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92화. 상과 벌
목진의 칼 같은 눈빛에 흠칫 놀란 그들은 목진이 실력으로도 전혀 뒤처지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오늘, 정말 싸움이 일어나 그들이 간신히 이긴다고 해도 엄청난 대가를 치를 것은 분명했다. 심지어 누군가는 죽을 수도 있었다.
이는 너무 엄중한 대가라 아무도 감히 감당할 수 없었다.
그들은 오랜 시간 수련해 겨우 천지존경에 이르러 그 영광과 권리를 마음껏 누리지도 못했다. 그런데 오늘 목진과 싸우다 죽는다면 정말 아쉬울 것이다.
더구나 그들은 서로 경쟁 상대라 목진이 너무 강하게 밀어붙이지만 않았으면 절대 손을 잡지 않았을 것이다.
그들은 서로를 믿지 않았고 누군가 갑자기 도망이라도 가면 나머지 두 사람은 바로 궁지에 몰릴 것이다.
반면, 목진의 두 화신은 온전한 그의 편이라 이들과 비교할 수 없었다. 이런 상황에서 싸운다면 그들의 승산은 그리 크지 않을 것이다. 이에 목진보다 용조대제 등이 머뭇거리기 시작했다.
그 광경에 다들 적잖게 놀랐다. 사람들은 용조대제 등이 이런 반응을 보일 줄 몰랐다.
이는 곧 3대 천지존이 협력해도 목진을 이길 자신이 없다는 뜻이 아닌가?
이에 사람들은 경외의 눈빛으로 허공에 뒷짐을 쥐고 서 있는 청년을 바라보기 시작했다.
혼자서 3대 천지존을 제압한다는 건 절대 쉬운 일이 아니었다. 오늘 일이 알려지면 목진은 대천세계에 이름을 날릴 것이다.
“자네 정말 너무 한 것 아닌가?”
잠시 후, 자기진인이 한숨을 쉬며 입을 열었다.
“당신들이 현천노조를 움직여 목부를 건드릴 때는 그런 생각을 안 해봤는가?”
목진은 상대방을 노려보며 말을 이어갔다.
“내가 만약 오늘 일을 쉽게 넘기면 앞으로 아무나 함부로 목부를 건드리려 할 것이네.”
“그러니 싸우려거든 내 얼마든지 상대해줄 것이고, 싫으면 내 말대로 북계에서 물러나게.”
자기진인은 미간을 찌푸리며 잠시 고민하더니 쓸쓸하게 웃었다. 북계의 자원이 상당하긴 하지만 자기령동도 대천세계의 엄청난 세력이라 여기서 목진과 목숨을 걸 필요까지는 없었다.
하여 그는 결국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말을 건넸다.
“그럼 목부에 대한 배상으로 자기령동 휘하의 자운종은 북계에서 물러날 것이네.”
자신이 우세를 차지하지 못한다는 걸 파악한 자기진인은 바로 북계를 포기했다. 목부의 기세를 억누르는 건 이미 늦었다. 목진이 있는 이상, 목부에는 천지존이 세 명이 있는 거나 마찬가지였고 이는 자기령동보다도 강했다.
“뇌음산도 물러나겠네.”
뇌존자도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말했다. 그 말에 용조대제는 이내 미간을 찌푸렸다. 자기진인과 뇌존자가 물러서면 그가 혼자서 어찌 세 명의 목진을 상대한단 말인가?
이에 그는 목진을 힘껏 쏘아보더니 한마디 말도 없이 바로 떠났다.
그는 행동으로 말을 대신했다.
상황을 살피던 자운진군, 금조황, 뇌음존자는 얼굴이 어느새 잿빛이 되었다. 그들은 자기 주인마저 목진이 두려워 자신을 포기할 줄 몰랐다.
뒷배를 잃은 그들은 무엇으로 목부와 싸워야 한단 말인가? 앞으로 북계에 이들이 설 곳은 더는 없을 것이다.
목진은 상대방의 선택을 예상이라도 한 듯 조용히 서 있었다. 그는 처음부터 저들이 절대 자신을 상대하려 하지 않을 걸 예상했다.
대신 이건 그가 현천노조를 제압했을 때 가능한 일이었다. 저들이 현천노조를 구했더라면 상황은 달라졌을 것이다.
“그럼 멀리 나가지 않겠네.”
목진의 말에 자기진인과 뇌존자는 기분이 썩 좋지 않았지만 꾹 참고 북계를 떠났다. 지금 상황에 이곳에 있어 봐야 체면만 더 떨어질 것이다.
잇따라 이곳에 휘몰아쳤던 무서운 위압감은 서서히 사라졌고 사람들은 한시름 놓고 이마의 땀을 닦았다.
한편, 목진은 흑백 목진 및 수중의 부도탑을 거둔 뒤 뒷짐을 쥐고 주위를 쓰윽 훑었다. 그는 공간 너머에서 이곳을 몰래 염탐하고 있는 사람들이 한눈에 보였다.
그러나 목진의 경고 어린 시선에 다들 바로 물러났다. 목진이 조금이라도 약한 모습을 보였다면 그들은 한걸음에 달려와 목부를 공격했을 텐데 그는 너무 강했고 몰락할 목부를 다시 살렸다.
또한, 오늘부로 목부는 천라대륙의 유일무이한 정예급 세력으로 거듭날 것이고 앞으로 천라대륙의 패주가 될 가능성도 있었다.
그러다 목진의 실력이 더 강해지면 목부도 대천세계의 최정예급 세력이 될 것이다.
목진은 몰래 이곳을 염탐하는 시선들이 전부 사라진 것을 확인하고 나서야 무서운 위압감을 거두고 목부의 대전 앞에 내려앉았다.
“부주님을 뵙습니다!”
유천도 등 목부 강자들은 공손하게 무릎을 꿇고 인사를 올렸다.
그런데 목부 고위층 인수가 적어진 것을 발견한 목진이 미간을 살짝 찌푸리자 만다라가 다가와 대신 해명했다.
“반년 사이, 현천노조 때문에 목부에 충성을 맹세했던 일부 세력들이 스스로 떠났어.”
“오히려 잘 됐어. 이런 상황에서 바로 도망가는 것들은 남아 있어 봐야 아무런 도움도 안 돼.”
목진이 대수롭지 않게 한 말에 만다라도 동의하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 사람들은 함께 있어 봐야 목부의 발전에 방해만 될 뿐이다.
이번 일로 목부에 조금 타격이 생겼지만 우환을 해결해 다행이었다.
“목부를 떠난 세력들은 수중의 산업을 전부 빼앗고 북계에서 추방하거라. 그리고 앞으로 저들이 북계에 다시 발을 들이면 바로 죽이거라.”
목진은 이내 정색하며 말했다. 목부가 오래 살아남으려면 상과 벌이 명확해야 한다. 이상한 생각을 하는 사람들한테 본때를 보여주기 위해서라도 배신자들에 대한 처벌은 제대로 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목진의 한기 가득한 목소리에 유천도 등은 소름이 끼쳤다. 그들은 목부에 남아 있길 잘했단 생각이 들었다. 안 그럼 그들도 북계를 떠나야 했을 것이다.
“벌을 내렸으니 이제 상도 내려야겠구나.”
목진은 끝까지 남은 세력들을 바라보더니 눈빛이 훨씬 부드러워졌다.
“빼앗은 재산은 노고에 따라 목부에 남은 세력들에게 나눠주고 앞으로 3년 동안, 천하수련령의 수량을 두 배로 늘려 배포한다.”
목진의 말에 다들 화색이 되었다. 이번에 목부를 떠난 세력은 제법 많아 그들의 재산을 나눠 가지면 수련에 엄청난 도움이 될 것이다.
더구나 천하수련령은 진귀해 두 배로 늘려 배포한다면 정성을 들여 키운 제자와 부하들의 실력도 더 빨리 향상될 것이다.
“고맙습니다, 부주님!”
각 세력의 주인들은 진심으로 고마워 목진에게 무릎을 꿇고 인사를 올렸다.
옆에 서 있던 만다라와 영계도 목진의 결정을 지켜보더니 이내 미소를 지었다. 그들은 목진이 천지존이 되어 돌아온 순간, 목부의 미래가 이미 정해졌다고 생각했다.
더는 아무도 목진의 앞길을 막을 수 없다.
천라대륙 전체를 뒤흔들었던 대결은 서막을 내렸지만, 그 여파는 사라지지 않고 계속되었다.
1년 전, 목부가 북계 3대 패주의 대결로 천라대륙에 이름을 알렸다면 이번 대결로 목부는 천라대륙의 최정예급 세력으로 거듭났다.
이제 북계는 온전히 목부의 땅이 될 것이고 아무도 더는 북계를 넘볼 수 없을 것이다. 그리고 천라대륙의 정예급 세력들은 목부를 잔뜩 경계할 것이다.
이는 목부에 천지존급 강자가 나타났기 때문이다. 목진이 선보인 놀라운 전투력 덕분에 목부는 세워진 지 얼마 되지 않았지만, 곧 대천세계의 최정예급 세력으로 거듭날 것이다.
천지존경에 이른 이는 대천세계의 최정예급 강자나 다름없었고 한 지역을 지배할 자격이 충분했다. 이는 대천세계의 암묵적인 규칙이었다.
천라대륙은 상상 이상으로 자원이 풍부해 다들 여태껏 이곳을 차지하지 못해 안달이 났었다. 하여 대천세계의 정예급 세력들은 몰래 사람을 파견해 천라대륙에 새로운 세력을 세웠던 것이다.
이토록 복잡한 환경에서 목부는 목진 덕분에 북계의 패주가 되긴 했지만 아직 천라대륙까지 꿀꺽 삼키지는 못했다.
그렇다고 목부가 강제로 천라대륙을 차지하려 한다면 대천세계의 정예급 세력들이 나서서 목부를 상대할 것이고 목부의 적이 될 세력은 절대 자기령동, 뇌음대사, 용조동 등 세 군데만은 아닐 것이다.
목진이 언젠가 성급 천지존을 상대할 정도의 실력을 갖추면 모를까, 그전까지는 아무리 그라도 그들을 상대하기는 버거웠다.
그래서 목진은 이번 대결로 북계의 땅만 차지하고 더는 발을 뻗지 않았다. 그러다 기타 세력의 배후 세력들이 나서면 큰일이었다.
목부가 드넓은 북계를 소화하는 것만도 제법 시간이 걸릴 것이다.
* * *
목부의 상고의 천궁에 한 갈래 빛이 내리쬐더니 목진이 천지 옆에 있는 가장 높은 산봉우리에 내려앉았다. 아래쪽에는 산을 둘러싼 채 천천히 흐르는 천지가 놓여 있었다.
천지 주위의 수련 석대에는 사람들이 가득했는데 목진의 출현에 다들 깜짝 놀라 고개를 돌렸다.
천지에 와서 수련하는 사람들은 대부분 목부 휘하 세력 중 젊은 인재들이었는데 해당 나이대에 들어와 수련해야 효과가 가장 컸다.
이로 인해 천지 주위에 모인 소년들은 하나 같이 늠름했고 소녀들은 예쁘장해 보는 것만으로도 눈이 즐거웠다.
“저기 보게, 부주님이네!”
훤칠한 목진이 모습을 드러내자 소녀들은 경외의 눈빛을 보냈다.
“부주님께서는 정말 대단하신 것 같아. 저렇게 젊은 나이에 천지존경에 이르시고 대천세계의 최정예급 강자가 되셨으니 말이야.”
어여쁜 소녀들은 젊고 늘씬한 소년을 바라보더니 부끄러운 듯 얼굴을 붉히며 담소를 나눴다.
“히히, 이루지도 못할 꿈은 그만 깨게. 부주님께서 우리 같은 사람들을 눈여겨보시기나 할까?”
아직 이성의 끈을 놓지 않은 여인들이 피식 웃으며 말하자 소년 중 누군가가 콧방귀를 뀌며 말을 건넸다.
“부주님께서는 은애하는 분이 따로 있네. 그분은 무려 낙신법신을 수련해 앞으로 대천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여인이 되실 분이라네. 그러니 꿈 깨게.”
이에 여인들은 바로 두 눈을 부릅뜨고 그를 쏘아봤다.
순식간에 천지가 떠들썩해졌다.
한편, 산봉우리에 서 있는 목진은 사람들의 말소리가 똑똑히 들려왔다. 그들을 보고 있으니 북령원과 북창령원에서 수련하던 때가 떠올랐다. 그때 목진도 저들처럼 강자들을 우러러보지 않았던가?
이러한 생각에 목진은 피식 웃으며 마음을 가라앉히고 수정탑을 꺼냈다.
그는 목부가 북계를 완전히 장악한 걸 확인하고 나서야 상고의 천궁에 들어왔다. 아직 할 일이 남았는데 아직 수정탑에는 처리하지 못한 이들이 있었다.
목진은 현천노조를 부도탑에 가뒀을 뿐 그를 죽이지 않았기에 최대한 빨리 이 일을 해결해야만 했다. 그러다 또 적이 찾아오면 부도탑을 사용하지 못할 수도 있었다.
수정탑은 목진의 앞쪽에서 신성한 빛을 발하며 조용히 떠 있었다.
목진이 한 줄기 빛이 되어 부도탑에 들어가자 부도탑에서 수정의 빛이 발하며 수정의 별을 이뤘다. 그리고 그 속에서 누군가가 앉아 부단히 웅장한 영력을 끌어올리며 수정의 빛을 막아내느라 애를 쓰고 있었다.
목진의 시선이 느껴지자 그는 두 눈을 번쩍 뜨더니 얼굴이 순간 붉으락푸르락해졌다. 그는 바로 목진이 부도탑에 가뒀던 현천노조였다.
그러나 목진은 그를 무시한 채 흥미진진한 얼굴로 부도탑을 살폈다. 그가 천지존경에 이르자 부도탑에도 엄청난 변화가 생겼기 때문이었다.
부도탑이 내뿜는 수정의 빛에 수많은 오래된 무늬가 깃들었고 이는 강대한 봉인의 힘을 지녔다.
제아무리 현천노조라도 그 힘에는 꼼짝 못 했다. 노조가 영력을 사용하면 바로 봉인의 힘이 몰려와 영력을 모조리 봉인하기 때문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