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98화. 청맥의 현황
“설마…… 천지존경에 이른 거야?”
청상은 두 눈이 휘둥그레진 채 목진을 바라봤다. 1년 전만 해도 목진은 겨우 지지존 대원만급 강자였는데 어찌 한 해 만에 그 어려운 관문을 넘고 천지존경에 이르렀단 말인가?
그의 수련 속도는 도대체 얼마나 빠르고 천부적 재능은 또 얼마나 뛰어나단 말인가?
부도신족 사람인 청상은 천지존경에 이르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지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아무리 부도신족의 자원이 있어도 천지존경에 이른 사람이 얼마 없는 것만 봐도 알 수 있었다.
현라와 묵심만 봐도 현맥, 묵맥 젊은이 중 최정예급 강자인데 부도신족에서 애써 배양해도 겨우 곧 천지존경에 이를 실력을 갖췄을 뿐이었다. 그들이 진정한 천지존경에 이르는 날이 또 언제가 될지는 아무도 몰랐다.
그런데 목진은 현라와 묵심보다 먼저 천지존경에 이르렀으니, 이보다 놀라운 일은 없을 것이다.
“운이 좋았을 뿐이야.”
목진의 말에 청상은 한참 지나서야 정신을 차리더니 복잡미묘한 눈빛으로 그를 바라봤다. 이 일이 부도신족에 알려지면 분명 큰 파동이 일 것이다.
다들 목진을 죄인으로 취급해 부도신족의 지지는커녕, 죽이지 못해 안달이었다. 하여 그의 천부적 재능이 아무리 뛰어나다고 해도 이룰 수 있는 성과가 상당히 제한적이라고 여겼는데 그가 천지존경에 이르렀단 사실이 알려지면 다들 경악할 것이 분명했다.
또한, 저들이 죄인으로 여긴 목진은 부도신족의 도움이 없어도 종족에서 심혈을 기울여 배양한 천재들을 손쉽게 능가했다는 사실을 알게 될 것이다.
“아…… 아무리 천지존경에 이르렀다고 해도 부도신족에 오면 어떡해?”
청상은 깊게 숨을 들이켜며 진정하고 말을 건넸다. 천지존이 강하긴 하지만 실력이 막강한 부도신족한테 위협이 될 수 있는 건 아니었다.
영급 천지존은 물론이고 성급 천지존이라도 감히 부도신족에서 우쭐거리지 못할 것이다.
“그건 내가 알아서 할게.”
목진이 무덤덤하게 고개를 끄덕이며 한 말에 청상은 가볍게 한숨을 쉬었다. 그녀는 자신이 아무리 말해 봤자 아무런 소용도 없다는 걸 알기에 포기하고 목진 등을 조용한 정원으로 안내했다.
“이 일을 청훤 장로님한테 알려 드려도 돼?”
그 말에 목진이 잠시 고민하다가 묵묵히 고개를 끄덕이자 청상은 조금이나마 안심하고 물러났다.
“오늘부터 외출은 최대한 자제하고 제맥회무를 시작하면 다시 봅시다.”
목진은 청상이 멀리 떠나간 것을 확인한 뒤 돌아서서 영계, 용상한테 말했다.
부도신족에서 누군가 목진을 알아보면 괜히 일만 복잡해질 것이다. 비록 무한의 화역과 무경이 돕겠다고 했지만 이대로는 목적을 달성하기 어려울 것이다.
이에 영계와 용상도 동의하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들은 부도신족에서 지낸 시간이 있어 부도 종족이 얼마나 강력한지 잘 알았다. 지금은 최대한 조심하는 것이 최선이었다.
이어 목진은 정원에 있는 정자에 자리를 잡고 앉더니 고개를 들고 수많은 영인이 번쩍이는 하늘을 바라봤다.
대부분은 부도계의 하늘이 그저 웅장하고 순수한 영력으로 가득 찬 것으로 보이겠지만 목진은 그 속에 숨은 거대한 영진이 보였다.
이는 부도신족의 호위 영진으로 영진 종사인 목진도 이해하기 어려울 정도였다.
다행히 목진은 이를 깨닫고자 연구하는 것이 아니었고 익숙한 수법을 찾아내는 것이 목적이었다.
목진은 오후 내내 영진을 관찰하더니 해가 질 무렵에야 눈길을 거뒀다.
“역시 그렇단 말인가?”
목진은 이상한 표정을 지은 채 중얼거렸다. 그는 부도신족의 호위 대진에 결함이 있는 것을 발견했다.
해당 결함은 쉽게 찾아내기 어렵지만 익숙한 수법이라 목진은 이를 보다 쉽게 찾아냈다. 이건 어머니께서 남기신 것이 분명했다.
“뭐지?”
목진은 갑자기 정원에 공간 파동이 이는 것을 발견하고 깜짝 놀랐다.
공간 파동이 인 곳에서 청색 치마를 입은 아름다운 여인이 모습을 드러냈는데 그녀는 다름 아닌 청훤 장로였다.
“청훤 장로님이 이렇게 빨리 오실 줄은 몰랐네요.”
목진이 미소를 지으며 한 말에 청훤 장로는 귀신처럼 순식간에 그의 앞쪽에 나타나 손을 내밀었는데 손에서 영롱한 빛을 방출해 목진에게 향했다.
그녀가 대수롭지 않게 날린 장풍에 정자가 와르르 무너졌고 주위의 공간은 격렬하게 진동하며 곧 부서질 것 같았다.
그런데 목진은 상대방의 무서운 공격에도 태연하게 서 있더니 몸에 닿기 직전에 가볍게 옷깃을 휘날렸다.
퍽!
나지막한 소리가 울려 퍼졌다. 목진은 그대로 서 있었지만 청훤 장로는 온몸을 파르르 떨며 뒤로 몇 보 물러났고 아래쪽 공간도 와장창 깨졌다.
“청상이 한 말을 믿지 않았는데 지금 보니 과연 천지존경에 이르렀구나.”
청훤은 손을 거두더니 복잡미묘한 눈빛으로 목진을 바라봤다.
“넌 여기 오지 말았어야 했단다.”
흐뭇하게 웃던 청훤은 이내 한숨을 쉬며 말했다.
“부도 신족 때문에 나와 어머니는 수십 년 동안 헤어져 지냈는데 왜 오면 안 되나요?”
목진은 한기 어린 눈빛으로 청훤을 바라보며 물었다.
“성급 천지존이나 다름없는 네 어머니도 부도신족과 싸워 이길 수 없는데 영급 천지존인 네가 와서 뭘 하겠다는 것이냐?”
청훤 장로는 쓸쓸하게 웃으며 물었다.
“부도신족이 아무리 강해 봤자 대천세계에서 두려울 것이 하나도 없는 건 아니지 않나요?”
전혀 두려워하지 않는 목진의 태도에 청훤 장로는 멈칫하더니 무안한 듯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그녀는 목진이 홧김에 이러는 줄 알았다.
부도신족은 확실히 대천세계에서 두려워하는 것이 없는 것은 아니었지만 목진한테만큼은 그럴 수 있었다.
“어떻게 할 작정이냐?”
청훤 장로는 머뭇거리다가 이를 악물고 물었다.
“절 도와줄 수 있나요?”
청훤 장로의 태도에 목진은 표정이 조금이나마 밝아졌다.
“아무리 그래도 청연정은 내 동생이란다. 그런데 청맥은 날이 갈수록 쇠퇴해져 수중의 권력도 얼마 없단다. 더구나 현맥과 묵맥은 우리 청맥을 짓밟지 못해 안달이라 너를 도와주고 싶어도 힘이 닿지 않을 가능성도 있구나.”
“네 어머니를 지켜내지 못했으니 너라도 지켜내고 싶구나. 안 그러면 청맥은 내 동생과 네 외할아버지한테 너무 미안하지 않을까?”
목진은 청맥이 외할아버지께서 키운 세력으로 겨우 부도신족의 최정예급 세력으로 만들었는데 어머니가 외할아버지가 사망한 뒤, 그 뒤를 이어받지 않고 부도신족을 떠나 목진을 낳은 일로 종족의 미움을 사서 지금까지 갇혀있게 되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청맥의 현재 상황에 대해 말해줄 수 있나요?”
목진은 조심스럽게 질문을 던졌다.
청맥이 가진 권리는 얼마 안 되지만 목진한테 보탬이 되는 것만은 사실이었다. 그는 혼자서 부도신족 전체를 상대할 생각이 전혀 없었다.
“네가 예상한 것보다 훨씬 못할 거란다. 만약 이번 제맥회무에서 청맥이 아무런 성과도 이루지 못한다면 부도계에서 쫓겨날 수도 있단다.”
청훤이 쓸쓸하게 웃으며 한 말에 목진은 미간을 확 찌푸렸다. 청맥의 처지가 어쩌다 이렇게까지 되었단 말인가?
“제맥회무는 도대체 뭔가요?”
“부도신족의 최고 권력 기구는 장로원으로 모든 명령은 장로원의 합의를 거쳐야 한단다. 하여 장로원을 장악하면 부도신족을 장악한 거나 다름없단다.”
“현재 장로원에는 19명이 있는데 그중 현맥이 7명, 묵맥이 6명, 청맥은…… 3명 밖에 없단다. 그 밖에 다른 분맥 사람을 합치면 3명 정도 된단다.”
청훤은 가볍게 한숨을 쉬며 답했다.
“3명 밖에 없다 이건가…….”
목진은 인상을 찌푸리며 중얼거렸다. 19명에서 3명이 이룰 수 있는 힘은 상당히 미약했다.
“청맥은 한때, 장로원에 6명이나 있었는데 실력이 뒤처지면서 자리를 지키는 것이 점차 어려워지더구나. 하여 매번 제맥회무 때마다 청맥은 장로원에서 한 자리씩 적어지곤 했단다.”
“규칙에 따르면 각 세력은 장로원의 인수만큼 출전해 대결을 펼치는데 패배한 횟수가 더 많으면 한 자리를 내놓아야 한단다.”
“그렇군요.”
청훤 장로의 해명에 목진은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부도신족에서 제맥회무를 중시하는 데는 다 이유가 있었다. 이는 부도신족의 최고 권력 기구에 들어갈 각 세력의 인수와 직결되었다.
어느 세력이든 장로원에 한 명이라도 더 들어가면 부도신족에서의 지위가 확실히 올라갈 것이다.
목진은 제맥회무의 방식을 바로 알아들었다. 현재 장로원에 청맥은 3명이 있으니 3명을 출전시켜 3번의 대결을 거쳐 승패를 겨뤄야 하는데 두 번 이상 패배하면 한 자리를 내놔야 하고, 두 번 이상 승리하면 자리를 지킬 수 있다.
“현맥과 묵맥은 청맥을 잡아먹지 못해 안달인지라 제맥회무 때마다 우리를 상대하곤 했단다. 하여 최근 3회의 제맥회무를 거쳐 청맥은 세 자리를 빼앗겼단다.”
청훤은 화가 났지만 청맥의 실력이 현맥, 묵맥보다 못해 어쩔 수가 없었다.
“현재 장로원에 청맥은 3명 밖에 남아 있지 않아 한 자리라도 뺏기면 바로 부도계에서 쫓겨나 지금까지 누리던 수많은 자원도 더는 누리지 못하게 될 거란다. 그럼 청맥은 점차 쇠퇴해질 거고 더는 현맥과 묵맥가 상대가 안 되겠지.”
청훤의 얼굴은 어느새 하얗게 질렸다. 그때가 되면 청맥이 다시 일어서는 일은 불가능할 뿐만 아니라 부도신족은 결국 현맥과 묵맥이 장악하게 될 것이다.
목진도 어느새 미간을 살짝 찌푸렸다. 그는 부도신족에 크게 관심이 없었지만 현맥, 묵맥과 맺힌 원한이 있어 저들이 잘되는 꼴을 보고 싶지 않았다. 더구나 흑광은 현천노조를 파견해 목부에 찾아가게 했으니 절대 용서할 수 없었다.
현맥과 묵맥이 목진을 대하는 태도만 봐도 저들이 부도신족을 완전히 장악하면 일은 훨씬 복잡해질 것이다.
그건 결코 좋은 소식이 아니었다.
“어떻게 해야 하나요?”
목진의 질문에 청훤은 한숨을 쉬며 답했다.
“대결에서 두 번 이상 승리하면 된단다. 그런데 현맥과 묵맥의 실력이 우리 청맥보다 뛰어난 데다 천지존의 수도 훨씬 많단다. 준비를 단단히 했을 테니 이기기가 쉽지만은 않을 거란다.”
목진은 청훤의 말에서 청맥의 처지가 얼마나 처참한지 바로 깨달았다.
“왜 다른 사람이 공격하기만 기다리고 먼저 나서지는 않는 건가요?”
수비전이 있으면 공격전도 있어야 정상이었다.
“지켜내지조차 못하는 실력으로 어찌 공격전에 참석한단 말이냐?”
청훤이 무안한 듯 웃으며 답했다.
“그럼 제맥회무에 성급 천지존은 참석하나요?”
“그럴 리가…… 성급 천지존은 바로 장로원에 들어갈 자격이 있단다. 혼자서 다섯 사람의 자리를 차지할 수 있지.”
청훤의 말에 목진은 다시 미간을 찌푸렸다.
“그럼 저들은 왜 어머니를 가둔 건가요?”
성급 대종사는 성급 천지존이나 다름없어 제아무리 부도신족이라도 쉽게 포기하려 하지 않을 것이다.
“이건 다 현맥과 묵맥 녀석들 때문이란다. 저들은 아직 성급 대종사가 아닌 네 어머니의 죄를 정한 뒤 감금했고, 성급 대종사가 된 뒤로는 청맥에 돌아가면 우리가 반란이라도 일으킬까 봐 장로원의 투표를 거쳐 계속 그녀를 가둔 거란다. 더구나 대장로는 사람이 우매하고 고지식하여 저들의 말을 반대한 적이 단 한 번도 없었단다.”
청훤이 이를 악물며 한 말에 목진은 금세 살기를 품었다. 현맥과 묵맥 녀석들은 짐승보다 못한 녀석들이었다!
“우리 청맥은 반대했지만 너무 무능해 아무런 힘도 미치지 못했단다.”
청맥에 속한 이들 중 청연정이 사사로운 감정으로 종족을 버렸다며 한을 품은 사람도 있지만 다들 천연정이 복귀해야 청맥이 전성기를 되찾을 수 있다고 생각했다. 하여 청맥 사람들은 청연정을 돕는 일에 최선을 다했다.
비록 그들이 현맥과 묵맥의 상대가 안 되지만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