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13화. 선물
현광과 묵동은 순간 머리가 지끈거렸다. 그들은 상황이 이렇게 될 줄 꿈에도 몰랐다. 청연정이 대장로가 되어 부도신족의 최고 권력자가 되었으니 그들은 더 이상 전처럼 부도신족을 쥐락펴락하지 못할 것이다.
현광과 묵동이 성급 천지존경에 이르러 부도신족의 족장이 되지 않는 이상, 더는 청연정의 상대가 되지 않을 것이다.
그런데 그들은 선급 후기 천지존으로 성급과 한 보 차이일 뿐이지만 죽을 때까지도 해당 경지에 이르지 못할 가능성이 컸다.
또한, 여태껏 청맥, 청연정, 목진을 대했던 생각이 떠오르자 현광과 묵동은 어쩔 바를 몰랐다.
앞으로 현맥과 묵맥은 적잖게 고생해야 할 것이다.
현광과 묵동은 깊게 숨을 들이켜며 마음을 가라앉히고 억지로 웃으며 인사를 올렸다.
“그렇다면…… 대장로를 뵙습니다.”
청연정은 대충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도 현광과 묵동이 너무 얄미웠지만 양맥의 맥수라 마음대로 처리할 수 없었다. 그러다 부도신족에 내란이 일어날 수도 있기 때문이었다. 대신, 이제 그녀가 대장로가 되었으니 앞으로 얼마든지 시간은 있었다.
“일단 물러나게.”
청연정의 말에 현광, 묵동 등은 공손하게 인사를 올린 뒤, 양맥 장로들과 함께 물러났다.
잇따라 청연정은 부도신족에 온 각 세력들에게 고개를 돌리고는 상냥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부족한 모습을 보여드려 미안하군. 제맥회무는 이만 끝내겠지만 다들 부도신족에서 편하게 머물다 가게. 우리가 정성껏 대접하겠네.”
청연정의 강단 있는 모습에 사람들은 바로 감사 인사를 전했다.
“우리 목진을 지켜줘서 고맙네. 앞으로 기회가 되면 반드시 무한의 화역과 무경에 염제와 무조를 만나러 가겠네.”
청연정은 훨씬 부드러워진 눈빛으로 약진과 임초를 바라보며 말을 건넸다.
한편, 약진과 임초도 가볍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사람들은 그 광경에 이내 감탄했다. 그들은 제맥회무를 보러 온 것뿐인데 놀라운 광경을 보게 되었다.
오늘부터 부도신족의 판도는 완전히 바뀔 것이다.
목진은 곧 대천세계의 유명인사가 될 것이고 부도신족 대장로인 어머니를 둔 그를 건드릴 사람은 더는 없을 것이다.
* * *
제맥회무가 끝나자 부도계는 다시 조용해졌다.
비록 대장로가 바뀌긴 했지만 청연정의 실력과 명망으로 그 자리에 앉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현맥과 묵맥 사람들을 제외하고 다들 이 사실을 받아들이기 시작했다.
부도신족을 방문한 기타 세력 사람들도 부도신족에 며칠 머물고는 서서히 떠나갔다. 그들은 부도신족에서 벌어진 일들을 대천세계에 널리 알릴 것이고 목진도 곧 유명인사가 될 것이다.
비록 청연정이 그날 일을 마무리하긴 했지만 목진의 수단도 상당히 놀라웠다.
영급 초기의 실력으로 현맥의 장로들을 전부 쓰러뜨렸을 뿐만 아니라 호위 대진의 힘을 빌려 부도신족의 8할 정도의 장로들을 제압했다. 또한, 성급 천지존인 부도현이 나서야만 하는 상황을 만들었으니 말이다.
이는 목진이 아니고서야 해낼 수 없는 일이었다.
* * *
부도계의 한 산맥에 넓고 조용한 정원이 펼쳐져 있었다. 정원에 있는 정자 주위에 놓인 가산과 계곡에서 들리는 새소리가 다른 곳과는 완전히 다른 느낌을 주었다.
이곳은 부도신족에서 가장 좋은 접대 장소로 지금은 목진이 거처로 사용하고 있었다.
제맥회무가 끝난 뒤, 장로들은 목진의 거처를 강제로 이곳으로 옮기고 아부를 떠느라 바빴는데 목진은 순간 말문이 막혔다.
이는 전부 청연정이 부도신족의 대장로가 되었기 때문이었다.
안 그럼 목진이 죄인이 아니더라도 영급 천지존의 실력으로 부도신족에서 절대 그를 이처럼 중히 여기지 않았을 것이다.
청연정이 조탑에서 풀려난 뒤, 부도신족의 최고 권력자가 되자 장로들은 더는 목진을 함부로 대하지 못했다. 그들은 성급 천지존을 모시듯 그를 보살폈다.
목진 역시 놀라운 태도 변화에 신경 쓰지 않고 그들의 호의를 마음껏 누렸다. 그러다 언젠가 흥미가 떨어지면 더는 찾아오지 않을지도 모른다.
그는 어머니께서 대장로가 되었다고 해도 부도신족이 그리 썩 좋지 않아 이곳의 힘을 빌릴 생각이 없었다.
그는 부도신족 없이도 여태껏 잘만 살아왔다.
* * *
“목진아, 제맥회무가 끝났으니 우리도 이만 가봐야겠구나.”
약진과 임초가 소소, 임정을 데리고 와서 작별 인사를 했다.
그들은 목진을 도와주러 부도신족에 온 것인데 목진이 무사하니 이만 떠나기로 한 것이다.
이에 목진은 정중하게 인사를 올렸다.
“도와주셔서 감사했습니다. 그리고 염제와 무조 선배님들께 부디 이 말씀을 전해주세요. 이번에는 제가 무한의 화역과 무경에 빚을 지었다고 말이에요.”
약진과 임초는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들은 소염과 임동이 언젠가 목진이 대천세계의 최정예급 강자가 될 거란 확신이 있었기에 도와줬다는 걸 잘 알고 있었다.
이번 일을 계기로 약진과 임초도 소염, 임동과 같은 생각이 들었다. 목진이라면 분명 그들의 기대를 저버리지 않을 것이다.
대천세계에서 아무나 염제와 무조를 움직일 수 있는 것은 아니었지만 목진만큼은 충분히 자격이 있었다.
“그들이 직접 오려고 했는데 최근 1년 사이, 역외사족의 움직임이 심상치 않아 어쩔 수 없었단다. 무한의 화역과 무경은 대천세계의 변방에 자리 잡고 있어 항상 긴장해야 한단다.”
약진과 임초의 말에 목진은 미간을 살짝 찌푸렸다. 그는 대천세계의 강적인 역외사족의 사악한 일면을 하위면에서도 본 적이 있었다.
“염제와 무조는 역시 대단한 인물들이군.”
청연정도 어느새 모습을 드러냈다.
“내 말도 부디 전하게. 부도신족은 무한의 화역, 무경과 가깝게 지낼 의향이 있다고 말이야. 언젠가 기회가 되면 우리도 반드시 협력할 테니 역외사족의 움직임이 이상하면 바로 부도신족에 알리게.”
임초와 약진도 이내 정색했다. 목진과 달리, 청연정의 말은 부도신족을 대표할 수 있기 때문이었다. 부도신족은 5대 고족 중 하나로 무한의 화역이나 무경 못지않게 강대하여 염제와 무조는 분명 그녀의 호의를 받아들일 것이다.
“대장로의 말은 꼭 전하겠네.”
임초와 약진이 정중하게 말을 건넸다.
“목진아, 기회가 되면 반드시 무경에 와야 해. 대신, 다음번에 만나게 되면 나도 천지존이 되어있을 거야!”
임정은 아쉬워하며 주먹을 꽉 쥐고 말했다.
“넌 할 수 있어!”
목진은 생긋 웃으며 말했다.
임정의 천부적 재능은 사실 목진 못지않은데 성격상 그처럼 생사의 고난을 겪을 사람이 아니었다. 안 그럼 벌써 현라, 묵심 등 부도신족의 천재들보다 훨씬 실력이 뛰어났을 것이다.
“네가 천지존경에 이르렀다고 해서 한 번 싸워볼까 했는데 제맥회무를 보니 용기가 나지 않더라. 난 이제야 아버지께서 왜 너를 그토록 높이 평가하셨는지 알 것 같아. 넌 아버지처럼 괴물이야.”
소소가 뚫어져라 쳐다보며 한 말에 목진은 흠칫 놀랐다.
아버지를 괴물이라고 하다니, 이래도 되는 건가?
이에 약진과 임초가 가볍게 웃더니 목진, 청연정과 인사를 나누고 소소, 임정과 함께 떠났다.
“목진아, 또 보자꾸나.”
그들은 간단히 인사를 마치고 눈앞에서 사라졌다.
“목진아, 염제와 무조는 진정한 절세의 강자란다. 저들은 비록 하위면 출신이지만 대천세계의 강자들을 제압하고 최정예급 강자가 되었기 때문에 눈이 여간 높은 것이 아니란다. 대천세계에서 저들의 눈에 들 만한 사람은 얼마 없을 텐데 그중 한 명이 너라는 것이 너무 자랑스럽구나.”
청연정은 임정 등이 떠나가는 것을 바라보며 목진의 머리를 가볍게 쓰다듬었다.
“두 분은 확실히 대단한 분들이세요.”
목진도 동의하듯 고개를 끄덕였다. 염제와 무조는 상대하면 할수록 매력 넘치는 사람들이었다.
“그런데 내 아들도 전혀 뒤처지지 않는단다. 언젠가 너도 저들과 어깨를 나란히 할 수 있을 거다.”
“그러길 바랍니다.”
청연정의 말에 목진이 생긋 웃었다.
“어머니, 우리 북령경에는 언제 돌아갈까요? 아버지께서 20년도 넘게 기다리고 계세요.”
이제 부도신족에서 그들을 건드릴 사람이 더는 없었고 다들 태도가 공손했지만 목진은 최대한 빨리 이곳을 떠나고 싶었다.
그는 어머니와 함께 자그마한 북령경에 돌아가고 싶을 뿐이었다.
북령경은 천라대륙, 부도신족과 비교하면 한없이 작은 곳이지만 목진한테는 그곳보다 소중한 곳은 또 없었다.
그는 북령경에서 태어나고 자랐으며 그곳에서 대천세계에 가려고 다짐했기 때문이었다.
또한, 목진은 북령경을 떠날 때 아버지와 했던 약속을 한시도 잊지 않았다.
목역의 주인인 아버지는 아들을 정성스레 키웠고 목진한테 아버지보다 더 위대한 사내는 없었다.
청연정도 남편이 생각난 듯 눈빛이 한결 부드러워졌다.
“그 녀석이 내 아들을 정말 잘 키웠군. 제법이야.”
청연정은 남편이 너무 그리웠다.
“부도신족 일이 마무리되면 함께 떠나자꾸나.”
청연정은 생긋 웃으며 목진을 쓰윽 훑었다.
“그 전에 너한테 줄 선물이 있단다.”
말을 마친 청연정은 곧바로 목진의 손목을 잡고 어딘가로 떠났다.
영광으로 온몸을 감싼 두 사람은 어딘가에 도착했는데 영광이 가시자 목진은 오래된 땅에 오래된 석탑이 조용히 떠 있는 것을 발견했다.
목진은 이곳이 낯설지 않았는데 그의 성부도탑을 여기서 수련해냈고 하마터면 이곳에서 부도현한테 잡힐 뻔했다.
“어머니?”
목진은 청연정이 왜 그를 여기 데려온 건지 궁금했다.
“부도신족에서는 천지존경에 이르면 조탑에 들어올 자격이 주어진단다. 이곳에서 조기를 흡수하면 부도탑의 두 번째 강화를 이룰 수 있을 것이다.”
“그래도 돼요?”
목진은 멈칫하더니 머리를 긁적이며 물었다.
청연정은 아무렇지 않게 말했지만 목진은 그 기회가 얼마나 귀한지 잘 알고 있었다. 아마 부도신족에서 이러한 기회를 얻을 수 있는 사람은 몇 명 없을 것이다. 더구나 목진은 아직 부도신족 사람도 아니었다.
“이 어머니가 부도신족의 대장로가 되었으니 내 말만 따르거라. 그리고 이건 부도신족이 너한테 진 빚이란다. 저들이 여태껏 너를 적잖게 괴롭혔으니 보상이라고 생각하고 받거라.”
청연정의 패기 넘치는 말에 목진은 씁쓸하게 웃으며 잠시 고민하다가 결국 고개를 끄덕였다.
“감사해요, 어머니.”
부도탑을 강화할 기회는 아무나 가질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오래된 조탑에는 수많은 공간이 있는 것 같았다. 목진은 적당한 자리를 찾아 앉은 뒤, 고개를 들었는데 허무한 공간 밖에서 번쩍이는 오래된 빛이 보였다. 공간 전체가 이러한 기운으로 가득 찼다.
“조탑은 부도신족의 최강 필살기로 수십만 년 동안 존재했단다. 대장로들은 죽기 직전에 이곳에 들어와 자기 영력을 조탑에 주입했기 때문에 조탑도 자연스레 엄청난 힘을 지니게 되었단다.”
목진 옆에 서 있던 청연정이 이내 정색하며 말을 이어갔다.
“조탑의 힘을 한껏 끌어올리면 성급 천지존도 순식간에 죽일 수 있단다.”
“역외사족이 부도신족에 쳐들어왔을 때 우리는 조탑의 힘으로 천마제를 세 명이나 죽였단다.”
목진은 순간 화들짝 놀랐다. 천마제는 성급 천지존 정도의 강자인데 여전히 조탑한테 꿈쩍도 못 하다니, 이것만 봐도 조탑이 얼마나 무서운 존재인지 알 수 있었다.
“사실 조탑은 절세의 성물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란다. 심지어 성급 절세의 성물 중에서도 순위권이 제법 앞쪽에 있을 거란다.”
이에 목진은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일전에 무조가 만들어낸 팔조유리발도 성급 절세의 성물이라 부도현의 강력한 공격에도 튕겨 나갔을 뿐, 끄떡없었다. 성급 절세의 성물은 확실히 단단하고 강력했다.
하지만 부도신족의 조탑은 팔조유리발보다 훨씬 강했다. 아마 대천세계의 최강 성급 절세의 성물 중 하나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