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86화. 천지존의 힘
“천신님, 정녕 성공하신 건가요?”
백소소는 적잖게 놀랐다. 그녀는 비록 천지존경에 대해 잘 모르지만 혈마황과 혈마왕의 실력 차이만 봐도 지지존 대원만과 천지존경의 실력 차이가 얼마나 큰지 대충 가늠이 갔다.
그녀는 사실 별다른 선택이 없어 여태껏 목진을 믿기로 한 것이었다. 그녀는 나락으로 떨어지고 싶지 않아 목진을 최후의 희망으로 여겼고 그라면 반드시 해낼 수 있을 거라 믿었다.
하여 사실, 지금처럼 급박한 상황이 아니었으면 목진이 천지존경에 이를 거라 여기지 않았을 것이다.
“더도 없는 천재구나…….”
백룡지존도 이내 감탄했다. 대천세계에 대한 이해도가 높은 그는 목진이 이룬 성과가 얼마나 놀라운 지 누구보다 잘 알았다. 이 세상에서 목진을 따라갈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백룡지존은 목진과 우연히 맺은 인연으로 자신의 소원을 정말 이룰 수 있게 될 줄은 몰랐고 목진을 만나 다행이라 생각했다.
반면, 혈마황은 안색이 확 어두워졌고 오만방자하던 모습은 어느새 사라졌다.
목진이 천지존경에 이른 순간, 그는 자기가 차지했던 압도적인 우세가 사라졌다는 걸 깨달았다.
“젠장, 이럴 줄 알았으면 바로 죽였을 것을!”
혈마황은 더없이 후회되었다. 그는 일전에 목진을 상대할 때 봐준 적 없긴 하지만 최선을 다한 것도 아니었다.
“이미 늦었네.”
목진은 바로 상대방의 속내를 꿰뚫고 피식 웃으며 말했다.
“자네가 아무리 천지존경에 이르렀다고 해도 날 이기는 건 쉽지 않을 것이네!”
혈마황은 눈가를 파르르 떨더니 깊게 숨을 들이켜며 마음을 가라앉혔다.
“지금은 나를 정면으로 상대한 자격을 갖췄으니 자네만 괜찮다면 난 혈사족 사람들을 거느리고 이곳을 떠나겠네.”
“이제야 떠나려고 하다니, 너무 늦었다는 생각이 들지 않나?”
목진이 피식 웃으며 묻더니 한기 어린 눈빛으로 상대방을 바라봤다.
“그리고 내가 당신들이 이곳에서 저지른 죄를 이대로 눈감아줄 거라 여기는 건가?”
“난 험한 꼴을 보고 싶지 않아 그리 제안했던 것뿐이네. 설마 자네가 두려워 그랬다고 여기는 건가!”
혈마황은 고개를 들고 한기 어린 눈빛으로 목진을 노려보며 말했다.
이에 목진이 가볍게 웃으며 한 손으로 결인하자 주위의 공간이 파르르 떨리더니 흑백 목진이 서서히 모습을 드러냈다.
“그럼 잘 부탁하네.”
세 명의 목진은 무덤덤하게 서서 혈마황을 바라봤는데 그들이 형성한 위압감에 천지가 진동하는 것 같았다.
백룡지존, 백소소 등은 침을 꿀꺽 삼키며 세 명의 목진을 바라보더니 한참 지나서야 정신을 차리고 입을 열었다.
“참으로 대단한 신통술이군.”
목진의 일기화삼청은 일전에도 강력했지만 그렇게까지 놀라울 정도는 아니었다. 하지만 지금은 천지존경에 이르러 놀라울 수밖에 없었다.
현재의 목진이 일기화삼청을 사용하면 진정한 천지존이 세 명이 되는 거나 마찬가지였다!
혈마황은 외모와 실력까지 똑같은 세 명의 목진을 보더니 갑자기 겁이 났다. 그는 목진의 분실술은 천지존이 아닌 화신만 이룰 수 있다고 여겼는데 이건 그의 착각일 뿐이었다.
목진을 상대하려면 세 명의 천지존과 싸워야 한다!
이건 굳이 싸우지 않아도 혈마황이 대결에서 패배할 것은 뻔했다.
슉!
그는 옷깃을 휘날려 도천의 혈해로 세 명의 목진을 공격했고 자신은 한 갈래 혈광이 되어 도망갔다.
그 광경에 목진은 피식 웃으며 손을 내밀어 도천의 혈해를 향해 주먹을 꽉 쥐었는데 눈부신 빛이 발하며 앞쪽 공간이 부서지더니 혈해를 꿀꺽 삼켜 어딘가로 보냈다.
이와 동시에, 목진의 다른 쪽 손이 멀리 떨어진 혈마황한테 내밀었다가 그를 꽉 잡았다.
퍽!
그곳 천지가 와르르 무너져 수만 리 정도의 거대한 공간 구멍을 형성하더니 수많은 공간 파편이 무형의 힘에 투명한 공간 거수를 이뤄 혈마황을 확 낚아챘다.
쿵!
무한의 혈광이 솟구치더니 수만 장 크기의 방대한 선홍색 마영이 나타나 공간 거수를 부수고 도망갔다.
슉!
그런데 그때 하얀색 도포를 입은 목진이 그 위쪽에 나타나 손가락을 내밀었다.
치익!
무한의 강풍이 모여 거대한 바람기둥을 이루더니 혈마황의 마영을 힘껏 때렸다. 이에 혈마황은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며 주먹을 휘둘렀다.
퍽!
양자가 부딪친 순간, 바람기둥이 갑자기 사라지더니 억만 갈래의 강풍이 되어 선홍색 마영에 상처를 냈고 녀석은 괴로워 비명을 질렀다.
목진이 천지존경에 이르러 가볍게 펼친 공격은 그가 지지존 대원만급의 실력으로 전력을 다한 공격보다 훨씬 강력했다. 하여 혈마황은 더는 전처럼 그의 공격을 쉽게 막아낼 수 없었다.
슉!
잇따라 혈마황의 앞쪽 공간이 일그러지더니 검은색 도포를 입은 목진이 나타나 영롱한 옥광을 발했는데 피와 살마저 백옥으로 변한 것 같았다.
이는 진정한 천지존의 육신으로 가벼운 손짓 하나만으로도 천지의 영력을 장악하거나 천지를 부술 수 있다.
검은색 도포를 입은 목진이 대충 장풍을 쐈는데 앞쪽 공간을 무시한 듯 바로 혈마황의 가슴팍에 닿았다.
쿵!
천지마저 격렬하게 진동했다. 마영은 큰 타격을 입은 듯 멀리 튕겨 나갔고, 애처로운 비명과 함께 바로 흩어졌다.
풉.
그 속에서 한 갈래 혈광이 솟구쳐 나왔는데 이는 혈마황의 본체로 곧바로 피를 토했다.
1각도 안 되는 사이, 혈마황은 완전히 열세에 처했으며 반항할 힘을 잃었다.
이에 세 명의 목진이 다가가 녀석을 둘러싼 뒤, 한기 어린 눈빛으로 혈마황을 쳐다봤다.
“자네가 정말 이겼다고 생각하는 건가?”
혈마황은 목진의 살기가 깃든 눈빛을 보더니 자신이 살아남을 수 없다는 걸 깨닫고 사악한 눈빛으로 목진을 노려보며 물었다.
목진은 미간을 찌푸린 채 녀석을 바라보다가 바로 살수를 두려고 손끝에 영광을 모았다.
슉!
그런데 그때, 혈마황이 혀끝을 물어 정혈을 내뱉자 그 속에서 선홍색 부적이 나타나 하늘 높이 날아오른 뒤 폭발했다.
“인마부(引魔符), 악마들이여, 강림하라!”
혈마황의 한기 어린 목소리와 함께 주위의 공간이 어두워지며 어딘가를 향한 공간 통로를 이뤘고 통로의 반대편에서 사악하기 그지없는 기운이 전해졌다.
목진은 흠칫 놀랐다.
통로의 반대편은 바로 역외사족의 땅이었다!
* * *
이곳은 어둠의 세계로 해와 달마저 어두운 빛을 발했다.
위잉!
갑자기 이상한 파동이 일더니 거대한 공간 소용돌이가 형성되었는데 그 파동에 다들 흠칫 놀랐다.
공간 소용돌이는 하위면과 연결된 것 같았다.
“누군가 인마부를 사용하다니…….”
“보아하니 혈사족인 것 같은데 이렇게 작은 종족에 마제가 나타날 줄이야…… 참 잘도 숨겼군.”
“역시 작은 종족이라 그런지 실력이 따라가지 못해 바로 인마부를 사용했군. 이리되면 다들 해당 하위면을 노릴 거라 그들은 그곳을 떠나야 할 텐데 말이야.”
“인마부는 마제 한 명만 소환할 수 있으니 누가 갈지 모르겠군.”
* * *
악마들은 수군대기 시작했지만 아무도 선뜻 나서지 않았다. 혈사족이 이미 해당 하위면을 착취할 때로 착취해 큰 가치가 없었다. 게다가 상황도 잘 모른 채 무턱대고 갔다가 무슨 꼴을 당할지 알 수 없었다.
그때 사망의 기운으로 가득 찬 한쪽 공간에 우뚝 솟아오른 만 장 정도의 왕좌에 앉아 있던 검은색 그림자가 무언가를 발견한 듯 꼭 감았던 눈을 번쩍 떴다.
그는 공간 통로를 넘어 하위면의 상황을 살펴보더니 젊은 청년한테 눈길을 멈췄다. 그는 회백색 눈동자에서 엄청난 한기를 내뿜었다.
“이 녀석한테 내 아이가 남긴 사망의 기운이 깃들어 있다니. 내 아이를 죽인 놈이 바로 너였구나.”
검은색 그림자가 콧방귀를 뀌며 옷깃을 휘날리자 한쪽 손이 몸에서 떨어져 나와 한 갈래 흑광이 되어 공간을 가르며 공간 소용돌이로 뛰어들었다.
그 광경에 다들 깜짝 놀랐다.
“시마족의 흑시천마제라니!”
“저분이 어찌 나섰단 말인가?”
시마족은 역외사족 32대 종족 중 하나였고 검은색 그림자는 바로 시마족의 족장으로 역외사족의 최강자 중 한 사람인 천마제였다.
다들 그런 존재가 나서자 적잖게 놀랐다.
천마제는 한쪽 손을 하위면에 보낸 것뿐이지만 해당 손에 깃든 힘만 해도 일반 천지존은 절대 비길 수 없을 정도로 강력했다.
“하위면의 천지존이 저분을 제대로 건드린 모양이군. 껄껄, 불쌍한 녀석.”
악마들은 서서히 물러났다. 이미 천마제가 나섰으니 대천세계의 천지존은 곧 죽을 것이다.
* * *
목진은 하위면에서 다른 세계로 이어진 공간 통로를 보더니 서둘러 웅장한 영력으로 커다란 손을 만들어 공간 소용돌이를 공격했다. 상대편에서 무언가 오기 전에 공간 통로를 없애려 한 것이다.
쿵!
그런데 공간 소용돌이는 부서지지 않았고 목진은 말로는 표현하기 어려울 정도로 사악한 기운이 몰려오는 것이 느껴졌다.
해당 기운은 하위면 전체에 순식간에 퍼져나가 다들 두려워 온몸을 파르르 떨었고 천지마저 격렬하게 진동했다.
“이건…….”
목진은 눈가를 파르르 떨며 중얼거렸다. 그는 시마족의 황자한테서 비슷한 기운을 느낀 적 있었는데 이번에는 훨씬 강력했다.
놀란 건 목진 뿐만이 아니었다. 혈마황도 두 눈이 휘둥그레진 채 공간 통로를 바라봤다.
“흑시천마제?”
인마부가 마제를 소환할 수 있긴 하지만 흑시천마제가 올 줄은 몰랐다. 흑시천마제는 역외사족의 최정예급 강자로 이런 사소한 일에 간섭할 리가 없었다.
하지만 어쨌든 흑시천마제의 도래는 사실이었다.
“운도 지지리도 없는 녀석.”
혈마황은 더없이 가여운 눈빛으로 목진을 바라보더니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씨익 웃었다.
만약 공간 통로를 통해 하위면에 온 존재가 다른 마제였으면 승산이 있었을 텐데 시마족의 천마제라면 대결에서 이기는 건 절대 불가능했다.
정작 목진은 상대방을 무시한 채 공간의 끝자락에서 부단히 몰려오는 사망의 기운을 느꼈다. 시마족의 천마제는 위면의 장애를 뚫고 하위면으로 들어오기 위해 애를 쓰고 있었다.
흑시천마제의 실력은 막강해 견고한 위면의 경계마저 놀라운 속도로 부서졌다. 1각도 안 되는 사이, 한 갈래 흑광이 위면 밖에 나타났는데 그 속에서 삐쩍 마른 검은색 손이 어렴풋이 보였다.
그러다 흑광을 발하는 검은 손이 점차 일그러지며 검은색 그림자를 이루더니 악마의 신처럼 위면 밖에 서서 목진을 쏘아봤다.
“네가 내 아들을 죽인 것이냐?”
목진은 그제야 시마족의 천마제가 왜 여기까지 왔는지 깨달았다. 그는 아들의 복수를 하러 온 것이었다.
시마족의 황자는 죽기 직전에 목진의 몸에 자신의 기운을 주입했는데 여태껏 그가 대천세계에 있어 시마족의 천제가 느끼지 못했다. 그런데 지금은 하위면과 역외사족의 땅이 연결되어 상대방이 자연스레 목진의 몸에 깃든 아들의 기운을 느낀 것이다.
목진은 묵묵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내 아들을 위해서라도 오늘 너를 데려가 시괴로 만들어야겠구나.”
그러나 목진은 흑시천마제의 잔인한 말에도 전혀 겁먹지 않았다.
“당신이 원하는 대로 되지는 않을 겁니다.”
“과연 그럴까?”
흑시천마제는 씨익 웃더니 위면 세계를 쓰윽 훑으며 물었다.
“설마 하위면의 주인이 되었다고 나를 상대할 수 있을 거라 여기는 것이냐?”
“전 그런 생각을 한 적이 전혀 없답니다.”
목진은 가볍게 웃으며 답했다. 제아무리 자신만만한 목진이라도 천마제를 상대할 수 있을 거란 망상은 하지 않았다. 비록 상대방은 한쪽 손으로 이뤄진 분신이지만 말이다.
“또 뭘 하려는 건가?”
혈마황이 피식 웃으며 물었다. 그는 목진이 왜 이토록 태연한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반면, 흑시천마제는 갑자기 미간을 살짝 찌푸리더니 흑광이 요동치는 눈빛으로 목진을 바라봤다. 목진이 수상했다.
“일단 너부터 죽여야겠구나.”
흑시천마제의 눈에서 발하는 흑광이 순간 밝게 빛나더니 손바닥에서 무한의 사망의 기운을 방출해 위면을 공격했다. 그 엄청난 힘에 위면 전체가 파르르 떨렸고 하늘은 무너졌으며 지진이 일어났다.
목진은 흑시천마제의 파멸의 힘에 아무런 반응도 없었는데 어느새 눈까지 감았다.
“죽기를 기다리는 건가?”
혈마황은 씨익 웃었지만 왠지 불안해 일부러 목진을 도발했다. 그러나 목진은 여전히 녀석의 말을 듣는 척도 하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