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22화. 곤경에 빠진 구유
황김도 제법 놀란 눈치였다. 최근 목진은 대천세계에서 상당히 유명해졌는데 그는 목부의 주인인 목진보다 그 어머니인 부도신족의 대장로가 훨씬 두려웠다.
제아무리 봉황족이라도 이토록 엄청난 뒷배가 있는 목진을 함부로 건드리지 못할 것이다.
황김은 목진을 억지로 잡아 와 혈맥 연결을 없애지 못할 거란 생각에 안색이 조금 어두워졌다. 그러다 청연정이 화라도 내면 무슨 일이 벌어질지 아무도 알 수 없었다.
반면, 천황은 조금이나마 안심되었는데 황현지가 의미심장한 눈빛으로 자신을 바라보며 한 말에 심장이 철렁했다.
“그럼 우리 각자 한 보씩 물러납시다. 난 혈맥 연결을 없애지 않아도 괜찮아요. 어차피 나한테 영향을 주지 않을 테니 말이에요.”
봉황족이 순수한 사물을 선호하는 건 사실이지만 불사조의 혈맥을 획득할 수만 있다면 이 정도는 참을 수 있었다. 더구나 황현지는 천황이 혹시나 하는 마음에 목진을 내세웠다는 걸 바로 알아챘다.
“목진의 어머니가 청연정인 것은 어쩔 수 없지만 그렇다고 봉황족이 그 녀석을 무서워하는 건 아니니 그를 내세워 우리 종족을 위협하지 마세요. 목진은 아직 그 정도 자격은 없답니다.”
황현지는 천황을 힐끗 쳐다보며 말을 이어갔다.
“목진이 구유 낭자를 대신해 나설 거라고 말씀하실 거면 그만두세요. 정말 그리된다면 나 황현지는 부도신족을 발칵 뒤집어 놓은 천재가 얼마나 대단한지 직접 확인해 볼 겁니다.”
그는 미소를 지은 채 안색이 확 어두워진 천황과 한기를 내뿜는 구유를 번갈아 바라봤다.
“그리고 난 목진이 감히 우리 봉황족에 올 거라 여기지도 않아요. 그러다 녀석이 정말 오기라도 하면 내가 직접 나설 겁니다. 부도신족을 아수라장으로 만들었다고 대천세계를 활보할 수 있는 건 아니란 것을 제대로 알려줄 거예요.”
황현지의 태연함에서 묻어난 오기는 상당했다. 비범한 기운을 내뿜는 소족장 다운 그의 모습에 황김은 만족하듯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목진도 꽤 유명하지만 아들인 황현지와 비교하면 별 볼 일 없었다.
그는 자신의 아들이야말로 진정한 절세의 천재라고 생각했다.
“내 생각은 바뀌지 않을 거란다. 한 달 뒤, 화신지가 열리는 날이 곧 내 아들의 아홉 번째 열반일이 될 것이다.”
“그때 가서도 너희가 내 의견을 따르지 않으면 우리가 직접 나서는 수밖에 없겠구나.”
황김은 다시 기세등등해져 천황, 구유를 바라보며 말했다.
* * *
목부 뒷산의 한 산봉우리에 조용히 앉아있던 목진 주위에 웅장한 영광이 요동쳤고 뒤쪽에 만 장 정도의 자금색 거인이 숨을 쉬며 천지의 영력을 흡수하곤 했다. 가끔 웅장한 소리가 들리는 것이 그야말로 기세등등했다.
목진은 하루가 지나서야 수련을 마쳤다. 이튿날 해가 떠오를 때 서서히 눈을 뜨자 눈에서 천지마저 가를 법한 만 장의 영광이 발했고 뒤쪽에 있던 불후금신도 파르르 떨리다가 서서히 사라졌다.
목진은 불후금신을 관찰하더니 곧 대성할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그가 수련한 불후금신의 위력은 곧 정상에 이를 듯했다.
이제 그가 앞으로 불후금신의 힘을 계속 키우려면 실력을 키우는 방법밖에는 없었다.
“불후금신의 완성도가 제법이구나.”
뒤쪽에서 갑자기 들려온 목소리에 돌아보니 청연정이 어느새 나타나 흥미진진한 얼굴로 서서히 사라지는 불후금신을 살펴보고 있었다.
이에 목진은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불후금신의 수련만 따지면 그는 아마 천제 선배님 정도는 될 것이다.
“이 정도면 만고불후신의 주인이 될 자격이 있지 않을까?”
청연정이 미소를 지으며 한 말에 목진은 순간 눈빛이 이글거렸다. 그것은 그의 최종 목표였다. 대일불멸신을 수련했을 때부터 그는 단 하루도 만고불후신을 기대하지 않은 적이 없었다.
“그런데 만고불후신은 마하고족에서 보관하고 있어 얻기가 그리 쉽지 않을 거예요.”
목진은 한숨을 쉬며 말했다.
“불후대제는 마하고족에게 만고불후신을 보관하라고만 했으니 진정한 주인은 아니란다. 불후대제가 정한 규칙에 따르면 일정한 주기로 마하고족에서는 만고회를 개최하는데 불후금신을 수련해낸 사람이면 누구든 그 대회에 참석할 자격이 있단다. 그때 만고불후신의 주인이 가려질 거란다.”
“그런데 마하고족은 언젠가부터 만고불후신을 자기 종족 소유로 여겨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불후금신의 수련자들을 내치려 하더구나. 이건 다 자기 종족 사람이 만고불후신의 인정을 받게 하기 위한 노력이었는데 여태껏 수중에는 넣지 못했단다.”
청연정이 피식 웃으며 한 말에 목진도 가볍게 웃었다.
“저들은 만고불후신을 수만 년 동안 지켰으니 당연히 빼앗기고 싶지 않겠죠.”
만고불후신이 얼마나 대단한 존재인지 잘 아는 목진은 마하고족 같은 역사가 유구한 종족도 탐낼 수밖에 없다고 생각했다.
이는 다섯 가지 원시 법신 중 하나로 불후대제를 원고 시기의 최강자로 만들었으니 말이다.
“저들이 뭐라 하든 저는 반드시 마하고족에 가서 만고회에 참석할 거예요. 불후대제가 만고불후신에게 최고의 주인을 찾아주고 싶으시다는데 내 어찌 시도해 보지도 않고 포기할 수 있을까요?”
목진은 눈가를 파르르 떨며 말했다.
목진은 만고불후신만 바라보며 대일불멸신 수련을 시작하여 불후금신의 수련을 마치기까지 간난신고를 겪었기 때문에 마하고족이 아무리 반대해도 최선을 다해 쟁취할 것이다.
천제는 목진에게 실력을 어느 정도 갖추기 전까지는 절대 마하고족에 찾아가지 말라고 하셨는데 그는 이제 더 이상 과거의 지지존이 아니었다.
“우리 아들이 이리 말하는데 어머니인 내가 어찌 보고만 있을까? 나도 손이 닿는 만큼 도와줄 테니 아무런 걱정하지 말거라. 네가 만고불후신의 인정을 받았는데도 불구하고 마하고족에서 감히 내 아들을 괴롭히려 든다면 내 절대 저들을 가만두지 않을 거란다.”
청연정이 머리를 쓰다듬으며 말했고 목진은 가볍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고마워요, 어머니.”
그때 목진이 무언가 발견하고 주먹을 쥐자 손바닥에 영광을 발하는 부적이 나타났다가 부서지며 앞쪽에 글이 나타났다.
“구유가 위험하니 당장 돌아와.”
목진은 미간을 찌푸린 채 글을 읽더니 안색이 확 어두워졌다. 부적은 목진이 만다라에게 긴급한 일이 있을 때 연락하라고 준 것이었다.
“구유한테 도대체 무슨 일이 생긴 거지?”
목진의 눈가에 순간 살기가 아른거렸다. 목진은 가족 같은 구유를 각별하게 생각하고 있었다.
두 사람은 북령경에서 혈맥을 연결하면서 함께 하게 되었는데 목진이 이렇게까지 성장할 수 있었던 데는 구유의 공이 컸다.
목진의 실력이 부족했을 때, 항상 구유가 나서 그를 보호하고 수련 자원을 제공해 줬기 때문에 목진은 그녀가 고맙고 애틋했다.
하여 목진은 만다라가 전한 소식에 이토록 놀랐던 것이다.
“왜 그러냐?”
청연정은 흠칫 놀라 물었다. 목진은 쉽게 마음이 흔들리는 사람이 아닌데 이러는 걸 보면 큰일이 생긴 것이 분명했다.
“어머니, 천라대륙에 이르는 전송 영진은 언제 완성되나요?
목진은 글을 지우고 청연정한테 정중하게 물었다.
“아직 5일은 더 걸려야 하지만 최대한 이틀 내로 완성하마.”
청연정은 잠시 고민하다가 답했다.
대천세계의 최정예급 세력도 감히 성급 대종사에게 재촉하지 못하는데 목진은 친아들이라 그의 부탁을 기꺼이 들어주었다.
“재촉해서 죄송해요.”
목진의 말에 청연정은 상냥하게 웃으며 그를 바라봤다.
“부모 자식 사이에 그런 말은 필요 없단다.”
그녀는 더는 참지 못하고 질문을 던졌다.
“무슨 일이 생긴 것이냐? 이 어머니의 도움이 필요하면 무엇이든지 말하거라.”
“제가 아주 각별하게 생각하는 친구한테 일이 생겼어요. 구체적인 내용은 잘 모르지만 일단 천라대륙으로 돌아가야 해요. 이 일은 제가 해결할 수 있으니 어머니는 아버지와 함께 계세요.”
“네가 아버지를 백령대륙의 주인으로 만들어 요즘 눈코 뜰 새도 없이 바쁘시단다.”
목진이 피식 웃으며 한 말에 청연정은 이내 콧방귀를 뀌었다.
“네가 스스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했으니 더는 묻지 않겠다. 너도 이제 꽤 유명해졌으니 다들 너를 함부로 대하지는 못할 거란다. 적어도 성급들은 나서지 않을 것이다.”
이에 목진도 동의하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어머니를 등에 업고 우쭐거릴 생각은 없었지만 그렇다고 사람들이 두 사람 사이를 모르는 것도 아니었기에 자신보다 실력이 훨씬 뛰어난 상대도 감히 나서지 못할 것이다.
목진은 자신의 실력을 믿어 의심치 않지만, 실력 차이가 많은 상대에게 무턱대고 덤빌 만큼 멍청하지는 않았다.
* * *
이틀 뒤, 목진의 집 뒷산의 거대한 산골짜기에 생겨난 방대한 영진에서 지극히 무서운 공간 파동을 내뿜자 주위의 공간마저 부단히 일그러졌다.
영진 위쪽에 아른거리는 억만 갈래의 영인만 봐도 해당 영진이 얼마나 복잡한지 알 수 있었다. 목진은 아직 이 정도의 영진은 칠 수 없었다.
“역시 성급 대종사는 대단해…….”
영진 밖에 서 있던 목진은 엄청난 규모의 전송 영진에 이내 감탄했다.
한편, 그의 뒤쪽에 청연정, 영계와 용상이 서 있었고 눈코 뜰 새 없이 바빴던 목봉도 아들을 보러 왔다. 당천아는 일전에 먼저 만황령원으로 돌아갔다.
“목진아, 부디 조심하거라.”
목봉은 목진이 급한 일로 떠난다는 걸 알아 왠지 걱정되었다. 강자가 많은 대천세계는 백령대륙 따위와 비길 수 있는 곳이 아니었다.
“아버지, 전 이제 북령경을 떠날 때보다 훨씬 강해졌어요.”
목진은 무안한 듯 웃으며 말했다. 그가 북령경을 처음 떠날 때도 목봉은 똑같이 당부했었다.
“백령대륙의 일이 마무리되면 네 아버지와 함께 네가 세운 목부를 구경하러 천라대륙으로 가마.”
“그럼 준비하고 있을게요.”
목진은 가볍게 웃으며 말하더니 깊게 숨을 들이켰다. 그리고 곧장 청연정, 목봉, 영계 등과 인사를 나누고 영진으로 향했다.
잇따라 그가 옷깃을 휘날리자 웅장한 영력이 전송 영진에 스며들었다. 그러자 엄청난 공간 파동이 폭발해 주위의 공간이 빠르게 일그러지며 뒤쪽에 공간 통로를 이뤘다.
“아버지, 어머니, 저는 이만 갈게요.”
목진은 손을 휘익 저으며 돌아섰다. 그는 공간 통로에 발을 들이자마자 이내 정색하며 주먹을 꽉 쥐었다.
“구유야, 부디 무사하길 바라…….”
“전에는 네가 나를 지켜줬으니 이번엔 내가 너를 지켜줄게.”
거대한 전송 영진에서 만 장의 빛을 발하자 목진은 어느새 영진 속으로 사라졌다.
* * *
천라대륙 북계 목부 본부의 뒤쪽에 거대한 영진이 있었다. 하지만 발하는 영광이 어두운 걸 보니 미완성인 것이 분명했다.
그런데 오늘, 해당 영진에서 갑자기 만 장의 빛이 폭발하더니 난폭한 공간 파동이 모여 영진에 공간 통로를 이뤘다.
그 속에서 누군가 천천히 걸어 나왔다.
“전송 영진을 연결하는 데 성공했나 보군.”
그는 미친 듯이 영광을 발하기 시작하는 영진을 보더니 만족하듯 미소를 지었다.
그는 바로 북령경에서 한걸음에 달려온 목진으로 닷새 만에 북계에 이르렀다. 그는 빨라진 속도에 상당히 만족했다. 여러 개 대륙을 거쳐 북계에 오려면 적어도 두 달은 걸렸을 것이다.
슉!
그때 멀지 않은 곳에서 사람들이 질서 정연하게 달려왔는데 갑옷을 입은 이들은 목부의 호위 무사였다.
“당신은 누군가? 어찌 감히 목부의 본부에 찾아온 건가?”
호위 무사들은 버럭 소리를 지르더니 영력을 한껏 끌어올리며 목진을 쏘아봤다.
“반응이 제법 빠르구나.”
목진은 흐뭇하게 웃으며 전송 영진에서 나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