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54화. 자폭
암금색 허상은 탁발창의 불후금신을 집어삼키더니 눈에서 발하는 금광이 훨씬 그윽해졌다. 그리고 다시 탐욕스러운 눈빛으로 목진, 마하유, 엽경한테 고개를 돌렸다.
쿵!
그는 온몸을 파르르 떨더니 한 갈래 금광이 되어 세 사람 중 내뿜는 기운이 가장 강력한 마하유에게 향했다. 녀석은 마하유의 불후금신을 삼키고 싶어 안달 난 듯 보였다.
반면, 마하유는 흠칫하더니 황급히 물러났다.
그런데 암금색 허상의 속도가 더 빨라져 마하유가 아무리 애를 써도 양자 사이의 거리는 좁혀지기만 했다.
1각도 안 되는 사이, 마하유는 뒤쪽에서 세찬 바람이 부는 것을 느끼고 뒤쪽을 힐끗 돌아보았다. 그는 멀리 떨어진 곳에 있는 목진을 발견하고 씨익 웃으며 오묘한 무늬가 가득 새겨진 팔각 나침반을 꺼냈다.
“팔성영반(八星靈盤), 환위결(換位訣)!”
나침반에서 신비로운 빛을 발하며 뒤쪽 암금색 허상을 비췄다.
슉!
한편, 목진은 마하유가 나침반을 꺼내자 왠지 불안해져 바로 도망가려 했는데 마하유의 뒤를 쫓던 암금색 허상이 갑자기 제자리에서 사라져 목진의 앞쪽 공간을 찢고 나타났다. 허상은 목진을 뚫어져라 쳐다봤다.
목진은 코앞에 나타난 암금색 허상을 보더니 안색이 확 어두워졌다.
마하유 이 망할 놈, 감히 꼼수를 부리다니!
앞쪽 공간이 부서지고 암금색 허상이 나타나자 목진은 순간 상대방과 눈을 마주쳤다. 안색이 급격히 어두워진 목진은 어느 정도 예상은 했지만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녀석이 암금색 허상을 자신한테 옮길 수 있을 줄은 몰랐다.
이에 마하유는 안전해졌지만 목진은 상당히 위험해졌다.
목진은 진정한 봉황의 날개를 힘껏 떨쳐 미친 듯이 도망갔다.
슉!
암금색 허상은 가장 가까운 곳에 있는 목진을 목표로 삼고 신속하게 그 뒤를 따랐는데 목진이 아무리 애를 써도 쫓아오는 녀석을 떨쳐내지 못했다.
반면, 마하유는 암금색 허상한테 쫓기느라 여념이 없는 목진을 보며 입꼬리를 씰룩거렸다.
슉!
목진은 광활한 천지에서 한 갈래 빛줄기가 되어 미친 듯이 도망갔는데 점차 가까워지는 상대방의 압박감에 오히려 안정을 되찾았다.
목진은 눈가를 파르르 떨며 오래된 천지를 살폈다.
암금색 허상의 속도라면 그는 1각도 안 되는 사이에 따라잡힐 것이고 그는 절대 녀석의 무서운 힘이 깃든 공격을 막아내지 못할 것이다.
목진의 최강 방어 수단도 불후금련으로 탁발창의 불후금련과 크게 차이 나지 않았다. 그런데 녀석은 탁발창의 불후금련도 단번에 찢어 없앨 수 있으니 목진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싸워도 이길 수 없고 도망갈 길도 없는 목진은 철저히 궁지에 몰렸다.
다만, 일반인이었으면 어찌할 바를 몰랐겠지만 지금까지 생사의 고비를 넘겨온 목진은 달랐다. 그는 이럴 때일수록 침착해야 살아남을 수 있다는 걸 알았다.
“어떡하지?”
목진은 주위를 쓰윽 훑으며 미친 듯이 머리를 굴렸다.
크으으으!
그러다 뒤쪽에서 나지막한 고함과 함께 무서운 압박감이 휘몰아치자 목진은 온몸을 파르르 떨며 뒤쪽을 힐끗거렸는데 암금색 허상이 암금색 빛을 발하는 손을 뻗었다.
목진은 더 이상 물러날 길이 없었다.
그 광경에 그와 멀리 떨어져 있던 마하유가 씨익 웃었다.
“이제 무슨 수로 우쭐거리나 보자!”
사망의 기운이 휘몰아치자 목진은 바로 두 손으로 결인해 거대한 불후금신을 소환했는데 암금색 허상은 훨씬 탐욕스러운 눈빛으로 이를 쳐다봤다.
목진은 더는 도망가지 않고 돌아서 한기 어린 눈빛으로 자신을 향한 암금색 허상을 노려보다가 두 손으로 결인하며 나지막하게 외쳤다.
“폭발하라!”
그의 말에 뒤쪽에 나타난 불후금신에 균열이 일더니 자금색 태양처럼 억만 갈래의 빛을 발했다.
쿵!
경천의 소리와 함께 자금색 빛이 만고탑 전체를 비췄고 말로 표현하기 어려울 정도의 파멸의 충격파가 휘몰아쳐 주위의 모든 사물을 부쉈다.
심지어 목진에게 향하던 암금색 허상마저 괴로운 듯 울부짖으며 뒤로 수만 장 정도 물러났다.
“스스로 불후금신을 폭발시키다니!”
엽경은 깜짝 놀랐다. 그는 목진이 이 정도로 독할줄 몰랐다. 그것은 불후 본원을 없애는 거나 다름없었다. 즉 목진은 불후금신을 다시 수련하지 않으면 앞으로 더는 불후금신을 소환할 수 없을 것이다.
“녀석.”
마하유도 목진의 결단력에 깜짝 놀랐다. 그는 목진이 이번에 분명 죽을 거라 여겼는데 불후금신을 폭발시켜 살아남을 줄은 몰랐다.
하지만 불후금신을 스스로 없앤 목진은 살아남기는 했지만 크게 다쳤을 거라 더는 그의 상대가 안 될 것이다.
이제 마하유는 암금색 허상이 엽경을 쓰러뜨리기만을 기다리면 되었다.
이러한 생각에 그는 입꼬리를 씰룩거리며 몰래 오래된 부적을 꺼냈는데 부적이 지극히 무서운 파동을 내뿜었다.
마하고족은 만고불후신을 위해 완벽한 준비를 했다. 암금색 허상은 비록 예상치도 못한 상황이지만 녀석을 상대할 방법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었다.
그전에 자신을 제외한 모두를 없애야 하지만 말이다.
* * *
“목진아!”
만고탑 밖에서 상황을 살피던 청연정은 목진이 불후금신을 스스로 폭발시킨 것을 보더니 순간 사색이 되었고 순식간에 무서운 영력 돌풍을 만들어 천지마저 격렬하게 떨렸다.
잇따라 그녀는 한기 어린 눈빛으로 만고탑을 쏘아보며 그곳으로 향했다.
“청연정, 무례하네!”
마하천이 버럭 소리를 지르며 만고탑에 다가가자 무서운 영력 돌풍이 휘몰아쳤고 성급의 위압감이 주위에 퍼졌다.
“당장 꺼지게!”
청연정이 이내 정색하며 결인하자 거대한 영진이 나타나 바로 마하천을 가뒀다.
영진은 하얀색 암장의 세계였는데 선급 천지존마저 바로 녹여 없앨 정도의 고온을 자랑하는 암장 거룡이 나타나 허공에 떠 있는 마하천을 공격했다.
이에 마하천이 옷깃을 휘날리자 흑백의 기가 휘몰아쳐 주위를 맴돌았는데 암장 거룡의 공격에 점차 흩어졌다.
“청연정, 자네 제정신인가? 이곳에서 우리 마하고족과 싸우려는 건가?”
마하천의 물음에 청연정이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다.
“마하유가 내 아들한테 무슨 짓을 했는지 몰라서 그러나? 내 절대 가만두지 않을 것이네!”
마하천이 콧방귀를 뀌며 답했다.
“각자의 실력에 따라 대결을 펼치는 만고탑에서 목진이 저렇게 된 것은 온전히 그가 방심해서 일어난 일이네. 자넨 부도신족의 체면도 고려하지 않고 어찌 이런단 말인가?”
“웃기고 있네.”
청연정은 피식 웃더니 거대한 용 수만 마리를 움직여 마하천을 공격하려 했다.
“만고탑에 문제가 생긴 이 시점에서 정녕 나와 싸우겠단 말인가? 자네 아들은 불후금신을 폭발시켰지 죽지 않았네. 마하유가 암금색 허상을 없애면 녀석도 무사할 걸세.”
마하천은 나지막하게 말을 이어갔다.
“대신 마하유마저 녀석을 없애지 못한다면 자네 아들도 함께 죽을 것이네. 아무리 우리라도 구할 수 없을 것이네!”
마하천의 말에 청연정은 멈칫하더니 다시 안정을 되찾고 암장의 세계를 거뒀다.
“내 아들한테 무슨 문제라도 생기면 마하고족과 싸우는 한이 있어도 반드시 복수할 것이네.”
말을 마친 청연정은 다시 제자리로 돌아갔고 부도현도 한기 어린 눈빛으로 그녀를 힐끗 쳐다보다가 제자리로 돌아갔다.
사람들은 그제야 안도의 한숨을 쉬었는데 어느새 이마에서 식은땀이 주르륵 흘러내렸다. 일전에 두 사람이 갑자기 나선 것에 다들 적잖게 놀랐다.
“청연정이 너무 한 것 아닌가요?”
마하고족의 장로들은 더 이상 참지 못하고 말을 건넸다.
“지금은 만고불후신이 가장 중요하니 일단 무시하거라. 일단 마하유가 만고불후신의 주인이 되면 다시 상대해도 늦지 않으니까 말이야.”
마하천은 눈을 가볍게 드리운 채 답했다.
* * *
오래된 천지에 휘몰아치던 돌풍은 한참 지나서야 서서히 사라졌고 만신창이가 된 대지에는 수만 장 정도의 구멍이 잔뜩 생겨났다.
또한, 허공에 떠 있던 목진은 어느새 사라졌는데 마하유와 엽경은 암금색 허상에 정신이 팔려 목진을 생각할 겨를조차 없었다.
일전에 목진이 불후금신을 폭발시키자 불후 본원도 사라져 이를 취하지 못한 암금색 허상은 잔뜩 화가 났다. 허상은 씩씩거리며 마하유와 엽경에게 향했다.
이에 두 사람은 바로 뒤돌아서 도망갔다.
이렇게 또 생사의 추격전이 펼쳐졌다.
부단히 바람을 가르는 소리가 들리는 하늘과 달리, 바닥에 깊숙이 파인 구멍에 피투성이가 된 채 누워있는 목진은 영력이 한껏 사그라들어 크게 다친 듯했다.
불후금신을 스스로 부순 것은 지금까지 처음 벌어진 일이었다.
이는 불후 본원을 없앤 거나 다름없어 그는 다시는 불후금신을 소환할 수 없을 것이다.
목진은 오래도록 수련한 성과를 한순간에 잃었단 생각에 마음이 아팠다.
다만, 지금은 이럴 때가 아니었다. 위기는 사라지지 않았고 그는 반드시 방법을 생각해내야 했다.
후우.
목진은 길게 숨을 내쉬다가 육신에서 전해진 엄청난 고통 때문에 미간을 살짝 찌푸렸다. 그는 깊은 골짜기를 넘어 오래된 천지를 바라보다가 서서히 눈을 감았다.
이제 그의 추측이 맞는지 검증할 시간이 되었다.
만약 추측대로라면 목진은 불후금신을 없애고 훨씬 값진 물건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목진이 눈을 감자 의식이 주위에 확산되었다. 그는 불후금신의 폭발로 인해 주위에 퍼진 불후 본원을 찾기 시작했다.
이는 목진이 수련해낸 거라 다시 끌어모을 수는 없겠지만 위치 정도는 파악할 수 있었다.
의식은 수많은 광점이 되어 주위에 퍼져나갔다.
“왔군…….”
조용히 불후 본원을 느끼던 목진은 그 주위의 공간에서 미세한 파동이 느껴지더니 조금씩 그것을 집어삼키는 것을 발견했다.
1각도 안 되는 사이, 목진의 자폭으로 인해 흩어진 불후 본원은 존재한 적 없었던 것처럼 완벽하게 사라졌다.
하지만 목진은 알았다, 그의 불후 본원은 갑자기 사라진 것이 아니라 만고탑이 흡수한 것이었다.
역시나 그의 예상대로였다.
이에 그는 불후 본원을 따라 천지에 스며들었는데 주위의 환경이 완전히 변하며 자금색 빛으로 가득 찬 세상이 펼쳐졌다.
목진은 수많은 자금색 광점이 아른거리는 세상에 흠칫 놀랐다. 자금색 광점은 전부 불후 본원으로 일전에 그가 얻은 것은 아무것도 아니었다.
“이렇게 웅장한 불후 본원은 만고탑이 수만 년 동안 모은 거겠지?”
목진은 자금 세계를 보며 이내 감탄했다.
만약 이를 흡수해 제련할 수만 있다면 목진의 불후금신은 부쩍 강대해질 것이다.
후우.
그때 자금 세계에서 갑자기 이상한 움직임을 포착한 목진은 깜짝 놀랐다. 목진은 누군가 자신을 발견한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상대방의 눈빛에 오래된 기운이 깃들었다.
“들킨 건가?”
목진은 감히 꿈쩍도 못 했다.
그런데 앞쪽에 갑자기 자금색 빛이 모이더니 흐릿한 허상이 만들어졌다.
“드디어 누군가 찾아왔군.”
목진은 상대방의 얼굴이 뚜렷하게 보이지는 않았지만 창로한 소리가 자신한테 건넨 말이라 확신했다.
하여 목진의 숨었던 의식도 서서히 허상을 이뤄 조심스럽게 상대방한테 인사를 올렸다.
“우연히 이곳에 들어오게 되었으니 부디 용서해 주세요. 그런데 선배님은 누구신가요?”
흐릿한 허상은 가볍게 웃으며 답했다.
“난 만고탑의 의식이란다. 너는 참 영리하구나. 그런 방법으로 이곳에 들어올 생각을 했다니 말이다. 그리고 제법 담대한걸?”
그건 목진이 불후금신을 자폭한 것을 의미했다. 다른 사람 같았으면 절대 불후금신을 부수지 못했을 테니 말이다.
“죽을 수도 있었던 상황이라 그럴 수밖에 없었어요.”
목진은 씁쓸하게 웃으며 말을 이어갔다.
“그것도 선배님께서 귀띔해주셔서 겨우 생각해낸 방법이었답니다.”
“난 그 사악한 변이체의 상대가 안 되니 녀석이 이곳의 불후 본원을 빼앗을 때를 노리는 수밖에 없었단다.”
“역시…….”
흐릿한 허상이 한숨을 쉬며 한 말에 목진은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역시나 그의 예상대로였다. 암금색 허상이 불후 본원을 빼앗자마자 낸 괴상한 소리는 녀석이 원해서 낸 것이 아니라 목진 앞에 서 있는 흐릿한 허상이 한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