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16화. 무능한 녀석
목봉은 떠나기 전보다 부쩍 성숙해진 아들을 바라보노라니 마음이 복잡해졌는데 금세 아들이 했던 말이 떠올라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부디 제 아들을 용서해주세요. 아직 자초지종을 잘 몰라……”
목봉은 아들이 한 말을 되뇌고는 식은땀이 주르륵 흘렀다. 속 좁은 백령왕은 목진의 말에 잔뜩 화를 낼 것이고 분명 매서운 수단으로 복수할 것이다.
“하하하!”
목봉의 말이 끝나지도 않았는데 최상단에 앉아있던 백령왕이 껄껄 웃었다. 그 웃음에는 엄청난 살기가 깃들어 있었다.
이에 목봉은 흠칫 놀라 아들 앞을 막아 나섰다. 그는 오늘, 죽는 한이 있더라도 목진만은 살려야겠다고 생각했다.
당천아도 황급히 달려와 목진의 앞을 가로막고 잔뜩 경계하며 백령왕을 노려봤다.
정작 기타 세력의 수장들은 가여운 눈빛으로 목봉, 목진 등을 바라봤다. 오늘 백령왕이 제대로 화를 내면 북령맹 중 이곳을 무사히 빠져나갈 사람은 단 한 명도 없을 것이다.
“멍청한 녀석, 이제 북령맹은 산산이 부서지겠군.”
누군가 히쭉거리며 중얼거렸다. 북령맹이 흩어지면 그들은 북령경에까지 손을 뻗을 수 있어 기분이 좋았다.
백령왕은 한참 지나서야 웃음을 거두고는 눈물이라도 난 듯 눈가를 정리하며 말했다.
“나를 감히 저따위라고 하다니…….”
백령왕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입꼬리를 씰룩거렸다.
“저 녀석의 사지를 찢어버리거라.”
이에 백령왕 옆에 서 있던 지지존 대원만급 강자인 검은색 도포를 입은 노인이 묵묵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가 독사 같은 눈빛으로 목진을 노려보자 목봉은 조마조마해졌고 당천아도 이를 악물고 봉황이 새겨진 옥패를 꺼냈다.
그녀는 지지존 대원만급 강자 앞에서 엄청난 위압감을 느꼈는데 옥패를 부수면 바로 목진을 데리고 떠날 수 있었다.
그런데 목진은 아무렇지 않은 듯 막아섰고 당천아는 그를 걱정 어린 눈빛으로 바라봤다.
“목진아, 지금은 네가 함부로 나설 때가 아니야. 지금은 참아야 해.”
당천아는 아직 목진이 어려 센 척한다고 생각했다.
“천아 누이, 걱정하지 마. 나에게 다 생각이 있어.”
목진은 멈칫하더니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잇따라 그는 고개를 들고 자신을 향해 다가오는 검은색 도포를 입은 노인을 바라봤다. 상대방은 웅장한 영력을 내뿜으며 무서운 영력 위압감을 형성했다. 보아하니 기선 제압을 하려는 것 같았다.
“당신이 내 아버지를 저렇게 만든 건가?”
목진은 미간을 살짝 찌푸리며 검은색 도포를 입은 노인을 노려보며 물었다.
“걱정 말거라. 너와 네 아버지는 곧 죽기보다 못한 지옥을 맛보게 될 것이다.”
검은색 도포를 입은 노인은 목진의 질문이 우습기라도 한 듯 입꼬리를 씰룩거리며 말했다.
쿵!
목진이 피식 웃으며 천천히 손을 들어 검은색 도포를 입은 노인을 향해 주먹을 쥐자 웅장했던 영력은 순식간에 폭발했고 엄청난 힘이 그를 들어 올렸다가 힘껏 내던졌다.
쿠쿵!
대전 전체가 파르르 떨리자 다들 두 눈이 휘둥그레진 채 검은색 도포를 입은 노인을 쳐다봤다. 목진과 목봉의 생사를 쥐고 있을 것 같았던 검은색 도포를 입은 노인은 바로 목봉 앞에 무릎을 꿇었고 무릎 주위의 바닥에는 균열이 일었다.
“이…… 이런…….”
다들 귀신이라도 본 듯한 표정을 지었다. 아무도 지지존 대원만급 강자가 왜 갑자기 목봉한테 무릎을 꿇었는지 알지 못했다.
검은색 도포를 입은 노인도 화들짝 놀라 미친 듯이 발버둥쳤지만 엄청난 힘 때문에 꼼짝도 못 했다. 그 모습을 발견한 당천아, 목봉, 당산 등은 한참 지나서야 정신을 차렸다.
“당신이 저지른 일이니 당장 내 아버지께 사과하게.”
목진이 태연하게 서서 손을 대충 휘두르자 검은색 도포를 입은 노인은 머리를 번쩍 들었다가 바닥에 힘껏 조아렸는데 지면이 움푹 파였다.
“으악!”
검은색 도포는 머리에서 피를 줄줄 흘리며 애절한 비명을 질렀다.
“왜 아직도 아무 말이 없는 건가?”
목진은 인상을 찌푸린 채 묻더니 다시 손을 휘둘렀다.
퍽! 퍽! 퍽!
다른 세력의 수장들은 무려 지지존 대원만급 강자를 인형 다루듯 하는 목진을 멍하니 쳐다봤다. 검은색 도포를 입은 노인은 목진의 손에 따라 미친 듯이 머리를 바닥에 처박았고 대전의 암석 바닥은 균열이 일며 무너졌다.
이에 대전에는 검은색 도포를 입은 노인이 바닥에 머리를 조아리는 소리밖에 나지 않았는데, 다들 그 소리에 소름이 쫙 끼쳤다.
그들은 이제야 지지존 대원만급 강자를 아무렇지 않게 다루는 목진이 얼마나 무서운 존재인지 깨달았다.
퍽!
검은색 도포를 입은 노인한테 머리에 난 상처는 별것 아니었지만 목진에 대한 두려운 마음은 걷잡을 수 없이 커졌다.
그는 드디어 자신을 제압한 힘이 얼마나 무서운지 깨달았다. 그는 목진한테 벌레만도 못한 존재나 다름없었다.
검은색 도포를 입은 노인은 상냥하게 웃고 있는 청년이 진정한 천지존이란 것을 깨달았다.
“나리, 나리, 제가 잘못했습니다! 사과할게요, 죄송합니다!”
검은색 도포를 입은 노인은 잔뜩 겁에 질려 외쳤다. 천지존이 지지존 대원만을 죽이는 것은 식은 죽 먹기인지라 그는 바로 반항을 포기하고 애원의 눈길을 보냈다.
“바로 그랬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썩 물러나게.”
목진은 그제야 멈춰 서서 대수롭지 않게 말하고는 주먹을 휘둘렀는데 앞쪽 공기가 폭발했다. 검은색 도포를 입은 노인은 큰 타격을 입은 듯 가슴팍이 움푹 파여 멀리 튕겨 나가 돌기둥에 박혔다.
목진의 공격에 검은색 도포를 입은 노인의 체내의 영력은 전부 사라졌고, 경맥마저 부서졌다. 목진은 녀석을 살려두긴 했지만 완전히 폐인으로 만들었다.
사람들은 온몸을 파르르 떨며 정신을 잃고 돌기둥에 처박힌 검은색 도포를 입은 노인을 멍하니 바라봤다. 지지존 대원만급 강자는 백령대륙에서 패주가 되고도 남을 실력자인데 목진한테는 꼼짝도 못 했다.
저 사람이 정녕 목봉의 아들이란 말인가?
다들 목진을 세상 물정을 모르는 멍청한 녀석이라고만 여겼는데 그건 사실이 아니었다!
검은색 도포를 입은 노인을 처리한 목진은 얼굴이 붉으락푸르락해진 채 자리에 앉아있는 백령왕한테 눈길을 돌렸다.
“나한테 당신은 확실히 별 볼 일 없는 녀석이라네.”
목진의 말에 더는 웃음이 나오지 않았고 오히려 식은땀이 흘렀다. 그는 사람을 잘못 봐도 한참 잘못 봤다. 훤칠한 청년은 세상 물정 모르는 녀석이 아니라 사나운 맹수였다.
지지존 대원만급 강자를 손쉽게 쓰러뜨린 무서운 실력만 봐도 목진이 천지존에 이르렀다는 것을 알아채지 못할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러나 이렇게 젊은 천지존을 본 사람은 없었다.
“고래 싸움에 새우 등 터지겠군.”
다들 숨소리조차 크게 내지 못했다. 사람들한테 목진과 백령왕은 자신의 운명을 마음대로 흔들 수 있는 신선 같았다.
하여 그들은 자리에 조용히 앉아있었다.
목봉과 북령맹 고위층들도 두 눈이 휘둥그레진 채 상황을 살폈고 당천아마저 입을 떡 벌린 채 서 있었다.
그들도 지지존 대원만급 강자가 목진한테 꼼짝 못 할 줄은 몰랐다.
북령맹의 고위층들은 북령경의 역주들이라 목진에 대해 잘 알고 있었는데 목진이 북령경을 떠날 때만 해도 그저 앳된 소년일 뿐이었다. 그런데 다시 나타난 그는 상상도 못 할 정도로 성장했다.
한편, 자리에 앉아있는 백령왕도 안색이 확 어두워졌지만 다른 사람들처럼 놀라지는 않았다.
그의 부모님도 천지존이기 때문이었다.
하여 그는 피식 웃으며 물었다.
“참 대단한 사람이구나! 무려 북현종의 장로인 나의 호위를 폐인으로 만들다니 말이다. 너는 우리 북현종이 안중에도 없는 것이냐?”
“북현종? 처음 듣는 이름이군.”
목진도 피식 웃으며 답했다.
“내 아버지는 북현종의 종주로 무려 선급 천지존이란다!”
백령왕은 씨익 웃으며 말했지만 왠지 목진이 두려웠다. 그는 비록 목진이 어느 정도 경지에 이르렀는지 몰랐지만 대충 영급 천지존인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백령왕은 하위 지지존일 뿐이라 대천세계의 최정예급 강자인 천지존이 되기까지 한참 멀었지만 부모님 덕분에 천지존도 등급이 나뉜다는 걸 알고 있었다. 영급 천지존은 선급 천지존한테 아무것도 아니었다.
백령왕이 목진이 천지존경에 이른 것을 알면서도 겁먹지 않은 데는 다 이유가 있었다.
“선급 천지존이라…… 제법이군.”
목진은 고개를 끄덕이며 말을 이어갔다.
“하지만 당신이 무능한 건 어쩔 수 없네.”
백령왕이 표정이 확 굳어 손에 힘을 주자 손잡이가 와장창 깨졌다. 그는 목진이 이렇게까지 안하무인인 줄 몰랐다. 아버지가 선급 천지존이란 것을 알고도 저따위 태도를 보이다니.
그때 백령왕 곁에 서 있던 다른 노인이 이내 정색하며 앞으로 나섰다.
“나리, 조금 전에 북현종의 장로를 폐인으로 만드셨으니 화가 풀리셨을 거라 믿습니다. 그러니 이만하시죠.”
“나리가 그만하시면 우리 북현종도 오늘 일은 없던 일로 하겠습니다.”
북현종의 장로인 검은색 도포를 입은 노인은 천지존의 힘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백령왕의 뒷배가 상당한 건 사실이지만 젊은 천지존이 정말 화라도 나면 그들을 죽이는 건 순식간이었다. 백령왕의 아버지가 와서 목진을 죽인다고 해도 이미 그들이 죽고 난 후일 것이다.
“흥, 여 장로, 두려워할 것 없단다! 저 녀석이 나를 과연 어떻게 할 수 있을까? 제아무리 나를 죽인다고 해도 아버지께서는 분명 녀석을 죽일 것이다. 천지존과 함께 죽는다고 생각하니 전혀 억울하지 않은걸?”
백령왕은 검은색 도포를 입은 노인이 일을 마무리하려는 것을 보고 피식 웃더니 음산한 눈빛으로 목진을 노려봤다.
부모님 덕에 아무도 그의 명을 어긴 적이 없었던지라 무능한 녀석이란 말을 듣고 그는 적잖게 화가 났다. 더구나 그는 독한 사람이라 목진이 살인을 저지른다고 해도 전혀 무섭지 않았다.
“내가 자네를 죽일 거라 믿지 않는 눈치군.”
목진이 술잔을 만지작거리며 한 말에 살기가 깃들었고 대전은 순식간에 추워졌다. 이에 사람들은 온몸을 파르르 떨며 목진을 바라봤다.
녀석이 설마 정말 백령왕을 죽이지는 않겠지?
만약 백령왕이 오늘 죽기라도 한다면 북현종 종주와 백화종 종주는 백령대륙을 피바다로 만들 것이다!
“얘…….”
목봉도 더는 참지 못하고 목진을 타이르려 했다. 그는 백령왕이 두려운 것보다 목진이 상대방을 죽이면 그 부모님이 복수하러 올까 봐 걱정되었다.
목진이 어느 정도의 실력을 지녔는지는 모르지만 천지존 두 명의 복수는 상당히 무서울 것이 분명했다.
하여 그는 꾹 참고 오늘 일을 무사히 넘기고 싶었다.
당산 등 북령맹의 기타 고위층들도 조마조마했다. 일이 걷잡을 수 없을 정도로 커져 그들도 별다른 수가 없었다. 그들 역시 백령왕이 죽으면 그 부모님이 북령경을 발칵 뒤집어 놓을 거라 여겼다.
목진의 실력이 엄청나긴 하지만 천지존 두 명을 상대할 정도는 아니지 않나? 더구나 그중 한 사람은 말로만 듣던 선급 천지존이었다.
“목진아…….”
당천아도 목진의 옷자락을 잡으며 속삭였다. 그녀는 백령왕이 한 짓 때문에 잔뜩 화가 나긴 했지만 녀석은 뒷배가 상당해 얼굴을 붉혀봐야 좋을 것이 없었다.
“저를 믿어 봐요, 제가 알아서 처리할게요.”
목진이 미소를 지으며 답하자 목봉은 더는 뭐라 하지 않았다. 목진은 무턱대고 덤빌 사람이 아니란 것을 누구보다 잘 아는 그는 아들을 믿기로 했다.
당천아도 잠시 고민하더니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