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04화. 다시 흑광과 싸우다
목진이 흑광한테 다가가자 현장은 순식간에 조용해졌다.
“저건…… 말로만 듣던 36가지 절세의 신통 중 하나인 팔부부도가 아닌가?”
잠시 후, 누군가 간신히 입을 열었다.
다들 일전에 목진이 선보인 놀라운 신통을 알아보기 시작했다.
어두운 빛줄기에 깃든 파괴력에 천지존들은 머리가 지끈거릴 정도였는데 이 정도 위력이라면 36가지 절세의 신통이 아니고 뭐란 말인가?
“저 녀석이 정말 팔부부도를 수련하는 데 성공했을 줄이야…….”
부도신족의 장로 중 현맥과 묵맥 사람들은 목진이 너무 질투가 나 어느새 혈안이 되었다. 그들은 당장 목진한테서 팔부부도를 빼앗고 싶었다.
천지존인 이들은 36가지 절세의 신통이 뭘 의미하는지 누구보다 잘 알았다. 이를 장악하면 동급 중 무적이 되는 거나 마찬가지였다.
대천세계에 천지존은 많지만 최정예급 신통은 36가지 밖에 없으니 얼마나 희귀한 존재인지 알 수 있었다.
아무리 부도신족의 실력이 강대한들 36가지 절세의 신통을 따라가는 신통술은 얼마 없었다.
한편, 청상은 너무 흥분한 나머지 손으로 입을 가린 채 온몸을 파르르 떨었다.
그녀는 청맥이 치명적인 타격에 더는 맥을 추스르지 못할 거라 여겼는데 목진 덕분에 전세가 대역전될 기미가 보였다.
“목진아, 힘내!”
청상과 달리 옆에 서 있는 영계는 미소를 지으며 그녀의 어깨를 다독였다. 이에 청상은 부끄러운 듯 웃더니 점차 안정을 되찾았다.
“영계 언니, 목진이 이길 수 있을까요?”
청상은 기대에 찬 눈빛으로 영계를 바라봤다. 비록 목진이 두 차례 대결에서 승리하긴 했지만 이번에 맞설 상대는 훨씬 강력했다.
“걱정하지 마. 목진은 분명 믿는 구석이 있어서 나서는 것이니 우리는 기다리기만 하면 돼.”
영계가 가볍게 웃으며 한 말에 청상은 힘껏 고개를 끄덕이더니 두 눈을 부릅뜨고 상황을 살폈다.
“녀석, 멋있군.”
다른 산맥에 있던 임정이 힘껏 손뼉을 치며 생긋 웃었다.
목진은 두 번의 대결에서 필살기를 선보이면서까지 전력을 다해 대결을 펼쳤다. 덕분에 그는 상대방을 단번에 쓰러뜨렸고 관전하는 사람들은 흥분되어 피가 끓는 것 같았다.
옆에 서 있던 소소도 동의하듯 가볍게 고개를 끄덕이더니 흐뭇하게 목진을 바라봤다.
“목진이 부도신족을 어지간히 미워하나 보네.”
옆에 서 있던 약진이 껄껄 웃으며 말했다. 그는 목진이 일부러 그런다는 걸 바로 알아챘다.
목진은 20년도 넘게 참았던 화를 풀러 온 것이었다. 그는 자신을 위해, 아내와 오랜 시간 떨어진 채 홀로 살아간 아버지를 위해, 오래도록 갇힌 어머니를 위해 강압적인 수단으로 상대방을 제압해야만 했다.
그래야 현맥의 체면이 바닥으로 떨어질 것이다.
“이건 절대적인 승산이 있을 때만 가능한 대전 방식이 아닌가? 만약 양자의 전투력이 비슷하면 누군가 먼저 필살기를 선보이는 것이 오히려 상황을 불리한 쪽으로 이끌 것이네.”
임초는 말은 그렇게 했지만 흐뭇하게 웃으며 목진을 바라봤다. 목진은 충분히 자신이 있어 이런 방식을 선택한 것이 분명했다.
임초는 임동한테서도 이러한 자신감을 본 적이 있었다.
* * *
백옥 전대에 서 있던 흑광 장로도 음산한 눈빛으로 자신을 향한 청년을 보더니 경계 태세를 취했다.
목진이 선보인 괴이한 보라색 화염과 난폭하기 그지없는 팔부부도에 그는 조금 겁에 났다.
사실 흑광은 현해, 현풍보다 강한 영급 후기 천지존이었는데 기세등등하게 달려드는 목진을 상대하자니 왠지 불안해졌다.
“젠장, 저 녀석은 어쩌다 저리 강해졌단 말인가!”
흑광은 목진이 지지존 대원만급 강자였을 때 죽이지 않은 것이 너무 후회가 되었다.
정말 죽이지 않더라도 지금까지 수련해 얻은 성과를 전부 없애기라도 했으면 목진은 폐인이 된 채 살아가야 했을 것이고 오늘, 이런 일도 생기지 않았을 것이다.
“그날 나를 죽이지 않은 것을 후회하고 있나요?”
목진이 피식 웃으며 한 질문에 흑광은 흠칫 놀랐다. 그는 목진이 웃고는 있지만 표정에 무한의 한기, 심지어 살기가 깃든 것이 느껴졌다.
그런데 부도신족의 장로인 그는 바로 마음을 가라앉히고 목진을 쏘아봤다.
“목진, 너무 우쭐거리지 말거라. 젊은이가 자기 실력에 자신이 있는 건 좋지만 과도한 자신감은 해를 부를 뿐이란다.”
“현맥이 그리 대단하면 어디 나를 잡아 보시든가!”
“이런!”
목진이 대수롭지 않게 한 말에 흑광은 버럭 화를 냈는데 상대방의 한기 어린 눈빛에 흠칫 놀랐다.
“아직 나서지 않고 뭘 하는 건가요?”
말을 마친 목진이 손을 내밀자 백옥 같은 길쭉한 손에서 영광이 번쩍였다.
“내가 먼저 공격할까요?”
목진의 말에 흑광은 이를 악물며 영력을 끌어올리려 했는데 그때 누군가 몰래 영력으로 말을 전해왔다.
“흑광, 밀법을 사용하게. 이기지 못하더라도 전력을 다해야 하네. 자네가 녀석의 기세를 꺾어 버리면 나머지는 알아서 할 사람이 따로 있을 것이네.”
흑광은 몰래 현맥 맥수 현광을 힐끗 쳐다봤다. 이는 현광의 목소리였다.
“밀법이라…….”
흑광은 잠시 고민되었다. 그리하면 제아무리 천지존이라도 실력을 회복하는 데 적어도 반년은 걸릴 것이다.
그는 비록 현광의 의도를 모르지만 목진의 기세를 꺾을 필요가 있긴 했다. 목진이 네 번째 대결에서 이기지 못하더라도 현맥의 체면은 충분히 바닥이 났다.
부도신족에 온 세력이 이렇게 많은 상황에서 오늘 일이 알려지기라도 하면 현맥 사람들은 더는 얼굴을 들고 다니지 못할 것이다.
하여 흑광은 더는 목진을 내버려 둘 수가 없었다.
그는 어떻게든 이번 기회에 목진을 제압해야만 했다. 그래야 네 번째 대결에 선급 천지존을 파견해 목진을 보다 쉽게 이길 수 있을 것이다.
“좋다!”
잠시 고민하던 흑광은 이를 악물고 외쳤다. 목진의 수단을 두 눈으로 확인한 그는 녀석을 이길 자신이 없어 목숨을 거는 수밖에 없었다.
“오늘 자만의 대가가 무엇인지 제대로 보여주겠다!”
말을 마친 흑광은 갑자기 뒤로 물러나며 피식 웃었다.
“목진, 어디 내 공격도 한 번 받아 보거라!”
쿵!
흑광 뒤에 억만 갈래의 영광이 얽히고설키더니 거대한 지존법상이 나타났고 웅장한 영력 돌풍이 휘몰아쳤다.
잇따라 흑광이 숨을 깊게 들이켜며 괴상한 인법을 그리자 그의 지존법상도 두 손을 모아 결인했다.
멀리서 상황을 살피던 청천, 청훤 등은 순간 눈가가 파르르 떨렸다.
“젠장! 무려 화령 밀법을 사용하다니!”
정작 흑광은 씨익 웃으며 목진을 바라봤다.
“이건 다 네가 자초한 일이다.”
흑광의 말과 함께 그와 지존법상의 배가 부풀어 오르더니 입을 쩍 벌렸는데 양자의 입에서 이 세상을 없앨 것 같은 힘이 깃든 홍류가 휘몰아쳤다.
반면, 흑광의 육신은 빠르게 말라비틀어졌고 지존법상도 확 어두워졌다. 양자의 모든 힘이 무한의 홍류가 된 것 같았다.
그 광경에 다들 깜짝 놀랐다.
“미친놈, 지존법상마저 분해하다니!”
지존법상은 천지존의 최강 전력 중 하나로 스스로 분해하면 다시 만들어 내야 하는데 시간이 훨씬 오래 걸릴 뿐 아니라 법상에 손해가 갈 수도 있었다.
하여 이런 방법을 사용하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이는 적과 함께 죽겠다는 거나 다름없었다.
휘익!
목진을 향한 무한의 홍류는 해와 달마저 집어삼킬 것 같았다.
사람들은 안색이 확 어두워진 채 상황을 살폈다. 흑광은 기선 제압하고 현맥의 체면을 보존하기 위해 일부러 이러는 것이 분명했다.
“흑광은 참 악독하군. 이제 목진은 위험해지겠어.”
쿠쿵!
홍류는 사방에서 날아가 목진을 완벽하게 감쌌다. 그 속에 깃든 난폭하기 그지없는 영력이 충돌하며 형성한 파괴력은 영급 천지존은 물론이고 선급 천지존이라도 피하기 바쁠 정도의 위력을 지녔다.
흑광이 엄청난 대가를 무릅쓰고 소환한 밀법의 위력은 역시나 남달랐다.
사람들은 이내 정색한 채 상황을 살폈다. 일전에 목진이 선보인 수단이 놀랍긴 했지만 흑광의 반격도 상당히 매서웠다.
자칫 잘못하면 목진이 일전에 거둔 승리가 수포가 될 수도 있었다.
청맥 사람들은 하늘을 가르며 날아가는 홍류를 보더니 목진이 걱정되었다. 청천, 청훤 등 장로들마저 미간을 한껏 찌푸렸다.
“좋네, 좋아. 역시 흑광 장로답군. 목진 혼자서 현맥을 상대하려 하다니. 어느 정도 대가를 치르더라도 여기서 멈추게 하는 편이 낫지!”
현라가 피식 웃으며 한 말에 현맥 사람들은 동의하듯 묵묵히 고개를 끄덕였다. 다들 아무리 목진이라도 흑광 장로의 매서운 공격을 막아내기는 힘들 거라 여겼다.
휘익!
어느새 홍류는 목진을 완전히 집어삼켰고 주위의 공간은 와르르 무너졌다.
그 광경에 흑광은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그의 지존법상은 이미 부서졌고 육신도 시들시들해진 것이 크게 다친 것 같았다.
하지만 수단과 방법이 많은 목진을 제압할 수만 있다면 이 정도 대가는 충분히 치를 수 있었다.
목진은 분명 크게 다칠 거라 네 번째 대결에서 승리를 거두기란 불가능할 것이다. 그리되면 청맥의 자리를 되찾아 주는 일도 결국 실패할 것이다.
“흥, 우쭐거리더니 지옥의 맛을 제대로 느껴 보거라.”
흑광은 히쭉거리며 중얼거렸다.
사람들은 홍류가 휘몰아친 곳을 뚫어져라 쳐다봤다. 주위의 공간은 완전히 무너졌고 아무런 파동도 느껴지지 않는 것이 꼭 홍류 안에 갇힌 사람이 생기를 잃은 것 같았다.
잠시 후, 홍류가 드디어 사라지기 시작했다.
“목진은 이번에 크게 다쳤을 것이 분명하네!”
현맥 장로들은 고개를 끄덕이며 중얼거렸다. 그들은 목진의 거침없는 승리에 체면을 잃었던 현맥이 드디어 승리를 거뒀다고 생각했다.
반면, 다른 세력의 강자들은 안타까워했다. 목진의 남다른 기백에 반한 사람들은 그가 기적이라도 일으켰으면 하는 마음이었다. 그런데 기적이 나타나기는 어려울 것 같았다. 목진이 지금껏 이룬 성과만으로도 대천세계의 유명인사가 되기엔 충분했다.
어느덧 홍류가 완전히 가시자 사람들은 화들짝 놀랐다.
“저게 뭐란 말인가?”
현맥 장로들이 고개를 들어보니 거대한 자금색 연꽃이 허공에 조용히 떠 있었다. 꽃잎을 한껏 움츠린 채 자금색 빛을 발하는 연꽃은 그 어떤 공격에도 끄떡없을 것처럼 견고해 보였다.
꽃잎 표면에 깊숙한 흔적이 가득 난 것으로 보아 일전에 파멸의 힘이 깃든 홍류의 세례를 제대로 받은 모양인데 여전히 부서지지 않고 끝까지 견뎌내고 있었다.
그때 자금색 연꽃이 다시 피어나더니 거대한 자금색 허상이 사람들 눈앞에 나타났다.
연꽃을 디딘 채 모습을 드러낸 자금색 허상은 억만 갈래의 자금색 빛과 함께 불후의 기운을 방출했다.
“저것이 목진의 지존법상이란 말인가?”
사람들은 목진의 지존법상에서 느낀 신비롭고도 오래된 기운을 보고 절대 보통 물건이 아니란 것을 알아챘다.
중심 산맥 근처의 한 정자에 뒷짐을 쥐고 서 있던 흑백 동공을 지닌 사내도 미간을 살짝 찌푸린 채 중얼거렸다. 그는 다름 아닌 마하고족의 마하유였다.
“녀석은 역시나 불후금신을 수련해냈군.”
이에 마하고족의 강자가 눈가를 파르르 떨며 입을 열었다.
“조금전에 그는 불후금련으로 흑광이 목숨을 걸고 날린 공격을 막아냈을 거예요.”
대천세계에서 마하고족보다 불후금신을 잘 아는 종족은 또 없을 것이다. 마하고족은 대마다 최정예급 강자를 선출해 불후금신을 수련하게 했다. 그들은 말로만 듣던 불후금신을 끝까지 수련해 만고불후신으로 승급을 꿈꿔왔다.
아쉽게도 만 년 사이, 불후금신을 수련해낸 사람은 제법 있었지만 만고불후신을 이루지는 못했다.
하여 마하고족 사람들은 불후금신의 최강 신통인 불후금련을 바로 알아챘다.
“불후금련을 사용할 줄 아는 것을 보면 녀석이 불후금신에 관한 조예가 상당한 것 같군요.”
“정통 수련자도 아니면 이 정도가 끝일 것이네. 녀석이 더 나아가 만고불후신을 수련해낸다는 건 망상일 뿐이야.”
마하유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한 말에 다들 동의하듯 고개를 끄덕였다. 마하고족은 만고불후신의 수호자일 뿐이지만 언젠가부터 자신들의 물건이라 여겨 다른 사람한테 빼앗기는 것을 절대 용납하지 않았다.
“대장로께서 만고불후신이 최근 들어 이동을 일으켰다고 하셨단다. 이는 녀석이 곧 주인을 선택하려는 것이니 이번 만고회에 만고불후신의 진정한 주인이 나타날 거란다.”
마하유는 주먹을 꽉 쥐고 말을 이어갔다.
“내가 만고불후신을 수련해내면 경지를 돌파해 성급 천지존경에 이를 수 있을 것이다!”
“마하고족에서 불후금신에 관한 조예가 유대인을 능가할 사람이 없으니 만고불후신의 주인이 될 가능성이 상당할 것 같네요.”
마하고족의 강자들은 바로 아부를 떨었다.
“만고회 때마다 외부인이 찾아오곤 해서 기분이 썩 좋지 않더군요. 후대제께서는 만고불후신을 마하고족에 맡겼으면서 왜 외부에 계승법을 남기셨는지 모르겠어요.”
누군가 언짢은 듯 말했고 마하유는 가볍게 웃었다.
“만고회는 불후대제께서 직접 만드신 거라 불후금신을 수련한 사람이면 누구든 참석할 수 있단다. 그런데 대천세계에 떠돌아다니는 수련법은 완전하지 않으니 두려울 것이 없단다. 이번 만고회만 지나면 불후금신은 온전히 마하고족의 물건이 될 테니 불후대제께서 되살아난들 아무런 소용이 없을 거란다.”
이에 다들 묵묵히 고개를 끄덕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