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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주재-912화 (911/1,000)

912화. 신임 대장로

“청연정이 무슨 수로 부도신족을 상대하는지 보자꾸나. 성급 따위가 고족을 상대한다고 뭐가 달라질까?”

마하유는 팔짱을 낀 채 피식 웃으며 중얼거렸다.

청연정이 잡히면 목진도 덩달아 감금될 것이다.

목진도 사람들의 시선이 느껴져 미간을 살짝 찌푸렸다. 부도현이 정말 조탑을 사용한다면 그는 염제와 무조를 부르는 수밖에 없었다.

그는 무슨 수를 써서라도 반드시 어머니를 데려가기로 마음먹었다.

“부도현, 당신은 정녕 조탑 밖에 사용할 줄 모른단 말인가요?”

청연정이 노려보며 한 말에 부도현은 안색이 어두워져 답했다.

“너희 모자가 부도신족을 건드리지만 않았어도 난 이렇게까지 하지 않았을 거다. 이건 다 너희가 자초한 일이란다!”

“좋아요. 그럼 어디 해봅시다!”

청연정은 한기 어린 눈빛으로 부도현을 바라보며 버럭 소리를 질렀다.

“흥, 어디서 센 척이냐!”

말을 마친 부도현이 두 손으로 결인하자 부도계 전체가 진동했고 높은 하늘에서 그지없이 오래된 기운을 방출하는 석탑이 서서히 내려앉았다.

천지존들마저 석탑이 내뿜은 무서운 압박감에 온몸을 파르르 떨었고 체내의 영력이 빠져나와 육신을 보호했다.

다들 오래된 석탑의 목표가 자신이었다면 절대 도망가지 못했을 거라고 생각했다.

“역시 부도신족 답군. 이렇게 무서운 물건을 가지고 있다니 말이야.”

사람들은 이내 감탄하며 중얼거렸다. 성급 천지존도 오래된 고탑을 정면 상대하지 못할 것이다.

부도현은 제대로 화가 난 것 같았다.

쿠쿵!

오래된 석탑이 서서히 내려앉아 청연정이 친 영진의 세계를 향하더니 바로 영진을 뚫고 들어갔다.

“청연정, 난 네가 여태껏 갇혀 있으면서 반성했을 거라 여겼는데 변화가 전혀 없구나. 잘못을 인정할 때까지 수십 년은 더 가둬둬야 할 것 같구나!”

“우매하고 고지식한 노인네.”

부도현의 말에 청연정은 피식 웃었다.

“부도현, 당신이 왜 대장로가 되었는지 모르겠네요. 당신이 한 짓을 봐요. 족장의 자리를 계승할 사람이 없어 부도신족의 자원은 현맥과 묵맥에서 독차지했고, 천부적 재능이 뛰어난 사람들을 무시한 채 지내고 있지 않았나요? 그러니 우리 부도신족이 5대 고족 중 최하위가 되었죠. 이건 전부 당신의 우매함 때문에 일어난 일이에요!”

“말도 안 되는 소리!”

부도현은 버럭 화를 내며 외쳤다.

“당장 조탑에 들어가 안정을 되찾거라!”

부도현이 얼굴이 붉으락푸르락해진 채 인법을 바꾸자 오래된 석탑은 청연정을 향해 서서히 내려앉았다.

신비롭기 그지없는 오래된 석탑은 제아무리 온 힘을 다해 도망가도 절대 벗어나지 못할 것 같은 느낌을 주었다.

그러나 청현정은 전혀 당황하지 않고 실망스러운 눈빛으로 부도현을 바라봤다.

“안정을 되찾을 사람은 당신이에요!”

말을 마친 청연정이 손을 가볍게 흔들자 서서히 내려앉던 조탑의 속도가 조금씩 느려지더니 결국 그녀와 일정한 거리를 두고 멈춰 섰다.

“이럴 수가!”

부도신족 사람들은 너무 놀란 나머지 입이 떡 벌어졌고 청훤, 청천 등 청맥 사람들마저 화들짝 놀랐다.

이게 뭐람? 청연정이 조탑마저 장악했다니!

조탑은 족장과 대장로만 장악할 수 있는데 청연정이 무슨 수로 이를 장악했단 말인가?

“너…… 이런!”

부도현도 놀라긴 마찬가지였다. 그는 두 눈이 휘둥그레진 채 손을 파르르 떨며 청연정을 바라봤다. 그 역시 적잖게 놀란 모양이었다.

“네가 어찌 조탑을 장악했단 말이냐?”

한참 지나서야 정신을 차린 부도현의 말에 청연정은 대수롭지 않게 그를 흘겨보며 답했다.

“이건 당신이 조탑을 움직일 수 있는 마지막 기회였어요.”

이에 부도현은 황급히 인법을 바꿨는데 조탑은 더는 움직이지 않았다. 청연정의 머리 위에 조용히 떠 있기만 했다.

“이럴 수가!”

부도현은 순간 안색이 어두워졌다.

“부도신족의 대장로들은 곧 죽을 것 같으면 조탑에 들어가 자신의 힘을 남기곤 하죠. 이것이 바로 조탑이 갈수록 강해지는 이유에요.”

청연정은 여전히 태연하게 서서 말을 이어갔다.

“하여 조상님들의 의식도 일부 남게 되는데, 시간이 흐르면서 조탑도 자연스레 의식이 생겼죠…….”

“조탑에 갇혀 있는 동안, 난 부도신족의 현황과 당신이 한 일들을 전부 알렸어요.”

“조탑은 부도신족을 지키기 위해 존재하는 물건이라 부도신족이 강대해지는 것을 원하고 있죠. 그런데 저들이 내 말에 답을 제시해 주더군요.”

청연정은 한기 어린 눈빛으로 부도현을 바라보며 말했다.

“저들은 대장로인 당신이 못마땅하다고 하더군요.”

부도현은 순간 어쩔 바를 몰랐다. 그는 조상님들께서 자신에 대한 불만이 커져 대장로의 권한마저 빼앗을 줄 몰랐다. 설마 그가 여태껏 견지해온 것들은 정녕 틀렸단 말인가?

“부도신족의 규칙에 따라 조탑을 장악한 사람이 곧 신임 대장로이니 앞으로 내가 부도신족의 대장로다.”

청연정이 무덤덤하게 서서 한 말에 부도신족 사람들은 깜짝 놀랐다. 그녀가 나타나고 1각도 안 되는 사이에 대장로가 바뀌었기 때문이다.

현맥, 묵맥 사람들도 이내 사색이 되어 서 있었다. 청연정이 대장로가 되면 이들한테 좋을 게 전혀 없었다.

반면, 청맥 사람들은 함성을 질렀고 청천, 청훤 등도 화색이 되었다. 청연정은 이런 짓을 하는 것을 극도로 싫어했었다. 그렇지 않았으면 그녀는 지금쯤 부도신족의 족장이 되어 있었을 것이다.

그런데 지금은 대장로가 되려고 하고 있었다.

멍하니 서 있던 부도현은 한참 지나서야 정신을 차렸는데 시무룩해진 모습이 여간 가여워 보이지 않았다.

“대장로의 자리는 처음부터 네 것이었는데 네가 먼저 말을 꺼낼 줄은 몰랐구나.”

부도현은 복잡미묘한 표정을 지으며 청연정을 바라봤다.

“내 아이가 아니었다면 난 절대 대장로가 되려 하지 않았을 거예요.”

청연정은 콧방귀를 뀌며 말을 이어갔다.

“그럼 이제 대장로의 자리에서 물러날 건가요?”

그녀의 말에 다들 손에 땀을 쥔 채 부도현을 바라봤다. 부도현이 거절하면 부도신족은 경천의 대전이 일어날 것이고 그 결과, 양대 성급 중 한 명이 사망할 가능성도 있었다. 심지어 종족에 내란이 일어날 가능성도 있었는데 부도신족에는 치명적이었다.

그때 조용히 서 있던 부도현이 길게 숨을 내뱉으며 쓸쓸하게 웃었다.

“내가 이 세상에서 제일 우매한 사람이라고 하지 않았더냐? 규칙을 생명보다 중요하게 여기는 내가 어찌 이를 어길 수 있을까?”

“오늘부터 나는 수련에만 몰두할 것이다. 부도신족이 네 손에서 더 나아진다면…… 정말 내가 틀렸을지도 모르겠구나.”

“부도신족의 신임 대장로가 된 것을 축하한다, 청연정.”

사람들은 두 눈이 휘둥그레진 채 상황을 살폈다. 다들 부도신족의 대장로가 이토록 쉽게 바뀔 줄 몰랐다.

현맥과 묵맥 사람들도 순간 머리가 지끈거렸다. 청연정이 대장로가 되면 그들은 더 이상 전처럼 부도신족을 쥐락펴락하지 못할 것이다.

그러나 현맥과 묵맥 장로들은 목진 때문에 묵직한 산에 깔려 의견을 내지조차 못했다. 그렇다고 그들이 그럴 자격이 있다는 건 아니었다.

다른 분맥 사람들도 잔뜩 놀라긴 했지만 받아들이지 못할 정도는 아니었다. 청연정의 실력은 대장로의 자리에 앉기에 충분했다. 또한, 그들도 현맥과 묵맥이 힘을 독차지하는 꼴을 보고 싶지 않아 오히려 좋은 일이라고 여겼다.

청맥 사람들은 환호를 멈추지 않았다. 비록 청연정이 대장로가 되면 더 이상 청맥 사람이라 할 수 없겠지만 적어도 부도현처럼 우매하고 고지식하게 종족을 관리하지는 않을 것이다.

적어도 청맥 사람들은 더는 현맥, 묵맥의 괴롭힘을 당할까 봐 걱정할 필요가 없었다.

“갈수록 흥미로워지는군.”

약진과 임초도 놀라긴 했지만 바로 피식 웃었다. 누군들 일이 이렇게 될 줄 알았을까? 다들 청연정이 다시 조탑에 갇힐 거라 생각했는데 눈 깜짝할 사이에 부도신족의 신임 대장로가 되었으니 말이다.

이 정도면 상황은 마무리된 거나 마찬가지였다. 청연정의 실력이라면 부도신족을 잠재우기엔 충분했다.

“쳇, 무능한 노인네.”

마하유는 미간을 한껏 찌푸린 채 몰래 욕설을 퍼부었다. 그는 부도현이 청연정과 크게 한 판 싸울 걸 기대했는데 이렇게 흐지부지하게 끝날 줄 몰랐다. 더구나 부도현은 대장로 자리를 다시 찾을 생각조차 하지 않고 순순히 내줬으니 말이다.

목진도 갑작스러운 변고에 적잖게 놀랐다. 그는 이상한 표정을 지으며 머리를 긁적였다. 그는 어머니를 모시고 부도신족을 떠나려 했을 뿐인데 어머니께서 갑자기 부도신족의 대장로가 되실 줄이야.

“일이 어쩌다 이렇게 되었단 말인가?”

목진은 쓸쓸하게 웃으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한편, 영진의 세계에 들어간 청연정은 부도현이 대장로의 자리를 내놓자 표정이 조금 밝아졌다.

만약 부도현이 규칙을 어기고 끝까지 싸우려 했다면 그녀는 조탑으로 상대방을 강제로 제압할 생각이었다. 그러면 부도신족에 내란이 일어날 수도 있지만 말이다.

더구나 그리되면 부도신족에서는 성급 전력을 하나 잃게 되니 이는 엄청난 타격이었다.

이것이 부도현과 다른 장로들이 청연정을 가뒀을 뿐, 함부로 처리하지 못한 이유기도 했다.

“올바른 선택을 해서 다행이네요.”

청연정은 여전히 차가운 목소리로 말을 건넸다. 그는 부도현 때문에 목진이 당했을 일들을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화가 났다.

청연정이 손을 휘두르자 영진 세계는 파르르 떨리다가 서서히 사라져 억만 갈래의 영인이 되어 그녀의 옷자락에 스며들었다.

“난 규칙대로 했을 뿐이란다. 안 그럼 난 분명 너와 목숨을 걸고 싸웠을 것이다.”

부도현도 무뚝뚝하게 말을 건네더니 아수라장이 된 대지를 쓰윽 살피며 말을 이어갔다.

“이제 네가 대장로가 되었으니 나머지는 너한테 맡겨야겠구나. 지금부터 난 부도신족 일에서 손을 떼겠다.”

그는 복잡미묘한 눈빛으로 뒤쪽에 서 있는 목진을 힐끗 바라봤다.

“네 아들이 9신맥을 헛되이 하지 않았으면 하는구나.”

“그건 당신이 신경 쓸 일이 아니에요. 목진은 부도신족의 자원에 의지하지 않고 혼자서 이만큼의 성과를 이뤄냈으니 그 누구보다 뛰어난 존재로 성장할 거예요.”

청연정이 콧방귀를 뀌며 한 말에 부도현은 말문이 막혔다. 목진이 이룬 성과는 확실히 부도신족의 젊은이들을 뛰어넘었고 어린 나이에 홀로서기에 성공한 것을 보면 진정한 천재가 분명했다.

그는 곧바로 한 갈래 빛이 되어 옷깃을 휘날리며 부도계의 깊숙한 곳으로 향했다.

“대장로를 뵙습니다!”

부도현이 떠나자 긴장된 분위기가 조금씩 완화되었다.

잇따라 청맥 사람들이 먼저 인사를 올리자 다른 분맥 사람들도 공손하게 허리를 굽혔고 현맥, 묵맥 사람들마저 한숨을 쉬며 인사를 올렸다.

청연정이 손을 휘익 젓자 현맥과 묵맥 사람들은 잠시 고민하다가 조심스럽게 말을 건넸다.

“대장로님, 우리 양맥의 맥수와 장로들을 풀어주시면 안 될까요?”

청연정은 바닥에 깔린 장로들을 살피고는 순간 머리가 지끈거렸다. 역시 대장로는 아무나 하는 것이 아니었다.

그렇다고 양맥의 장로들을 계속 저리 둘 수는 없는지라 청연정이 옷깃을 휘날리자 묵직한 산맥들이 서서히 떠오르며 빛줄기가 되어 하늘로 향했다.

이렇게 양맥의 장로들은 다시 풀려났다.

“목진 네 이놈, 내 오늘 절대 너를 가만두지 않을 것이다!”

현맥의 맥수 현광은 산발이 된 채 나타나 버럭 소리를 질렀는데 주위가 너무 조용해 현맥 쪽을 바라보니 현맥 장로들이 미친 듯이 눈치를 주었다.

“내 아들을 어찌하겠단 말인가?”

현광은 멈칫하다가 어디선가 들려오는 목소리에 고개를 들었는데 청연정을 발견하고 화들짝 놀랐다.

“청연정? 자네가 어찌 풀려났단 말인가?”

묵맥 맥수 묵동도 눈가를 파르르 떨며 청연정을 바라보더니 두리번거리며 대장로를 찾았다. 그는 청연정이 왜 이곳에 나타난 건지 알고 싶었다.

“오늘부터 내가 부도신족의 대장로라네. 부도현은 부도계의 깊숙한 곳으로 조용히 수련하겠다며 떠났네.”

청연정이 한기 어린 눈빛으로 노려보며 말했다. 그 말에 현광과 묵동은 순간 두 눈이 휘둥그레진 채 서 있다가 한참 지나서야 정신을 차렸다.

“이게…… 어찌 이럴 수 있단 말인가? 거짓말하지 말게!”

그들은 묵직한 산맥에 깔린 지 한 시진도 채 안 지났는데 어찌 부도신족의 대장로가 바뀌었단 말인가?

그들은 현맥과 묵맥의 장로들을 바라봤는데 다들 씁쓸하게 웃으며 조용히 서 있기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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