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63화. 마하음양병(摩訶陰陽瓶)
“육신으로만 지존법상을 소환한 나를 상대하려 하다니!”
멀리 떨어진 채 서 있던 마하천은 입꼬리를 씰룩거리며 외쳤다. 지존법상을 소환하지 않았으면 목진을 쓰러뜨리기 어려웠을지도 모르지만 지금은 지존법상의 힘 덕분에 전투력이 부쩍 강해졌다.
이제 목진의 육신이 성급의 경지에 이르렀어도 더는 견디기 힘들 것이다.
성급 육신이 아무리 강력해도 성급 중기에 이른 정예급 강자의 전력을 다한 공격을 전부 막아낼 수 있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성급 육신만 믿고 감히 마하무량신의 공격을 막아내려 하다니, 감히 주제도 모르고 말이다.
“말로만 듣던 마하무량신이 얼마나 대단한지 직접 느껴보고 싶었을 뿐이오.”
목진은 대수롭지 않게 웃으며 말했다.
“만고불후신이 너를 주인으로 인정했다면서 왜 소환하지 않는 것이냐? 설마 너도 녀석을 장악하지 못한 것이냐?”
마하천은 목진을 자세히 살피며 물었다.
만약 목진이 만고불후신을 장악하지 못했다면 그것을 남길 핑계가 하나 더 생기는 것이었다.
“직접 확인해보면 되지 않을까요?”
“당연하지!”
목진이 미간을 찌푸리며 말했다. 이에 마하천이 피식 웃으며 합장하자 마하무량신도 커다란 손을 모았다가 서서히 풀었다.
이에 흑백의 빛이 손바닥 사이에서 번쩍이며 서로 얽히고설키더니 천 장 정도의 거대한 흑백의 창이 형성되었다.
“마하천모(摩訶天矛)!”
마하천이 버럭 소리를 지르자 흑백의 창은 순식간에 사라졌다가 목진의 위쪽에 나타나 엄청난 파괴력을 자랑하며 내려앉았다. 녀석이 낸 바람을 가르는 소리는 만 리 밖에서도 들릴 정도였다.
마하천의 공격에 청연정과 부도현마저 흠칫 놀랐다. 그들도 전력을 다해야 해당 공격을 받아낼 수 있을 것이다.
“마하천이 목진을 죽이려 하는구나.”
태명노조도 정색하며 옆에 서서 상황을 살피는 낙리한테 말을 건넸다.
“네 정인이 만고불후신을 장악하지 못했다면 아무리 성급 육신이 있다고 한들 해당 공격에 맞아 죽을 것이다.”
낙리는 맑은 눈동자를 굴리며 늘씬한 청년을 지그시 쳐다봤다. 목진은 상당히 진지한 표정을 하고 서 있었지만 겁에 질린 것 같지는 않았다. 보아하니 따로 상대방의 공격을 막아낼 방법이 있는 것 같았다.
휘익!
흑백이 창이 내려앉기 직전에 목진은 서서히 눈을 감았다.
이와 동시에, 목진이 오래된 금광을 발하자 허상이 나타나 주먹을 휘둘렀는데 이는 흑백의 창과 정면으로 부딪쳤다.
탕!
맑은 금속이 부딪치는 소리가 쩌렁쩌렁 울려 퍼졌다.
사람들은 두 눈이 휘둥그레진 채 상황을 살폈는데 흑백의 창 아래쪽에 상당히 작은 몸짓을 가진 투명한 허상이 서 있는 것 같았다.
녀석은 거대한 흑백의 창에도 끄떡없이 주먹을 휘두르는 자세를 유지하고 있었지만 흑백의 창에는 빠르게 균열이 일었다.
퍽!
나지막한 소리와 함께 거대한 흑백의 창이 폭발해 흑백 광점이 되어 우수수 쏟아져 내렸다. 몇 장 정도밖에 안 되는 허상은 목진의 뒤에 다가가 신비롭고도 오래된 빛을 발하며 서 있었다.
사람들은 이글거리는 눈빛으로 불후의 기운을 내뿜은 채 서 있는 신비로운 허상을 뚫어져라 쳐다봤다.
그들은 일전에 영력 광경을 통해 녀석을 본 적 있었지만 바로 앞에서 직접 보니 역시나 놀라웠다.
그것은 말로만 듣던 만고불후신이었다!
녀석은 무려 대천세계의 최강 지존법신 중 하나였다!
말로만 듣던 원시 법신이 드디어 모습을 드러냈다.
그 광경에 다들 마음이 복잡미묘해졌다. 만고불후신이 탐 났던 사람들은 목진이 이를 장악하지 못했기를 바랐지만, 목진의 뒤에 오래된 허상이 나타난 것을 보고는 꿈이 와장창 깨졌다.
조금 실망한 이들과 달리 마하천, 마하유 등 마하고족의 장로들은 표정이 한껏 일그러졌다. 마하천은 손에 힘을 너무 준 나머지 주위의 공기마저 폭발했다.
그때 목진은 비스듬히 감았던 눈을 뜨고 안색이 어두워진 마하천을 바라보며 입꼬리를 씰룩거렸다.
“마하 족장님, 이 정도면 만족하시나요?”
마하천은 씩씩거리며 만고불후신을 쳐다봤다. 그는 만고불후신이 확실히 목진을 주인으로 인정한 사실에 잔뜩 화가 났고 만고불후신이 마하고족을 배신한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그는 수만 년 동안 만고불후신을 지킨 마하고족 사람이 새로운 주인이 될 거라 여겼었다.
“너무 우쭐거리지 말거라. 그렇다고 네가 만고불후신을 가져갈 수 있다는 건 아니란다!”
마하천의 말에 목진은 이내 살기를 품었다. 마하천이 끝까지 뜻을 굽히지 않자 그도 점점 화가 났다.
“그럼…….”
목진이 놀라운 살기를 방출하자 뒤쪽에 서 있던 투명한 허상도 고개를 들고 먼 곳에 서 있는 마하천을 노려봤다.
“수만 년 만에 다시 나타난 만고불후신의 첫 번째 신통을 직접 체험해 보세요.”
목진이 말을 마치자 뒤쪽에 서 있던 신비로운 허상은 서서히 날아올라 두 손을 가볍게 휘둘렀는데 손바닥에 그윽한 불후의 광이 모였다. 이는 시간이 아무리 오래 흘러도 변치 않을 것 같았다.
이렇게 한데 모인 불후의 빛은 유리 광구를 이뤘는데 그 표면에 신비롭고도 오래된 무늬가 아른거렸다.
잇따라 만고불후신이 손을 번쩍 들자 유리 광구는 하늘 높이 날아올랐다가 마하천을 향해 날아갔고 녀석의 굵직한 목소리가 쩌렁쩌렁 울려 퍼졌다.
“만고……진인구(萬古真印球)!”
위잉!
유리 광구는 하늘 높이 날아오르더니 공간을 가르며 마하천과 그의 마하무량신을 향해 돌진했다.
마하천은 평범해 보이는 광구에서 살을 에는 듯한 한기를 느끼고는 순간 불안해졌다.
“네가 만고진인구를 수련해 내다니!”
마하천은 얼굴이 붉으락푸르락해진 채 목진을 바라봤다. 만고불후신을 수만 년 동안 보관한 마하고족 사람들은 해당 신통에 대해 아주 잘 알고 있었는데 만고진인구가 그중 한 가지였다.
소문에 의하면 만고불후신은 불후 본원의 힘으로 진인구를 이룰 수 있는데 일단 그 속에 갇히면 만고의 시간 흐름에 빠지고 아무리 성급이라도 결국 죽을 때까지 빠져나오지 못할 것이다.
불후대제는 이 신통으로 수많은 마제를 죽였다.
위력으로만 따지면 만고진인구는 36가지 절세의 신통 못지않았다.
그런데 만고진인구를 이루려면 대량의 불후 본원이 필요한데 만고불후신을 획득한 지 얼마 되지도 않은 목진이 무슨 수로 이를 획득했단 말인가?
이러한 생각에 잠시 사색에 잠겼던 마하천은 이내 정색하며 발을 힘껏 굴러 아래쪽 마하무량신과 함께 신속하게 물러났다. 그들은 눈 깜짝할 사이에 수만 리 밖에 모습을 드러냈다.
위잉!
그런데 순간 그의 머리 위에서 이상한 소리가 들리더니 투명한 빛이 번쩍이며 그를 따라잡았다.
이에 마하천은 안색이 어두워져 다시 마하무량신과 만 리 정도 물러났는데 아무런 소용이 없었다. 제아무리 속도가 빨라도 투명한 빛은 그의 영혼을 옥죄듯 따라붙었다.
이렇게 1각도 안 되는 사이, 마하천은 다시 만고성의 위쪽에 나타났다.
“왜 도망가지 않는 건가요?”
목진이 입꼬리를 씰룩거리며 묻자 마하천은 버럭 화가 났다. 그는 명색이 마하고족의 족장인데 머리에 피도 안 마른 녀석한테 놀아나고 있으니, 상당히 굴욕적이었다.
“흥, 내가 만고불후신의 신통이 무서워 그러는 줄 아느냐!”
말을 마친 마하천은 깊게 숨을 들이켜더니 두 손으로 결인했다.
이와 동시에 아래쪽에 서 있는 마하무량신의 머리에서 흑백의 기가 만들어지더니 빠르게 모여 거대하기 그지없는 흑백 우산을 이뤘다.
“마하천라산(摩訶天羅傘)!”
마하천이 버럭 소리를 지르자 거대한 흑백 우산이 회전하며 무한의 오묘한 기운을 방출했는데 하늘이 무너져도 끄떡없을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위잉!
유리의 빛이 마하천라산을 내리쬐자 양자는 미친 듯이 서로를 집어삼키지 못하여 안달이 났고 주위의 공간은 부단히 무너졌다.
그런데 흑백 영력은 오묘하긴 하지만 불후 본원보다는 못해 점차 무너지기 시작했다.
그 광경에 목진은 두 손으로 인법을 바꾸며 나지막하게 외쳤다.
“만고진인구, 만고의 봉인!”
위잉!
유리의 빛이 쏟아지자 유리 광구가 퍼져나가 거대한 흑백 우산과 마하천 및 마하무량신을 전부 감쌌다.
이렇게 만고진인구에 갇힌 마하천은 표정이 한껏 일그러졌다.
쏴아아.
만고진인구에 물이 흐르는 소리가 들렸는데 이는 시간의 하천처럼 휘몰아쳐 거대한 흑백 우산을 적셨고 우산은 세월의 침식을 견뎌내지 못하고 빠르게 부식되었다.
만고불후신은 불후의 힘뿐만 아니라 그 정반대인 부식의 힘도 지녔다. 하여 그는 시간의 침식을 통해 모든 걸 없앨 수 있었다.
상고 시기, 수많은 천마제가 만고진인구에 갇힌 뒤, 결국 잿더미가 되어 사라졌다.
마하무량신 위에 서 있는 마하천은 점차 부식되는 거대한 흑백 우산을 보더니 발을 힘껏 굴렀는데 아래쪽에 서 있던 마하무량신은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며 흑백의 회오리를 내뿜었다. 이는 흑백 천검처럼 있는 힘껏 만고진인구를 공격했다.
위잉.
그런데 흑백 천검은 빠르게 부식되었고 남아있던 힘에 만고진인구가 가볍게 떨리기만 했다.
“젠장!”
마하천은 만고진인구가 이렇게까지 상대하기 힘들 줄 몰랐다. 상고 시기, 수많은 천마제를 죽였던 만고진인구에 깃든 시간의 하천의 부식력은 역시나 엄청났다.
이에 마하천은 더는 무모한 공격을 하지 않고 마하무량신으로 웅장한 흑백의 빛을 방출해 거대한 흑백 우산에 영력을 불어넣었다. 이에 거대한 흑백 우산은 다시 눈부신 빛을 발하며 그와 마하무량신을 무사히 지켰다.
“목진, 너의 만고진인구는 확실히 대단하구나. 하지만 넌 불후대제가 아니지 않느냐? 이것으로 나를 죽일 수는 없을 것이다.”
마하천이 버럭 소리를 질렀다.
사실, 그가 말한 대로 목진이 이룬 만고진인구로 마하천을 가둘 수는 있어도 죽이는건 불가능했다.
그런데 목진은 대수롭지 않게 웃기만 했다. 그도 자신이 형성한 만고진인구가 마하천을 죽이지 못한다는 걸 알고 있었는데 처음부터 상대방을 가두는 것이 목적이었던지라 상관없었다.
그 광경에 구경꾼들은 흠칫하더니 경외의 눈빛으로 목진을 바라봤다.
반년 전까지만 해도 목진은 마하천과 실력이 천지 차이였는데 반년 만에 그 차이를 좁혔을 뿐만 아니라 만고불후신으로 상대방을 가두기까지 했다.
그의 실력은 대천세계의 최정예급 강자라고 해도 절대 과언이 아니었다.
마하고족의 장로들은 안색이 확 어두워진 채 목진을 바라봤고 마하유는 이를 꽉 깨문 채 온몸을 부들부들 떨었다. 그는 마하천마저 목진한테 꼼짝 못 한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기 힘들었다.
“네 이놈, 우리 족장님을 당장 풀어주지 못할까!”
그때 마하고족의 흑백 지팡이를 든 두 명의 성급 천지존이 버럭 소리를 지르며 목진을 쏘아봤다.
“허허, 진정하게. 이건 마하천과 목진 두 사람 사이의 대결인데 왜 간섭하려 하는 건가?”
태명노조가 옷깃을 휘날리자 무한의 영력이 모여 두 명의 성급 천지존의 앞길을 막았다.
“오늘 일은 마하고족에서 약속을 지키지 않아 벌어진 것이 아닌가?”
태명노조는 만고진인구에 갇힌 마하천한테 눈길을 돌렸다.
“마하 족장, 다들 이만하는 것이 어떤가? 내가 목진에게 이만 물러나라고 할 테니 마하고족에서도 더는 만고불후신에 집착하지 말게. 어떤가?”
마하고족은 실력이 막강해 정말 싸움이라도 일어나면 대천세계 전체가 발칵 뒤집어질 것이다.
“역시 자기 일이 아니라 이거군. 태령고족의 조상이 잽싸게 태령성체를 획득해 자네 종족이 지금처럼 발전할 수 있었던 것이네. 마하고족 또한 지금껏 만고불후신을 애써 지켜왔는데 어찌 이렇게 빼앗길 수 있단 말인가?”
마하천은 한기 어린 눈빛으로 태명노조를 힐끗 쳐다보며 피식 웃었다.
“불후대제가 마하고족의 조상님한테서 만고불후신을 빼앗았으니 수만 년이 지난 오늘, 우리가 그 주인이 될 차례가 되지 않았는가?”
“아무도 오늘, 우리 마하고족에서 만고불후신을 가져가지 못할 것이네!”
말을 마친 마하천이 표독스러운 눈빛으로 목진을 쏘아보며 나지막하게 포효했다.
“목진 네 이놈, 우리 마하고족에는 필살기가 없는 줄 아느냐!”
“넌 마하고족에서 우쭐거릴 자격이 없다!”
마하천이 씨익 웃으며 정혈을 내뱉더니 인법을 바꿔 선홍색 부적을 이뤘고 부적은 하늘 높이 날아올라 대륙의 가장 깊숙한 곳에 스며들었다.
쿵!
순식간에 대지가 격렬하게 진동하더니 마하고족의 족지에서 통천의 흑백 빛기둥이 솟구쳤다.
천지를 이은 흑백 빛기둥에 주위의 공간이 부서졌는데 그 속에 흑백 두 가지 색상을 띤 옥병이 서서히 나타났다.
이와 동시에, 이 구역은 흑백 두 가지 색깔로 변했고 이루 말할 수 없는 엄청난 위압감이 형성되었다.
청연정, 부도현, 태명노조 등은 흑백 옥병을 발견하고 화들짝 놀랐다.
“마하음양병? 마하천, 자네 미쳤는가? 어찌 호족 성물을 꺼낸 건가!”
5대 고족에는 각자의 호족 성물이 존재했다. 이는 부도신족의 조탑처럼 종족을 보호하는 작용을 하는 상당히 중요한 물건이라 멸망의 위기에 닥치지 않은 이상, 쉽게 꺼내지 않는다.
마하천은 염제와의 대결에서 어쩔 수 없이 호족 성물을 사용하고 나서야 겨우 그를 물리쳤다.
그런데 그 물건이 오늘 다시 모습을 드러냈다.
그 누구도 마하천이 목진을 상대로 그것을 꺼낼 줄 몰랐다.
그는 만고불후신을 빼앗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았다!
목진이 위험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