를 바라보고 있었다.

“너는…….”

백룡지존은 백소소를 한참 살피더니 조심스럽게 물었다.

“설마 백룡 일맥의 계승자인 것이냐?”

“제자 백소소가 조상님을 뵙습니다!”

백소소는 눈시울을 붉힌 채 공손하게 인사를 올렸다.

“후배가 우리보다 훨씬 강할 줄은 몰랐구나. 우리가 참 무능하긴 했지, 그래서 이 세상을 지켜내지 못한 거란다.”

백룡지존은 쓸쓸하게 웃으며 말했다. 백소소도 자신보다 실력이 강했다.

“조상님, 이건 종족의 모든 선배님이 목숨을 바쳐 이룬 성과지 제가 스스로 이룬 것이 절대 아닙니다. 선배님들도 해결책을 찾으려고 고향을 떠나지 않으셨나요? 덕분에 천신님이 이렇게 왔고요.”

백소소가 황급히 건넨 말에 백룡지존은 멈칫하더니 안색이 조금 어두워졌다.

“그렇구나. 결국 그 방법을 썼구나…… 그래도 부합되는 사람이 있어야 실현 가능한 방법이었으니 너도 절대 평범한 것은 아니란다.”

“지금은 옛 추억을 나누고 있을 때가 아닙니다. 선배님, 제가 이곳에 남은 혈마왕을 전부 없애긴 했지만 더 큰 위험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목진은 가볍게 웃으며 허공에 떠 있는 부도탑을 가리켰다.

“혈마왕들은 죽기 직전에 혈사족 강자들의 정혈로 혈마황을 만들어냈는데 이는 마제급으로 실력이 천지존과 비슷해요.”

백룡지존은 순간 입이 떡 벌어졌다. 대천세계에서 수련한 적 있는 그는 천지존이 얼마나 무서운 존재인지 누구보다 잘 알았다.

그런데 혈사족이 이곳에서 마제를 배양해낼 줄 누가 알았을까?

“이걸 어쩐담? 하느님께서 정녕 이곳의 수많은 생명을 포기하라고 하시는 건가?”

백룡지존은 안색이 확 어두워지며 중얼거렸다.

“그건 선배님께서 저한테 주기로 했던 보상이 무엇인지에 따라 달렸어요.”

목진이 미소를 지으며 한 말에 백룡지존은 흠칫하더니 두 눈을 부릅뜨고 그를 바라봤다.

“벌써 천지존경 이전의 단계에 이르렀단 말이냐?”

“천지존의 길을 찾아 헤매는 중이에요.”

목진은 고개를 끄덕이며 답하더니 이글거리는 눈빛으로 백룡지존을 바라봤다.

“혹시 방법이 있을까요?”

그는 백룡지존께서 주겠다고 하신 보상 때문에 어렵게 이곳에 와서 역외사족의 강자들을 없앤 것이었다. 그는 이곳에서 천지존경에 이를 방법을 찾고 싶었다.

“그럼 방법이 전혀 없는 건 아니구나.”

백룡지존은 잠시 생각하다가 다시 입을 열었다.

“혹시 무조라고 들어봤느냐?”

“무조 선배님을 만나 뵌 적이 있어요.”

목진이 가볍게 고개를 끄덕이자 백룡지존은 흠칫 놀랐다. 무조는 대천세계의 최정예급 강자라 일반인은 물론이고 천지존이 찾아가도 보기 힘든 존재였다. 그런데 목진이 그를 만난 적 있다고 하였으니, 범상치 않은 일들을 겪어온 것이 분명했다.

“그럼 무조도 하위면 출신이란 걸 알고 있겠구나. 그곳도 이곳과 비슷하게 역외사족의 공격 때문에 멸망의 위기에 처했었는데 무조는 스스로 녀석들을 물리쳤단다…….”

백룡지존은 이내 감탄하며 말했다. 아마 무조 같은 존재라야 전설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이에 목진도 묵묵히 고개를 끄덕였다. 대천세계에서 무조가 이룩한 성과를 모르는 사람은 없었다.

“그런데 무조가 아주 중요한 물건 하나 덕분에 역외사족을 물리치는 데 성공했다는 걸 아는 사람은 얼마 안 될 거란다.”

백룡지존은 가볍게 웃으며 말을 이어갔다.

“그 물건은 위면지태(位面之胎)로 위면지령(位面之靈)이라고도 불린단다. 이는 한 위면의 가장 핵심적인 부분으로 자아의식이 없어 일단 장악하면 한 위면의 힘을 사용할 수 있단다.”

“그런데 모든 하위면에 위면지태가 있는 건 아니란다. 위면지태도 여러 가지 조건에 부합해야 형성될 수 있는데 극소수에만 위면지태가 있단다.”

백룡지존은 이곳 천지를 가리키며 말했다.

“마침 우리 세계에도 위면지태가 있단다.”

“그 힘을 장악하면…….”

백룡지존은 목진을 빤히 쳐다보며 말을 이어갔다.

“너는 한계를 넘고 천지존경에 이를 수도 있단다!”

목진은 흠칫하더니 이글거리는 눈빛으로 백룡지존을 바라봤다. 역시나 그의 예상대로 이곳에 천지존경에 이를 수 있는 기회가 있었다!

“그런데 위면지태는 보통 해당 위면의 사람들한테만 작용해 무조도 그 덕분에 위면지태를 장악하고 역외사족을 물리쳤던 거란다.”

백룡지존은 안타까운 눈빛으로 백소소를 바라봤다.

“이 세계에는 무조 같이 훌륭한 인재가 나타나지 않은 것이 아쉬울 뿐이구나. 소소는 비록 우리보다 훨씬 강하지만 스스로 온전히 이룩한 것이 아니라 위면지태를 발견할 수 없단다…… 그리고 발견한다고 해도 아마 장악하지 못할 것이다.”

백룡지존의 말에 목진은 미간을 살짝 찌푸렸다. 그는 해당 위면 사람이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허허, 너무 걱정할 필요도 없단다. 내가 약속했다는 건 따로 방법이 있다는 뜻이란다.”

백룡지존이 호탕하게 웃으며 이곳 천지를 가리켰다.

“위면에는 영이 있는데 이 세상의 모든 생명이 동시에 기원하면 기원의 힘을 빌려 위면지태를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모든 생명이라…….”

목진은 잠시 사색에 잠겼다.

“인심을 장악하는 게 가장 어려운 법인데 다른 때였으면 아마 불가능했을 것이다. 하지만 역외사족의 핍밥을 받는 지금 같은 상황에서 구원이 길이 있다고 하면 다들 쉽게 포기하려 하지 않을 거란다.”

백룡지존의 말에 목진은 영광을 번쩍이는 눈으로 백룡지존을 바라보더니 정중하게 인사를 올렸다.

“그 방법이 통하면 전 이 세상의 평화를 끝까지 지켜낼 겁니다.”

이번 기회에 천지존경에 이를 수만 있다면 더는 혈마황을 두려워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그럼 녀석을 없애는 것도 훨씬 쉬워질 것이다. 일단 천지존경에만 이르면 그는 무조처럼 힘들게 싸우지 않아도 될 것이다.

그렇다고 목진이 무조보다 뛰어나다는 것은 아니었다. 그날의 무조는 하위면에만 있어 수단이 별로 없었지만 목진은 대천세계에서 왔을 뿐만 아니라 절세의 신통을 두 가지나 확보해 일단 천지존경에 이르면 같은 등급의 상대라도 감히 그한테 덤비지 못할 것이다.

“그럼 이 세상 사람들을 대신해 미리 미래의 목존한테 감사의 인사를 올려야겠구나.”

백룡지존은 공손하게 인사를 올렸다. 만약 목진이 천지존경에 이른다면 대천세계의 최정예급 강자가 되는 거라 충분히 목존이라 부를 수 있었다.

잇따라 그는 자리를 잡고 앉아 눈을 감았는데 무형의 파동이 그를 중심으로 신속하게 퍼져 눈 깜짝할 사이에 하위면의 모든 지역에 퍼져나갔다.

이와 동시에, 백소소와 모든 원주민은 깨달음을 얻은 듯 제자리에 앉아 마음을 가라앉혔다.

잠시 후, 그들의 미간에 광점이 나타나 하늘 높이 날아오르더니 전부 목진한테 날아갔고 목진은 이를 전부 받아들였다.

상당히 먼 곳에서도 수많은 광점이 공간을 가르며 날아왔고 그곳은 특이한 광점으로 가득 찼다.

이는 반딧불처럼 반짝이며 목진의 몸을 감쌌다.

이에 목진도 서서히 눈을 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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