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50화. 마지막 단계
오래된 대지는 파멸의 전투를 치른 듯 참담해 보였고 시선이 닿을 수 있는 가장 먼 곳도 황량하기 그지없었다.
한편, 부서진 대지에 암홍색 산맥이 있었는데 오래된 불후의 기운을 방출해 상당히 신비로워 보였다.
그리고 앞쪽에는 높은 석대가 있었는데 그 위에 세 사람이 각자 일정한 거리를 두고 경계하며 주위를 살폈다.
그들은 마하유, 엽경, 탁발창으로 일찌감치 탈락전을 마치고 마지막 단계에 이른 모양이었다.
“허허, 역시 예상했던 대로 당신들도 이곳에 왔군.”
마하유는 엽경과 탁발창을 보며 미소를 지었다.
“백 명도 넘는 사람들이 있었지만 당신들 셋만 내 상대가 될 수 있네.”
엽경과 탁발창은 마하유가 언급한 세 번째가 석라라는 걸 알고 있었다.
“과찬이네.”
엽경은 선홍색 장창을 쥔 채 웃었는데 눈가에 서린 살기만 봐도 상대방을 두려워하지 않는 듯했다.
반면, 탁발창은 무덤덤한 표정을 지으며 조용히 서 있기만 했다.
“석라가 아직도 넘어오지 못한 걸 보면 강적을 만난 것 같네.”
엽경은 아직 네 번째 승자가 나타나지 않은 것을 깨닫고 흠칫 놀랐다.
“그 상대는 아마 목진일 것이네.”
탁발창이 서서히 입을 열었다.
그들도 목진에 대해 어느 정도 조사한 모양이었다.
“목진이 어느 정도 실력을 갖춘 건 사실이지만 석라를 쓰러뜨릴 정도는 아니네.”
마하유가 가볍게 웃으며 말했다. 그는 목진이 싸우는 모습을 직접 본 적 있어 전투력이 뛰어난 건 인정했지만 석라를 쓰러뜨리기에는 아직 멀었다고 생각했다.
이에 마하유를 잔뜩 경계하던 엽경과 탁발창도 동의하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들도 석라가 얼마나 강한 존재인지 알고 있어 자신들이 직접 나서도 녀석을 쓰러뜨릴 수 있다는 확신이 없었다.
그에 비해 목진은 수단이 다양하긴 하지만 결국 영급 중기일 뿐이었다. 그러니 선급 후기인 석라를 쓰러뜨리는 건 거의 불가능했다.
위잉!
그때 주위의 공간이 일그러지자 마하유 등은 바로 고개를 돌렸는데 그 속에서 늘씬한 청년이 나타났다.
석대에 순간 정적이 흘렀고 마하유는 표정이 확 굳었다. 엽경과 탁발창도 눈가를 파르르 떨며 상대방을 바라봤다.
그는 다름 아닌 목진으로 석대에 서 있는 마하유, 엽경, 탁발창을 보더니 바로 경계하며 안전거리를 확보했다.
“자네가 석라를 이겼단 말인가?”
마하유는 미간을 찌푸린 채 음산한 눈빛으로 목진을 노려봤다.
“그게 이상한가?”
목진은 녀석을 힐끗 쳐다보며 물었다.
“허, 흥미롭군. 내가 자네를 너무 쉽게 생각했어.”
마하유는 입꼬리를 씰룩거리며 말했다. 그는 예상을 빗나가는 일을 극도로 싫어했다.
정작 목진은 녀석을 무시한 채 앞쪽에 놓인 암홍색 산맥을 바라봤는데 왠지 모를 흡인력이 느껴졌다.
산맥이 내뿜는 신비로운 불후의 기운은 불후금신과 똑같았다.
목진은 순간 가슴이 콩닥거렸다. 보아하니 만고불후신이 산맥에 숨어있는 듯했다.
“자네 예상대로 만고불후신은 암홍색 산맥에 있네.”
누군가의 말소리에 목진이 고개를 돌려보니 엽경이었다.
쿵!
그런데 그때, 암홍색 산맥이 갑자기 파르르 떨리더니 거대한 균열이 일었다. 그 균열은 산맥을 반으로 가를 것만 같았고 그 사이에서는 엄청난 불후의 기운이 분출됐다. 대천세계가 멸망해도 여전히 존재할 것만 같은 기운이었다.
목진, 마하유, 엽경, 탁발창의 뒤쪽에 자금색 빛이 요동쳤다. 그들의 불후금신은 주인이 소환하지도 않았는데 스스로 모습을 드러내려 하고 있었다.
목진은 산맥이 완전히 무너지면 만고불후신이 모습을 드러낼 거란 생각에 이글거리는 눈빛으로 무너지고 있는 산맥을 뚫어져라 쳐다봤다.
그런데 갑자기 어디선가 차가운 시선이 느껴져 고개를 돌려보니 마하유가 자신을 노려보고 있었다.
엽경과 탁발창도 서로를 잔뜩 경계하며 쳐다보고 있었다. 만고불후신의 주인은 오직 한 사람뿐이었고 주인이 가려지기 전까지는 그곳에 있는 모두가 경쟁 상대였다.
“여러분, 만고불후신을 획득할 수 있는 사람은 단 한 명뿐이란 걸 잊지 말게.”
마하유는 음산한 표정을 지으며 말을 이어갔다.
“만고불후신이 나타나기 전에 인수를 더 줄이는 것이 어떤가?”
“뭘 하려는 건가?”
목진, 엽경, 탁발창은 눈가를 파르르 떨며 동시에 물었다.
“둘씩 대결을 펼쳐 상대를 탈락시키는 것이네.”
마하유가 두 손가락을 내밀며 씨익 웃더니 차가운 눈빛으로 목진을 쏘아봤다. 그는 이미 목진을 자신의 상대로 결정했다.
“만고탑이 더는 탈락전을 펼치지 않는다는 것은 여기까지 온 모두가 만고불후신을 볼 자격이 있다는 건데…….”
엽경이 미간을 살짝 찌푸린 채 말하자 마하유가 피식 웃었다.
“만고탑은 그리 생각할지 몰라도 난 그리 여기지 않네.”
석대의 분위기가 순식간에 살벌해졌다.
엽경과 탁발창도 자연스레 목진을 바라봤다. 마하유가 목진을 내쫓으려고 이런 제안을 했다는 걸 바로 알아챘다.
정작 목진은 태연하게 서서 마하유를 노려보며 히쭉 웃었다.
“만고불후신이 나타나기 전에 나를 내쫓을 자신이 있나 보지?”
“자네가 운 좋게 석라를 쓰러뜨려 내 앞에서 우쭐거릴 수 있다고 여기는 거라면 천만에…….”
마하유가 무덤덤하게 한 말에 목진은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자네만 원하면 얼마든지 놀아주지.”
“나를 상대하다가 죽을 수도 있네.”
마하유가 씨익 웃으며 답했다. 그러나 목진은 대수롭지 않게 웃으며 한 갈래 빛줄기가 되어 하늘 높이 날아올랐고 마하유도 한기 어린 눈빛으로 그를 쳐다보며 뒤쫓아갔다.
목진과 마하유가 자리를 비우자 엽경은 조용히 서 있더니 수중의 선홍색 장창으로 탁발창을 가리키며 말을 건넸다.
“마하유 말대로 우리 넷 중에서 만고불후신을 획득할 수 있는 사람은 한 명뿐이니 인수를 줄이는 것이 성공 확률을 높이는 효과적인 방법인 것은 틀림없네.”
이에 탁발창도 인정하듯 가볍게 고개를 끄덕이더니 등에 지녔던 부러진 칼을 들었다. 순간 예리하기 그지없는 도강이 폭발하자 그의 장발은 사정없이 휘날렸고 주위의 지면에 칼자국이 잔뜩 생겨났다.
“자네 천수라 창법이 궁금했던 참이네. 부디 나를 실망시키지 말게.”
* * *
“또 싸우기 시작했군!”
만고탑 밖에서 상황을 살피던 사람들은 이글거리는 눈빛으로 두 개밖에 남지 않은 영력 광경을 쳐다봤다. 나머지 네 사람은 이번 만고회의 최강 전력을 대표하기 때문이었다.
마하유, 엽경, 탁발창은 대천세계에서 상당히 유명했고, 이들과 비교하면 무명 인사나 다름없는 목진마저 일전에 석라와의 대결에서 놀라운 실력을 선보였으니 만고불후신이 나타나기 전에 치열한 대결이 벌어질 것이다.
“빌어먹을 마하유!”
청연정은 이내 정색하며 중얼거렸다. 그녀는 마하유가 목진을 내치려고 일부러 싸우려 한다는 것을 바로 알아챘다. 특히, 일전에 석라를 상대하느라 목진의 현룡군은 크게 다쳐 더는 소환하지 못하는 상황이었으니 말이다. 그렇지 않으면 아무리 마하유라도 절대 목진을 상대하려 하지 않았을 것이다.
“괜한 걱정은 하지 말거라.”
부도현이 위로의 말을 전했다. 그는 영력 광경에 나타난 청년을 바라보며 말을 이어갔다.
“네 아들이 장악한 수단은 상당히 많지 않느냐? 교활한 녀석의 필살기가 과연 현룡군 뿐일까?”
“당신이야말로 교활해요.”
청연정은 콧방귀를 뀌며 말하더니 금세 안정을 되찾았다. 목진이 현룡군 없이 마하유와 싸우기로 한 것을 보면 어느 정도 자신이 있는 모양이었다.
마하천도 영력 광경을 살피더니 뒤쪽에 서 있는 마하고족 장로들처럼 피식거리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참 주제도 모르는 녀석이네요. 목진의 현룡군이 크게 다치지 않았어도 절대 마하유의 상대가 안 될 텐데 말이에요.”
“마하유가 좋은 수를 생각해냈구나.”
마하천은 무덤덤하게 말을 내뱉었다.
그는 마하유가 만고불후신이 나타나기 전에 재차 탈락전을 벌이려는 것에 찬성하는 바였다. 심지어 그는 마하유가 나머지 세 사람을 전부 내쳤으면 하고 바랐다. 그리되면 만고불후신은 마하유를 주인으로 선택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1각 정도만 지나면 만고불후신이 모습을 드러낼 것 같네요.”
마하고족의 장로가 영력 광경 속에서 부단히 무너지고 있는 암홍색 산맥을 보며 말했고 마하천은 입꼬리를 씰룩거렸다.
“1각이면 충분하단다. 마하유는 분명 저 녀석을 만고탑에서 쫓아낼 수 있을 것이다.”
창망한 허공에 떠 있는 목진과 마하유는 살기 가득한 눈빛으로 상대방을 바라봤는데 주위의 공기마저 그 한기를 견디지 못하고 얼어붙었다.
목진은 이번 기회에 마하유를 제대로 혼내주고 싶었다. 일전에 귀제 등을 움직여 목부를 공격한 일만으로도 잔뜩 화가 났기 때문이었다.
마하유도 목진과 똑같은 생각이었으니, 서로 경쟁 상대인 것은 물론이고 목진의 어머니와 마하고족의 원한 관계만으로도 절대 목진을 가만둘 수 없었다.
이런 두 사람이 만났으니 싸움이 벌어지지 않을 리 없었다.
“지금이라도 스스로 만고탑을 떠나는 것이 좋을 것이네.”
마하유는 흑백 도포를 펄럭이며 태연하게 목진을 노려보고 말했다.
“만고불후신을 획득하면 알아서 물러나겠네.”
“자네가 과연 그럴 수 있을까?”
목진이 피식 웃으며 답했다. 마하유는 가볍게 한숨을 쉬더니 웅장한 영력을 끌어올렸는데 이는 돌풍처럼 휘몰아치며 천지를 관통했다.
상대방한테서 느껴지는 강력한 위압감에 목진은 안색이 점차 어두워졌다. 마하유는 역시 순위권 1위를 차지한 사람답게 실력이 석라보다 강했다.
녀석은 지금쯤 선급 후기 정상으로 성급에 이를 자격까지 갖췄을 것이다.
웅장한 영력이 휘몰아치자 마하유의 육신은 서서히 빛을 발하다가 보석처럼 눈부신 영체로 변했는데 왜소한 몸이 방출한 위압감에 천지마저 파르르 떨렸다.
현재, 마하유 체내의 영력은 한껏 응축되어 대충 휘두른 주먹에마저 파멸의 힘이 깃들었다. 이는 일반 선급 후기의 강자가 선보인 정예급 신통의 위력과 비슷했다.
마하유의 무서운 위압감을 내뿜는 보석 영체를 살피던 목진은 이내 정색하며 한 손으로 결인해 흑백 목진을 소환했다.
“삼합경!”
흑백 목진이 다시 본체에 스며들자 목진 체내의 영력은 미친 듯이 폭등했고 육신도 영체로 변했는데 투명한 유리 같은 영체가 범상치 않아 보였다.
“일기화삼청으로 나와의 차이를 메꿀 수 있다고 여기는 건가?”
마하유는 씨익 웃더니 공간을 무너뜨리며 나섰는데 귀신처럼 목진 앞쪽에 나타나 보석 같은 주먹을 휘둘렀다.
별 볼 일 없어 보이는 그의 공격에 주위의 공간이 와장창 깨졌고 수많은 공간 파편이 보석 주먹을 감싸 그 위력이 상당했다.
이에 목진은 체내의 수정 영력을 한껏 끌어올려 주먹을 힘껏 휘둘렀다.
쿵!
금속이 부딪치는 소리와 함께 두 사람 주위의 공간이 유리처럼 깨졌고 권풍이 휘몰아쳤다. 그러나 마하유는 끄떡없이 제자리에 서 있었고 목진은 뒤로 수천 장 정도 튕겨 나갔다.
간신히 몸을 추스른 목진은 유리 같은 주먹을 살폈는데 미세한 균열이 난 것을 발견했다. 이는 일전의 대결에서 난 상처였다.
“이제 나와의 실력 차이가 어느 정도인지 파악한 건가?”
마하유가 피식 웃더니 다시 달려가 주먹을 휘두르자 목진도 이내 정색하며 영력을 한껏 끌어올려 반격했다.
퍼퍼퍽!
1각도 안 되는 사이, 두 사람 사이에 수백 차례의 공격이 오갔는데 매번 상대방의 손에 닿을 때마다 목진은 뒤로 튕겨 나가곤 했다.
그 광경에 구경꾼들은 목진과 마하유의 영력 차이가 얼마나 큰지 깨달았다.
“목진도 참, 영체만으로 절대 마하유의 상대가 아니란 걸 알면서 왜…….”
“그러게 말이네. 실력 차이가 너무 커 수단이 아무리 많아도 아무런 소용이 없지 않은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