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97화. 부도계
“제법이군. 다른 방법으로 불후금신을 수련해낸 사람이라…….”
마하고족은 상고의 강자인 불후대제한테서 만고불후신의 수련법을 전수받아 여태껏 만고불후신의 정통 계승자로 자부심을 지니고 있었다. 이에 다른 방법으로 불후금신을 수련한 사람들을 짓밟아왔다.
만고불후신을 수련해낸 사람이 나타나면 마하고족은 만고불후신 정통 계승자의 신분을 잃게 되기 때문이었다.
하여 흑백 동공을 지닌 사내는 살기 가득한 눈빛으로 목진을 바라봤던 것이었다.
목진의 출신을 캐려 하던 그는 옆에 서 있는 소소와 약진을 발견하고 흠칫 놀랐다.
“무한의 화역이라니!”
녀석은 눈가를 파르르 떨며 소소 등을 바라보더니 옷깃을 휘날리며 떠났다.
“마하고족 사람들은 역시나 얄미워.”
소소는 떠나가는 사내의 뒷모습을 보더니 콧방귀를 뀌며 말했다.
“저 사람은 누구야?”
목진은 언젠가 불후금신을 수련한 상대방과 마하고족에서 만고불후신의 쟁탈전을 벌이게 될 거라 알아볼 필요가 있었다.
“저 사람은 마하유로 마하고족 족장 마하천의 동생이란다.”
“마하천이라…….”
목진은 대천세계에 널리 이름을 날린 마하천의 이름을 듣더니 깜짝 놀랐다.
“마하천은 야심만만한 사람으로 세워진 지 얼마 안 된 무한의 화역도 집어삼키려 했는데 아버지께서 나서서 녀석을 쓰러뜨렸어. 그 후로는 더는 우리 무한의 화역에 덤비지 못했지.”
소소의 말에 목진은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이로써 무한의 화역은 대천세계의 최정예급 세력으로 거듭났고 아무도 감히 그들을 건드리지 못했다.
“천제께서는 엄청난 뒷배와 상당한 실력을 갖춘 뒤, 마하고족에 찾아가야 한다고 하셨는데 지금 보니 괜한 말이 아니었어. 실력이 안 되면 만고불후신과 인연이 있어도 절대 그 수련법을 획득하지 못할 거야.”
만고불후신의 수련법을 획득하는 일에 어느 정도 자신이 있었던 목진은 오늘, 마하유를 보니 싸우지 않고서는 절대 얻을 수 없을 거란 생각이 들었다.
“우리도 이만 부도계에 들어가자.”
소소는 자신을 힐끗거리는 사람들이 점점 많아지자 안색이 어두워져 말했다.
이에 목진 등은 이만 떠나려 했는데 익숙한 파동을 발견하고 피식 웃으며 다시 입을 열었다.
“잠시만, 그 사람이 왔어.”
그들은 바로 목진 등의 주위에 내려앉았다. 그중 한 소녀가 가녀린 팔로 목진의 팔을 꽉 끌어안으며 생긋 웃었다.
“히히, 목진아. 오랜만이야, 내 생각은 많이 했어?”
목진은 여인의 명쾌한 웃음소리를 듣더니 생긋 웃었다.
목진 옆에서 번쩍이던 영광이 사라지더니 잘록한 허리와 길쭉한 다리를 드러낸 소녀가 모습을 드러냈다. 하나로 묶은 머리는 찰랑거리며 청춘의 활력을 마음껏 방출했다.
예쁘장하게 생긴 소녀는 생글생글 웃었는데, 보는 것만으로도 기분이 좋아졌다. 그녀는 바로 임정이었다.
“이번에도 몰래 나온 거야?”
“그럴 리가!”
목진이 피식 웃으며 한 말에 임정은 코를 찡긋하더니 한 발 뒤로 물러났다. 그러자 뒤쪽에 영광이 번쩍이더니 누군가 또 모습을 드러냈다. 그런데 목진 등은 상대방의 모습에 표정이 괴상해졌다.
하얀색 도포를 입은 채 장발을 드리운 그는 요물이라 불릴 정도로 아름답게 생겼는데 자세히 보니 여인이 아니라 사내였다.
“이분은 임초(林貂) 삼촌이셔. 아버지와 절친한 벗이야.”
임정은 준수하게 생긴 사내의 팔짱을 끼고 배시시 웃으며 말을 이어갔다.
“참 예쁘게 생기셨지?”
목진 등은 순간 말문이 막혔고 준수한 사내도 입가를 파르르 떨었다.
다른 사람이 이리 말했으면 벌써 혼냈을 텐데 임정은 너무 사랑스러워 그럴 수가 없었다.
“허허, 네가 무경의 이인자인 임초구나.”
소소 옆에 서 있던 약진이 미소를 지으며 한 말에 목진은 흠칫 놀랐다. 무경의 이인자인 그는 하위면 출신인 천요초(天妖貂)로 대천세계에 건너와 여러 번 진화를 거쳐 비로소 엄청난 신수가 되었고 실력은 선급 천지존 못지않다고 들었다.
“약진 선배님을 뵙습니다.”
준수하게 생긴 임초는 차가운 표정을 거둔 채 공손하게 인사를 올리더니 목진을 쓰윽 훑어보며 물었다.
“네가 목진이냐?”
“임초 선배님을 뵙습니다.”
목진은 고개를 끄덕이며 답했다.
“역시 남다르구나. 임동이 괜히 너를 칭찬한 것이 아니었구나.”
임초는 이내 감탄했다. 그는 목진이 영급 천지존이지만 언젠가 대천세계의 최정예급 강자인 성급 천지존경에 이를 가능성이 상당하단 걸 알아챘다.
“네가 전한 서신은 잘 받았으니 필요할 때 나설 것이다.”
약진도 인자하게 웃으며 다시 입을 열었다.
“필요하면 무한의 화역에서도 너를 도와줄 거란다.”
목진은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비록 천지존경에 이르렀지만 부도신족에서 어떻게 나올지 몰라 준비를 철저히 하기로 했다. 목진 혼자서 부도신족 전체를 상대한다는 건 말도 안 되는 일이었다.
하여 그는 한 달 전에 도움을 청하고자 무경과 무한의 화역에 서신을 보냈다. 그런데 이는 어디까지나 부도신족이 규칙을 위반했을 때를 대비한 일이었다. 그게 아니라면 목진은 두려울 것이 없었다.
“고맙습니다. 그런데 또 빚을 지게 되었네요.”
목진은 임초, 약진한테 감사의 인사를 전했다.
일전에 염제와 무조가 목진을 도와준 이유는 그가 자신의 딸인 소소와 임정을 도와줬던 은혜를 갚기 위해서였다. 그러니 지금은 목진이 무한의 화역과 무경에 빚을 진 것이 확실했다.
“이제 넌 그럴 자격이 있단다.”
임초는 가볍게 웃으며 말했다. 대천세계에서 아무나 무경이나 무한의 화역 같은 최정예급 세력을 움직일 수 있는 건 아니었다. 그런데 목진은 젊은 나이에 천지존경에 이르렀고 언젠가 성급 천지존경에 이를 가능성이 상당해 자격이 충분했다.
“앞으로 제가 필요한 곳이 있으면 언제든지 불러주세요. 최선을 다할 겁니다.”
목진도 가볍게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그 광경에 영계와 용상은 몰래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그들은 그제야 목진이 부도신족에 온 이유를 알 것 같았다.
무한의 화역과 무경의 도움이 있으면 부도신족에서 억지를 부릴까 봐 걱정할 필요가 없었다.
한편, 영계는 흐뭇하게 목진을 바라봤다. 북창령원에서 수련하던 앳된 소년은 어느덧 대천세계의 최정예급 세력인 무경과 무한의 화역을 움직일 수 있을 만큼 성장했다. 아무리 부도신족이라도 그들을 상대로 함부로 못 할 것이다.
“그럼 이만 부도계로 들어갑시다.”
약진이 껄껄 웃으며 말했다. 다들 고개를 끄덕이며 함께 나섰는데 부도신족의 집사가 달려와 최고급 배를 건넸다.
대천세계에서 무한의 화역과 무경의 지위는 마하고족 못지않았고 아무리 5대 고족이라도 염제와 무조가 장악한 세력을 무시할 수는 없었다.
목진 등은 무한의 화역과 무경 덕분에 최고급 배를 타고 저 멀리 있는 공간 대문으로 향했다.
배의 속도는 상당히 빨라 1각도 안 되는 사시에 공간 대문 앞에 도착했고 영광을 발하며 서서히 대문을 넘었다.
순간, 강대한 힘이 휘몰아쳐 약진과 임초마저 흠칫 놀랐다.
“이것이 부도신족의 호위 대전이란 말인가?”
목진은 미간을 찌푸리며 허무한 공간을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영진 종사인 그는 거대하기 그지없는 영진이 이 공간을 보호하고 있는 것이 느껴졌다. 아무리 성급 천지존이라도 영진을 뚫기 힘들 것이다.
“호위 대진에 여러 가지 수법이 깃든 걸 보면 부도신족 사람들이 계속해서 보완한 것 같군.”
목진은 눈을 감고 영진을 관찰하다가 어디선가 익숙한 느낌이 드는 것을 발견했다.
“이건 어머니의 수법이야. 어머니께서도 호위 대진의 보완에 참여하셨고 제일 뚜렷하게 느껴지는 것으로 보아 시간이 얼마 지나지 않은 것이 분명해.”
목진은 눈가를 파르르 떨더니 입꼬리를 씰룩거리며 눈을 떴다.
잠시 후, 공간 대문에 들어서자 눈앞의 광경은 완전히 다른 세상에 들어선 것처럼 완벽하게 변했다. 웅장하고 순수한 영력으로 가득 찬 공간에 여러 가지 특이한 현상이 나타났다.
“역시 부도신족의 핵심 구역은 남다르군.”
목진은 이내 감탄했다. 상고의 천궁마저 이곳보다 못할 정도였다.
그런데 이는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상고의 천궁은 천제가 혼자서 가꾼 곳이고 사망한 뒤로 돌본 사람이 없어 오랜 세월 황폐화 되었지만 부도계는 부도신족에서 수만 년 동안 애써 가꾼 공간이었다. 당연히 차이가 날 수밖에 없었다.
배는 2각 정도가 지나서야 점차 속도를 줄였다.
이에 목진 등이 고개를 들어보니 우뚝 솟아오른 커다란 산맥들 사이에 흑탑이 가득했고 오래된 전각이 사이사이 놓여 있었다.
그 구역은 창망하고 오래된 기운으로 가득 차 있었다.
배가 드디어 목적지에 도착하자 저 멀리 있던 흑탑에서 빛줄기 몇 갈래가 날아왔다.
“부도신족의 공공(孔崆)이 약진 선배님과 임초 선생을 뵙습니다.”
공공은 머리가 희끗한 노인으로 강대한 압박감을 방출하는 것으로 보아 영급 천지존이었다.
“공공 장로였군.”
약진과 임초는 고개를 끄덕이며 가볍게 인사를 나눴다.
목진도 공공이라 불리는 장로를 쓰윽 훑더니 뒤쪽에 서 있는 여인이 두 눈이 휘둥그레진 채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것을 발견하고 흠칫 놀랐다.
“청상아…….”
그는 부도신족에 오자마자 청상과 만나게 될 줄 몰랐다.
“멀리서 온 귀빈들이니 일단 쉬세요.”
약진과 임초한테는 태도가 공손하던 공공 장로가 뒤쪽에 서 있는 목진을 쓰윽 훑으며 물었다.
“넌 처음 보는 것 같은데 초청장이 있느냐?”
“이 아이는 우리 두 집안과 인연이 있어 함께 부도신족의 성사를 보러 온 것이란다.”
공공은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지만 표정이 확 변했다.
“나를 따라오세요.”
공공은 목진 등과 함께 웅장한 산맥으로 향했는데 조용하고 오래된 정원이 가득한 것이 귀빈만 들어갈 수 있는 곳이 분명했다.
“청상, 넌 이 세 분을 지원으로 모시거라.”
공공은 직접 약진, 임초 등을 모시려 했고 별 볼 일 없는 목진 등은 청상한테 맡겼다.
이에 청상은 고개를 가볍게 끄덕이더니 목진 등은 안내했다. 목진은 약진, 임초 등과 가볍게 인사를 나누고 영계, 용상과 함께 자리를 떠났다.
“죽고 싶어 환장했어? 왜 제 발로 부도신족에 찾아온 거야?”
청상은 목진 등을 거느리고 사람이 없는 곳에 가서야 갑자기 멈춰서더니 뒤돌아서서 씩씩거리며 목진을 노려봤다.
“이건 스스로 덫에 걸려든 거나 마찬가지란 말이야!”
“스스로 덫에 걸려들다니?”
목진은 미소를 지은 채 잔뜩 화가 난 청상을 바라보며 말을 이어갔다.
“어머니께서 나를 지키기 위해 지금까지 고생하셨는데 내가 어찌 멍청한 짓을 할까?”
“너도 알긴 해? 여긴 부도신족의 본부인 부도계야. 아무 장로나 나서도 지지존 대원만 밖에 안 되는 너를 포박하는 건 식은 죽 먹기야!”
청상은 두 눈을 부릅뜨고 목진을 노려봤다.
그녀는 엄청난 위험을 무릅쓰면서까지 목부에 찾아가 부디 잘 숨어있으라고 귀띔하였건만 목진은 제 발로 부도신족에 찾아왔다. 화가 나지 않을 리 없었다.
“장로를 아무나 파견한다고 날 포박할 수 있는 건 아닐걸?”
목진이 히쭉거리며 한 말에 청상은 인상을 확 찌푸렸다.
“야!”
그녀는 목진이 너무 오만방자하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목진이 앞으로 나서자 무섭고도 웅장한 기운이 휘몰아쳐 주위의 공간마저 격렬하게 떨렸다.
청상은 목진이 순식간에 방출한 엄청난 기운에 화들짝 놀랐다.
이는 일부 장로들보다 실력이 강해야 이룰 수 있는 강력한 기운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