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55화. 장악 및 소환
“선배님, 도대체 어떻게 된 일인가요? 암금색 허상은 도대체 뭔가요?”
목진이 어리둥절하여 묻자 흐릿한 허상은 밝은 빛을 발하는 족자를 펼쳤다. 그 속에 얼굴이 제대로 보이지 않는 청색 도포를 입은 사내의 뒷모습이 그려졌는데 목진은 그한테서 난생처음 느끼는 신비로운 압박감이 느껴졌다.
높은 하늘에 서 있던 청색 도포를 입은 사내는 땅에 내려와 직접 오래된 석탑을 지었는데 그것은 다름 아닌 만고탑이었다!
그 광경에 목진은 흠칫 놀랐다. 족자 속 청색 도포를 입은 사내는 말로만 듣던 불후대제로 상고 시기의 제일 강자였다!
“불후대제가 만고탑을 지어 깊은 잠에 빠진 만고불후신을 이곳에 보관했고, 불후금신의 수련법을 대천세계에 널리 알렸단다.”
“불후대제는 만고불후신을 위해 가장 적합한 주인을 찾아주고 싶었을 뿐만 아니라 대량의 불후 본원을 수집해 깊은 잠에 빠진 만고불후신을 치유하려고 그랬던 거란다.”
창로한 목소리가 전해지자 목진은 눈가가 파르르 떨렸다.
“치유요?”
“불후대제가 역외사족의 천사신과 결전을 벌이는 과정에서 만고불후신이 큰 타격을 입어 깊은 잠에 빠졌단다. 하여 이곳에서 여태껏 대량의 불후 본원으로 만고불후신을 치유하고 있었단다.”
“그렇군요.”
목진은 가볍게 고개를 끄덕이며 물었다.
“그럼 암금색 허상은 어떻게 된 일인가요? 녀석은 만고불후신이 아닌가요?”
“녀석이 만고불후신일 리가 있을까?”
창로한 허상은 피식 웃더니 이내 감탄하며 말했다.
“수만 년 동안, 불후금신을 수련해낸 강자가 만고탑에 계속 찾아와 방대한 불후 본원을 제공한 덕분에 만고불후신의 회복 속도도 빨라졌는데…….”
“그 과정에 변고가 생겼단다.”
“변고라면…….”
“만고탑에 모인 불후 본원의 양이 너무 많은 데다가 각자 다른 불후금신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더냐? 내가 비록 불후 본원을 전부 정화하느라 노력했지만 빠트린 것이 있었더구나.”
“그런데 누군가의 잔존한 의식이 웅장한 불후 본원에 숨어있다가 몰래 다른 불후 본원을 집어삼켜 힘을 키웠단다. 내가 녀석을 발견했을 때는 이미 강대해져 전력을 다해서야 겨우 그를 제압할 수 있었단다.”
“그런데 녀석이 또 많은 불후 본원을 흡수해 만고불후신이 아직 깨어나지 못하고 있구나, 젠장.”
암금색 허상이 암홍색 산맥을 뚫고 나온 것을 보면 그곳에 갇혀있었던 모양이었다.
“암금색 허상은 순수한 불후 본원으로 이뤄진 것이었군요.”
목진은 그제야 왜 녀석의 몸에 깃든 불후의 기운이 그토록 그윽한지 깨달았다.
“너희가 수련한 불후금신에 불후 본원이 깃들어 있어 녀석이 강력한 살기를 품었던 거란다.”
“이곳의 가장 큰 골칫거리인 녀석을 없애지 못하면 앞으로 더 많은 양의 불후 본원을 흡수할 것이고 언젠가는 만고불후신까지 집어삼킬 수도 있단다. 그때가 되면 녀석은 의식이 온전하지 못한 괴물이 되겠지.”
“난 이 일을 최대한 빨리 해결하고 싶었지만 규칙 때문에 너희와 직접 교류할 수 없었단다. 그래서 내가 보낸 신호를 깨달은 누군가가 이곳에 찾아왔으면 하고 바랐단다.”
상대방의 말에 목진의 눈가가 파르르 떨렸다. 그는 만고불후신을 얻기 위해 지금까지 열심히 수련해왔는데 암금색 허상한테 뺏기면 상당히 원통스러울 것 같았다.
“제가 뭘 하면 되나요?”
목진의 목표는 만고불후신이었으나 일단 암금색 허상을 없애는 것이 우선이었다.
그런데 녀석은 너무 강해 목진의 상대가 아니었다. 일전의 대결에서 목진은 이미 불후금신을 폭발시켰으니 다시 싸우면 목숨마저 잃을 수도 있었다.
“너희 중에 성급 천지존이 없다면 절대 그 상대가 안 될 거란다.”
창로한 허상의 말에 목진은 가볍게 고개를 끄덕이더니 미간을 찌푸리며 물었다.
“다른 방법은 없을까요?”
“있단다.”
창로한 허상은 흥분한 듯 갑자기 파르르 떨었다.
“그게 뭔가요?”
“깊은 잠에 빠진 만고불후신을 깨우는 거란다!”
창로한 허상의 말에 목진은 심장이 파르르 떨렸고 이글거리는 눈빛으로 상대방을 바라봤다.
“제가 해봐도 될까요?”
“당연하단다. 네가 이곳에 들어온 것만 봐도 용기와 기백이 뛰어나단 것이 증명되었으니 그럴 자격이 충분하단다.”
창로한 허상은 가볍게 웃으며 대답하더니 손을 가볍게 휘둘렀다. 그러자 자금 세계의 아래쪽 보라색 빛이 사라지더니 아래쪽 가장 깊숙한 곳에서 신비롭고도 투명한 빛이 아른거리기 시작했다.
이에 목진은 투명한 빛을 뚫어져라 쳐다봤다. 투명한 빛 내부에는 유리로 만든 것 같은 무언가가 앉아있는 듯했고 피부에는 원시적인 파동을 내뿜는 오래된 무늬가 가득 새겨졌는데 이는 대천세계가 만들어진 순간 자연스레 형성된 것처럼 신비롭기 그지없었다.
또한, 불후의 기운을 휘감은 채 자리에 앉아있는 녀석은 영생불멸의 존재인 듯했다.
깊은 잠에 빠진 녀석은 비록 한 장 정도밖에 안 되었지만 내뿜는 압박감은 성급보다 훨씬 강력했다.
목진은 녀석을 보자 흥분이 되어 온몸이 파르르 떨렸다.
만고불후신…….
드디어 너를 만나게 되었구나.
* * *
쿵!
갑자기 엄청난 소리가 울려 퍼지더니 거대한 자금색 태양이 피어올랐고 파멸의 충격파가 다시 휘몰아쳐 천지가 들썩거렸다.
멀리 서 있던 마하유가 입꼬리를 씰룩거리며 상황을 살폈다. 그것은 엽경의 걸작이었다.
마하유는 팔성영반의 순간 이동 기능 덕분에 암금색 허상을 상대하면서도 무사했다.
그는 목진한테 했던 것처럼 암금색 허상을 엽경한테 보냈다. 엽경은 어느 정도 예상은 했지만 암금색 허상을 떨쳐내기란 쉽지 않았다.
속도가 빠른 목진도 불후금신을 폭발시켰으니 제아무리 강한 엽경이라도 동일한 선택을 해야만 했다.
잠시 후, 자금색 불꽃이 휘몰아치는 중심에서 엽경이 피투성이가 된 채 추락했다. 그는 체내에 영력이 미친 듯이 요동쳐 괴로웠지만 바닥에 누워 꼼짝도 할 수 없었다. 그는 한기 어린 눈빛으로 마하유를 쳐다볼 수밖에 없었다.
정작 마하유는 녀석을 거들떠보지도 않았다. 목진과 엽경이 크게 다쳤으니 이제 더는 만고불후신을 빼앗을 사람은 없을 것이다.
“이제 내가 나설 차례인가?”
마하유는 허공에 떠 있는 암금색 허상을 탐욕스럽게 쳐다봤다.
암금색 허상이 만고불후신이 아니든 말든 체내에 웅장한 불후 본원이 깃든 것만은 사실이었다. 녀석을 포획하면 만고불후신을 얻지 못해도 그의 불후금신은 상당히 무서울 정도로 강대해질 것이다.
심지어 원시 법신 중 최강 법신이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말이다.
크으으으!
이와 동시에, 암금색 허상도 언짢은 듯한 눈빛으로 마하유를 쳐다봤다. 목진과 엽경이 불후금신을 자폭해 아무런 수확도 거두지 못했기에 그는 절대 마지막 사냥감을 놓치지 않으려는 듯했다.
이에 암금색 허상이 한 갈래 암금색 빛이 되어 하늘을 가르며 마하유에게 향했다.
그런데 마하유는 더 이상 도망가지 않고 사악하게 웃으며 손을 들더니 노랗게 바랜 오래된 부적을 꺼냈다.
자세히 보면 지극히 무서운 파동을 내뿜는 부적에 선홍색 무늬가 새겨져 있었는데 그것은 정혈이었다. 형성한 파동으로 보아 성급의 피가 분명했다.
“성문부…… 아쉽군.”
마하유는 아쉬운 듯 수중의 오래된 부적을 쳐다봤다. 그것은 마하고족의 성급 천지존이 대량의 정혈로 십수 년 동안 애써 만든 진귀한 부적이었다.
이 부적은 마하고족에 3장 밖에 없고 위력은 성급 천지존의 공격 못지않았지만 한 번밖에 사용할 수 없다는 결함이 있었다.
그러나 마하유는 괴이한 암금색 허상을 쓰러뜨리기 위해서는 이것을 사용할 수밖에 없었다.
생각을 마친 마하유는 고개를 들고 자신을 향해 다가오는 암금색 허상을 보더니 손끝을 찔러 피를 오래된 부적에 떨궜다.
활활!
부적은 빠르게 타올라 선홍색 화염이 되었는데 그 모습이 상당히 괴이해 보였다.
“공격하라.”
마하유가 깊게 숨을 들이켜며 외치자 선홍색 불덩이가 공간을 녹이며 눈 깜짝할 사이에 암금색 허상의 앞쪽으로 날아갔다.
파죽지세였던 암금색 허상은 위협감을 느꼈는지 선홍색 화염을 보고 멈칫했다가 바로 철수했다.
치익!
그런데 괴이한 선홍색 화염은 파르르 떨더니 혈광 화광이 되어 암홍색 허상의 미간에 스며들었다.
녀석은 바로 자리에 멈춰 섰고 미간을 중심으로 사방으로 선홍색 무늬가 퍼져나갔다.
녀석은 전력을 다해 반항하며 부단히 선홍색 무늬를 잘랐지만 여전히 일정한 속도로 확산되었다.
언젠가 선홍색 무늬가 녀석의 온몸을 감싸면 마하유가 이를 장악할 수 있을 것이다.
이글거리는 눈빛으로 암홍색 허상을 바라보던 마하유는 득의양양하게 웃었다. 이번에 그는 최후의 승자가 될 것이다.
반면, 목진과 엽경은 처절한 패배의 맛을 제대로 느끼게 될 것이다.
* * *
목진은 자금 세계의 깊숙한 곳에 놓인 무서운 위압감을 내뿜는 지존법신 앞에 앉아 미친 듯이 땀을 흘렸다. 그는 비록 의식일 뿐이지만 만고불후신에서 비롯된 위압감이 본체에도 전해지는 것 같았다.
“만고불후신을 어떻게 깨워야 한단 말인가?”
목진은 죽상이 되어 중얼거렸다. 그는 신비롭고도 오래된 만고불후신에 닿지조차 못하고 있었다.
목진은 현재 만고불후신과 한 장 정도 떨어져 있는데 상대방의 무서운 위압감에 의식이 부서질까봐 더는 감히 가까이가지 못했다.
그래서 목놓아 소리를 질러봐도 상대방은 꼼짝도 하지 않았고 목진은 어찌할 바를 몰랐다. 간난신고를 거쳐 불후금신을 부수면서 겨우 얻은 기회를 이렇게 포기해야 한단 말인가?
이리 생각하던 목진은 안색이 확 어두워진 채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그는 절대 이를 용납할 수 없었다.
“만고탑의 말에 따르면 강력한 충격을 줘야 만고불후신이 잠에서 깨어날 가능성이 있다고 했는데…….”
투명한 빛을 발하는 만고불후신을 뚫어져라 쳐다보던 목진은 갑자기 뾰족한 수가 떠올랐다.
“5대 원시 법신은 세계가 이뤄질 때 만들어진 신비롭고도 오래된 존재로 이 세상을 지켜내야 한다는 사명감이 있어. 그들한테 가장 큰 충격은 대천세계가 멸망의 위기에 처한 거겠지…….”
목진은 눈가를 파르르 떨며 잠시 고민하더니 깊게 숨을 들이켜며 눈을 감고 한 장면을 의식으로 감싸 만고불후신한테 보냈다.
그것은 그가 백룡지존의 고향에서 겪은 일이 담긴 모습이었다. 혈사족은 해당 하위면의 억만 명의 생명을 노비처럼 부려 먹었고, 그들의 피를 마음껏 흡입했으며 마음껏 그들을 도살했다.
목진도 그 모습을 떠올릴 때마다 저절로 화가 나곤 했다.
어느새 해당 장면이 투명한 빛을 넘어 차가운 만고불후신에 닿자, 목진은 상대방을 뚫어져라 쳐다봤는데 역시나 미동도 없었다.
시간이 천천히 흐르자 목진은 점차 시무룩해졌다.
정녕 이렇게 해도 만고불후신을 깨울 수 없단 말인가?
“강제로 깨워야 한단 말인가?”
목진은 실망한 듯 씁쓸하게 웃었다.
그런데 그때, 수만 년 동안 조용히 누워있던 만고불후신이 온몸을 가볍게 떨기 시작했다.
상대방의 지극히 미세한 떨림을 발견한 목진은 화들짝 놀랐다.
역시 효과가 있었다!
만고불후신의 떨림은 점차 강해지더니 그윽하고도 오래된 광권이 형성되었다.
만고불후신의 머리 뒤에 불후의 기운이 깃든 유리 광권이 서서히 만들어졌다.
* * *
한편, 마하유가 발동한 오래된 부적 성문부의 선홍색 무늬는 계속해서 퍼져나갔고, 어느새 암금색 허상의 몸의 대부분을 감쌌다. 그 광경에 마하유는 이내 화색이 되었다.
모든 건 그의 예상대로 흘러갔다.
암금색 허상은 실력이 막강하지만 지능이 없어 상대방의 공격에 속수무책이었다.
1각 정도가 지나 선홍색 무늬가 암금색 허상의 온몸에 퍼지자 마하유는 녀석과 미묘한 연계가 생긴 것을 발견했다.
이에 그가 서서히 손을 내밀자 암금색 허상은 가볍게 고개를 숙였다. 녀석은 마하유의 꼭두각시가 된 것처럼 더는 살기를 내뿜지 않았다.
“하하하하!”
마하유는 더 이상 참지 못하고 껄껄 웃었다. 드디어 말로만 듣던 만고불후신을 수중에 넣었다.
이번 만고탑 쟁탈전의 최후의 승자는 역시나 마하유였다!
목진, 엽경은 결국 그의 상대가 아니었다.
* * *
이와 동시에, 자금 세계의 깊숙한 곳에서 목진이 손에 땀을 쥔 채 상황을 살피고 있었다. 신비로운 만고불후신은 드디어 수만 년 동안 꼭 감고 있던 유리알 같은 눈을 조금씩 떴다.
순간, 목진은 진정한 불후의 기운을 느꼈다.
만고불후신이 드디어 잠에서 깨어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