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88화. 위면의 주인
하위면에 있는 목진은 빠르게 승패가 가려진 것을 보고 감탄을 금치 못했다. 대전 쌍방은 같은 등급의 강자지만 실력 차이가 엄청 났다. 흑시천마제도 성급 천지존이나 다름없는 존재지만 무조의 상대는 되지 않았다.
드디어 꿈에도 바라던 천지존경에 이른 목진은 아직 갈 길이 멀다는 생각이 들었다.
“전설이 따로 없구나.”
백룡지존도 그제야 정신을 차리고는 너무 흥분한 나머지 온몸을 파르르 떨었다.
이에 목진은 가볍게 웃더니 한기 어린 눈빛으로 멍하니 서 있는 혈마황한테 눈길을 돌렸다.
“또 뭐가 남아 있는가?”
혈마황은 흠칫하더니 한 갈래 혈광이 되어 멀리 도망갔다. 그는 완전히 전의를 잃었지만 살기 위해 죽기 살기로 도망쳤다.
“도움이 필요하냐?”
천외에서 진중한 목소리와 함께 한 갈래 영광이 목진의 옆에 내려앉았다. 그는 바로 무조였다.
“저 녀석은 저 혼자서도 해결할 수 있으니 걱정하지 마세요.”
목진은 생긋 웃으며 답한 뒤, 흑백 목진에게 미친 듯이 도주하고 있는 혈마황을 쫓으라 명했다.
“일기화삼청은 역시 36가지 절세의 신통 중 한 가지 신통답구나. 네가 역시나 일기화삼청을 수련해냈구나.”
무조는 멀어져가는 목진의 두 화신을 보더니 가볍게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선배님들이 이룬 성과에 숟가락을 얹은 것뿐인걸요.”
목진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말했다.
“너무 겸손할 필요는 없단다. 그렇게 젊은 나이에 천지존경에 오른 사람은 대천세계 전체를 훑어봐도 얼마 없단다.”
무조는 흐뭇하게 웃으며 목진을 쓰윽 훑어봤다. 지난번까지만 해도 목진은 지지존경에도 이르지 못했는데 10년도 안 되는 사이, 그는 이미 천지존이 되었으니 말이다.
그의 수련 속도와 천부적 재능은 확실히 뛰어났다.
하지만 목진은 왠지 부끄러웠다. 그는 사실, 시간이 느리게 흐르는 특수한 공간에서 수련해 현실 세계에서 짧은 시간에 천지존경에 이를 수 있었던 것이었다. 이곳에서는 반나절밖에 흐르지 않았지만 혼돈의 세상에서는 백 년 정도 걸렸을 것이다.
“임정이 수련을 네 절반만큼만이라도 견지할 수 있으면 좋겠구나.”
자신의 딸을 떠올린 무조는 자못 골치가 아팠다.
목진도 쾌활한 임정을 떠올리더니 피식 웃었지만 감히 뭐라 말하지는 않았다. 임정이 알기라도 하면 분명 목진에게 뭐라 할 것이다.
다행히 무조는 바로 하위면을 바라보며 화두를 바꿨다.
“이곳에도 위면지령이 있을 줄은 몰랐구나. 넌 참 운이 좋구나.”
무조는 목진이 해당 하위면의 주인이 된 것과 천지존경에 이른 것이 그 힘 덕분이란 것을 바로 알아챘다.
위면지령이 있는 하위면은 대천세계에서도 상당히 희귀해 고족들도 탐내곤 했다. 위면지령의 힘으로 천지존을 배양할 수 있기 때문이었다.
“무조 선배님도 위면의 주인이시죠? 그럼 한 위면의 주인이 되면 어떤 좋은 점이 있고, 전 뭘 해야 하나요?”
목진은 잠시 고민하다가 질문을 건넸다. 그는 해당 위면의 주인이 됐지만 뭘 해야 하는지 전혀 알 수가 없었다. 그래도 위면의 주인인 무조가 있어 다행이었다.
“위면의 주인이 되어 좋은 점은 상당하단다. 앞으로 싸울 때, 마음만 움직이면 위면의 힘을 계속해서 사용할 수 있어 대결에서 일정한 우세를 차지할 수 있단다.”
무조가 미소를 지으며 한 말에 목진은 솔깃해졌다. 그리되면 앞으로 팔부부도와 현룡군을 소환할 때 필요한 영력을 하위면의 힘으로 대체하면 될 것이다.
“대신 과유불급이란 말을 명심하거라. 이곳은 하위면일 뿐이니 도가 지나치면 위면이 무너질 것이고 이곳에서 생활하는 모든 생명이 죽을 거란다.”
무조의 충고에 목진은 정중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해당 하위면의 주인이 된 목진은 이곳에서 생활하는 모든 생명의 생사를 수중에 쥔 거나 다름없었다. 그러니 자칫 잘못하면 그들을 죽인 살인자가 될 수도 있었다.
“전 이곳 사람들이 더는 역외사족의 괴롭힘을 당하지 않게 하겠다고 위면지령과 약속했어요. 그런데 혈사족이 이곳에 들어올 수 있다는 건 다른 공간 접점이 역외사족의 구역에 있다는 말이라 이를 해결하지 않으면 앞으로 또 다른 역외사족이 찾아올 수도 있어요.”
“그건 쉬운 일이란다. 넌 해당 위면의 주인이 되었으니 이를 움직이는 힘이 생겼단다. 그러니 이곳을 안전한 지역으로 옮기면 공간 접점도 자연스레 바뀔 것이다.”
무조의 말대로라면 목진은 해당 위면을 천라대륙으로 옮긴 뒤, 이곳과 대천세계를 연결할 수 있었다. 그러다 언젠가 해당 위면에 위면의 한계를 뚫은 강자가 나타나면 바로 목부에 영입하면 될 것이다.
위면의 한계를 뚫을 수 있는 사람은 분명 천부적 재능이 뛰어난 사람일 거라 앞으로 천지존경에 이를 가능성도 있었다. 그런 인재라면 대천세계의 여러 세력에서 탐낼 것이고 목부에서 절대 이를 놓칠 수 없었다.
이러한 생각에 목진은 백소소 등한테 고개를 돌렸다.
“해당 위면을 대천세계와 연결하면 이곳의 힘의 등급이 어느 정도 상승할 것이네. 앞으로 누구든 위면의 한계를 뚫으면 목부로 찾아오게. 목부의 문은 언제나 활짝 열려 있을 것이니.”
백소소와 다른 하위면 강자들은 이내 화색이 되어 고개를 끄덕였다. 이는 해당 하위면한테 엄청난 기회였다. 목진의 보살핌 덕분에 그들은 역외사족에서 자유로워질 것이고 더 높은 단계의 수련 성과를 이룰 수 있을 것이다.
이에 목진이 가볍게 웃자 멀리서 두 갈래 빛줄기가 하늘을 가르며 날아왔는데 다름 아닌 그의 두 화신이었다.
흑백 목진은 선홍색 광구를 쥔 채 나타났고, 그 속에 한껏 일그러진 얼굴을 한 혈마황이 갇혀 있었다.
혈마황은 결국 두 목진의 손에 잡혀 봉인되었다.
잇따라 목진은 선홍색 광구를 거둔 뒤 무조한테 인사를 올렸다.
“오늘은 도와줘서 고마웠습니다.”
“역외사족을 물리치는 것은 대천세계 사람으로서 응당 해야 할 일이니 고마워할 필요 없단다. 다만, 흑시천마제를 완전히 죽이지 못한 것이 아쉽구나.”
무조가 손을 저으며 대수롭지 않게 한 말에 목진은 흠칫 놀랐다. 흑시천마제는 무려 천마제라 그가 정말 죽으면 역외사족한테도 엄청난 타격이 될 것이다.
그런데 무조 정도라면 정말 녀석을 죽일 수 있을지도 모른다.
“무조 선배님, 앞으로 제가 필요한 일이 있으시면 언제든지 불러주세요.”
목진은 진심 어린 눈빛으로 상대방을 바라보며 말했다. 무조와 염제는 그한테 호신 부적을 각자 하나씩 주었는데 그들이 아니었다면 목진은 절대 이렇게까지 떳떳하지 못했을 것이다.
그들은 목진의 은인이었다.
“나와 염제는 네가 충분히 그럴 자격이 있다고 생각하여 도와준 것이란다. 그리고 역외사족이 다시 우리 대천세계에 쳐들어왔을 때, 우리와 함께 싸울 수 있는 사람이 있었으면 하는 바람이 있기도 했단다.”
무조는 호탕하게 웃더니 강인하고 듬직한 매력을 발산하고 바로 사라졌다.
“목진아, 넌 비록 천지존경에 이르렀지만 아직은 수련이 끝나지 않았으니 절대 게으름을 피워서는 안 된다. 그럼 큰일이 닥쳤을 때 살아남기 힘들 거란다.”
무조는 엄숙한 목소리를 남긴 채 완전히 사라졌고 목진은 숙연하게 서서 무조의 말을 되풀이했다. 무조처럼 강한 존재도 역외사족을 무시하지 못했으니, 녀석들이 얼마나 위협적인 존재인지 충분히 알 수 있었다.
“명심하겠습니다.”
목진은 작은 목소리로 답한 뒤, 고개를 들었다. 지금은 오랫동안 이루고 싶었던 소원을 이루러 갈 차례였다.
후우.
목진은 깊게 숨을 들이켜고는 중얼거렸다.
“부도신족, 오랜 시간이 흘러 드디어 오늘이 왔구나…….”
* * *
1년 전, 목진이 북계의 3대 패주와의 대결에서 승리한 뒤로 목부는 북계의 최강 세력이 되었다.
이로 인해 북계의 절반의 땅을 차지하게 된 목부는 빠르게 발전했고 북계, 심지어 천라대륙에서도 상당히 유명해졌다. 반면, 다른 3대 패주 세력의 발전은 주춤해져 목부에 충성을 맹세하는 강자들이 점차 많아졌다.
그런데 3대 패주 세력은 이를 지켜보기만 했고 다들 이러한 과정은 곧 끝날 거라 여겼다. 3대 패주 세력의 뒷배는 대천세계의 엄청난 세력이라 절대 애써 배양한 세력이 북계에서 쫓겨나는 꼴을 보려 하지 않을 것이다.
아직은 폭풍전야일 뿐이었다.
목부를 대신 관리하는 만다라도 이를 잘 알고 있어 한시도 긴장을 풀지 않고 3대 패주 세력의 움직임을 자세히 살폈다.
녀석들은 언젠가 반드시 반격해올 것이다.
역시나 목진이 목부를 떠난 지 반년 조금 더 지난 어느 날, 한 궁전이 서서히 내려앉아 목부의 위쪽에 멈춰 섰다.
목부 사람들은 궁전에서 느껴지는 무한의 위압감 때문에 화들짝 놀랐고 주위 수백 리 범위의 강자들마저 해당 위압감에 무서워 온몸을 파르르 떨었다.
이 정도 위압감을 형성할 수 있는 사람은 분명 진정한 천지존일 것이다!
그런데 궁전은 목부의 위쪽에 조용히 떠 있기만 할 뿐, 더는 내려앉지 않고 누군가의 굵직한 목소리가 쩌렁쩌렁 울려 퍼졌다.
“나 현천노조는 누군가의 부탁을 받고 왔으니 목부의 주인은 당장 나오게.”
현천노조는 목진이 안중에 없는 것이 분명했고, 말투가 꼭 후배를 부려먹는 것 같았다.
이에 목부의 고위층은 상당히 화가 났지만 별다른 수가 없었다. 목부는 실력이 폭등하긴 했지만 천지존급 강자 앞에서는 여전히 별 볼 일 없었다. 상대방이 정말 나서기라도 하면 목부를 없애는 건 일도 아니었다.
만다라도 너무 화가 나 배첩을 들고 궁전에 올라가 따지려 했는데 감히 올라갈 수가 없었다.
“목부의 주인더러 오라고 하게. 자넨 노조를 만날 자격이 없네.”
만다라가 거절당하자 그녀의 얼굴은 붉으락푸르락해졌지만 깊게 숨을 들이켜며 간신히 마음을 가라앉히고 목진이 남긴 주마령을 꺼내 상대방한테 건넸다.
주마령은 대천궁의 물건으로 주마왕의 신분을 상징하는 존재인지라 아무리 천지존이라도 대천궁을 감히 건드리지는 못할 것이다.
그런데 상대방은 주마령을 보자마자 피식 웃으며 다시 영패를 내던졌다.
“아무런 권력도 없는 주마왕이 감히 어디서 우쭐거린단 말인가?”
“자네는 썩 꺼지고 목부의 주인더러 오라고 하게. 안 그럼 난 여기 계속 머물 것이고, 목부는 더 이상 강자들을 영입하기 어려울 것이네.”
만다라는 안색이 확 어두워져 주마령을 건네받았다. 보아하니 상대방은 목진에 대해 잘 알고 있는 데다 대천궁도 전혀 두려워하지 않는 것 같았다. 이제 만다라가 할 수 있는 건 따로 없어 이대로 물러나는 수밖에 없었다.
궁전은 역시나 반년 동안 목부의 위쪽에 조용히 떠 있었다. 궁전의 주인인 천지존이 내뿜은 위압감에 목부의 강자들은 상당히 괴로웠고, 목부의 체면은 말이 아니었다. 이런 꼴을 보고만 있어야 하니 명성에 치명적인 타격이 될 수밖에 없었다.
반면, 자운종, 뇌음산과 금조부의 주인들은 궁전에 들어가 현천노조와 만남을 가져 목부 사람들은 불안함에 떨었다.
역시나 그 뒤로 3대 세력은 목부가 점령했던 땅을 조금씩 빼앗아가기 시작했다.
목부는 역사상 최대의 위기에 빠졌다.
* * *
어느새 천지존이 목부를 위협하고 있다는 사실이 북계를 넘어 천라대륙에 전해져 다들 북계에 시선을 집중했다.
어디서든 천지존의 출현은 이목을 끌기 마련이었다.
천지존은 천라대륙의 세력 싸움에 끼어들지 못하는데 현천노조는 개인 사정으로 목진을 찾아간 거라 안 된다고 말할 수도 없었다.
천라대륙의 각 세력의 뒷배들은 천지존조차 없는 목부를 위해 천지존에게 나설 수가 없었다.
하여 다들 못 본 척했고 오히려 목부가 이번 기회에 철저히 해산되었으면 하고 바랐다. 다들 목진이 선보인 강력한 전투력에 적잖게 놀랐기 때문이었다.
목부에 천지존이 없어서 다행이지 언젠가 천지존이 생기면 목부가 강대해지는 것은 시간문제였다.
천라대륙 사람들은 전부 목부에 관심을 기울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