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대주재-944화 (943/1,000)

944화. 조건

“설마 여기까지 와서 꼼수를 부리려는 건가? 마하고족은 만고불후신을 차지할 자신이 그렇게 부족하단 말인가?”

목진이 히쭉거리며 한 말에 마하유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답했다.

“그런 건 아니고 괜히 일을 번거롭게 만들고 싶지 않았을 뿐이네. 하지만 걱정하지는 말게. 그건 탈락 수단일 뿐이었네. 만약 그 정도 관문도 넘지 못하면 만고회에 참석할 자격이 없는 것이 아니겠나?”

“만고회는 불후대제께서 만드신 것으로 별도로 탈락 수단을 정하지 않으셨다고 들었네.”

목진은 입꼬리를 씰룩거리며 말했다.

“우리 마하고족은 만고불후신을 보관한 지 만 년도 넘게 지났으니 이제 우리 종족의 성물이 된 거나 다름없네. 그러니 이를 지키기 위해서라면 뭔들 못할까?”

마하유가 미소를 지으며 한 말에 목진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불후대제께서 자네 말을 들으면 자신이 했던 선택을 후회하실 것이네.”

이에 마하유는 대수롭지 않게 말했다.

“마하고족이 만고불후신의 새로운 주인이 되면 아무리 불후대제라도 더는 이를 앗아가지 못할 것이네.”

마하유는 목진을 쏘아보며 천천히 말을 이어갔다.

“목진, 자네가 만고불후신 쟁탈전을 포기하면 마하고족에서 충족한 보상을 해주겠네.”

“이건 자신이 없다기보다는 마하고족에서 절대 우리 종족 사람이 아닌 누군가가 만고불후신의 주인이 되는 걸 용납할 수 없어서 그러는 것이네.”

“어떤가?”

마하유의 말에 목진은 이내 정색하더니 수정 벽 아래에 서 있던 아름다운 시녀한테 개자탁 하나를 건넸다.

“지존영액 10억 방울이네. 나한테 투자하겠네.”

말을 마친 목진은 마하유를 거들떠보지도 않고 떠났다.

“자네 어머니만 아니었으면 난 절대 이따위 말을 하지 않았을 것이네…… 참 주제도 모르는 멍청한 녀석이군.”

마하유는 떠나가는 목진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굳이 죽음을 자초하다니, 그럼 소원을 들어주는 수밖에…….”

만고성은 사람으로 가득 찼지만 만고성 서쪽에 있는 조용한 장원은 아주 조용했다. 도성에 모인 강자들도 감히 이곳에 접근하지 못했다.

이곳은 부도신족 소속 장원이었기 때문이었다.

하여 목진이 장원에 이르자 대문 쪽에 서 있던 호위 무사들이 한걸음에 달려와 인사를 올렸다.

“목진 소주님, 대장로께서 기다리고 계십니다.”

목진이 부도신족을 발칵 뒤집은 후로 부도신족에서 더는 그를 모르는 사람이 없었다. 게다가 청연정이 대장로가 되어 이제 그 누구도 그를 무시하지 못했다.

“고맙네.”

목진은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비록 부도신족의 소주가 되고 싶지 않았지만 사람들에게 자신을 그리 부르지 말라고 재차 강조하기 귀찮아 조용히 장원으로 들어갔다.

“어머니.”

정원을 지난 목진은 방문 앞에 서 있는 청연정을 발견하고 냉큼 다가갔다.

“너도 참, 어찌 천라대륙에 돌아가자마자 그토록 큰일을 저지른 것이냐?”

청연정은 목진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물었다.

그녀도 목진이 황현지와 귀제 등 사이에 벌어진 일에 대해 들은 모양이었다.

“어차피 겪어야 할 일들이었어요.”

목진은 무안하듯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더니 생긋 웃으며 말을 이어갔다.

“아버지는 안 오셨나요?”

“이런 곳에 왔다가 무슨 꼴을 당하려고…….”

청연정은 이내 정색하며 말하더니 목진을 빤히 쳐다봤다.

“목진아, 만고회에 참석하기로 마음먹은 것이냐?”

목진도 금세 진지해져 고개를 끄덕였다.

“어머니, 전 만고불후신을 획득하기 위해 지금까지 노력해왔어요. 그러니 무슨 일이 있어도 절대 포기하지 않을 거예요.”

만고불후신은 목진이 선택한 성급에 이르는 길이라 일단 해당 지존법신을 획득하지 못하면 여태껏 한 노력은 수포가 될 것이다. 하여 목진이 새로운 길을 찾아 성급 천지존경에 이르려면 훨씬 많은 시간과 정력을 투자해야 할 것이다.

때문에 목진은 반드시 만고불후신을 차지해야만 했다.

“그럼 나는 내 아들이 포부를 이루도록 전력으로 도와주고 싶구나.”

청연정은 목진의 결연한 눈빛을 보더니 가볍게 고개를 끄덕이며 미소를 지었다.

“고마워요, 어머니.”

목진은 뭉클했다. 이번 만고불후신 쟁탈전은 절대 쉽지 않을 것이다. 정녕 목진이 쟁탈전에서 승리한다고 해도 마하고족에서 분명 막아 나설 것이다.

마하고족은 이미 만고불후신을 자신의 소유로 여긴지 오래되어 불후대제께서 만고회를 개최해야 한다고 정하지만 않았다면 다른 종족 사람이 쟁탈전에 참가하는 것을 절대 허락하지 않았을 것이다.

마하고족에서 목진을 잡으려 하면 청연정이 나설 것이다. 그러면 양대 고족의 대결이 펼쳐질 수도 있는 엄청난 상황이었다.

“마하고족의 실력이 막강하긴 하지만 걱정하지 말아라. 이번에 너를 위해 도우미를 불렀단다.”

청연정이 미소를 지으며 멀지 않은 곳에 있는 정원을 가리키자 목진은 바로 고개를 돌렸는데 마의를 입은 노인이 밭을 갈고 있는 것을 보고 깜짝 놀랐다.

“부도현?”

목진은 마의를 입은 노인의 얼굴을 확인하더니 깜짝 놀랐다.

그는 부도신족의 대장로였던 부도현이었다.

목진은 청연정이 부도현을 데리고 올 줄 몰랐다.

“이 녀석이 만고불후신의 주인이 된다고? 난 절대 믿지 않는다. 마하유, 엽경, 탁발창과 석라 중 어느 하나 호락호락한 상대가 없단다.”

부도현이 호미를 내려놓고 다가와 목진을 쓰윽 훑으며 한 말에 청연정은 이내 미소를 지었다.

“대장로님, 만고불후신의 인정을 받을 수 있는지는 목진이 알아서 할 일이니 우리는 그가 성공한 뒤를 신경 쓰면 돼요.”

부도현은 잠시 머뭇거리다가 다시 입을 열었다.

“내가 도와줄 수는 있지만, 조건이 있다는 걸 잊지 말거라.”

“무슨 조건이요?”

목진은 잔뜩 경계하며 부도현을 노려봤다. 그와 청연정은 부도현 때문에 수십 년 동안 얼굴 한 번 보지 못한 채 살아왔다. 그런데 겨우 내친 사람이 갑자기 이상한 소리를 할까 봐 걱정되었다.

“대장로님께서는 네가 만고불후신의 인정을 받으면 부도신족 사람인 것을 인정하고 부도신족의 족장이 되길 바란단다.”

청연정의 말에 목진이 피식 웃었다.

“대장로께서는 지금까지 저를 죄인 취급하지 않으셨나요? 왜 지금은 부도신족 사람인 것을 인정하라고 하시는 거죠?”

이에 부도현은 눈가를 파르르 떨더니 부끄러워 얼굴이 빨갛게 달아올랐다.

“전 부도신족의 족장 자리에는 전혀 관심이 없어요. 그러니 다른 사람을 그 자리에 앉히면 안 되나요?”

목진이 미간을 살짝 찌푸린 채 말했고 청연정은 의기양양해 답했다.

“현재, 부도신족에서 성급에 이를 가능성이 있는 사람은 너뿐이란다.”

목진은 갑자기 머리가 지끈거렸다. 목부 하나만으로도 골치 아픈데 부도신족 같은 고족의 족장까지 되라니…….

“그냥 대장로님의 도움을 받지 말아요. 별다른 수가 없으면 염제와 무조 선배님을 모셔 오면 그만이에요.”

목진은 입을 삐쭉 내밀며 말했다.

“이번만큼은 그 두 분을 모셔 오지 못할 거란다.”

부도현은 한껏 언짢은 듯한 표정을 지으며 콧방귀를 뀌었다. 부도신족의 현맥과 묵맥의 맥수들은 족장이 되지 못해 안달인데 목진은 신경도 쓰지 않으니 화가 나지 않을 수 없었다.

“왜요?”

목진이 어리둥절하여 묻자 청연정이 금세 숙연해졌다.

“일전에 역외사족에 이상한 낌새가 보였단다. 그래서 대천세계의 변방을 지키는 염제와 무조가 속한 세력인 무경과 무한의 화역은 함부로 움직일 수가 없단다.”

역외사족은 대천세계의 공동의 적이라 녀석들을 상대하는 것만큼 중요한 일은 또 없었다.

그런데 이리되면 목진은 염제와 무조의 도움을 받지 못할 것이다.

“목진아, 네가 부도신족을 썩 마음에 들지 않아 한다는 걸 잘 안단다. 하지만 그렇다고 네 체내에 흐르는 피가 부도신족의 피가 아니냐? 그리고 네가 혼자서 부도신족을 이끌어나가는 모습을 보고만 있을 것 같으냐?”

청연정은 목진의 손을 꼭 잡고 말하더니 어느새 눈가가 촉촉해졌다.

“어머니, 알겠어요. 제가 만고불후신의 인정을 받으면 부도신족의 족장이 될게요.”

목진은 눈물을 흘리기 직전인 어머니의 모습에 씁쓸하게 웃으며 말했다.

“역시 우리 목진이 제일이구나.”

청연정은 바로 환하게 웃으며 목진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이에 목진은 무기력하게 한숨을 쉬었다. 역시 여인의 눈물은 당해낼 수가 없었다.

옆에 서 있던 부도현도 그제야 안색이 조금 밝아졌다. 그도 목진을 족장 자리에 앉히고 싶지 않았지만 부도신족의 젊은이 중 목진의 천부적 재능과 이룬 성과를 따라갈 사람은 단 한 명도 없었다. 더구나 목진은 언젠가 성급에 이를 가능성이 상당했다.

성급 천지존은 부도신족에 아주 중요한 존재였다. 마하고족도 성급 천지존이 세 명이나 있어 5대 고족에 속한 것이었다.

목진이 일단 성급 천지존경에 이르면 부도신족도 마하고족과 실력이 엇비슷해질 것이다.

부도신족이 강대해질 수만 있다면 부도현은 아무리 배척했던 목진이라도 족장의 자리에 앉힐 수 있었다. 그리고 제아무리 우매하고 고지식해도 언젠가 성급에 이를 사람을 내칠 정도로 멍청하지는 않았다.

“만고회는 내일 열리는데 수집한 정보에 따르면 이번에 대회에 참석하는 사람은 108명이라더구나.”

“108명이요?”

부도현의 말에 목진은 흠칫 놀라 이내 혀를 내둘렀다. 대천세계는 역시 엄청난 곳이었다. 목진은 여태껏 불후금신을 수련한 사람을 거의 마주치지 못했는데 갑자기 108명이나 나타나다니. 대천세계에 이름 모를 강자가 얼마나 많은지 짐작할 수 있었다.

“불후대제께서 일부러 대천세계에 대일불멸신과 불후금신의 수련법을 알린 것 같네요. 그래야 가장 뛰어난 계승자를 찾아낼 수 있으니 말이에요.”

목진은 잠시 생각하다가 말했다.

“어머니, 여태껏 만고회에 참석한 사람 중 만고불후신의 인정을 받은 사람은 단 한 명도 없었나요?”

목진은 어리둥절하여 물었다. 불후금신을 수련해냈다는 건 수련자가 천부적 재능을 어느 정도 갖춰졌다는 건데 왜 여태껏 만고불후신의 인정을 받은 사람이 단 한 명도 없었을까?

“만고불후신은 5대 원시 법신 중 하나라 그 인정을 받기란 그리 쉬운 일은 아니란다.”

청연정이 가볍게 고개를 저으며 말했고 목진도 인정하듯 묵묵히 고개를 끄덕이며 도성의 중심을 쳐다봤다. 그쪽에서 원시적이면서 오래된 파동이 미세하게 느껴졌다.

만고불후신의 인정을 받는 건 쉬운 일은 아니지만 목진은 절대 포기하지 않을 것이다.

이는 그가 선택한 성급에 이르는 길이기 때문이었다.

목진은 입술을 깨물며 주먹을 꽉 쥐었다.

“내일 대천세계의 정예급 강자들과 제대로 한 번 싸워보죠!”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