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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주재-899화 (898/1,000)

899화. 부도현

“제가 도와줄게요.”

목진은 가볍게 고개를 끄덕이며 고민하더니 결정을 내렸다.

“뾰족한 수라도 있느냐?”

청훤은 흠칫 놀라 목진을 바라봤다.

“생각해둔 바가 있으니 원하면 도와줄게요.”

목진은 구체적인 방안을 제시하지 않았다.

“돌아가 사람들과 상의해 볼게.”

청훤도 잠시 고민하더니 이를 악물고 말했다.

지금 상황에서는 목진을 믿는 수밖에 없었다. 목진이 이토록 젊은 나이에 천지존경에 이른 것만 봐도 그는 절대 보통 사람이 아니었다.

“제가 도와주는 대신, 청맥도 저를 도와줬으면 해요.”

목진은 태연하게 서서 말을 이어갔다.

“뭘 말이냐?”

목진은 족자 여러 개를 꺼내더니 자신의 정혈을 뿌려 표면에 혈색 부적을 만들었다.

“장로님은 부도신족의 장로이니 호위 대진의 중추가 어디 있는지 잘 알 거라 믿어요. 부디 제맥회무를 시작하기 전까지 이 족자들을 중추 부위에 묻어 주세요.”

목진이 족자를 건네며 한 말에 청훤의 안색이 확 어두워졌다. 호위 영진은 부도신족을 보호하는 중요한 존재인데 어찌 그럴 수 있단 말인가?

“전 어머니를 구하기 위해 온 것이지 부도신족과 완전히 적이 되려는 건 절대 아니에요. 그러니 제가 이상한 짓을 할까 봐 걱정하실 필요는 없어요. 대신 부도신족을 상대하려면 저도 수중에 뭔가는 쥐고 있어야 하지 않을까요?”

목진의 말에 청훤은 여전히 쉽게 결정을 내리지 못했다.

“제가 미덥지 않더라도 어머니는 믿을 수 있지 않나요? 어머니께서는 절대 제가 부도신족을 망치는 꼴을 보고만 있지 않을 거예요.”

청훤은 그제야 안색이 밝아졌다. 그녀는 목진은 잘 몰라도 친동생은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그녀는 부도신족 때문에 지금까지 갇혀 생활했지만 정말 부도신족을 망치려 하지는 않을 것이다. 이곳은 그녀의 고향이기도 했고 이곳에 같은 혈맥을 가진 사람도 살고 있으니 말이다.

더구나 호위 대진도 중요하지만 이것만으로 부도신족을 망친다는 건 거의 불가능했다. 목진도 아마 이 점을 알고 있을 것이다.

“좋다, 그렇게 하자꾸나.”

생각을 마친 청훤은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목진 수중의 정혈이 묻은 족자를 조심스럽게 건네받았다.

목진은 그제야 몰래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그것은 그한테 상당히 중요한 보장이 될 물건이었다. 비록 무한의 화역과 무경의 도움을 받기로 했지만 부도신족의 노인네들이 기어코 나서려 하면 승산이 그리 크지 않을 것이다. 부도신족에는 성급 천지존이 있어 목진은 이를 상대할 수단을 확보해야만 했다.

“고마워요, 청훤 장로님.”

목진의 말에 청훤도 이내 한숨을 쉬었다. 목진은 청훤을 이모라고 불러야 하지만, 그러지 않는 걸 보면 아직도 경계하고 있는 것이 분명했다.

다만, 목진이 어머니도 없이 혼자서 지금까지 수련하면서 겪었을 고난을 생각하니 그럴만하다는 생각도 들었다.

청훤은 그저 목진이 어머니를 구할 수 있기만 바랄 뿐이었다. 그래야 그들의 관계는 비로소 좋아질 것이다.

말을 마친 청훤은 작별 인사를 나누고 신속하게 떠났고 목진은 여인의 뒷모습을 보며 길게 한숨을 쉬었다. 청훤 덕분에 일은 훨씬 쉬워질 것 같았다.

준비는 마쳤으니 이제 제맥회무의 시작만 기다리면 된다.

목진은 뒷짐을 쥔 채 고개를 들고 하늘을 빤히 쳐다보며 중얼거렸다.

“부도신족, 이번에 어디 제대로 싸워봅시다.”

그는 오늘을 오랫동안 기다려왔다.

목진과 영계, 용상은 더는 밖으로 나가지 않았지만 임정과 소소가 자주 놀러와 외로울 날이 없었다.

그들은 밖으로 나가지 않아도 부도계가 점차 떠들썩해지는 것이 확연히 느껴졌다.

사람들이 계속해서 배를 타고 부도계에 들어왔는데 대충 봐도 목부보다 실력이 훨씬 강해 보였다.

그 광경에 목진은 감탄을 금치 못했다. 5대 고족은 역시 남달랐으니, 이번 대회에 참석하는 사람들만 봐도 일반 정예급 세력은 비교할 수 없을 정도였다.

사람이 어느 정도 모이자 부도신족에서는 제맥회무를 사흘 뒤에 개최한다는 소식을 전했다.

이렇게 사흘이란 시간이 눈 깜짝할 사이에 지나갔다.

* * *

사흘이 지나자 아득한 종음이 부도계 전체에 울려 퍼졌다.

슉! 슉!

순간, 바람을 가르는 소리와 함께 사람들은 하늘 높이 날아오르더니 빠르게 산맥의 깊숙한 곳으로 향했다.

드디어 열리는 제맥회무 때문에 부도계 전체가 들썩거렸다.

한편, 정원에 서 있던 목진은 태연하게 서서 떠들썩해진 하늘을 바라봤다. 그리고 영계와 용상은 안색이 어두워진 채 뒤에 서 있었다. 목진의 작전일이 바로 오늘이었다.

그때 청상이 황급히 달려와 청색 영패를 건넸는데 그 위에 오래된 ‘수’ 자가 새겨져 있었다.

“이건 청맥의 맥수령(脈首令)으로 해당 영패를 들고 있는 사람이 바로 맥수야.”

“네가 뭘 하려는 지는 모르겠지만 제맥회무에서 이 영패를 들고 있는 한, 너는 어디까지나 청맥의 수장이야. 그러니 장로들이 현장에서 너를 처벌하지는 못할 거야. 맥수는 반드시 장로원 회의를 거쳐야만 처분을 내릴 수 있거든.”

청상이 복잡미묘해진 표정을 한 채 말했고 목진도 흠칫 놀랐다. 그는 청맥에서 목진에게 맥수령을 줄 줄은 몰랐다. 그러다 무슨 변고라도 생기면 청맥에도 불똥이 튈 텐데 말이다.

“훤 이모의 말대로 우리가 이번 수비전에서 2번 이상 패배하면 분맥이 될 거야. 그건 청맥에게 엄청난 타격인데 그럴 바에는 현맥과 묵맥한테 당하고만 있기보다는 너와 함께 싸워보는 것이 나을 거라 판단하셨대.”

청상은 목진의 속내를 꿰뚫어 보기라도 한 듯 가볍게 한숨을 쉬며 말을 이어갔다.

이에 목진은 잠시 고민하다가 청색 영패를 건네받았다. 이것만 있으면 그는 부도신족에서 미리 나설까 봐 걱정할 필요 없이 마음 편히 움직일 수 있었다.

“그리고 네가 부탁한 일은 이미 끝내셨다고 하셨어.”

청상의 말에 목진은 완전히 시름을 놓았다. 청맥을 도와주고 나면 부도신족과 제대로 힘을 겨뤄볼 수 있을 것이다.

“목진아…… 정녕 청맥을 도와 자리를 지켜낼 수 있겠어?”

청상은 잠시 머뭇거리다가 입술을 깨물며 물었다.

이는 청맥한테 더없이 중요한 일이었다. 청상은 훤 이모께서 왜 목진을 믿기로 하셨는지 몰랐다. 목진은 기껏해야 영급 천지존일 뿐인데 말이다.

이 정도 실력으로는 부도신족 전체를 상대할 자격이 없었다.

“부탁을 받았으면 최선을 다해야지?”

목진이 가볍게 웃으며 한 말에는 자신감이 들어 있었고 그 말을 듣는 것만으로도 안심이 되었다.

청상도 드디어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이더니 목진한테 정중하게 감사 인사를 전했다.

“고마워, 목진아.”

“서로 이용하고 이용당하는 사이일 뿐이야.”

목진은 손을 휘익 저으며 고개를 들고 하늘을 바라봤다.

“인제 우리도 떠날까?”

“날 따라와.”

말을 마친 청상은 한 갈래 빛이 되어 하늘 높이 날아올랐고 목진 등은 바로 그 뒤를 따랐다.

그들은 수많은 산맥을 지나며 목적지로 향했는데 경천의 파동을 내뿜는 사람들이 옆을 휘익 지나가는 것을 볼 수 있었다.

평소 대천세계의 한 구역의 패주인 정예급 세력은 이곳에서 너무 평범해 보였다. 이것만 봐도 부도신족이 얼마나 강한 종족인지 알 수 있었다.

1각 정도가 지나자 목진 등의 속도는 점차 느려졌는데 앞쪽에 커다란 산맥이 경천의 기둥처럼 구름을 뚫고 하늘 높이 솟구친 것이 엄청난 기세를 이뤘다.

해당 산맥은 네 등분으로 나뉘었고 상, 하 등급이 분명했으며 질서 정연하게 놓인 백옥 전대에서는 예사롭지 않은 기운이 느껴졌다.

그리고 사람들은 그 주위에 놓인 산맥들에 있는 자리에 내려앉곤 했다.

1각도 안 되는 사이, 이 구역은 시끌벅적해졌다.

목진 등도 청상과 함께 적당한 자리를 잡고 앉았는데 눈에 띄지 않은 곳이었지만 중심에 놓인 백옥 전대들은 아주 잘 보였다.

목진이 고개를 들고 주위를 쓰윽 훑다가 중심에 놓인 산맥과 거리가 가장 가까운 거대한 산맥에 화려한 정자가 놓여 있는 것을 발견했다. 그곳은 다른 곳보다 더 눈에 띄었다.

그곳은 아마 대천세계의 최정예급 세력들만 앉을 수 있는 곳일 것이다. 목진은 그곳에서 임정, 소소 등을 발견했다.

부도신족은 무한의 화역이나 무경 정도여야 귀빈으로 대접했다.

쿵! 쿵!

그때 수많은 산맥에서 아늑하고도 오래된 종소리가 울려 퍼지자 사람들은 모두 고개를 들었고 중심에 놓인 산맥 정상에서 억만 갈래의 영광이 발산되었다.

그 속에서 한 무리가 무서울 정도의 영력 위압감을 형성하며 나타나 다들 깜짝 놀랐다.

영광이 가시자 사람 스무 명이 모습을 드러냈는데 그중 19명이 가장 앞쪽에 서 있는 사람한테 공손하게 인사를 올렸다.

그는 백발노인으로 뒤에 서 있는 19명과 달리, 몸에서 아무런 영력 파동도 느껴지지 않아 전혀 눈에 띄지 않았다.

그런데 다들 노인의 얼굴을 보더니 바로 고개를 숙였다.

“성급 천지존이군!”

목진도 백발노인을 뚫어져라 쳐다보고는 온몸이 찌릿해지는 것을 느꼈다. 엄청난 위협감이었다. 많이 늙어 힘없어 보이는 평범한 노인은 무려 성급 천지존이었다.

“대장로를 뵙습니다!”

장로를 포함한 부도신족 사람들은 공손하게 백발노인한테 인사를 올렸다.

부도신족의 최고 권력자는 족장이었지만 그 자리의 적임자는 오래도록 나타나지 않아 여태껏 대장로가 혼자서 부도신족을 지켰다. 덕분에 부도신족은 지금까지 몰락하지 않고 대천세계에서 살아남을 수 있었고 다들 대장로의 말이라면 죽는시늉도 할 정도였다.

“저분이 바로 부도신족의 대장로, 부도현이야.”

청상은 경외의 눈빛으로 상대방을 바라보며 가볍게 한숨을 쉬었다.

“현맥과 묵맥은 싸운 지 한참 되었는데 대장로만 아니었으면 부도신족은 벌써 아수라장이 되었을 거야.”

목진은 무덤덤하게 서서 부도현을 바라봤다. 그런데 제아무리 부도신족의 둘도 없는 은인이라고 해도 목진과는 전혀 상관이 없었다. 그는 그저 우매하고 짓궂은 대장로 때문에 어머니와 지금까지 떨어져 지냈다는 것밖에 생각하지 않았다.

부도현도 미소를 지은 채 주위를 쓰윽 훑으며 입을 열었다.

“오늘 부도신족의 성사에 참석해준 여러분, 고맙네.”

부도현의 말에 각 정예급 세력의 주인들은 함께 답례했다.

부도현은 대천세계의 최정예급 강자로 존중하지 않을 수 없기 때문이었다.

잇따라 부도현은 자리를 잡고 앉아 아래쪽에 서 있는 19명을 바라보며 말을 이어갔다.

“곧 제맥회무를 시작할 텐데 자리를 지키고 싶으면 최선을 다하거라. 안 그럼 너희 자리는 열심히 수련한 다른 사람들의 몫이 될 거란다.”

“네!”

대장로의 말에 사람들은 고개를 끄덕이더니 빠르게 전대에 올랐다.

이와 동시에, 19갈래의 웅장하기 그지없는 영력이 미친 듯이 휘몰아쳤다.

“제맥회무를 시작한다!”

쿵! 쿵!

천지에 웅장한 영력이 휘몰아치자 수많은 산맥에서 커다란 북들이 솟아올라 심금을 울리는 소리를 냈다.

사람들은 자연스레 중심 산맥에 놓인 19개의 백옥 전대로 눈길을 돌렸다.

19개의 전대에 한 명씩 서 있었는데 각자 눈부신 영광을 발하며 무서운 영력 위압감을 형성했다.

그들은 진정한 천지존들이었다.

그 광경에 대부분 정예 세력들은 이내 감탄했다. 대천세계에서 한 세력의 실력을 가늠하는 방법은 사실 아주 쉬웠는데, 천지존이 얼마나 많은지 헤아리면 되었다.

보통 천지존이 한 명밖에 없는 세력은 겨우 대천세계의 정예급 세력이라 할 수 있고 천지존이 많아야 최정예급 세력이라 할 수 있었다.

그런데 부도신족은 제맥회무에서만 천지존을 19명 내세웠으니 그 실력이 충분히 예상되었다.

오래된 종족은 보통 범접할 수 없는 무언가를 수중에 쥐고 있곤 했다.

이것이 바로 그들만의 필살기였다.

만년 넘게 존재해야만 비로소 이러한 필살기를 갖출 수 있을 것이다.

일반 정예급 세력은 바로 사라지겠지만 부도신족 같은 오래된 종족은 일정한 속도로 발전하며 수많은 재앙을 견뎌내 날이 갈수록 강대해졌다.

제아무리 목진이라도 놀랄 수밖에 없었는데 5대 고족은 역시 명불허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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