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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주재-918화 (917/1,000)

918화. 진북현

“누가 그런 것이냐?”

유백화가 한기 어린 눈빛으로 대전을 훑으며 물었다.

이에 다들 자연스레 목진을 바라봤는데 녀석은 수중의 술잔을 만지작거리다가 한참 지나서야 고개를 들고 유백화를 바라봤다.

“보아하니 사죄하러 온 것이 아닌 것 같네요?”

“사죄라니, 제정신이냐?”

유백화는 너무 화가 난 나머지 오히려 씨익 웃으며 물었다.

“저 녀석이 감히 백령대륙에서 제 아버지를 다치게 했고 제 절친한 벗을 아내로 삼으려 했어요. 그런데 당신들은 이 일을 모른 척하니 제가 나설 수밖에요.”

“네가 뭔데!”

유백화는 목진의 말에 씩씩거리며 말을 이어갔다.

“백령대륙은 내 남편이 아들한테 준 선물이니 내 아들이야말로 백령대륙의 주인이란다. 그러니 그가 누굴 공격하고 아내로 맞이하든 뭐가 문제란 말이냐?”

“참 말이 안 통하는 여인이군.”

목진은 미간을 살짝 찌푸린 채 말했다.

“그럼 지금부터 백령대륙은 제가 차지해야겠군요.”

“머리에 피도 안 마른 녀석이 어디서 입을 함부로 놀리는 것이냐!”

말을 마친 유백화가 앞으로 나서자 옷자락에서 무한의 영력이 날아올라 화우로 변해 목진한테로 향했다.

“백령대륙은 너 따위가 차지할 수 있는 곳이 아니란다!”

도천의 화우는 보석처럼 눈부시게 빛났는데 꽃잎들은 지극히 순수한 영력으로 이뤄진 거라 한 송이만으로도 지지존 대원만급 강자를 죽일 수 있었다. 이 정도 양이면 유백화는 백령성에 있는 사람을 전부 죽일 수도 있었다.

그런데 목진은 상대방의 공격을 보고도 태연하게 서 있기만 했다. 영급 초기의 실력으로 선급 초기의 실력자를 상대할 수 있었던 그의 실력은 어느덧 영급 중기에 이르렀다. 하지만 유백화는 겨우 영급 초기의 실력자라 별 볼 일 없었고 그의 상대도 되지 않았다.

목진이 입을 쩍 벌려 숨을 내쉬자 이는 영력 돌풍이 되어 휘몰아치는 화우를 순식간에 없앴다.

그 광경에 다들 깜짝 놀랐다. 그들은 목진이 영급 천지존이란 걸 알고 있었지만 유백화의 공격을 이토록 쉽게 무산시킬 줄은 몰랐다.

“실력이 조금 뛰어나다고 감히 내 아들을 건드린 것이냐?”

유백화는 이내 정색하며 체내에서 웅장한 영력이 폭발했는데 육신이 순식간에 눈부시게 빛나는 영체가 되었다.

“영맥 신통, 백화살신(百花殺神)!”

유백화가 목진을 향해 손가락을 내리찍자 ‘위잉!’ 하는 소리와 함께 목진의 주위에 괴이한 빨간 꽃이 자라나 그를 집어삼키려 했다.

“흥, 머리에 피도 안 마른 녀석이 천지존경에 이르렀다고 감히 내 앞에서 우쭐거리다니. 나의 영맥 신통은 상당히 괴이하여 일단 갇히면 아무리 영급 천지존이라도 영체가 녹아내릴 것이다!”

유백화는 빨간 꽃이 목진을 집어삼키려는 것을 보고 피식 웃으며 말했다.

그런데 적잖게 놀란 목봉과 당천아 등과 달리, 청연정은 태연하게 서서 괜찮다며 남편을 다독여 주었다.

기타 세력 수장들도 몰래 머리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다들 나이가 많은 유백화가 이길 거라 여겼다.

“하하!”

그 모습에 자리에 앉아있던 백령왕이 껄껄 웃더니 사악한 눈빛으로 목봉, 당천아 등을 노려봤다.

“천맥 따위에 뭐가 그리 대단하다고…….”

그런데 갑자기 보라색 화염이 피어올라 영급 천지존마저 벗어날 수 없었던 빨간 꽃이 놀라운 속도로 녹아내렸다.

유백화는 순간 흠칫 놀랐다. 제아무리 수단과 방법이 많다고 해도 일단 빨간 꽃에 갇히면 절대 이토록 쉽게 빠져나올 수 없는데 목진은 어찌 1각도 안 되는 사이에 풀려났단 말인가?

“무식한 여인은 상대하는 것이 아니라더니…….”

목진은 고개를 들고 유백화를 막연하게 쳐다보며 말을 이어갔다.

“힘을 쓰는 수밖에 없겠군.”

말을 마친 목진은 다시 입을 쩍 벌렸는데 보라색 화염이 보라색 염룡으로 변해 포효하며 상대방에게 향했다.

일전에 보라색 화염의 위력을 직접 확인한 유백화는 바로 결인해 웅장한 영력으로 영력 꽃담을 이뤘다.

꽃담은 아름답기만 하고 취약해 보였지만 극강의 방어력을 보유해 영급 천지존이 전력을 다한 공격마저 막아낼 수 있었다.

그런데 그것도 보라색 염룡한테는 아무런 소용도 없었으니, 염룡이 다가가자 유백화가 이룬 방어벽은 한순간에 무너졌다.

유백화는 보라색 염룡이 자신의 최강 방어벽마저 순식간에 부수는 것을 보더니 그제야 목진과의 실력 차이를 실감했다.

“젠장, 일단 물러났다가 남편이 친구들을 데리고 오면 다시 녀석을 상대해야겠군!”

유백화는 이를 악물며 중얼거리더니 신속하게 철수했다.

그 광경에 다들 깜짝 놀랐다. 아무도 기세등등하게 온 백화종 종주가 목진과 얼마 싸우지도 않고 황급히 물러날 줄 몰랐다.

다들 목진을 바라보는 눈빛이 확연히 달라졌다. 목진이 선보인 실력은 유백화를 훨씬 뛰어넘었다.

고래고래 소리만 지르던 백령왕도 안색이 확 어두워졌다.

“이곳은 오고 싶다고 오고, 가고 싶다고 언제든지 갈 수 있는 곳이 아니랍니다.”

정작 목진은 이를 무시한 채 피식 웃으며 한 손으로 결인하자 보라색 염룡이 폭발하더니 자염 거수로 변해 공간을 가르며 날아가 유백화를 힘껏 때렸다.

퍽!

유백화는 큰 타격을 입은 듯 맥없이 추락해 도성의 바닥에 커다란 구멍을 냈고 이를 중심으로 주위에 균열이 가득 일었다.

쿵!

그런데 목진은 이대로 끝낼 생각이 없었다. 자염 거수는 주먹을 꽉 쥔 채 파멸의 힘을 싣고 사정없이 내려앉았다. 이 정도 공격이면 제아무리 영급 천지존이라도 영체가 부서질 것이다.

유백화도 어느새 사색이 되어 자염 거수를 쳐다봤다. 그녀는 목진이 이렇게까지 강할 줄 몰랐다.

슉!

자염 거수가 힘껏 내려앉자 백령성 전체가 격렬하게 진동했다.

유백화가 정녕 이대로 목진의 공격에 죽는단 말인가?

이러한 생각에 다들 연기가 자욱해진 곳을 뚫어져라 쳐다봤는데 안개가 가시고 나자 유백화의 위쪽에 어느새 청광을 발하는 청색 방패가 나타나 여인을 지켜주었다.

이에 미간을 살짝 찌푸린 채 상황을 살피던 목진은 느긋하게 기지개를 켜고 대수롭지 않게 먼 곳을 바라봤다. 그곳에는 무서운 영력 위압감을 방출하며 네 명의 사람이 서 있었다.

그중, 청색 도포를 입은 사내가 한기 어린 눈빛으로 멀리 떨어져 있는 목진을 노려보며 외쳤다.

“네가 나 진북현(秦北玄)을 무시하는 것이 아니고서야 절대 내 아내와 아들을 이렇게까지 괴롭히지 않았을 것이다.”

뇌명 같은 소리가 울려 퍼지자 사람들은 순간 두려워 온몸을 파르르 떨었다.

진북현이 형성한 영력 위압감은 유백화처럼 엄청나 보이지는 않았지만 지극히 무서운 힘이 깃든 것만은 사실이었다.

이에 다들 눈가를 파르르 떨며 저 멀리 하늘을 쳐다봤는데 청색 도포를 입은 사내는 실력을 잘 숨겨 무서운 압박감만 아니었으면 다들 그를 일반인이라고 여겼을 것이다.

그러나 다들 청색 도포를 입은 사내가 누구인지 잘 알았다.

그는 바로 북현종의 종주이면서 백령대륙을 포함한 네 개 대륙의 주인이었다. 또한, 선급 천지존으로 대천세계의 서북쪽에서 상당히 유명한 존재였다.

이 정도 실력이면 대천세계에서도 패주라 할 수 있었다.

“아버지!”

백령왕은 다시 화색이 되어 외쳤다.

“북현, 절대 저 녀석을 가만둬서는 안 돼!”

유백화도 드디어 정신을 차리고 이를 갈며 외쳤다.

목진의 실력이 자신과 비슷하다고 여겼던 그녀는 두 차례의 대결로 죽을 뻔한 것이 너무 수치스러웠고 목진의 놀라운 전투력에 깜짝 놀랐다. 이에 진북현이 당장 목진을 죽였으면 하고 바랐다.

반면, 목진이 유백화를 손쉽게 처리한 것에 조금이나마 안심되었던 북령맹 사람들은 다시 긴장해 얼굴마저 하얗게 질렸다. 그들은 비록 천지존경과 거리가 멀지만 선급 천지존과 영급 천지존의 차이를 잘 알고 있었다.

더구나 북현종은 대천세계의 서북쪽에서 상당히 유명하고 실력이 막강한 세력이었다. 하긴, 그러지 않고서야 대륙을 네 개나 차지하지는 못했을 것이다. 사실 이는 북현종의 종주인 진북현이 선급 천지존이기 때문에 가능했던 일이었다.

목진이 유백화를 상대하는 것은 식은 죽 먹기일 수 있어도, 진북현마저 그렇단 보장은 없었다. 더구나 진북현은 절친한 벗을 세 명이나 데리고 왔다.

상대편에는 천지존이 다섯 명이나 있었다.

정작 목진은 대수롭지 않게 서서 멀리 떨어진 진북현을 바라보며 물었다.

“당신이 북현종의 종주, 진북현인가요?”

“그렇단다.”

진북현은 무덤덤하게 말을 이어갔다.

“오늘 일은 네가 벌인 것이냐?”

진북현은 도움을 청하러 온 장로한테서 자초지종을 들었지만 마음을 가라앉히고 말했다.

“내 아들이 잘못한 건 사실이지만 양쪽 팔을 자른 건 너무 한 것 아니냐?”

“그게 왜요?”

목진은 피식 웃으며 말을 이어갔다.

“제가 반나절만 늦게 왔으면 제 아버지가 무슨 꼴을 당하셨을지 모르고 제 절친한 벗도 수모를 당했을 텐데요. 설마 당신의 아들이 제 아버지와 친구보다 귀하다고 생각하는 건가요?”

목진은 웃고 있었지만, 눈빛만은 점점 차가워졌다.

“무식한 녀석, 내 아들은 당연히 너희보다 고귀하지!”

유백화가 피식 웃으며 말했다. 진북현의 등장에 그녀는 다시 기세등등해졌다.

“시끄러워 죽겠군, 그따위 물건이 정녕 당신을 지켜줄 수 있다고 생각하는 건가요?”

말을 마친 목진이 손을 힘껏 휘두르자 청색 방패가 막아냈던 자염 거수에서 보라색 화염이 미친 듯이 뿜어져 나와 공격을 개시했다.

쿵!

자염 거수의 전력을 다한 공격에 엄청난 고온이 휘몰아쳐 주위의 대지마저 사르르 녹아내렸고 청색 방패마저 너무 뜨거워 비명을 질렀다.

청색 방패는 영급 절세의 성물이지만 보라색 화염한테는 꼼짝도 못 했고, 곧 녹아내릴 것 같은 기미가 보였다.

쿵!

방어력이 확 줄어든 방패는 자염 거수의 힘을 막지 못하고 진북현이 조치를 하기도 전에 유백화를 힘껏 때렸다.

순간, 도성에 만 장 정도의 구멍이 생겨났고 유백화는 온몸이 까맣게 그을렸으며 머리카락마저 불타 없어졌다. 또 청색 방패가 발하는 빛도 훨씬 어두워졌다. 일전에 청색 방패가 자염 거수의 대부분 힘을 받아내지만 않았으면 유백화는 영체마저 부서졌을 것이다.

그런데도 그녀는 크게 다쳐 안색이 확 어두워졌다. 그녀는 목진이 진북현 앞에서까지 자신을 공격할 줄 몰랐다.

“으악!”

잔뜩 화가 난 유백화는 고래고래 외쳤다.

“북현아, 당장 저 녀석을 죽여!”

그 광경에 진북현은 드디어 안색이 어두워졌다. 그는 자신을 전혀 안중에도 두지 않는 목진의 처사에 드디어 화가 났다.

“그럼 나도 너를 잡아 처리하는 수밖에 없겠구나!”

말을 마친 진북현이 옷깃을 휘날리자 유백화를 지켜주던 청색 갑옷이 청광을 발하며 하늘 높이 날아올라 수만 장 정도의 방대한 청색 거북이로 변했다.

녀석은 표정이 한껏 일그러진 채 입을 쩍 벌려 청색 홍류를 내뿜었는데 한 방울에 산 한 채의 무거움 힘을 싣고 있었다. 홍류는 곧바로 목진을 공격했다.

“허허, 형님의 북명귀(北溟龜)는 날이 갈수록 무서워지는군요. 선급 이하의 실력자들은 북명 홍류를 절대 당해내지 못할 거예요.”

진북현을 도와주러 온 세 명의 천지존 중 한 사람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그 말에 나머지 두 사람도 동의하듯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들은 청색 홍류의 존재를 잘 아는 눈치였는데, 진북현은 북현종을 설립하는 과정에서 북명귀로 수많은 천지존을 쓰러뜨렸다.

보아하니 목진은 겨우 영급 중기 천지존이니 진북현의 상대가 될 리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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