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87화. 무조와 마제의 대결
쿠쿵!
위면의 진동은 계속되었고 백소소, 백룡지존 등은 화들짝 놀라 저 멀리 위면 밖을 바라봤는데 무서운 사망의 기운이 곧 위면을 뚫고 스며들 것 같았다.
그런데 그때, 목진이 눈을 번쩍 뜨더니 가볍게 미소를 지었다.
이에 위면 밖에 서 있던 흑시천마제가 미간을 찌푸린 채 손가락을 튕기자 무한의 사망의 기운이 모여 수십만 장의 커다란 해골을 만들었고 이는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며 위면을 물어뜯으려 했다.
해골의 공격에 위면은 바로 찢어질 것 같았다.
다행히 해골의 공격이 닿기 직전, 난폭하기 그지없는 뇌명이 울려 퍼지더니 무한의 뇌광이 공간을 가르며 날아와 수십만 장이나 되는 거대한 해골을 부숴버렸다.
“누가 감히 나서는 건가!”
흑시천마제는 흠칫 놀라 버럭 소리를 질렀다.
“드디어 왔군.”
목진은 가볍게 숨을 내뱉으며 꼭 쥐었던 손을 천천히 폈는데 손바닥에서 가루가 우수수 떨어졌다.
그때 허무한 공간이 찢어지더니 휘몰아치는 뇌해가 몰려왔는데 그 위에 벼락 곤장을 들고 서 있는 누군가가 모습을 드러냈다.
웅장한 뇌명과 함께 상대방의 목소리가 하위면에 쩌렁쩌렁 울려 퍼졌다.
“천마제, 대결 상대를 원하면 무경으로 올 것이지. 고작 하위면에 내려와서 이게 뭘 하는 짓인가?”
“대천세계에는 사람이 없다고 여기는 것인가!”
웅장한 뇌해는 공간을 가르며 몰려왔고 그 위에 짙은 보라색 도포를 입은 한 사내가 뒷짐을 진 채 서 있었다.
사내가 들고 있는 벼락 곤장에서는 뇌광이 번쩍였는데 그럴 때마다 천지가 흔들리고 뇌명이 울려 퍼졌다. 강인하고 듬직한 사내는 서 있는 것만으로도 엄청난 위압감이 뿜어져 나왔다.
위면 밖에 서 있던 흑사천마제도 상대방의 도래에 안색이 조금 어두워졌다.
“여기서 무조를 만날 줄이야…….”
대천세계의 변방에 있는 무경은 역외사족과 접촉도 많고 상대편의 정예급 강자를 상대한 적 많아 역외사족에서 그를 모르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무조라니!”
백룡지존은 화들짝 놀라 하위면 밖에 나타난 사내를 쳐다봤다. 무조는 하위면 출신인 이들한테 전설과도 같은 존재였다. 직접 뵐 수 있을 거란 생각은 단 한 번도 해본 적이 없었다.
백룡지존은 곁에 서 있는 목진을 바라보며 이내 감탄을 금치 못했다.
“네가 무조와 친분이 있을 줄은 몰랐구나. 인맥이 상당하구나.”
목진이 천마제의 강림에 전혀 당황하지 않았던 데는 다 이유가 있었다. 백룡지존은 목진의 수단에 제법 놀랐다. 소년은 어느새 대천세계의 최정예급 강자로 거듭났다.
정작 목진은 가볍게 웃으며 고개를 들고 흑시천마제와 무조를 바라봤다. 천마제와 성급 천지존의 대결은 상당히 흥미로울 것이다.
한편, 무조는 그윽한 눈으로 하위면을 쓰윽 훑더니 바로 상황 파악을 마치고 눈가에 한기가 서렸다.
무조도 하위면 출신이라 역외사족이 하위면 사람들한테 어떤 존재인지 누구보다 잘 알았다. 그의 아내가 목숨을 내던지며 그를 도운 다음에야 겨우 역외사족을 전부 물리쳤으니 말이다.
이로 인해 무조는 역외사족을 누구보다 미워했다. 그런데 그날의 상황이 재현되었다는 생각에 흑시천마제를 바라보는 눈빛이 한껏 날카로워졌다.
“시마 녀석, 역외사족에 있을 것이지 왜 대천세계의 하위면에 와서 소란을 피우는 건가!”
무조의 한기 어린 목소리가 울려 퍼지자 위면 밖에 억만 갈래의 뇌명이 울려 퍼졌고 하늘이 격렬하게 진동했다.
흑시천마제는 무조가 전혀 두렵지 않은 건 아니었지만 그 역시 시마족의 족장이다. 그런데 체면을 구기는 상대방의 말이 상당히 거슬렸다.
그는 비록 하위면에 한쪽 손만 보냈지만 무조도 화신일 뿐이라 그렇게까지 두려워할 필요가 없었다. 또한, 무조가 전설급 강자라고해도 흑시천마제가 호락호락한 상대인 것은 아니었다.
“무조, 저 녀석은 내 아들을 죽인 데다 혈사족도 거의 다 죽였네. 저 녀석만 나한테 넘기면 바로 떠나겠네.”
흑시천마제는 손으로 하위면에 있는 목진을 가리키며 말했다.
“참 잘했구나.”
무조는 목진을 보더니 흐뭇하게 웃으며 말을 건넸다.
“무조, 일을 괜히 복잡하게 만드는군.”
흑시천마제는 눈가를 파르르 떨며 말했다.
“누가 자네와 협상하겠다고 말했나? 난 오늘, 자네 화신을 반드시 없앨 것이네.”
무조가 호탕하게 웃으며 한 말에 흑시천마제도 피식 웃으며 바로 옷깃을 휘날려 그윽한 사망의 기운을 방출했다.
“흥, 영력 화신만으로 과연 날 어찌할 수 있을까?”
크으으으!
사망의 기운에서 포효가 들리더니 수백의 해골 흉수가 모습을 드러냈다. 다들 몸에서 지극히 강력한 파동을 내뿜었다.
해골 흉수는 흑시천마제가 제련한 시괴로 육신이 강력하기 그지없었고 앞장선 녀석 몇 마리는 영급 천지존마저 제압할 정도였다.
자신을 향하는 해골 흉수들을 바라보던 무조가 곤장을 가볍게 내리찍자 곤장이 하늘 높이 날아오르며 웅장한 뇌광을 방출하다가 커다란 벼락의 용을 이뤘다.
육안으로는 크기를 알 수 없는 커다란 용의 몸에서는 벼락이 번쩍이며 부단히 색깔을 바꿨는데 전부 파멸의 힘이 깃들어 있었다.
목진은 거대한 벼락의 용을 보더니 흠칫 놀랐다. 녀석은 영성이 있는 비범한 존재로 꼭 진정한 뇌룡 같았다.
목진이라도 뇌룡을 상대로 이길 자신이 없었다.
크으으으!
거대한 뇌룡은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며 입을 쩍 벌려 억만 갈래의 벼락을 내뿜었는데 이는 벼락 사슬처럼 공간을 가르며 날아가 해골 흉수들을 감쌌다.
휘리릭.
벼락 사슬은 해골 흉수들을 감싼 채 다시 거대한 뇌룡의 입으로 돌아갔다.
이렇게 해골 흉수들을 꿀꺽 삼킨 뇌룡은 트림을 하며 만족하듯 배를 툭 때리더니 그제야 다시 뇌광이 되어 무조 수중의 곤장으로 변했다.
상황을 지켜보던 흑시천마제의 안색이 확 어두워졌다. 그가 제련한 해골 흉수들의 체내에는 상당히 강력한 시마독이 깃들어 있었다. 천지존이나 기타 마제가 접촉해도 즉사할 텐데 뇌룡은 지극히 강력하고 난폭한 힘으로 시마독을 완전히 없앴다.
무조는 녀석의 시마독을 손쉽게 없앨 수 있었다.
“그럼 이번에는 내 공격을 받아 보게. 자네가 받아낼 수 있으면 이대로 보내 주겠네.”
“말도 안 되는 소리!”
흑시천마제는 무조의 말에 버럭 소리를 질렀다. 그는 아무리 못해도 천마제인데 무조는 몇 번이고 그를 무시하니 화가 나지 않을 수 없었다.
“자네가 무슨 자격으로 나한테 그따위 말을 하는지 지켜보겠네!”
정작 무조는 상대방의 말을 무시한 채 마음을 움직였는데 머리 뒤에 빛이 환형을 이룬 채 형성되었다.
여덟 가지 색깔을 띤 환형 빛은 천천히 회전하더니 눈 깜짝할 사이에 수만 장 정도로 커져 하늘 높이 걸렸는데 흑시천마제가 마침 그 중심에 서 있었다.
“흥!”
흑시천마제가 기합을 넣자 몸에서 그윽한 사망의 기운이 번쩍이더니 검은색 액체가 뚝뚝 떨어졌다.
검은색 액체는 극악시수(極惡屍水)로 진득하고 비릿한 것이 파멸의 기운으로 가득 찬 것 같았는데 하위면에 한 방울만 떨어져도 위면의 모든 생명이 즉사할 것이다.
“공격하라!”
천마제가 손가락을 튕기자 검은색 액체는 자그마한 물줄기를 이뤄 상대방에게 향했는데 수수해 보이는 물줄기가 지나간 곳은 순식간에 사망의 기운으로 가득 찼다.
극악 시수는 공간을 더럽히며 결국 만 장의 팔 색 광환과 부딪쳤다.
극악 시수는 부식의 기능이 있어 영력에 닿으면 바로 사망의 기운이 깃들게 할 수 있고 본체에도 영향을 줘 본체의 생기마저 완전히 빼앗는 것으로 유명했다. 누구든 일단 극악 시수에 닿으면 생명력이 아무리 완강해도 살아남기 힘들 것이다.
하여 흑시천마제는 씨익 웃으며 팔색 광환을 바라봤다. 무조는 비록 막강한 존재지만 오늘, 자신이 자부하는 영력 때문에 큰코다칠 것이다.
치익!
시수는 팔색 광환에 닿자마자 무서운 부식의 힘을 방출하기 시작했다.
쿵!
끄떡없었던 팔색 광환에서도 눈부신 빛을 발했으니 벼락, 어둠, 한빙 등 여덟 가지 영광을 발했다.
부동한 색상은 부동한 속성을 띤 영력을 의미했는데 이들은 상당히 강력하지만 서로 배척하지 않고 잘 아우러져 팔색 광환에서 현란한 화염을 일으켰다.
불같은데 한빙이 깃들었고 벼락이 번쩍이는 것이 상당히 오묘했다.
그 광경에 목진은 이내 감탄했다. 대천세계에서 영력 속성이 가장 많은 사람이 바로 무조라고 들었는데 지금 보니 허언이 아니었다.
그러다 신묘한 화염이 꿀꺽하자 극악 시수에 화염이 활활 타오르다가 은은한 안개가 되어 완전히 사라졌다.
아래쪽에 서 있던 흑시천마제는 순간 안색이 어두워졌다. 해당 화염에는 악마를 없애는 힘이 깃들어 있었다.
그런데 그때, 팔색 광환이 갑자기 확 줄어들더니 흑시천마제를 묶으려 했다.
이에 흑시천마제는 눈가를 파르르 떨며 몸을 한껏 부풀려 광환을 깨려 했다.
치익!
팔색 광환이 닿자 그는 몸이 확 굳어지더니 화염이 체내에 깃들어 순식간에 온몸에서 불이 활활 타올랐다.
으악!
무조의 화염은 상당히 무서운 수단으로 처량한 비명과 함께 흑시천마제는 사르르 녹아 결국 삐쩍 마른 검은색 손이 되었다.
퍽.
잇따라 팔색 광환이 파르르 떨자 검은색 손은 가루가 되어 우수수 떨어졌다.
사망의 기운으로 가득 찬 어둠의 세계에 앉아 있던 검은색 그림자가 갑자기 온몸을 파르르 떨며 눈을 번쩍 뜨더니 씩씩거리며 중얼거렸다.
“젠장!”
그의 말과 함께 무궁무진한 사망의 기운이 휘몰아쳐 주위에 있던 역외사족 강자들은 두려워 온몸을 파르르 떨었다.
흑시천마제는 한참 지나서야 마음을 가라앉히고 잘린 왼손을 바라봤는데 사망의 기운이 맴돌더니 손이 새로 자라났다. 그러나 그의 안색은 여전히 어두웠다. 흑시천마제의 육신은 시간과 공을 들여 수련한 거라 다시 생긴다고 해도 절대 전처럼 강력하지 않을 것이다.
그의 왼손은 앞으로의 대결에서 약점이 될 것이다.
흑시천마제는 메마른 손을 꼭 쥐더니 음산한 눈빛으로 무조가 있는 방향을 바라보며 서서히 눈길을 거뒀다.
“무조는 역시 대단하군.”
안정을 되찾은 흑시천마제는 안색이 확 어두워졌다. 그는 조금전의 짤막한 대결을 통해 무조한테서 엄청난 위협감을 느꼈다.
“천마제들이 대천세계와 역외사족의 변방을 지키는 무조 때문에 크게 다쳤다는 말을 믿지 않았는데 인제 보니 사실이었군.”
“무조의 실력 정도면 대천세계에서 손에 꼽힐만할 테고 무한의 화역의 염제도 무조 못지않다고 하니…… 그들은 대천세계의 불후대제처럼 강대한 존재로 거듭날 가능성도 있겠군.”
흑시천마제는 미간을 살짝 찌푸리며 중얼거렸다. 정말 그렇다면 무조와 염제는 역외사족의 강적으로 앞으로 싸움이 벌어지면 엄청난 걸림돌이 될 것이다.
“역외사족의 전체적인 실력이 대천세계보다 뛰어난 것이 참으로 다행이군. 그리고…….”
흑시천마제는 음산한 눈빛으로 어딘가를 바라보며 씨익 웃었다.
“역외사족에서 수만 년 동안 계획한 일이 일단 이뤄지면 무조와 염제가 불후대제 못지않은 강자로 거듭난다고 해도 절대 우리를 막을 수 없을 것이네.”
“흥, 얼마 남지 않은 평화를 마음껏 즐기게. 언젠가 역외사족의 계획이 이뤄지면 반드시 무경에 찾아가 오늘의 복수를 하고 말겠네!”
흑시천마제가 피식 웃으며 옷깃을 휘날리자 무한의 사망의 기운이 휘몰아쳐 그의 육신을 감쌌다가 어느새 제자리에서 사라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