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21화. 원거리 전송 영진
“천아 누이, 왜 왔어?”
목진이 정신을 차리고 보니 당천아가 앞에 서 있었다.
“이곳은 나도 오랜만이야.”
당천아는 생긋 웃으며 목진의 옆에 앉더니 다리를 축 늘어뜨리며 주위를 살폈다.
두 사람은 어릴 때부터 함께 자랐기에 당천아는 목진의 집이 익숙했다. 이에 목진도 이내 감탄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만황령원에 남아있는 거야?”
“만황령원이 나한테 어울리는 것 같아. 비록 너보다 훨씬 못하지만 아이들이 무럭무럭 성장하는 모습을 보니 제법 흥미롭더라고.”
당천아가 가볍게 고개를 끄덕이며 한 말에 목진이 피식 웃었다.
“아직 나이도 젊은데 말투는 왜 노인네 같지?”
당천아는 앳된 모습을 벗어던지고 만황령원의 부원장이 되어 전과 전혀 다른 느낌을 풍겼다. 하긴 수많은 미인을 봐온 백령왕이 괜히 당천아가 좋다고 한 것이 아니었다.
“그럼 뭐해?”
당천아는 가볍게 한숨을 쉬더니 목진을 쓰윽 훑으며 물었다.
“낙리는 잘 있어? 왜 함께 오지 않았어? 부모님께 보여주면 얼마나 좋아?”
“낙리는 태령고족에 가서 성녀가 됐어. 다음번에 기회가 되면 데려올 거야.”
목진이 느긋하게 기지개를 켜며 말했다. 당천아는 잠시 시무룩해졌다가 금세 정신을 차리고 피식 웃으며 물었다.
“그렇게 훌륭하고 아름다운 낙리가 왜 너 같은 녀석을 마음에 품었을까?”
“내가 그렇게 못난 건 아니지 않나?”
목진은 민망한 듯 머리를 긁적였고 당천아는 입을 가리며 생긋 웃었다.
“하긴, 이렇게 젊은 천지존이 어디 흔한가?”
목진은 그때 참 두려울 것이 없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만황령원에 돌아가면 원장님께 알려 드려야겠어. 5대원의 대결에서 네가 워낙 눈에 띄어서인지 다들 네가 어떻게 지내는지 궁금해하셔.”
당천아는 길쭉한 다리를 움츠린 채 하늘을 바라보며 말했다.
“기회만 되면 만황령원으로 보러 갈게.”
말을 마친 목진은 잠시 생각하더니 영광이 번쩍이는 옥패를 꺼냈다.
“이걸 가지고 있다가 위험한 상황이 생기면 바로 으깨버려. 그럼 내가 최대한 빨리 달려갈게.”
당천아는 멍하니 옥패를 보다가 이를 건네받았는데 마음이 무척 따뜻해졌다. 하여 그녀는 빨간 실을 꺼내 가슴 앞에 묶어뒀다.
“이 정도는 돼야지.”
당천아는 생긋 웃으며 말을 이어갔다.
“만황령원으로 떠나기 전에 북령원에 가보자.”
“그래.”
말을 마친 당천아는 손을 가볍게 흔들며 정자를 떠났다. 그녀를 바라보고 있노라니 목진은 낙리가 더 보고 싶어졌다.
“저 아이도 괜찮은 것 같은데 며느리로 들이는 건 어떠냐?”
그때 청연정이 피식 웃으며 옆으로 다가오자 목진은 무안한 듯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그렇지 않으면 빨리 낙리를 데려오거라. 내가 지난번에 본 바에 따르면 아주 좋은 아이 같더구나.”
청연정은 생긋 웃으며 목진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청연정은 북창대륙에서 목진 옆에 서 있는 낙리를 본 적이 있는데 깊은 인상이 남아 있었다.
이에 목진은 쓸쓸하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참, 어머니. 북령성에 원거리 전송 영진을 만들 수 있나요? 바로 천라대륙의 목부 본부로 갈 수 있으면 좋고요.”
목진은 갑자기 화두를 돌렸다.
앞으로 그는 대부분을 천라대륙에서 보내게 되겠지만, 아버지가 걱정되어 원거리 전송 영진으로 양쪽으로 수시로 오갔으면 하고 바랐다. 하지만 이는 절대 쉬운 일이 아니었다.
백령대륙과 천라대륙은 거리가 너무 멀어 목진의 실력으로는 아직 이 정도 전송 영진을 만들 수 없었다.
“천라대륙에 가는 전송 영진을 말이냐?”
청연정은 잠시 생각하더니 고개를 끄덕이며 말을 이어갔다.
“그 정도라면 성급 대종사는 되어야 가능할 것 같구나.”
목진은 순간 화색이 되었다.
“대신, 천라대륙에 부전송 영진이 있어야 한단다. 안 그럼 아무리 나라도 별다른 수가 없단다.”
“어머니, 이 아들도 영진 종사인데 어찌 그걸 모를까요? 목부를 떠나기 전에 부전송 영진을 마련해 두었답니다.”
목진은 가볍게 웃더니 그윽한 공간 파동을 내뿜는 은색 수정석을 꺼냈다.
이는 공간석(空間石)으로 전송 영진을 만드는 데 꼭 필요한 물건이었다. 목진이 쥐고 있는 것은 주석으로 부석은 목부 본부의 전송 영진에 있었다.
“아마 보름 정도면 전송 영진을 만들어낼 수 있을 것 같으니 더는 여러 대륙을 거쳐 여길 오갈 필요가 없겠구나.”
청연정이 미소를 지은 채 말했고 목진은 활짝 웃으며 손을 번쩍 들었다.
“역시 어머니는 대단해요.”
* * *
산해대륙(山海大陸)은 대천세계에서 상당히 유명한 대륙이었다. 이는 그 대륙에 대천세계의 상당히 존귀한 종족이 있기 때문이었다.
그 종족은 바로 봉황족(鳳凰族)으로 대천세계의 날짐승 중 지존이라 지위가 상당했고 아주 유명했으며 실력도 대천세계의 최정예급 세력 못지않았다.
한편, 산해대륙은 이름처럼 수많은 산과 커다란 바다가 서로 아우러져 있었다. 산들은 하나같이 경천의 거인처럼 크고 웅장해 홍황의 기운이 맴도는 것 같았다.
또한, 대륙의 중심은 백만 척의 산맥이 있는 곳으로 구름이 자욱하고 영수들이 날아다녔다. 그리고 그 사이로 화려한 궁전이 어렴풋이 보였는데 청량한 새의 울음소리가 들리는 것이 선경을 방불케 했다.
그중, 유독 웅장한 대전이 있었는데 내부에는 시냇물이 흘렀고 그 주위에는 석좌가 놓여 있었다. 그 위에 앉아있는 사람들이 발하는 영광은 뒤쪽에 각종 날짐승의 형태를 이뤘다.
아마 현지 사람이 아니었으면 그 광경에 적잖게 놀랐을 것이다. 그들은 대천세계의 엄청난 신수 종족으로 비슷하게 생겼지만 전혀 다른 날짐승들이었다.
그들의 실력은 대천세계의 정예급 세력 못지않았고 존재한 지도 상당히 오래되어 보통 세력과는 비교도 안 될 만큼 강대했다.
하여 해당 종족들이 모이면 대천세계에서 상당히 방대한 힘을 발할 수 있었다.
그때 대전의 최상단에 놓인 석좌에 앉아있던 중년 사내가 주위를 쓰윽 훑더니 가볍게 웃으며 입을 열었다.
“한 달 뒤에 열릴 화신지(化神池)에서 혈원을 얼마나 획득할 수 있을지는 각자의 실력에 달렸다.”
봉황족은 봉왕(鳳王)과 황왕(凰王)이 함께 다스리는데 현재 봉황족의 최고 권력자는 바로 장발을 드리운 채 존귀한 기운을 내뿜는 중년 사내였다. 그는 다름 아닌 현임 황왕, 황김(凰金)으로 다들 그의 말에 이내 흥분했다.
화신지는 조상님들이 남긴 보물로 원고 시기, 봉황족과 다른 날짐승 신수 종족들은 계약을 맺었는데 각 종족의 천지존들은 죽기 직전에 화신지에 들어가 육신과 혈맥을 녹이도록 했다.
그러다 각 세력의 후배 중에서 엄청난 천재가 나타나면 화신지에 들어가 조상님들께서 남기신 혈원을 획득하여 본인의 혈맥을 더 순수하게 만들어 재차 진화할 수 있었다.
화신지는 대천세계의 모든 날짐승류 신수 종족한테 엄청난 기회나 다름없었다.
이는 일반 신수 종족은 물론이고 아무리 봉황족이라도 탐 날 수밖에 없었는데 각 종족의 조상님들이 함께 만들어낸 거라 아무도 독점하지는 못했다. 하여 다들 화신지를 열 때마다 최선을 다해 쟁취하려고 노력했다.
황왕 황김은 사람들의 표정을 살피더니 미소를 지으며 가장 뒤쪽 석좌에 앉아있는 두 사람한테 눈길을 돌렸다.
그중 한 사람은 검은색 도포를 입은 사내로 구유족의 족장, 천황이었고 그 뒤에 앉아있는 여인은 현의를 입었는데도 늘씬한 몸매가 그대로 드러났고 얼굴도 상당히 아름다워 보였다. 게다가 도도한 표정은 야성미를 방출케 했다.
그녀는 바로 구유였다.
“천황 족장, 구유 낭자, 내 제안이 어떻다고 생각하냐?”
황김은 가볍게 웃으며 물었다. 그 말에 위엄을 자랑한다고 여기는 천황 족장은 얼굴이 붉으락푸르락해진 채 자리에 앉아있었고 구유도 이를 꽉 깨물었다.
“너희들도 알다시피 내 아들은 구전성성결(九轉成聖訣)을 수련했는데 인제 마지막 열반만 마치면 대성할 거란다. 이건 우리 봉황족에 아주 중요한 일이니 구유족에서 부디 이해해줬으면 좋겠구나.”
말을 마친 황김은 자신 뒤에 조용히 앉아있는 청년을 힐끗 쳐다봤다. 훤칠하게 생긴 청년은 날렵한 눈매에 황금색 도포를 입어 제왕의 아들처럼 존귀해 보였다. 이에 사람들은 저도 모르게 굽신거렸다.
그는 바로 황김의 아들이자 황족의 소족장 황현지(凰玄之)였다.
그는 봉황족의 무상 신통인 구전성성결을 수련했는데 해당 신통은 아홉 번의 열반을 거쳐야만 비로소 대성해 성급에 이를 수 있고 십 년 동안 열심히 수련해야 한 번 열반할 수 있다.
또한, 이는 대천세계의 36가지 절세의 신통 중 하나라 위력도 상당했다.
다만, 해당 신통을 수련하려면 수련자의 천부적 재능이 상당히 뛰어나야 하고 열반할 때마다 엄청난 신수의 혈맥을 삼켜야 한다. 현재, 황현지는 여덟 번의 열반을 무사히 마쳐 선급 천지존경에 이르렀는데 아홉 번째 열반에 필요한 엄청난 신수의 혈맥은 구하기가 너무 어려웠다. 하여 그들은 구유의 몸에 깃든 원고의 불사조의 혈맥을 탐냈다.
원고의 불사조도 봉황족 중 한 갈래이고 진정한 봉이나 진정한 황보다 훨씬 희귀했는데 현재 대천세계에서 해당 혈맥을 지닌 사람은 아마 구유 하나뿐일 것이다.
기타 엄청난 신수 종족 사람들은 자리에 조용히 앉아 상황을 살피기만 했다. 신수의 세계는 인간 세상보다 훨씬 치열했는데 일반 신수 종족인 구유족에 불사조의 혈맥이 나타난 것을 다들 보고만 있을 리 없었다.
이에 천황은 안색이 금세 어두워졌다. 구유는 만 년 사이, 구유족에서 유일하게 체내에 불사조의 혈맥이 깃든 사람이라 다들 그녀를 종족의 희망으로 삼고 전력을 다해 배양하고 있었다. 구유족 사람들은 언젠가 구유가 최종 진화를 마치고 성급 천지존경에 이르기만 바랐다.
천황은 구유가 화신지에서 수확을 얻기를 바라는 마음에 그녀와 함께 봉황족에 온 것인데 황족에서 그녀의 혈맥을 탐낼 줄은 꿈에도 몰랐다.
황현지가 구유의 불사조의 혈맥을 가져가면 구유는 더 이상 실력이 늘지 않을 것이고 구유족한테도 치명적인 타격이 될 것이다.
그런데 봉황족은 보통 종족이 아니고 황김은 성급 천지존이면서 황왕이라 구유족에서 상대할 수 있는 자가 아니었다. 무턱대고 덤볐다가는 상대방이 무슨 짓을 할지는 아무도 모르는 일이었다.
“왕께서 제 딸이 마음에 든다고 하니 황송하지만 여러 해 전, 제 아이가 인간과 혈맥을 연결하여 변고가…….”
천황은 애써 침착함을 유지하며 말했다. 그 말에 일부 신수 종족들은 흠칫 놀랐고 황김은 이내 미간을 찌푸렸다. 고귀한 봉황족은 순수한 것을 좋아해 다른 뛰어난 신수도 받아들이지 못하는데 인간은 더 말할 것도 없었다.
그 광경에 천황은 오히려 몰래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이는 구유의 명성에 좋을 것이 없었지만 불사조의 혈맥을 지켜낼 수 있다면 상관없었다.
그런데 황김 뒤에 있던 황현지가 가볍게 웃으며 입을 열었다.
“그게 뭐라고, 봉황족에 혈맥 연결을 없애는 방법은 많으니 그 인간을 잡아 오기만 하면 돼요. 구유 낭자는 당연히 무사할 거예요.”
구유는 순간 심장이 철렁했다. 혈맥 연결을 없애면 연결된 사람은 분명 다칠 텐데 구유가 무사하다는 건 다치는 사람이 목진이란 말이나 다름없었다.
“그 아이를 잡는 건 결코 쉬운 일이 아닐 겁니다.”
천황의 말에 황김은 미간을 살짝 찌푸린 채 물었다.
“왜 그리 말하는 것이냐? 대천세계에서 봉황족이 잡기 힘든 사람은 몇 안 될 거란다.”
“제 딸과 혈맥을 연결한 사람은 바로 천라대륙 목부의 주인인 목진입니다.”
천황은 잠시 머뭇거리다가 이를 악물며 답했다.
“목진?”
다들 목진이 누군지 아는 눈치였고 일부 엄청난 신수들은 흠칫 놀라 물었다.
“설마 일전에 부도신족을 발칵 뒤집은 그 목진을 말하는 건가?”
이에 천황은 묵묵히 고개를 끄덕였다. 목진의 처지가 확 달라지지 않았으면 천황도 절대 그를 내세우지는 않았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