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65화. 초청장
운 좋게 주마왕이 된 목진과 비교하면 진천이야말로 역외사족과 피 튀기는 전쟁 끝에 승급한 진정한 주마왕이었다.
이에 마하천도 상대방의 갑작스러운 등장에 바로 경계 태세를 취했다.
“진천, 대천궁에서 우리 마하고족 일에 간섭하려 하는건가?”
마하천은 깊게 숨을 들이켜며 물었다.
“마하 족장, 그렇게까지 만고불후신에 집착할 필요가 있는가? 마하고족은 그 원시 법신을 보관한 지 수만 년이나 되었지만, 단 한 번도 주인이 된 적이 없지 않은가? 이것만 봐도 당신들은 만고불후신과 인연이 아니네.”
진천이 피식 웃으며 말했고 마하천은 안색이 조금 어두워졌다. 마하천은 그를 바로 날려버리고 싶었지만 그럴 수가 없었다.
진천은 성급 후기에 이른 지 오래된 강자로 대천세계에서 10위권에 들만 한 사람이었다. 그는 무려 염제, 무조 등 거장들과 어깨를 나란히 할 만큼 강했다.
마하천이 마하음양병을 쥐고 있었으면 그를 상대할 수도 있었겠지만 그게 아니라면 괜히 덤볐다가 큰 타격을 입을 수도 있었다.
더구나 진천의 뒷배는 무려 대천궁이었다. 아무리 마하고족이라도 함부로 대할 수 없었다. 비록 대천궁은 지금까지 대천세계 세력들 사이의 일에 간섭하지 않지만 말이다.
마하천은 목진이 이대로 만고불후신을 가져가는 것은 절대 용납할 수 없었다.
“진천, 만고불후신을 수만 년 동안 수호한 마하고족은 큰 공이 없어도 노고는 인정해줘야 하지 않나? 그런데 목진은 그 주인이 되었다고 바로 가져가려 하다니, 우리가 어찌 이 사실을 쉽게 받아들일 수 있단 말인가?”
마하천은 깊게 숨을 들이켜더니 눈가를 파르르 떨며 말을 이어갔다.
“더구나 나는 마하고족에서 만고불후신을 백 년만 더 보관하게 해달라고 부탁하지 않았는가? 백 년 뒤, 난 바로 저 아이한테 만고불후신을 넘길 것이네.”
“마하 족장, 불필요한 말은 더 이상 하지 않겠네. 내가 여기 온 것은 염제와 무조 때문이라네.”
진천이 피식 웃으며 한 말에 마하천은 표정이 확 굳었고 마하고족의 장로들도 흠칫 놀랐다.
마하고족은 부도신족과 태령고족까지는 상대할 수 있었지만 무한의 화역과 무경은 아니었다.
더구나 마하고족은 무한의 화역과 싸운 적이 있었고 마하천은 염제와의 대결에서 패배했었다. 마하음양병이 아니었으면 마하고족은 엄청난 수모를 겪었을 것이다.
염제는 더 이상 막 성급 천지존경에 이른 애송이가 아니었다. 그는 이제 마하천을 초월해 성급 후기에 이른 대천세계의 3위권에 드는 강자가 되었다.
또한, 무한의 화역도 마하고족 못지않을 정도로 성장했다.
그리고 대천세계에 있는 무조와 무경도 염제와 무한의 화역 못지않았다.
만고성 밖에서 상황을 살피던 사람들은 몰래 혀를 내둘렀다. 다들 오늘 일로 이렇게나 많은 거장이 한자리에 모이게 될 줄 몰랐다.
마하천은 너무 화가 나 안색이 한껏 어두워졌다. 기선을 제압해 목진한테서 만고불후신을 빼앗으려 했던 그의 계획은 완전히 틀어졌다.
무한의 화역, 무경, 대천궁, 부도신족, 태령고족…….
이들이 뭉치면 대천세계 전체가 들썩일 것이다. 마하고족도 그들 앞에서는 감히 우쭐거리지 못했다.
“진천, 설마 우리 마하고족한테 강제로 자네 말을 따르라는 건가?”
마하천은 표정이 한껏 일그러진 채 말했고 진천은 이내 정색하며 마하천을 쳐다봤다.
“마하 족장, 현재 대천세계의 상황이 그리 좋지 않네. 역외사족이 우리를 호시탐탐 노리고 있는 시점에서 만고불후신이 주인을 정한 것이 정녕 좋은 일이 아니란 말인가? 이건 우리 모두를 위한 일이니 부디 신중하게.”
멀리 떨어져 있던 목진은 흠칫 놀랐다. 그는 염제와 무조가 오늘, 마하고족에 오지 못한 것이 왠지 불안했다. 설마 역외사족에서 다시 대천세계와 전쟁을 벌일 거란 말인가?
마하천은 순간 말문이 막혔다. 더 이상 고집부려봤자 만고불후신을 돌려받지 못한다는 걸 깨달은 그는 진천이 화를 내기 전에 뜻을 굽히는 것이 최선이란 결론을 얻었다. 안 그럼 마하고족이 무슨 꼴을 당할지는 아무도 모르는 일이었다.
“대천궁까지 나섰으니 마하고족에서도 이만 물러나야겠군.”
마하천은 드디어 강력한 영력을 거두더니 한기 어린 눈빛으로 목진을 쏘아봤다.
“대신 우리 종족의 마하음양병은 당장 돌려줘야 할 것이네.”
이에 진천은 상냥하게 웃으며 목진을 바라봤다.
“목왕, 마하 족장이 먼저 한 보 물러났으니 자네도 저들의 물건을 돌려주는 것이 어떤가?”
목진은 진천의 말에 바로 고개를 끄덕였다. 부도신족과 태령고족이 도와주기로 했지만 그도 마하고족과 싸우고 싶지 않았다. 그 과정에서 천지존이 사망할 수도 있으니 말이다. 이는 대전 쌍방한테 엄청난 손실이었다.
“이제 일을 마무리하였으니 한 번만 더 부탁드리겠습니다.”
목진이 돌아서서 부탁하자 만고탑은 파르르 떨며 억만 갈래의 빛을 발하더니 한 갈래 검은빛을 내뱉었다. 이는 다름 아닌 마하고족의 마하음양병이었다.
마하천은 바로 마하음양병을 건네받아 조심스럽게 살펴보더니 아무런 이상이 없자 이내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불후대제께서 남기신 힘은 역시 남다르군. 수만 년이 지났는데도 아직 상당히 강력하니 말이야.”
진천은 이내 감탄하며 만고탑을 바라봤다. 그는 성급 후기 천지존이었지만 만고탑에 잔존한 오래된 힘과 비교하면 아무것도 아니었다.
그러나 힘이 다 닳은 만고탑의 표면에 균열이 일기 시작했다.
그 광경에 목진은 만고탑을 향해 정중하게 인사를 올렸다.
구경꾼들도 모든 일이 무사히 해결되자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만약 정말로 마하고족과 목진이 싸움을 벌였다면 불똥이 어떻게 튈지 아무도 모르기 때문이었다. 일반 천지존은 감히 이 일에 간섭하지 못할 것이다.
하여 이렇게 흐지부지 끝난 것이 오히려 좋은 일이었다.
“진천, 자네가 마하고족에 왔으니 제대로 대접해야 마땅하지만, 현재 우리 종족 상황이 엉망이라 어쩔 수 없네.”
마하천은 폐허가 된 만고성을 쓰윽 훑더니 진천과 가볍게 인사를 나누고 바로 떠났고 마하고족의 장로들도 곧장 뒤따랐다.
다행히 진천은 상대방의 무심한 태도에도 전혀 개의치 않았다. 어찌 보면 그의 등장으로 인해 마하고족이 만고불후신을 포기하게 된 거라 언짢을 만도 했다.
더구나 그는 마하고족 때문에 여기까지 찾아온 것이 아니었다.
“대천궁에 주마왕이 새로 생겼다는 소식을 전해 듣긴 했지만 이제야 보는구나.”
진천은 옷깃을 휘날리며 목진한테 다가가 미소를 지으며 말을 건넸다.
“별말씀을요, 진천 선배님. 제가 어떻게 주마왕이 되었는지 모르시나요?”
진천은 진정한 주마왕이라 목진은 그를 대하는 태도가 상당히 공손했다.
“어떻게 됐든 넌 이미 대천궁의 주마왕이란다. 그리고 이제 너는 진정한 주마왕이 될 자격을 갖추지 않았느냐?”
진천이 껄껄 웃으며 말했다.
“오늘은 정말 감사했습니다. 선배님이 아니셨다면 오늘 일은 쉽게 끝나지 않았을 거예요.”
목진도 가볍게 웃으며 감사 인사를 전했다.
그는 마하천이 두렵지 않았지만 부도신족과 태령고족까지 끌어들이고 싶지 않았다.
“3대 고족 사이에 전쟁이 일어나면 큰일이지 않겠느냐? 지금은 내란을 벌일 때가 아니란다.”
진천은 손을 휘익 저으며 이내 한숨을 쉬었다.
“오늘 내가 이곳에 온 것은 3대 고족이 싸우는 걸 막으려는 것도 있지만 그게 전부는 아니란다.”
잇따라 진천이 옷깃을 휘날리자 금광 몇 갈래가 솟구쳤는데 이는 각각 청연정, 부도현, 태명노조 등뿐만 아니라 일전에 떠난 마하고족의 족장과 두 성급 천지존한테 날아갔다.
청연정 등은 순간 숙연해졌다.
“이건…….”
목진은 눈가를 파르르 떨며 금광을 바라봤다. 그는 금광에 황금색 초청장이 들어있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이제 너도 금첩을 받을 자격을 갖췄단다.”
진천이 가볍게 웃으며 옷깃을 휘날리자 금광 한 갈래가 목진을 향해 날아갔다.
목진의 수중에 황금 초청장이 내려앉았는데 표면에 오래된 글자가 적혀 있었다.
대천금첩(大千金帖).
“대천금첩이라…….”
목진은 어리둥절하여 초청장에 새겨진 글자를 쳐다보며 중얼거렸다. 그는 이것이 뭘 의미하는지 전혀 알지 못했다.
“네가 대천금첩을 받다니…….”
그때 청연정이 다가와 이내 감탄하며 말했다.
“이게 대체 뭔가요?”
목진의 말에 진천은 가볍게 미소를 짓더니 이내 정색하며 답했다.
“상고 시기, 불후대제와 천사신의 결전으로 역외사족과 대천세계의 대결은 끝났단다. 천사신은 불후대제와의 대결에서 미세한 차이로 패배해 북황의 언덕(北荒之丘)에 봉인되긴 했지만 녀석의 생명력은 생각보다 강했고 아직 죽지 않았단다.”
“하여 대천궁에서는 천 년마다 대천맹약을 열곤 한단다. 우리는 대천첩을 뿌려 대천세계의 최정예급 강자들을 북황의 언덕에 모아 봉인의 힘을 강화해 천사신의 잔존한 생명을 완전히 없애려 하고 있단다.”
“대천첩은 천지존경에 이르러야 받을 수 있는데 천지존경의 세 가지 경지에 따라 금, 은, 철 등 세 가지 등급으로 나뉜단다. 성급 천지존경에 이르러야 비로소 금첩을 받을 수 있단다.”
진천은 안색이 한껏 어두워진 채 말을 이어갔다.
“불후대제의 예상대로 봉인을 4만 9천 년 동안 유지할 수만 있다면 천사신은 완전히 죽을 거란다.”
“대천궁에서 대천첩을 48차례 뿌렸으니 이번이 마지막이란다.”
목진은 순간 눈가가 파르르 떨렸다. 그는 이제야 대천첩이 얼마나 중요한지 깨달았다.
“천사신이 그렇게까지 무서운 존재인가요? 불후대제께서 목숨을 바치면서까지 봉인한 것만으로도 부족해 오랜 세월을 거쳐야 완전히 죽일 수 있을 만큼요.”
목진은 가볍게 숨을 들이켜며 물었다. 이에 진천은 잠시 머뭇거리더니 쓸쓸하게 웃으며 답했다.
“천사신은 확실히 상상 이상으로 막강한 존재란다. 우리는 무슨 일이 있든 반드시 녀석을 완전히 죽여야 한단다. 그러다 봉인이 풀리면 대천세계에 파멸의 재앙이 닥칠 거란다.”
“우리한테는 이제 불후대제가 없지 않느냐…….”
옆에 서 있던 청연정, 부도현, 태명노조도 안색이 확 어두워졌다. 그들도 그렇게 되면 대천세계가 어떻게 될지 충분히 예상되었다.
“천사신이 그렇게까지 강대하다면…… 역외사족에서 봉인을 파괴하려 하지 않을까요?”
목진도 이내 정색하며 물었다.
“저들도 그러고 싶겠지만 북황의 언덕에는 불후대제의 봉인이 있어 대천세계 사람이 아니면 절대 들어갈 수 없단다.”
진천은 미간을 살짝 찌푸린 채 고개를 끄덕이며 말을 이어갔다.
“그런데 최근 들어 역외사족의 낌새가 심상치 않더구나. 염제와 무조가 무한의 화역과 무경을 떠나지 못하는 것도 다 그 이유란다.”
목진은 그제야 대천 맹약이 뭘 의미하는지 알 것 같았다. 이는 대천세계가 평화를 누릴 수 있는 근본이었다.
이것과 비교하면 나머지 일은 전혀 중요하지 않았다.
“대천 맹약은 언제 시작하는가?”
청연정이 이내 정색하며 물었다.
“석 달 뒤네.”
진천은 주먹을 꽉 쥐고 이글거리는 눈빛으로 청연정을 바라보며 답했다.
“이번에는 반드시 대천세계의 우환을 철저히 없애야 하네!”
이에 목진은 동의하듯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만약 천사신을 완전히 없애지 못하면 대천세계에 있는 모두가 불안에 떨게 될 것이다.
멸세의 화산이 폭발하면 대천세계 전체에 휘몰아칠 것이다.
“대천세계의 천지존 모두가 대천첩을 받을 수 있나요?”
“그렇단다. 하지만 북황의 언덕에 갈 수 있는 사람은 절반도 안 된단다. 역외사족은 늘 대천세계를 호시탐탐 노리고 있어 누군가는 변방을 지켜야 하니까.”
진천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그야말로 대천세계의 최대 성사군요.”
대천세계의 천지존 중 절반이 한자리에 모인다면 얼마나 성대할 거란 말인가!
이에 비하면 목진이 지금까지 대단하다고 여겼던 것들은 아무것도 아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