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93화. 신맥
“부도탑의 봉인의 힘이 이젠 천지존한테도 영향을 준단 말인가?”
목진이 지지존이었을 때까지만 해도 천지존의 영력에는 전혀 영향을 주지 못했다.
“부도신족은 역시 대천세계의 5대 고족답군. 이 정도 봉인의 힘이라면 어딜 가도 뒤처지지 않겠는걸?”
목진은 이내 감탄했다. 영력을 봉인할 수 있는 부도탑이 없었다면 목진은 절대 이렇게 쉽게 현천노조를 제압하지 못했을 것이다.
“현천노조, 부도탑에서 잘 지냈나?”
목진의 말에 현천노조는 안색이 확 어두워졌고 화를 내려 했지만 참을 수밖에 없었다.
“이번엔 내가 잘못했으니 사죄든 보상이든 뭐든 해주겠네. 그러니 이제 날 풀어다오.”
목진한테 잡힌 현천노조는 최대한 굽신거리는 수밖에 없었다.
“목부는 당신 때문에 하마터면 풍비박산이 날 뻔했는데 그깟 미안하단 말로 해결할 수 있다고 보는가?”
목진이 미소를 지으며 묻자 현천노조는 버럭 화를 냈다.
“그럼 도대체 뭘 원하는 것이냐? 난 목부 사람을 단 한 명도 죽이지 않았거늘!”
“그랬으니 다행이지…… 안 그럼 자넨 이미 죽었네!”
현천노조는 목진의 한기 어린 눈빛에 소름이 쫙 끼쳤다. 지금의 목진은 확실히 현천노조를 죽일 수 있었다. 상대방이 죽을 때까지 부도탑에 가두면 되니 말이다.
이러한 생각에 현천노조는 침을 꿀꺽 삼키고는 바로 말을 건넸다.
“목진아, 우리끼리 이럴 필요는 없지 않겠느냐? 우리가 누구 하나 죽이지 않으면 안 될 사이도 아니지 않느냐? 내가 흑광 녀석의 말만 믿고 잠시 정신이 나갔었구나.”
“뭐든지 말만 하려무나. 내가 할 수만 있다면 반드시 들어주마!”
목진이 미간을 찌푸린 채 현천노조를 바라봤다. 역시나 흑광 장로였단 말인가? 그런데 이 일은 절대 흑광이 혼자서 꾸민 건 아닐 것이다. 그의 뒤에는 부도신족 중 실력이 제일 강한 현맥이 있을 것이다.
“당신을 풀어줄 수는 있네.”
목진은 현천노조를 힐끗 쳐다보고는 대수롭지 않게 말했다.
전력을 다하면 현천노조를 완전히 제압할 수도 있지만, 그한테 도움이 될 게 없었다.
“내가 뭘 하면 될까?”
현천노조는 이내 화색이 되었다.
“오늘부터 목부의 장로가 되어 백 년 동안 내 명을 따르면 당신이 한 짓은 없던 일로 해주지.”
“뭐?”
목진이 피식 웃으며 말했고 현천노조는 순간 안색이 어두워졌다.
“난 혼자가 자유롭고 좋은데 왜 굳이 자네 명을 따라야 한단 말인가?”
천지존인 현천노조는 목진의 노예가 되고 싶지 않았다.
“목부에서는 성대한 환영식으로 당신을 맞이할 것이고 따로 일을 시키지도 않을 것이네. 당신은 그저 목부에 백 년 동안 있으면서 안전만 확보해주면 되네.”
목진은 전혀 놀라지 않고 태연하게 말을 이어갔다.
“강요는 하지 않겠네.”
현천노조는 미간을 찌푸린 채 고민에 빠졌다.
“대신 우리 사이의 원한을 제대로 해결해야겠지?”
목진은 한기 어린 눈빛으로 상대방을 바라보며 두 손으로 결인했다. 그러자 부도탑이 진동하며 수정의 빛이 사정없이 내려앉았다.
이에 현천노조는 화들짝 놀라더니 이를 악물고 외쳤다.
“30년이다! 난 30년 동안 목부의 장로로 있으면서 목부를 지키겠다!”
현천노조는 협상이 안 되면 목진은 정말 살수를 둘 사람이란 걸 깨달았다.
“좋네!”
현천노조의 말에 목진은 상냥하게 웃으며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산봉우리에 조용히 떠 있던 수정탑이 갑자기 눈부신 빛을 발하더니 두 사람을 내뿜었는데 그들은 각각 목진과 현천노조였다.
후우.
다시 자유를 되찾은 현천노조는 영력으로 가득 찬 공기를 마음껏 마셨다. 부도탑에 갇힌 날들은 무척 괴로웠다.
“현천 장로, 앞으로 한 가족이니 잘 부탁하네.”
목진이 생긋 웃으며 말하자 현천노조는 머쓱하게 웃었다. 그는 목부를 무너뜨리는 것이 식은 죽 먹기일 거라 여겼는데 오히려 목진한테 잡힐 줄은 몰랐다. 더구나 지금은 목부의 장로가 되었으니…….
비록 30년일 뿐이지만 자유가 박탈됐다는 것은 천지존한테는 상당히 큰 문제였다. 그의 신분과 지위로 목부는 물론이고 대천세계의 정예급 세력의 고위층이 되어도 엄청난 보상을 받을 수 있을 테니 말이다.
그런데 그는 지금 엄청난 보상은커녕 30년 동안 목부를 위해 열심히 일만 해야 했다.
이는 목진과 현천노조가 부도탑에서 한 약속으로 다른 사람은 몰라도 천지존한테는 상당히 중요한 일이었다. 천지존이 스스로 한 약속을 어기면 마음을 거스른 것으로 인정되어 마음속 깊숙한 곳에 상처가 남게 된다. 그러면 수련에도 엄청난 영향을 끼칠 것이다.
하여 목진은 현천노조가 몰래 도망갈까 봐 전혀 걱정되지 않았고 현천노조도 목진이 30년 뒤에 말을 바꿀까 봐 걱정하지 않았다.
“궁금한 것이 있는데 물어봐도 되겠나?”
목진은 자리를 잡고 앉아 상냥하게 물었다.
“천존 영체를 어떡하면 완벽하게 가꿀 수 있는 건지 물어보려는 것이냐?”
현천노조는 목진을 힐끗 보며 물었다.
이에 목진은 묵묵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일전에 현천노조와 싸우면서 천존 영체는 영맥을 이용해 완벽하게 가꿀 수 있다는 걸 알게 되었는데 구체적으로 어떻게 해야 하는지는 몰랐다.
“천존 영체를 완벽하게 가꾸는 방법은 깨달았겠지?”
현천노조도 자리를 잡고 앉아 옷깃을 휘날리며 말했다. 이건 비밀도 아니라 그가 언급하지 않아도 목진도 언젠가 알게 될 것이다.
“천존 영체는 천지존의 상징으로 육신은 언제든지 가장 순수한 영체를 이뤄 비범한 전투력을 갖출 수 있단다. 이와 동시에, 천지존은 주위의 천지와 완전히 아우러져 체내의 영력이 거의 닳지 않는다고 볼 수 있지.”
“그런데 이는 최하급 천존 영체로 육신의 가장 깊숙한 곳에 숨어있는 영맥으 제련해 영체와 철저히 융합시켜야 비로소 완벽해진단다.”
“그럼 완벽한 천존 영체는 훨씬 강력해질 것이고 영맥 신통도 생길 것이다.”
“영맥 신통이라…… 당신이 선보였던 성진도가 바로 영맥 신통이었나?”
현천노조는 성진도로 목진의 두 화신의 난폭한 공격을 막아냈는데 그 방어력은 놀라울 정도로 강력했다.
“나의 주천성진도의 방어력은 보통 절세의 신통보다 훨씬 강력하단다. 상대가 네가 아니었다면 같은 등급의 강자 중 이를 뚫을 수 있는 사람은 거의 없다.”
현천노조는 괴상한 눈빛으로 목진을 바라보며 말했다. 그는 자신이 어쩌다 목진 같은 요물을 상대하게 되었는지 알 수 없었다.
일기화삼청은 대천세계 36가지 절세의 신통 중 하나로 성급 천지존마저 탐내는 물건이었다. 그런데 결국 목진이 차지하게 되었으니 그는 얼마나 운이 좋은 것인가!
“영맥 신통은 어떤 규칙에 따라 형성되는 건가?”
목진이 생긋 웃으며 물었다.
“영맥 신통은 보통 자신이 수련한 공법과 연관이 있고 그 등급은 체내 영맥의 강도를 따른다.”
“흠…….”
목진은 현천노조를 빤히 쳐다보며 설명을 기다렸다.
“수련 초기에 영맥이 천, 지, 인 등 3개 등급으로 나뉜다는 걸 알았을 거다. 그런데 천급 영맥보다 더 강한 영맥인 신급 영맥이 있다더구나. 이는 1억 명 중 한 명 있을까 말까 할 정도로 희귀한 영맥이란다.”
“영맥이 나타나는 방식은 각기 다르지만, 보통은 양으로 등급이 나뉜단다. 그중, 한 개나 두 개를 인급 영맥, 세 개나 네 개를 지급 영맥, 다섯 개나 여섯 개를 천급…… 일곱 개에서 아홉 개를 신급 영맥이라 한다.”
“난 영맥이 여섯 개의 별이 되어 천급 영맥이란다.”
현천노조는 이내 감탄하며 말을 이어갔다.
“일부 신급 영맥이 이뤄낸 영맥 신통의 위력은 정예급 절세의 신통 못지않고 심지어 36가지 절세의 신통 못지않은 것도 있다고 하더구나.”
목진은 그제야 표정이 확 변했다. 일기화삼청을 수련한 그는 36가지 절세의 신통의 위력이 얼마나 대단한 지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해당 등급의 신통을 한 가지라도 장악하면 같은 등급 중에서는 거의 무적이나 다름없었다.
36가지 절세의 신통은 정말 희귀한 존재라 그가 운이 좋지 않았다면 그중 한 가지도 얻지 못했을 것이다.
하여 신급 영맥이 이뤄낸 영맥 신통이 36가지 절세의 신통 못지않다는 현천노조의 말에 흠칫 놀랐던 것이다.
“신급 영맥이라…….”
목진은 이글거리는 눈빛으로 어딘가를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그는 자신의 영맥이 너무 깊게 숨어있어 무슨 등급인지 몰랐다. 희현은 천급 영맥이었지만 목진은 그렇게까지 대단하다고 여기지 않았다.
“이제는 내 체내의 영맥이 느껴지겠지.”
목진은 가볍게 숨을 들이켜며 말했다. 그는 영맥이 얼마나 깊게 숨었든 반드시 찾아내리라 결심했다.
“그럼 지금부터 당신이 나를 지켜주게.”
목진은 가볍게 웃으며 말했다.
그는 목부가 안정을 되찾은 이때, 천존 영체를 완벽하게 가꿔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는 곧 부도신족에 찾아갈 것이고 그곳에서 혈투를 벌이게 될 것이다. 그럼 최대한 빨리 힘을 장악하고 다룰 수 있어야 한다.
목진의 말에 현천노조는 이내 한숨을 쉬었다. 그는 목진이 자신을 부하로 두자마자 이리 부려먹을 줄이야.
그는 고개를 끄덕이더니 백 장 밖에 자리를 잡고 앉아 깊게 숨을 쉬었다. 그리고 상고의 천궁에 그윽하고 순수한 천지의 영력을 느끼며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이곳이 바로 상고의 천궁이겠군. 역시 천제가 가꾼 곳은 남다르군.”
아무리 대천세계의 정예급 세력이라도 이 정도 등급의 수련 성지는 없었고 최정예급 정도는 되어야 비로소 가능했다.
천지존에게도 이런 곳에서 수련하는 것은 많은 도움이 되었다. 30년 동안 목부에 있는 것이 현천노조한테 나쁜 일만은 아니었다.
그 광경에 목진도 가볍게 웃더니 서서히 눈을 감고 마음을 가라앉혔다. 그러자 피와 살, 뼈와 경맥이 생명력을 갖춘 듯 호흡하며 체내에 생기를 부여했다.
목진은 육신의 가장 깊숙한 곳으로 들어갔지만, 여전히 영맥을 발견하지 못했다.
그래도 목진은 포기하지 않고 마음을 다잡고 열심히 영맥을 찾아다녔다.
이렇게 한 시진이 지나자 목진은 장벽이 뚫린 듯한 또 다른 공간을 발견했다.
그곳은 혼돈의 공간으로 신비로운 안개가 가득 차 있어 주위가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이건…….”
목진은 공간에 가득 찬 안개를 살피고는 흠칫 놀랐다. 이건 누군가 안개 건너편의 물건을 발견할까 봐 일부러 안개를 친 것이 분명했다.
누군가 체내에 수작을 부렸다니!
그러나 그는 바로 진정했다. 이를 해내려면 반드시 목진이 영력을 수련하기 전이어야 하는데 그러려면 가능한 사람은 어머니뿐이었다.
부도신족이 목진을 찾아낼까 봐 일부러 그의 영맥을 감춘 것이 틀림없었다.
이것 또한 어머니로서 아들을 보호하기 위한 수단이었다.
“어머니, 고마워요.”
목진은 왠지 뭉클했다.
“그런데 이제 더는 갓난아기가 아니니 그 누구도 이제 저를 건드릴 수는 없어요.”
안개는 목진의 속삭임을 듣기라도 한 듯 빠르게 사라졌다. 잇따라 혼돈의 공간에서 빛이 발하더니 깊숙한 곳에서 보라색 달을 이뤘다.
“보라색 달이 하나뿐이라니?”
현천노조의 말대로라면 이는 최하급 영맥인 인급 영맥이 아닌가?
그런데 그때, 그 주위에 다시 빛이 번쩍이더니 보라색 달들이 연이어 나타났다.
눈 깜짝할 사이에 혼돈의 공간에 보라색 달이 여덟 개나 나타나 신비로운 빛을 발했다.
이와 동시에, 목진의 몸 표면에도 눈부신 빛이 번쩍이더니 달 모양 무늬 여덟 개가 나타나 웅장한 위압감을 형성했다.
백 장 밖에서 상황을 살피던 현천노조는 순간 눈가가 파르르 떨렸다.
“달 여덟 개가 동시에 나타나다니!”
“녀석이 무려 신급 영맥이었단 말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