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94화. 드디어 모습을 드러내다
“보라색 달이 여덟 개라니…….”
목진은 눈부신 보라색 달을 바라보더니 흐뭇하게 웃었다. 그의 체내에 깃든 영맥은 역시나 신맥이었다.
그는 사실 이럴 줄 알았다. 여태껏 그가 선보인 천부적 재능만 봐도 충분히 알 수 있었다.
신맥이 있다고 천지존경에 이를 수 있는 것은 아니지만 말이다. 수련에서는 천부적 재능보다는 마음가짐이 훨씬 중요했다.
확고한 신념과 고난을 헤쳐나갈 자신이 없으면 제아무리 신맥이라도 평범하게 살아갈 수밖에 없을 것이다.
다들 목진이 젊은 나이에 천지존경에 이르렀다고 부러워하겠지만, 그는 지금까지 수없이 목숨을 걸고 싸웠다. 자칫 잘못하면 죽을 수도 있는 상황을 수도 없이 겪었다.
“신맥이 나타났으면 네 영제를 완벽하게 가꾸거라.”
목진이 다시 마음을 가라앉히자 혼돈의 공간이 더워지더니 밖에서 활활 타오르는 화염이 날아와 여덟 개의 보라색 달로 향했다.
이는 영력으로 이뤄진 것이 아니라 목진의 마음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보통 영력 화염은 영맥에 닿지 못하고 심화만 가능했다.
활활!
심화는 날아가 여덟 개의 보라색 달을 감싸더니 현란한 빛을 발하며 녹아내려 보라색 액체를 떨궜는데 이는 떨어지자마자 순식간에 사라졌다.
사실, 보라색 액체는 사라진 것이 아니라 목진의 피와 살에 스며든 것이다.
이와 동시에 목진은 육신의 부족한 점들이 채워지는 것이 느껴졌다.
“역시 그런 거였어.”
목진은 감탄하며 보라색 달을 더 빨리 불태웠다.
어느덧 반 시진이 지나자 혼돈의 공간에 걸려 있던 여덟 개의 보라색 달이 손바닥만큼 작아졌고 목진의 몸 표면에 생긴 달무늬가 점차 또렷해졌다. 그의 몸은 자연스레 천존 영체가 되어갔다.
다만, 수정처럼 투명했던 목진의 천존 영체는 보라색 달 때문에 보랏빛이 도는 것이 상당히 신비로워 보였다.
“보라색 달이 여덟 개면 정말 신맥이군…… 저 녀석은 어떤 영맥 신통을 이룰까?”
현천노조는 목진이 부럽다 못해 질투가 났다. 그가 영맥을 제련해 형성한 영맥 신통은 절세의 신통 중에서도 정예급에 속할 것이 분명했다.
어느새 여덟 개의 보라색 달은 활활 타오르는 심화로 인해 완전히 녹아내려 육신에 스며들었다.
순간, 목진은 이상한 느낌이 들었는데 혼돈의 공간이 파르르 떨리더니 중심에 보라색 광점이 나타난 것을 발견했다.
그것은 빠르게 팽창해 보라색 불씨가 되더니 확 달아올라 활활 타기 시작했다.
그런데 보라색 화염의 내부에 보라색 달 여덟 개가 회전하며 오묘한 기운을 방출하는 것이었다.
“이것이 바로 내 신맥이 이룬 영맥 신통이란 말인가?”
목진은 보라색 화염을 뚫어져라 쳐다보며 중얼거렸다.
잠시 후, 보라색 화염을 자세히 관찰하던 그는 흠칫 놀랐다. 이는 육신과 다른 사물에 아무런 파괴력도 없었지만 영력에 관해서 만큼은 파괴력이 무서울 정도로 강력했다.
보라색 화염은 영력에 닿으면 해당 영력이 다 닳을 때까지 미친 듯이 연소했다.
즉 목진이 누군가와 싸울 때, 그의 보라색 화염이 몸에 닿은 상대방이 무턱대고 영력을 끌어올리면 오히려 불이 더 세게 타오를 것이다.
이는 목진이 성연대륙에서 본 화령풍과 비슷했지만 보라색 화염은 화령풍보다 더 강한 듯했다.
대천세계에서의 수련은 대부분 영력을 기반으로 하는지라 제아무리 진정한 실력이 파악되지 않는 천지존이라도 보라색 화염 앞에서는 꼼짝 못 할 것이다.
‘보라색 화염의 위력이 정예급 절세의 신통 못지않군.’
목진은 감탄을 금치 못했다. 하지만 대천세계의 36가지 절세의 신통과는 어느 정도 차이가 있었다.
그때 목진이 갑자기 피식 웃었다. 36가지 절세의 신통은 대천세계에서도 상당히 귀한 것인데 그가 위력이 비슷한 신통을 이렇게 쉽게 획득하는 것은 말도 안 되는 일 같았다.
목진은 다시 마음을 가라앉히고 보라색 화염을 바라보다가 이를 거두려 했다.
‘영맥 제련을 마쳤으니 일단 수련을 마칠까?’
그런데 그때, 그는 갑자기 이상한 생각이 들었다.
아직도 뭔가 부족한 것 같았다.
목진은 밀려드는 감정을 무시하지 않기로 했다. 이 정도 실력에 이르면 얼핏 드는 생각마저도 분명 그럴 만한 이유가 있기 때문이었다.
‘난 분명 영맥을 제련해 영맥 신통까지 획득했는데 왜 아직도 뭔가 부족한 것 같지?’
목진은 보라색 화염을 바라보더니 갑자기 무언가 생각난 듯 마음을 움직였다.
이에 보라색 화염은 눈 깜짝할 사이에 화해가 되어 혼돈의 공간에서 활활 타올랐다.
잇따라 신기한 장면이 나타났다.
보라색 화염이 활활 타오르자 혼돈의 공간은 거울 깨지듯 균열이 생기더니 ‘퍽!’ 하는 소리를 내고 깨진 것이다.
“이런…….”
목진은 순간 두 눈이 휘둥그레졌다.
혼돈의 공간이 부서지자 만 장의 빛이 솟구쳤는데 그것은 오랫동안 감춰진 것처럼 나타나자마자 엄청난 위엄을 발했다.
목진은 눈가를 파르르 떨며 신성한 빛을 따라 눈길을 돌렸는데 뒤쪽에 신성한 태양이 하나, 둘씩 서서히 떠오르기 시작했다.
태양은 결국 아홉 개가 되었다.
목진 체내에 숨어있던 아홉 개의 태양은 모습을 드러내자마자 천지를 뒤흔들었는데 목진도 갑자기 나타난 아홉 개의 태양의 모습에 화들짝 놀랐다.
“태양이 아홉 개라니, 나한테 신맥이 두 개나 있단 말인가?”
이는 여덟 개의 신맥보다 훨씬 등급이 높은 것이었다.
무려 최정상급 9신맥이었다!
그런데 이미 8신맥을 제련한 목진의 체내에 어찌 9신맥이 숨어있었단 말인가?
목진은 한참 생각하다가 9신맥을 자세히 관찰했는데 육신과 완벽하게 아우러진 것이 보였다.
이는 꼭 타고난 것 같았다.
그는 그제야 8신맥도 제법 좋았지만 9신맥과 비교하면 육신과의 부합도가 조금 뒤처진다는 걸 발견했다.
하나는 타고났고 다른 하나는 누군가 인위적으로 몸에 넣은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어머니, 이것도 어머니께서 하신 겁니까?”
한참 고민하던 목진은 무언가 깨닫고 깊게 숨을 내뱉었다.
그가 일전에 제련한 8신맥은 어머니의 영맥이었을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목진의 9신맥을 감추기 위한 보호막이 분명했다.
목진 체내에는 부도신족의 혈맥이 깃들어있을 뿐 아니라 무려 9신맥이라 종족 사람들이 발견하는 것은 시간문제였다. 하여 어머니께서는 자신의 8신맥을 억지로 박리해 목진한테 심었던 것이다.
보통 영맥은 타인한테 넘길 수 없지만 청연정은 아마 목진이 태어나기도 전에 이 모든 걸 해결했을 것이다.
이러한 생각이 들자 목진은 가슴이 뭉클해졌다. 영맥을 박리하는 것은 자신의 살을 베어내는 것이었는데 어머니께서는 아들을 지켜내기 위해 상상도 하지 못할 고통을 겪으셨다.
목진은 눈가가 어느새 촉촉해졌다.
후우.
그는 깊게 숨을 들이켜며 마음을 가라앉혔다.
“어머니, 정말 감사해요. 하지만 저도 이제 그 모든 걸 감당할 만큼 컸어요.”
“부도신족에서 찾아오려거든 얼마든지 그러라고 해요!”
목진은 눈부신 빛을 발하는 아홉 개의 태양을 바라보며 나지막하게 외쳤다.
“내 몸에서 오래도록 숨어있었으니 이제 모습을 드러낼 때도 되었구나.”
“9신맥이여, 각성하라!”
위잉!
9개의 태양은 목진의 소환을 듣기라도 한 듯 억만 갈래의 신성한 빛을 발하며 하늘 높이 솟구쳤다.
질투 가득한 눈빛으로 목진을 바라보던 현천노조는 목진이 갑자기 눈부신 빛을 발하더니 피부에 새겨졌던 여덟 개의 보라색 달이 서서히 작아지고 엄청난 위엄을 발하는 아홉 개의 신성한 태양 무늬가 나타난 것을 보고 화들짝 놀랐다.
순간, 무한의 뇌명과 함께 바람이 일고 구름이 요동치며 9신맥의 출현에 반응했다.
“미친, 9신맥이라니!”
현천노조는 목진의 몸에 나타난 아홉 개의 태양을 멍하니 바라보다가 한참 지나서야 정신을 차리고 외쳤다.
* * *
대천세계 부도신족의 드넓은 대전 중심에 거대한 암홍색 석비가 우뚝 솟아올랐다. 표면에는 오래된 무늬가 가득 새겨져 있었고 오묘한 파동을 내뿜으며 강도가 다른 영광을 번쩍였다.
이는 부도신족에서 상당히 중요하게 여기는 영맥비(靈脈碑)로 체내에 부도신족 혈맥이 깃든 사람들의 영맥을 관측하고 새로운 아이가 태어나거나 새로운 영맥이 나타났을 때 종족에게 알려주는 역할을 했다.
한편, 영맥비 주위에는 부도신족 사람 수백 명이 앉아 필과 족자를 쥔 채 영맥비를 뚫어져라 쳐다봤다. 그들은 영맥비가 번쩍이는 영광의 강약에 따라 영맥의 등급을 판단하곤 했다.
그들은 부도신족의 혈맥을 아주 엄격하게 관리해왔고, 영맥비는 새로 태어나는 아이들의 체내에 깃든 영맥만큼은 정확하게 집어내곤 했다.
“오늘은 영맥이 얼마나 나타난 것이냐?”
영맥비 앞에 뒷짐을 쥐고 서 있던 영맥전 전주가 영맥비를 한참 바라보더니 손을 휙 저으며 물었다.
“전주님, 오늘은 영맥이 만 개 정도 나타났는데 그중 인맥은 팔천 개, 지맥은 이천 개 좌우, 천맥은 32개였어요.”
책임자가 공손하게 말했고 전주는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체내에 천맥이 깃든 32명의 정체를 밝히거라. 그들의 종족 내부 수련을 허락하고 보상으로 자원을 하사하라.”
천급 영맥은 수련에 관한 천부적 재능이 괜찮다는 걸 의미해 잘만 배양하면 앞으로 부도신족의 정예급 강자가 될 것이다.
이것만 봐도 부도신족의 재력을 충분히 알 수 있었다.
“오늘은 우리 종족에 신맥이 5개밖에 나타나지 않았고 전부 최하급 등급인 7신맥이구나. 지난해보다 못하군.”
영맥전 전주는 아쉬운 듯 한숨을 쉬었다.
천맥도 좋지만 신맥보다 좋은 건 없었다. 체내에 신맥을 지닌 사람도 반드시 천지존경에 이를 거란 보장은 없지만 성공할 확률이 다른 사람들보다 훨씬 높았다.
“제대로 된 신맥이 나타난 것이 언제였던 지 기억도 잘 안 납니다. 쯧쯧, 신맥이 나타나면 정말 요란하겠지요? 지난번에 7신맥이 나타났을 때 영맥전이 하마터면 무너질 뻔하지 않았나요?”
부하들이 감탄하며 한 말에 영맥전 전주는 가볍게 웃으며 말을 이어갔다.
“그런 일은 1년에 몇 번도 일어나지 않는단다. 너흰 운이 좋았던 거란다.”
이에 다들 인정하듯 고개를 끄덕였다. 신맥은 부도신족처럼 실력이 막강한 종족에도 상당히 희귀한 존재로 이를 발견하고 기록하는 이들마저 보상을 받을 정도였다.
영맥비가 조용한 것을 확인한 영맥전 전주는 고개를 끄덕이며 손을 휘익 젓더니 먼저 떠나가려 했다.
“너흰 이곳에 남아 계속 관측하거라. 하나라도 빠지면 절대 안 된다.”
위잉!
그런데 그때, 대전 중심에 놓인 영맥비가 갑자기 파르르 떨더니 굵직한 영력 빛기둥이 미친 듯이 솟구쳤다. 이에 돌풍이 인 것처럼 일부 사람들이 멀리 튕겨 나갔다.
대전은 순식간에 아수라장이 되었다.
영맥 전주도 영력을 끌어올려 영광의 충격을 견뎌내고는 두 눈이 휘둥그레진 채 굵직한 빛기둥을 쳐다봤다.
“영광이 이렇게나 강력하다니! 도대체 어떤 영맥이 나타났단 말인가?”
영맥전 전주는 적잖게 놀랐다. 영맥비의 반응이 이렇게까지 강했던 건 부도신족에서 청연정이 태어났을 때 이후로 처음이었다. 그녀가 8신맥의 소유자란 소식에 부도신족 전체가 들썩였는데 영맥비의 반응은 그때보다 훨씬 강하고 무서웠다.
“설마…… 말로만 듣던 9신맥이란 말인가?”
이러한 생각에 영맥전 전주는 머리가 지끈거렸다. 9신맥은 전설 속 존재라 불릴 만큼 희귀한 존재로 부도신족 역사상, 9신맥을 지닌 사람도 거의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