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96화. 부도성(浮屠城)
보름 뒤, 목부의 고위층이 대전 밖에 모였다. 뒷짐을 쥔 채 조용히 서 있던 목진은 뒤돌아서서 무리 앞쪽에 서 있는 만다라와 현천노조한테 말을 건넸다.
“이번에도 만다라가 나를 대신해 목부를 관리할 테지만, 외부의 적이 찾아오면 현천 장로가 나서주시게.”
목진이 미소를 지으며 한 말에 현천노조는 공손하게 답했다.
“걱정하지 마세요, 부주님. 목부의 장로의 의무를 다하겠습니다.”
만다라도 가볍게 고개를 끄덕이더니 목진을 빤히 쳐다보며 말했다.
“조심해.”
목진은 비록 천지존경에 이르렀지만 부도신족은 대천세계의 5대 고족 중 하나였다. 그러니 걱정될 수밖에 없었다.
부도신족의 실력은 상상도 하지 못할 정도로 강력해 일반 천지존은 감히 덤비지도 못할 것이다.
“걱정 마, 나한테 다 계획이 있어.”
목진도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도 부도신족이 얼마나 강한 종족인지 잘 알지만 따로 생각해둔 바가 있었다.
“이만 갑시다.”
말을 마친 목진은 영계, 용상한테 말을 건넸다. 그들은 부도신족에 머무른 적 있어 함께 가면 분명 도움이 될 것이다.
영계와 용상은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목진, 영계, 용상이 대전 앞에 놓인 전송 영진에 다가가자 웅장한 영력의 빛이 한데 모였다.
“부도신족, 내가 간다.”
목진은 고개를 들고 저 멀리 허공을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목진은 북령경을 떠난 그 날부터 생사를 넘나드는 고난을 수도 없이 겪으며 성장해왔다.
다행히 매번 전화위복으로 엄청난 수확을 거뒀고 북령경의 앳된 소년은 어느새 천지존이 되어 대천세계의 최정예급 강자로 거듭났다.
드디어 부도신족과의 원한을 풀 때가 되었다.
눈부신 영광이 휘몰아쳐 목진 등을 감싸더니 눈 깜짝할 사이에 그들은 그 자리에서 사라졌다.
* * *
부도대륙(浮屠大陸)은 대천세계의 대륙 중 하나로 세력이 많아야 정상인데 이곳에는 부도신족 밖에 없었다.
대륙을 부도로 명명한 것만 봐도 부도신족이 드넓은 땅을 온전히 독차지했다는 걸 알 수 있었는데 아무도 불만을 제기하지 않았다.
부도신족은 대천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종족 중 하나로 부도대륙 정도의 땅을 전부 차지할 자격과 실력이 충분했다.
한편, 부도대륙의 중심에 부도성이라 불리는 커다란 도성이 있었는데 이곳이 바로 대륙의 중심이었다.
부도성은 늘 사람으로 붐볐는데 지금이 바로 가장 떠들썩할 때였다.
다들 부도신족의 성사인 제맥회무를 보러 왔기 때문이었다.
또한, 부도성 중심의 커다란 산맥 위에는 상당히 큰 광장이 펼쳐져 있었는데 사람들이 계속해서 광장에 내려앉는 모습은 그야말로 장관이었다.
“사람이 이렇게나 많이 모였다니, 부도신족은 역시 대단하군.”
광장의 변두리에 서 있는 세 사람 중, 가장 앞쪽에 서 있는 청년이 가볍게 웃으며 말했다.
그들은 천라대륙에서 보름 동안 달려온 목진과 영계, 용상이었다.
목진은 부도성에 온 사람들에게서 뿜어져 나오는 엄청난 파동을 발견하고 이내 감탄했다.
그들은 전부 천지존이었다.
이는 대천세계의 다른 곳에서 패주가 되고도 남을 실력인데 이곳에서는 너무 평범해 보였다.
“부도신족의 초청장을 받고 온 건 대천세계의 정예급 세력이 대부분이야. 그 외, 실력이 조금 뒤처지는 세력들은 부도신족과 가깝게 지내려고 일부러 찾아온대.”
옆에 서 있던 영계가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목부도 실력이 조금 뒤처지는 세력에 속하겠지?”
목진이 피식 웃으며 물었다. 목부는 목진 덕분에 대천세계의 엄청난 세력에 속하게 되었는데 전체적인 실력을 보면 부도성에 온 대부분의 세력보다 못했다.
“주인님만 풀려나시면 목부는 성급 천지존을 확보한 거나 마찬가지니 대천세계의 정예급 세력이 아닐 리 없죠.”
용상이 콧방귀를 뀌며 말했다. 그 말에 목진은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고는 고개를 들고 산맥의 위쪽을 바라봤다. 그곳에는 거대한 공간의 문이 빛을 발하고 있었다. 공간의 문 너머에는 부도계(浮屠界), 즉 부도신족의 집거지가 있었다.
그곳이야말로 부도신족의 핵심이었다.
부도대륙에서 생활하는 사람들은 기껏해야 일반 부도족 백성이었고 부도계에 들어가야 비로소 진정한 부도신족 사람으로 인정받을 수 있었다.
그 밖에 공간의 대문 밖에 거대한 배들이 오갔는데 이는 드넓은 광장에 내려앉아 손님을 싣고 부도계를 향하곤 했다.
공간 대문에는 수호 영진이 있어 부도신족의 배만 드나들 수 있었다. 부도신족의 내부는 제아무리 천지존이라도 들어가고 싶다고 들어갈 수 없었다.
“부도신족의 대문을 넘기가 쉽지 않군.”
영계는 미간을 살짝 찌푸리며 말했다. 부도신족의 규칙에 따르면 배는 초청장이 있는 엄청난 세력을 먼저 이송하고 이들처럼 초청장이 없는 사람들은 마지막까지 기다려야 했다.
비록 다들 부도신족의 이러한 대처법이 마음에 들지 않았지만 따로 원하는 바가 있어 찾아온 거라 꾹 참기로 했다.
“우리도 기다립시다. 우린 축하해주러 온 것이 아니라서 신분이 밝혀지기라도 하면 아마 공간의 문조차 넘지 못할 거예요.”
목진은 대수롭지 않게 웃더니 한기 어린 눈빛으로 공간 대문을 노려봤다.
“소주님, 이렇게 부도신족에 와도 되는 걸까요?”
용상이 머뭇거리며 물었다. 목진의 신분을 들키기라도 하면 부도신족의 실력으로 천지존경에 이른 목진을 잡는 건 일도 아니었다.
“걱정하지 마세요. 난 저들한테 잡히러 온 것이 아니랍니다.”
목진이 미소를 지으며 한 말에 용상은 조금이나마 시름이 놓였다. 목진은 절대 승산이 없는 일에 나서지 않는 사람이니 말이다.
그때 멀리서 빛줄기가 솟구치더니 떡하니 광장에 내려앉았다.
빛이 가시자 빨간색 치마를 입은 여인이 모습을 드러냈는데 영롱한 몸매에 요염한 얼굴을 가진 여인은 무척 매력적으로 보였다.
그러나 여인의 한없이 차가운 눈빛은 그녀의 아름다운 모습과는 상당히 대조를 이뤘다.
천지존들은 여인의 출현에 저도 모르게 눈길을 주었다.
그런데 여인의 치마에 새겨진 화염무늬를 보더니 흠칫 놀라 바로 눈길을 거뒀다.
화염무늬는 대천세계에서 부도신족마저 감히 건드리지 못하는 최정예급 세력의 상징이었다.
바로 무한의 화역이었다.
“무한의 화역에서도 사람을 보냈다니…… 저들은 여태껏 부도신족의 제맥회무에 참석한 적이 단 한 번도 없었는데 이번에 왜 왔을까?”
사람들이 수군대기 시작했다.
그러나 여인은 사람들의 시선을 무시한 채 사람들을 거느리고 광장의 중심으로 향했다. 부도신족의 집사는 그녀를 발견하더니 바로 오만한 자태를 거두고 굽신거리며 다가갔다.
그런데 그때, 빨간색 치마를 입은 여인이 주위를 쓰윽 훑더니 입꼬리를 씰룩거렸다.
잇따라 여인은 부도신족의 집사를 뒤로 한 채 광장의 변두리에 서 있는 훤칠한 소년한테 다가갔다.
“목진아, 역시 너도 왔구나.”
목진도 상대방을 발견하고 활짝 웃으며 말을 건넸다.
“소소야, 오랜만이야.”
빨간색 치마를 입은 여인은 다름 아닌 소소로 무한의 화역을 대표해 부도신족에 온 모양이었다.
목진의 말에 소소의 차가웠던 눈빛은 부드러워졌다. 그녀는 입을 가린 채 웃으며 뒤에 서 있는 사람을 소개했다.
그는 하얀색 도포를 입은 창로한 노인으로 온화하게 생겼는데 그윽한 눈을 보니 온갖 풍파를 겪어 모든 걸 통달한 사람이란 느낌이 들었다.
“목진아, 이분은 내 아버지의 스승님이야.”
소소가 노인의 팔짱을 낀 채 생긋 웃으며 소개하자 목진은 흠칫 놀랐다. 대천세계에 이름을 날린 전설 같은 존재 염제의 스승이 하얀색 도포를 입은 노인이었다니!
목진은 눈가를 파르르 떨며 인자하게 생긴 노인을 바라보며 정중하게 인사를 올렸다.
“저는 목진이라고 합니다. 선배님을 뵙습니다.”
목진은 노인한테 정중하게 인사를 올렸다. 염제 같은 인재를 배양한 사람이 보통사람일 리가 없었다.
“허허, 난 약진(藥塵)이라고 한단다. 우리 둘 다 이름에 ‘진’ 자가 있는 걸 보면 인연이 있는 것 같구나.”
백발노인은 인자하게 웃더니 목진을 쓰윽 훑으며 말을 이어갔다.
“이렇게 젊은 나이에 천지존경에 이르렀다니, 내가 아는 최연소 천지존이구나. 그래서 소염이 늘 너를 칭찬했구나.”
“염제 선배님께서 저를 너무 좋게 봐주셔서 그렇습니다.”
목진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그는 전혀 젊은 나이에 천지존경에 이르렀다고 우쭐거리지 않았다.
잇따라 목진은 상대방을 힐끗 쳐다봤는데 노인한테서 압박감이 느껴졌다. 노인은 진정한 선급 천지존으로 영급 천지존보다 강했다.
하긴, 염제의 스승이고 무한의 화역 같은 엄청난 세력에서 지내니 선급 천지존경에 이를 법도 했다.
목진은 체내에서 자신 못지않은 강력하기 그지없는 영력 파동을 내뿜는 소소를 뚫어져라 쳐다보며 물었다.
“너도 천지존경에 이른 거야?”
목진은 흠칫 놀랐다.
지난번까지만 해도 소소는 목진보다 조금 강하긴 했어도 천지존경에 이르기까지는 상당히 멀다고 느꼈었다. 목진은 위면지령 덕분에 천지존경에 이르렀는데 그럼 소소는 어떻게 천지존경에 이를 수 있었을까?
“왜, 이 세상에 천재가 너 하나뿐이라고 생각해?”
소소가 목진을 노려보며 콧방귀를 뀌었다.
“수련 시간으로 따지면 소소가 수련한 시간이 너의 십수 배는 될 거란다. 그런데 체질 문제로 소소는 일정 시간 지나면 잠들곤 한단다. 대신 잠에서 깨어나면 실력이 폭등하지만 말이다. 이번에도 잠이든지 1년 만에 깨어났는데 바로 천지존경에 이르렀더구나.”
옆에 서 있던 약진이 껄껄 웃으며 말했고 목진은 입이 떡 벌어진 채 괴상한 눈빛으로 소소를 쳐다봤다. 이 세상에 잠만 자면 천지존경에 이를 수 있는 사람이 있다니, 이 얼마나 좋은 방법이란 말인가?
소소와 비교하면 생사의 고비를 수도 없이 겪은 목진의 수련 방식이야말로 험난하기 그지없었다.
“보긴 뭘 봐!”
소소는 괜히 부끄러워 버럭 소리를 질렀다.
이에 목진은 머쓱하게 웃더니 눈길을 거두고 뒤에 서 있던 영계와 용상을 소개했다.
한편, 사람들은 어리둥절하게 목진 등을 바라봤다. 그들은 무한의 화역과 사이가 좋은 목진이 절대 보통의 사람들은 아니라고 생각했다.
슉!
그때 저 멀리서 다시 바람을 가리는 소리가 들리더니 십수 명의 사람들이 광장 중심에 내려앉았다.
순간, 엄청난 위압감이 형성되어 떠들썩했던 광장은 금세 조용해졌고 다들 그들한테 눈길을 돌렸다.
가장 앞쪽에 서 있는 사람은 튼실한 사내로 흑백 도포를 입었는데 동공도 한쪽이 검은색, 한쪽이 하얀색인 것이 상당히 특이해 보였다.
“마하고족 사람들이군. 그래서 내뿜는 기운이 남달랐던 거였어.”
누군가 흑백 도포를 입은 사람들을 보더니 흠칫 놀라 말했다.
마하고족도 대천세계의 5대 고족 중 하나였다.
정작 사내는 사람들의 경외의 눈빛을 무시한 채 행차를 나온 제왕처럼 꿋꿋이 서 있었다. 이에 부도신족의 집사는 바로 달려가 가장 호화로운 배를 띄웠다.
이는 가장 존귀한 손님한테만 제공하는 배였다.
“마하고족이라…….”
목진도 기세등등하게 나타난 사람들을 빤히 쳐다봤다. 그는 만고불후신의 완전체가 바로 마하고족에 있다는 것이 생각났다.
그가 수련한 불후금신은 대성했으니 언젠가 마하고족에 찾아가 최종 진화를 거쳐 진정한 만고불후신을 이룰 것이다.
“뭐지?”
그런데 그때, 그는 체내에 자금색 빛이 번쩍이더니 불후금신이 나타날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갑작스러운 변고에 흠칫 놀란 목진은 바로 이를 억제하고 안색이 확 어두워진 채 상대방을 바라봤다.
불후금신은 흑백 동공을 지닌 사내 때문에 변화가 생겼던 것이었다.
이와 동시에, 무덤덤하게 서 있던 사내도 흠칫하더니 가던 길을 멈추고 목진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양자는 눈을 마주치자 체내의 기혈이 요동치는 것이 느껴졌다.
이러한 변화에 목진은 이내 미간을 찌푸렸다. 그는 상대방한테서 살기를 느꼈다.
“저 녀석도…… 불후금신을 수련했군!”
목진은 상대방도 불후금신을 수련한 것을 발견하고 적잖게 놀랐다.
“마하고족에 만고불후신의 완전한 수련법이 있으니 불후금신을 수련해낸 사람이 있을 법도 하지.”
목진은 눈가를 파르르 떨며 중얼거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