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23화. 구유가 위험해진 이유
“부주님이시군요!”
“부주님을 뵙습니다.”
목진의 얼굴을 본 호위 무사들은 흠칫 놀라더니 황급히 한쪽 무릎을 꿇고 인사를 올렸다.
“다들 일어나거라.”
목진은 대수롭지 않게 웃더니 옷깃을 휘날려 호위 무사들을 일으켰다.
슉!
잇따라 또 두 갈래 영광이 내려앉았는데 기세등등하게 모습을 드러낸 두 사람은 만다라와 현천노조였다.
“드디어 돌아왔구나.”
만다라가 안도의 한숨을 쉬며 말했다. 목진은 생긋 웃더니 현천노조에게 감사 인사를 전했다.
“현천 장로, 여태껏 목부를 지켜줘서 고맙네.”
“별말씀을요. 목부 장로가 목부를 지키는 것은 당연한 일인걸요.”
현천노조가 활짝 웃으며 바라보자 목진은 흠칫하더니 피식 웃었다. 어쩔 수 없이 목부의 장로가 된 현천노조는 태도가 완전히 바뀌었다.
“부주님께서 일전에 부도신족에서 한 일이 대천세계에 널리 알려졌답니다.”
현천노조는 어색하게 웃으며 이야기했다.
현천노조도 해당 소식을 듣고 깜짝 놀랐다. 그는 목진의 수단이 제법이란 건 알고 있었지만 정말 부도신족을 발칵 뒤집어 놓을 줄은 몰랐다. 더구나 목진은 혼자서 부도신족의 현맥, 묵맥의 장로들을 전부 제압했다.
사실 현천노조는 이것보다 목진의 어머니께서 부도신족의 대장로가 됐단 소식에 가장 많이 놀랐다.
이 정도 배경이면 이제 대천세계에서 아무도 감히 목부를 무시할 수 없을 것이다. 현천노조는 목부가 언젠가 무경이나 무한의 화역 못지않은 세력으로 거듭날 거라 확신했다.
목진도 현천노조의 속내를 바로 알아챘지만 그가 장로로 목부에 남아준다면 굳이 따질 필요도 없다고 생각했다. 이는 목부한테도 상당히 좋은 일이기 때문이었다.
이에 현천노조를 바라보는 목진의 눈빛은 훨씬 부드러워졌다.
“목부 상황은 어때?”
목진은 만다라한테 질문을 던졌다. 현재, 목부는 북계를 완전히 장악했고 부단히 천라대륙의 다른 지역을 향해 손을 뻗고 있는지라 다른 세력들의 배후 세력들이 앞길을 막을 수도 있는 상황이었다.
“처음엔 여러 가지 문제로 머리가 아팠는데 네가 부도신족에서 벌인 일이 알려지자 다들 조용해졌고 배후 세력들도 더는 함부로 나서지 않더라.”
만다라도 이내 감탄하며 말했다. 그녀는 목부가 치열한 전쟁을 수도 없이 치러야 할 거라 여겼는데 목진 덕분에 번거로움을 많이 덜었다.
만다라의 말에 목진도 놀랐다. 사실 저들은 목진을 두려워하는 것이 아니라 그의 어머니인 부도신족의 대장로 때문에 감히 나서지 못하는 것이었다.
목진은 성급 대종사를 너무 쉽게 생각했다. 하지만 그것도 나쁘지 않았다. 배후 세력들이 나서지 못하면 목부는 언젠가 천라대륙의 진정한 패주가 될 것이고 이 엄청난 대륙 덕분에 목부도 대천 세계의 최정예급 세력으로 거듭날 것이다.
다만, 이는 목진도 성급 천지존경에 이르렀을 때라야 가능한 일일 것이다. 성급 천지존이 한 명도 없는 세력이 대천세계의 최정예급 세력이 된다는 건 불가능했다.
“구유한테 도대체 무슨 일이 생긴 거야?”
생각을 마친 목진이 금세 정색하며 물었다.
“천작 장로한테서 직접 들어. 지금 여기로 오고 있어.”
만다라의 말이 끝나기 바쁘게 먼 곳에서 한 갈래 빛줄기가 신속하게 날아와 목진의 앞쪽에 내려앉았는데 그는 바로 대라천역으로 구유를 데리러 왔던 천작 장로였다.
“구유족의 천작이 부주님을 뵙습니다.”
천작 장로는 만다라의 앞쪽에 서 있는 청년을 보자 감개무량해졌다. 지난번에만 해도 대라천역은 북계의 일류 세력일 뿐이었고 천작은 해당 세력을 거들떠보지도 않았다. 구유족은 신수 종족이라 전체적인 실력과 재력이 대라천역보다 훨씬 강했다.
천작은 그때까지만 해도 대라천역이 몇 년 안 되는 사이에 목부로 바뀌고 북계의 패주가 되었을 뿐만 아니라 천라대륙의 기타 세력들이 감히 건드리지 못할 정도로 성장하게 될 줄 몰랐다. 또한, 목진은 어느덧 천지존경에 이르렀고 부도신족 같은 세력마저 꼼짝 못 할 정도로 성장했다.
“그렇게까지 예를 갖출 필요 없어요, 장로님.”
목진은 상냥하게 웃으며 말을 건넸다. 그는 천지존경에 이르렀다고 천작을 무시하거나 하지 않았다.
이러한 목진의 태도에 천작은 몰래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역시 구유가 사람 보는 눈이 있군요. 우리 늙은이들보다 훨씬 낫네요.”
천작 장로는 씁쓸하게 웃으며 말했다. 목진이 이렇게까지 큰 인물이 될 줄 알았더라면 구유족 장로들은 절대 구유와의 혈맥 연결을 문제 삼지 않았을 것이다. 이는 오히려 구유한테 좋은 일이었다.
“천작 장로님, 도대체 무슨 일인가요?”
“부주님, 부디 구유와 우리 구유족을 살려주세요!”
목진이 미소를 지으며 묻자 천작은 안색이 확 어두워지며 답했다.
“걱정하지 마세요. 무슨 일이든 제가 그냥 놔두지 않을 거예요.”
목진은 순간 표정이 굳었고 눈빛은 상당히 예리해졌다.
“일전에 구유가 돌아와 족장님한테 진화하는 방법을 알려달라고 조르더군요. 지금의 자신은 실력이 턱없이 부족하다며 불사조의 혈맥을 철저히 각성하여 엄청난 신수가 되고 싶다고 했어요.”
천작 장로가 쓸쓸하게 웃으며 말했고 목진은 미간을 살짝 찌푸렸다. 목진은 천지존경에 이르렀는데 자신은 아직 혈맥을 완전히 각성하지 못해 더는 그에게 도움이 되어줄 수 없다는 생각에 구유족에 돌아간 것이 분명했다.
이러한 생각에 목진은 기분이 썩 좋지 않았다. 구유는 자신 때문에 위험해진 거나 마찬가지였다.
“족장님께서는 어쩔 수 없이 그녀를 데리고 봉황족으로 갔어요. 봉황족에 화신지란 곳이 있는데 수많은 날짐승류 신수의 천지존급 조상들은 죽기 직전에 그곳에 가서 육신과 혈맥을 녹이곤 하는지라 후배들한테는 엄청난 보물 창고가 되었답니다. 구유족에서도 조상님 한 분이 그곳에서 목숨을 거두셔서 우리한테도 화신지에 들어갈 자리가 하나 주어졌고 의논을 거쳐 구유한테 그 자기를 주기로 했습니다.”
천작 장로는 한숨을 쉬며 말을 이어갔다.
“그런데 봉황족의 황왕의 아들이 구전성성결을 수련하였을 줄 누가 알았겠습니까? 해당 절세의 신통은 아홉 번의 열반을 거쳐야 하는데 매번 엄청난 신수의 혈맥을 삼켜야 한다죠. 여덟 번의 열반을 마친 황현지는 구유의 불사조의 혈맥을 탐낸다고 들었어요.”
“구전성성결이라…….”
목진은 흠칫 놀랐다. 이는 36가지 절세의 신통 중 한 가지로 위력이 상당한데 황왕의 아들이 수련에 성공했을 줄은 몰랐다.
“황현지가 구유족의 유일한 희망인 구유의 불사조의 혈맥을 빼앗으면 인제 그녀는 더 이상 실력이 늘지 않을 거예요. 구유는 폐인이 되는 거나 다름없어요!”
천작 장로는 이를 악물며 말했다.
“황왕은 우리가 불사조의 혈맥을 주지 않으면 황현지가 화신지에 들어가 직접 취하게 할 거라고 하더군요. 그럼 구유는 죽을 수도 있어요.”
“규칙에 따르면 화신지에 호법자를 한 명 데리고 들어갈 수 있는데 구유족의 유일한 천지존은 겨우 영급 후기에 이르러 구유를 지켜낼 수가 없어요.”
“구유족은 요즘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실력이 뛰어난 천지존을 찾아다녔는데 다들 봉황족이 두려워 감히 나서려 하지 않더군요.”
“우리는 더는 방법이 없어…… 그래서 목부에 찾아왔어요. 부주님께서 구유를 봐서라도 부디 나서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천작 장로는 눈물을 주르륵 흘리며 무릎을 꿇으려 했는데 강력한 힘 때문에 다시 일어섰다. 그는 고개를 들어 무뚝뚝하게 서 있는 목진을 조마조마한 얼굴로 쳐다봤다. 목진이 비록 구유와 혈맥을 연결했지만 봉황족은 대천세계의 최정예급 세력이라 일반 천지존은 감히 건드리려 하지 않았다. 하여 천작은 목진이 자신의 부탁을 들어주지 않으면 어쩌나 하고 걱정되었다.
“직접 취하겠다니…….”
목진은 피식 웃으며 중얼거리더니 한기 어린 눈빛으로 천작 장로를 바라봤다.
“천작 장로님, 저와 함께 가시죠. 황현지가 무슨 수로 구유의 혈맥을 빼앗으려는 건지 직접 확인해야겠어요.”
목진의 말에 천작은 너무 감동해 온몸을 파르르 떨었고 눈가도 촉촉해졌다.
* * *
산해대륙의 여러 산맥이 아우러진 곳에 푸른색 호수가 있었다. 거울 같은 수면에 하늘이 비친 해당 호수는 별 볼 일 없어 보이지만 황망한 기운을 내뿜는 것이 천지존이라도 위압감을 느낄 정도였다.
그런데 오늘, 조용하기만 하던 이곳이 떠들썩했다. 아침 햇살이 드리우자 수많은 빛줄기가 하늘을 가르며 날아와 호수 주위의 산맥에 내려앉았다.
잠시 후, 학과 공작 등의 맑은 울음소리가 주위에 울려 퍼졌다.
화신지는 날짐승류 신수 종족한테 엄청난 보물 창고였기 때문에 매번 열릴 때마다 다들 구경하러 오곤 했다. 하지만 들어갈 수 있는 사람은 제한되어 있었다.
이렇게 여러 종족의 강자들이 한곳에 모여 화신지 주위는 순식간에 떠들썩해졌다.
끼익!
어느덧 태양이 하늘 높이 걸리자 맑은 봉황의 울음소리와 함께 엄청난 위압감이 형성되었다. 다들 흠칫 놀라 경외의 눈빛으로 저 멀리 하늘을 바라봤다.
무지개가 형성된 그곳에서 누군가 날아오더니 푸른 호수에 제일 가까운 커다란 산봉우리에 올라갔다.
잇따라 두 사람이 모습을 드러냈는데 그중 한 사람은 봉황족의 황왕 황김이었고 그 뒤에는 날렵한 눈매에 존귀한 기운을 내뿜는 황현지가 서 있었다.
“황왕을 뵙습니다!”
날짐승류 신수 종족의 강자들이 공손하게 인사를 올리자 황김은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이더니 고개를 들고 멀리 있는 하늘을 쳐다봤다. 그곳에서 한 무리가 날아와 호수 주위의 산맥에 내려앉았다.
순간, 주위에 강력한 위압감이 형성되었고 그들의 뒤쪽에 영광이 모여 각종 거대한 신수의 모습을 이뤘다.
그중에는 머리가 아홉 개 달린 커다란 황금 독수리가 있는가 하면 용과 공작을 동시에 닮은 생물, 눈빛이 유난히 날카로운 매도 있었다.
상황을 살피던 신수 종족의 강자들은 그들이 너무 부러웠다. 저들은 엄청난 신수로 일반 신수들이 꿈에도 바라는 존재였다.
신수와 엄청난 신수는 실제로 천지 차이였다.
“대천세계에 날짐승에 속한 엄청난 신수 종족은 15개가 있는데 오늘, 거의 다 모인 것 같군.”
“엄청난 신수 종족에서 화신지 때문에 최정예급 천재들만 파견했다고 들었네. 다들 화신지를 통해 혈맥을 제련하고 실력을 증진하려는 것 같군.”
“화신지가 이룬 혈정(血精)의 수량은 제한적이니 치열한 싸움이 예상되는군.”
“허허, 누가 봉황족의 황현지를 이길 수 있단 말인가? 아마 그가 대부분 혈정을 획득할 것이네.”
“그거야 모르지. 황현지가 대단하긴 하지만 구두금조(九頭金雕) 족의 임창(林蒼), 구채공작족의 공령아(孔靈兒) 등도 절대 호락호락하지 않네.”
“하긴, 엄청난 신수 종족의 천재들은 이번 기회에 화신지의 도움으로 성급에 이를 기반을 닦기 위해 백 년도 넘는 시간을 들여 열심히 수련했으니 대결이 치열할 수밖에 없겠군.”
사람들이 수군대며 앞쪽 산맥에 서 있는 사람들을 쓰윽 훑었다.
“구유족도 오다니, 설마 저들한테도 화신지에 들어갈 자격이 주어졌단 말인가?”
그러다 일부 사람들은 한 산봉우리에 서 있는 구유족 사람들을 알아보고 흠칫 놀랐다.
“수백 년 전, 구유족의 조상님 한 분이 화신지에서 돌아가셔서 한 사람만 들어갈 수 있게 되었네. 보아하니 이번에 그 기회를 사용하려는 것 같군.”
누군가 콧방귀를 뀌며 말했다. 화신지는 아무나 들어갈 수 있는 것이 아니라 해당 종족의 천지존의 목숨으로 바꾸는 거나 다름없었다.
“정말 아무것도 모르는군. 구유족을 부러워할 것 없네. 구유족 구유의 체내에 상고의 불사조의 혈맥이 깃들었는데 황현지가 이를 탐낸다고 들었네. 그가 수련한 구전성성결은 마지막 엄청난 신수의 혈맥만 있으면 대성한다고 하더군.”
“그러니 구유가 화신지에 들어가면 황현지가 나서서 그녀의 혈맥을 빼앗을 것이네.”
신수 종족의 세계는 인간 세상보다 훨씬 치열했기 때문에 황현지의 계획에 다들 그러려니 했다.
구유족에 이토록 희귀한 혈맥이 나타났으니 탐내는 사람이 없을 리 없었다. 게다가 하필 화신지에 들어가겠다고 왔으니 어찌 쉽게 빠져나갈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