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08화. 홀로 부도신족을 상대하다
“청맥은 반대합니다!”
청천은 바로 현광의 의도를 파악하고 버럭 소리를 질렀다.
“묵맥은 찬성입니다.”
묵맥 맥수는 잠시 고민한 뒤, 입을 열었다. 현맥은 묵맥과 함께 청맥을 몰아내려는 입장이라 목진이 끼어들길 원하지 않았다. 또한, 목진이 선보인 실력에서 위협감을 느껴 그를 최대한 빨리 없애는 것이 좋을 거란 생각이 들었다.
이러한 생각에 현광과 묵심은 분맥의 세 맥주를 쳐다봤는데 그들도 어쩔 수 없이 묵묵히 고개를 들었다.
그 광경에 부도현은 미간을 살짝 찌푸리더니 결국 고개를 끄덕였다.
“장로원 중, 7할이 넘는 장로의 뜻이 그렇다면 규칙에 따라 당장 회의를 시작하겠네.”
현광은 순간 입꼬리를 씰룩거렸다.
그러나 목진은 피식 웃더니 대수롭지 않게 말했다.
“굳이 회의할 필요까지 없어요. 전 청맥의 맥수가 될 생각이 전혀 없으니까요. 전 그저 현맥한테 본때를 보여주려 했을 뿐이에요.”
말을 마친 목진은 청천한테 청맥의 맥수령을 건넸다.
이에 청천은 표정이 복잡미묘해진 채 맥수령을 받았다. 목진이 청맥의 맥수가 될 생각이 없다는 건 청맥을 미워하지는 않아도 가족이라고 여기는 것 또한 아니라는 걸 알 수 있었다.
반면, 현광은 흠칫하더니 입꼬리를 씰룩거렸다. 그는 일이 쉽게 풀릴 거란 생각에 기분이 좋아졌다.
“대장로님, 목진은 죄인이니 규칙에 따라 녀석을 일단 포박하고…….”
“그럴 필요도 없어요. 전 어머니를 모시고 집에 돌아가는 것이 유일한 목적이니 앞으로 부도신족과 더는 엮일 일이 없을 거예요.”
현광의 말이 끝나지도 않았는데 목진은 다시 느긋하게 입을 열었다.
그의 말에 현장은 다시 조용해졌고 사람들은 흠칫 놀랐다. 목진이 일전에는 혼자서 현맥을 상대했다면 이번에는 부도신족을 상대하려 하고 있었다.
“너무 담대한 것 아닌가? 어찌 저런 발언을 할 수 있단 말인가?”
사람들은 흠칫 놀라더니 좋은 구경거리가 생겼다는 생각에 흥미진진하게 바라봤다.
현맥의 패배로 대전의 서막을 열었으니 이제부터가 중요했다.
목진은 오늘, 부도신족을 발칵 뒤집어 놓기 전까지는 절대 이곳을 떠날 것 같지 않았다.
그런데 목진은 뭘 믿고 영급 초기의 실력으로 부도신족을 상대하려는 걸까? 이는 승산이 전혀 없는 일이었다.
현광도 목진의 놀라운 발언에 입이 떡 벌어졌지만 금세 정신을 차리고 히쭉거렸다. 감히 겁도 없이 저런 말을 하다니, 대장로께서 더는 보고만 있지 않을 것이다.
이러한 생각에 현광이 고개를 들어보니 부도현의 안색이 어두웠다.
“무례하구나!”
부도현의 분노의 뜻이 깃든 차가운 목소리가 울려 퍼지자 천지마저 조용해졌다. 그는 성급의 위엄을 제대로 드러냈다.
그러나 목진은 이를 무시한 채 고개를 들고 상대방을 빤히 쳐다봤다.
“죄인 따위가 실력을 갖췄다고 부도신족을 활보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냐!”
부도현은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다.
“부도신족의 규칙을 어긴 죄인, 청연정을 네가 원한다고 데려갈 수 있을 것 같으냐?”
“전 단 한 번도 제가 부도신족 사람이라고 말한 적이 없으니 죄인의 신분은 가당치 않은 것 같네요.”
목진은 한기 어린 눈빛으로 상대방을 바라보며 말했다.
그는 우매하고 고지식한 노인네가 너무 싫었다. 부도현만 아니었으면 목진은 어머니와 떨어져서 지내지 않아도 됐을 것이다. 그러니 부도현의 체면 따위는 고려하고 싶지 않았다.
“사람을 존중할 줄 모르는 멍청한 녀석이로구나!”
부도현은 화가 나 씩씩거리며 말을 이어갔다.
“여봐라, 당장 녀석을 잡아라! 네가 무슨 자격으로 청연정을 부도신족에서 데려가려는 것인지 어디 보자꾸나!”
“네!”
현맥 맥수 현광과 묵맥 맥수 묵심은 이내 화색이 되어 자리에서 일어나 휘하의 강자들을 거느리고 목진을 잡으려 했다.
“목진이 이번에는 도가 지나친 것 같네. 부도현마저 화가 났으니 이제 부도신족 전체를 무슨 수로 상대한단 말인가?”
사람들은 머리를 저으며 중얼거렸다.
그런데 그때, 갑자기 누군가의 웃음소리가 울려 퍼졌다.
“무한의 화역과 무경의 벗인 목진을 함부로 대하려 한다면 우리가 절대 가만있지 않을 것이네.”
사람들이 화들짝 놀라 고개를 돌려 보니 백발노인과 요염하게 생긴 사내 한 명이 뒷짐을 쥐고 서 있었다.
두 사람의 정체를 알아챈 부도신족의 장로들은 순간 안색이 어두워졌고 목진을 향하던 발길을 바로 멈췄다.
다들 너무 놀라 입이 떡 벌어졌다.
“저건 무한의 화역의 약진이 아닌가? 저 사람은 염제의 사부님인데…….”
“임초도 무경의 2인자로 무조의 둘도 없는 형제라네.”
“흠, 목진이 감히 부도신족을 상대하려 했던 이유가 있었군. 무한의 화역과 무경은 아무나 함부로 도와주지 않는데 말이네!”
“그러게. 목진은 참 대단하군.”
무한의 화역과 무경은 대천세계에서 둘도 없는 최정예급 세력으로 5대 고족 못지않은 실력을 자랑하는지라 사람들이 놀랄 법도 했다.
현광과 묵심도 놀라긴 마찬가지였다. 그들은 무한의 화역과 무경에서 부도신족을 건드리는 것을 무릅쓰면서까지 목진을 위해 나선 것이 믿기지 않았다.
“젠장, 녀석이 언제 무한의 화역, 무경과 친분을 쌓았단 말인가!”
그들은 자못 후회되었다. 이럴 줄 알았으면 목진을 처음 만났을 때, 바로 그를 죽였을 것이다. 그런데 제아무리 후회한들 이미 늦었다.
목진은 이미 무한의 화역, 무경과 두터운 친분을 쌓았고 본인도 어느새 천지존경에 이르렀다.
무한의 화역과 무경이 이 일에 끼어든 이상, 대장로께서 어떤 태도를 취하는지에 달렸다.
하여 두 사람은 부도현을 바라봤는데 그는 예리한 눈빛으로 멀리 떨어져 서 있는 약진과 임초를 노려봤다.
그러나 약진과 임초는 성급 천지존의 눈길을 무시한 채 태연하게 서 있었다.
“무한의 화역과 무경에서 정녕 죄인 때문에 부도신족을 등질 생각인가?”
부도현의 나지막한 말소리가 울려 퍼지자 약진은 미소를 지으며 답했다.
“목진은 내 제자와 친한 벗이니 오늘 일은 부디 그만두게.”
이에 뒷짐을 쥐고 서 있던 임초도 묵묵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 광경에 다들 감히 입조차 열지 못했다. 자칫 잘못하면 오늘 일은 3대 최정예급 세력의 대결로 이어질 수도 있을 것 같았다. 정말 그리되면 대천세계가 들썩일 것이다.
잠시 후, 약진과 임초를 빤히 쳐다보던 부도현이 드디어 입을 열었다.
“내가 오늘, 저 녀석을 꼭 잡아야겠다면 어떡할 것인가?”
부도현의 나지막한 소리에 바람마저 움직임을 멈춘 것 같았고 그 기운에 다들 숨조차 제대로 쉬지 못했다. 그들은 제맥회무를 보러 왔다가 이런 일을 목격할 줄 몰랐다.
부도신족이 무한의 화역이나 무경과 싸우기라도 한다면 대천세계 전체가 들썩일 것이다.
“대장로가 기어코 그러겠다면 우리가 나서서 목진을 보호하는 수밖에 없겠군.”
약진과 임초는 여전히 태연하게 서서 말을 건넸다.
무한의 화역과 무경에서 정녕 부도신족을 건드리면서까지 목진을 보호하려 한단 말인가?
이러한 생각에 사람들은 적잖게 놀랐고 현광과 묵심은 안색이 어두워졌다.
부도신족은 대천세계의 5대 고족 중 하나로 그 실력이 상당한데 무한의 화역과 무경에서 어찌 목진때문에 이런 세력을 건드리려 한단 말인가?
죄인 따위가 정녕 그토록 대단하단 말인가?
그들도 더는 뭐라 하지 못하고 부도현이 결정을 내리기만을 기다렸다.
그때 부도현이 손으로 의자를 가볍게 때리더니 목진한테 눈길을 돌렸다.
“내가 너를 너무 쉽게 생각했구나. 20년이란 짧은 시간 동안, 천지존경에 이르렀을 뿐만 아니라 무한의 화역, 무경과 두터운 우정을 쌓았을 줄은 몰랐구나.”
부도현은 씨익 웃으며 말을 이어갔다.
“하지만 부도신족은 규칙을 엄격히 준수하였기에 여태껏 살아남을 수 있었다. 그러니 네가 무한의 화역과 무경 사람들을 등에 업었다고 달라질 건 없단다.”
잇따라 그는 다시 약진과 임초한데 고개를 돌렸다.
“목진을 지키겠단 말은 염제와 무조더러 직접 와서 하라고 하게! 당신들은 그 말을 할 자격이 없네!
비록 약진과 임초는 선급 후기지만 부도현은 성급 천지존이라 실력 차이가 상당했다. 하여 부도현은 약진과 임초를 상대로조차 취급하지 않았다.
“현광, 묵심! 당장 나서 죄인을 잡거라!”
부도현이 다시 손가락으로 목진을 가리키며 외쳤다.
“네!”
현광과 묵심은 이내 고개를 끄덕이더니 장로들과 함께 목진에게 향했다. 이에 약진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자 임초가 나서며 말했다.
“그럼 이번 기회에 대장로의 실력을 직접 확인해봅시다.”
말을 마친 임초는 표면에 여덟 갈래의 오래된 부적이 새겨진 유리그릇을 꺼냈는데 부적들은 벼락이 되었다가 화염이 되었다가 한빙이 되기를 반복하면서 그릇에서 요동쳤다.
이에 천지가 들썩였고 말로는 표현하기 어려울 정도의 굉장한 파동이 휘몰아쳤다.
부도현은 눈가를 파르르 떨며 유리그릇을 바라봤다.
“무조가 8대 부적으로 성급 절세의 성물인 팔조유리발(八祖琉璃缽)을 만들어냈다고 들었는데 자네 수중의 물건이 바로 그 물건이겠지?”
부도현의 말에 다들 눈가를 파르르 떨며 임초 수중의 수수한 유리그릇을 바라봤다.
절세의 성물은 천지존의 등급처럼 영급, 선급과 성급 등 세 가지 등급으로 나누는데 성급 절세의 성물은 상당히 희귀하여 일반 천지존은 물론이고 성급 천지존이라도 만들어내기 힘들었다. 그리고 일단 만드는 데 성공하면 멸세의 위력을 지닌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바로 그 물건이네.”
임초는 대수롭지 않게 답한 뒤, 약진과 함께 유리그릇에 웅장하고 무궁무진한 영력을 주입했다.
성급 절세의 성물을 사용하려면 선급 후기 천지존 한 명의 영력으로는 부족해 약진과 임초가 함께 나서야 가능했다.
위잉!
임초와 약진이 전력을 다해 소환하자 유리그릇에서 여덟 가지 빛을 발했고 눈 깜짝할 사이에 중심 산맥의 위쪽 하늘에 나타나 시간과 공간을 가르며 빠르게 내려앉았다.
쿠쿵!
유리그릇은 바로 부도현을 가뒀고 이에 중심 산맥 전체가 격렬하게 진동했다.
그 광경에 다들 화들짝 놀랐다. 사람들은 임초와 약진이 목진을 도와주려고 나선 줄 알았는데 오히려 부도현을 가뒀기 때문이다.
현광, 묵심 등만으로도 목진을 잡기에 충분해 부도현은 절대 직접 나서지 않을 텐데 말이다.
부도현도 멈칫하더니 콧방귀를 뀌며 다시 자리에 앉아 느긋하게 입을 열었다.
“계속하거라.”
현광과 묵심은 그제야 정신을 차리고 웅장한 영력을 내뿜으며 미친 듯이 목진에게 향했다.
“삼촌, 부도현은 왜 가둔 건가요?”
임정도 두 눈이 휘둥그레진 채 상황을 살피더니 임초의 옷자락을 끌어당기며 물었다.
“부도현은 처음부터 나설 생각이 없었는데 어찌 그를 가둔단 말인가요? 목진의 실력으로 부도신족의 장로들을 쓰러뜨리기도 버거운데 말이에요.”
소소도 어리둥절해 약진과 임초를 바라봤다.
“우리 아가씨, 그만 흔들거라. 우리는 목진이 시키는 대로 했을 뿐이다. 그는 우리더러 부도현만 막아달라고 했고, 나머지는 알아서 한다고 했단다.”
임초가 씁쓸하게 웃으며 한 말에 약진도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단다. 우리도 녀석이 무슨 생각을 하는지 모르겠구나. 혼자서 부도신족의 장로들을 상대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닐텐데 말이다.”
임정과 소소는 순간 어리둥절해졌다. 그들은 목진의 전투력이 남다른 것을 알지만 이건 전투력만으로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었다.
그러나 목진은 절대 아무 말이나 할 사람이 아니었다. 그가 그런 결정을 내린 데는 다 이유가 있을 것이다.
“그럼…… 일단 지켜봅시다. 목진이 안 될 것 같으면 반드시 나서야 해요.”
임정이 잠시 고민하다가 말했고 임초는 바로 고개를 끄덕였다.
“걱정하지 말거라. 네 아버지께서 신신당부하셨으니 반드시 녀석을 지켜줄 거란다.”
한편, 다른 사람들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목진을 바라봤다. 목진이 영급 초기가 아니라 선급 천지존경에 이르렀어도 대결에서 이기는 건 거의 불가능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무한의 화역과 무경도 목진 때문에 부도신족과 싸우고 싶지 않아 부도현만 제압한 것 같군.”
누군가 적당한 이유를 찾아내자 다들 일리가 있다며 묵묵히 고개를 끄덕였다. 목진과 부도신족 중 누가 더 중요한지는 아무리 바보라도 바로 알아챌 것이다.
반면, 청천과 청훤 장로 등은 사색이 되어 상황을 살폈다. 대장로가 제대로 화가 났으니 청맥에서 목진을 지켜내고 싶어도 상당히 어려울 것이다.
“청훤아, 적당한 기회가 생기면 우리도 나서자꾸나. 그래야 목진이 도망갈 기회라도 생기지.”
청천이 이를 악물며 말했다.
목진이 이대로 잡히면 청연정은 앞으로 청맥과 완전히 연을 끊을지도 모른다.
청훤도 이내 정색하며 고개를 끄덕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