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66화. 대천 맹약(大千盟約)
“대천세계의 성사가 맞긴 하단다. 대천세계의 생사가 걸린 일이라 다들 잠시만이라도 서로에 대한 원한과 불만을 내려놓고 함께 적을 상대해야 하니까 말이다.”
진천은 마하천 등이 떠난 쪽을 바라보며 말을 이어갔다.
“그래서 3대 고족 사이에 정말 싸움이라도 일어날까 봐 최대한 빨리 달려온 거란다.”
마하고족, 부도신족, 태령고족은 대천세계의 3대 고족으로 최정예급 세력이라 이들 사이에 싸움이라도 일어나면 대천세계에는 엄청난 타격이 될 것이다.
목진도 이를 잘 알아 이내 정색하며 말했다.
“진천 선배님, 걱정 마세요. 오늘 일은 잘 마무리됐으니까요. 더구나 이번 일은 제가 운이 좋았던 것이니 앞으로 마하천이 괜히 꼬투리를 잡아도 참을 수 있어요.”
만고불후신이 이미 목진을 주인으로 인정했으니 마하고족은 아무리 배가 아파도 참아야만 했다. 하여 목진도 너무 다그치고 싶지 않았다.
“그리 생각해줘서 고맙구나. 대신 마하천이 도를 넘으면 대천궁도 절대 보고 있지만은 않을 거란다. 넌 대천궁의 주마왕이 아니냐?”
진천은 흐뭇하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마하천도 바보가 아니니 오늘 일을 계기로 목진이 쉽게 건드릴 만한 존재가 아니란 걸 깨달았을 것이다.
“난 임무를 완성했으니 이만 떠나봐야겠구나. 다른 성급 천지존들한테도 대천첩을 돌려야 하니 말이다.”
이에 목진은 바로 그와 인사를 나누었고 진천은 바로 그곳을 떠났다.
“석 달 뒤, 북황의 언덕에서 제대로 회포를 풉시다.”
진천은 호탕하게 웃으며 한 갈래 빛줄기가 되어 하늘 높이 날아올랐다.
청연정, 부도현, 태명노조는 복잡미묘해진 표정으로 떠나가는 진천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말했다.
“폭풍전야군…….”
역외사족은 천사신을 지고무상의 신으로 받드니 이번 대천 맹약이 얼마나 중요한지 잘 알 것이다. 그러니 저들은 절대 보고만 있지 않을 것이다.
역외사족은 분명 최선을 다해 봉인을 파괴하고 천사신을 구해내기 위해 애를 쓸 것이다.
한편, 목진은 청연정 등의 말에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진천은 비록 대천 맹약에 관해 자세히 설명하지 않았지만 그가 이 행사를 얼마나 중히 여기는지 충분히 느껴졌다.
그렇지 않으면 대천세계의 유명한 주마왕이 직접 대천금첩을 전달하러 나서지 않았을 것이다.
“북황의 언덕에 이토록 무서운 우환이 있었을 줄이야…….”
목진은 가볍게 한숨을 쉬며 중얼거렸다. 그가 천지존경에 이르지 못했다면 이런 중요한 일을 접할 자격조차 없었을 것이다.
“북황의 언덕은 대천세계 사람들도 출입을 금지하는 곳으로 만묘의 땅(萬墓之地)이라 불리기도 한단다. 그곳에 수호자 부대가 있는데 그들은 불후대제의 직속 부하들로 불사의 주인(不死之主)이 거느리고 있다. 심지어 염제, 무조 못지않은 실력자들이지만 평생 북황의 언덕을 수호하느라 대천세계에 전혀 발을 들이지 않은 탓에 그다지 유명하지는 않단다.”
“만묘의 땅…… 불사의 주인이라…….”
부도현이 천천히 설명했고 목진은 이내 정색한 채 중얼거렸다. 대천세계에는 숨겨진 실력자들이 정말 많았다.
“역외사족이 갑자기 쳐들어오면 대천세계가 막아낼 수는 있나요?”
목진은 갑자기 무언가 생각난 듯 질문을 던졌다.
“전체적인 실력으로 보면 지금의 대천세계는 상고 때 못지않을 뿐만 아니라 더 강하단다. 염제, 무조, 주마왕 진천, 청삼검성, 불사의 주인 등은 대천세계의 최정예급 강자들이고 5대 고족과 기타 최정예급 세력들의 실력도 상당하니…….”
“그러니 역외사족이 정말 다시 대천세계에 발을 들인다고 해도 아예 상대할 힘이 없는 건 아니란다.”
“지금 유일한 문제는 대천세계에 두 번째 불후대제가 없는 것이란다. 너도 알다시피 불후대제의 실력은 성급을 훨씬 뛰어넘었으니 말이야. 우리가 그분이 남긴 봉인으로 천사신을 철저히 없앨 수만 있다면 역외사족도 더는 감히 대천세계를 건드리지 못할 거란다.”
청연정이 부도현과 서로 마주 보며 한 말에 목진은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역외사족에서도 이를 잘 알 것인데…….”
역외사족에서는 절대 천사신이 죽는 꼴을 보고만 있지 않을 것이다. 분명 이번 대천 맹약에 피바람이 불 가능성이 파다했다.
상황이 이러하자 목진 역시 막대한 압박감이 느껴졌다.
그때 따뜻한 손이 닿자 목진은 고개를 획 돌렸는데 낙리의 아름다운 얼굴이 바로 보였다.
낙리가 눈을 찡긋하며 가볍게 웃자 목진은 마음의 안정을 되찾았고 인상도 어느새 펴졌다.
그는 낙리의 손을 꼭 잡은 채 고개를 들고 하늘에 걸린 석양을 바라봤다.
역외사족이 얼마나 강한지는 모르겠지만 자신이 좋아하는 사람들과 그들의 터전을 파괴하려 한다면 목진은 목숨을 걸고서라도 반드시 지켜낼 것이다.
“내 수십 년을 노력해서야 겨우 오늘의 성과를 이뤄냈다. 그러니 절대 너희들 때문에 이 모든 게 수포가 되게 하지 않을 것이다.”
“악마들이 찾아오면 싸우면 그만이지.”
* * *
이곳은 어둑하고 거대한 궁전으로 안에는 모든 생기를 집어삼킬 것 같은 흑기가 요동치고 있어 어둡고 서늘했다.
한편, 대전의 검은색 석좌에는 어둡고 사악한 기운을 내뿜는 존재들이 한 명씩 앉아있었다.
대전 전체에 무서울 정도로 강한 사악한 기운이 맴도는 것이 꼭 악마들이 모이는 곳 같았다.
또한, 대전의 중심에는 아치형 모양으로 놓인 검은색 왕좌가 32개 있었는데 그곳에는 도천의 마의 기운을 방출하는 존재들이 자리에 앉아있었다. 그들은 뒤쪽에 각각 다른 마의 그림자를 이룬 채 무서울 정도로 강력한 위압감을 형성했다.
하여 대전에 모인 존재들은 고개를 가볍게 숙이고 32명의 악마들에게 경외의 뜻을 전했다.
그리고 32명의 악마 중심에는 온몸에서 마염이 활활 타오르는 존재가 앉아있었는데 그 마염은 먹물처럼 검은색이었다가 순백의 빛을 발하는 화염으로 바뀌곤 해 여간 괴이하지 않았다.
온몸에서 마염이 활활 타오르는 존재는 무덤덤한 눈빛으로 주위를 쓰윽 훑었는데 그의 눈빛이 닿은 곳은 공간마저 두려운 듯 미세하게 떨렸다.
“전부 모인 건가?”
마염에서 나지막한 소리가 전해지자 옆에 앉아있던 검은색 도포를 입은 존재가 가볍게 고개를 들고 창백한 얼굴을 드러냈다. 검은색 소용돌이 형태를 이룬 눈동자가 상당히 괴이해 보였는데, 그와 눈을 마주치면 다시는 빠져나오지 못할 것 같았다.
그는 계속해서 회전하는 마안으로 온몸에서 마염이 활활 타오르는 존재를 힐끗 보더니 미소를 지으며 상냥하게 말을 건넸다.
“천마족은 이번에 절대 늦지 않았네.”
“시마족도 도착했네.”
멀지 않은 곳에 앉아있던 마영이 덩달아 입을 열었다.
그의 주위에 무서울 정도로 그윽한 시체의 향기가 맴돌았는데 주위의 공기마저 회백색이 되었다. 목진이 있었으면 분명 녀석을 한눈에 알아봤을 것이다. 그는 하위면에서 목진을 죽이려 했다가 무조 때문에 실패한 시마족의 흑시천마제였다.
그때 뒤쪽에 놓인 32개의 좌석에 앉아있는 마영들도 하나둘씩 입을 열었다. 그들은 역외사족의 핵심 역량인 32개 종족의 출신이었다.
만마전의 마의 기운은 점차 강력해졌다.
32개 종족의 족장들이 전부 자리한 것을 확인한 마영은 가볍게 고개를 끄덕이며 말을 이어갔다.
“석 달만 지나면 대천세계의 대천 맹약이 열릴 것이다.”
그의 말이 끝나기 바쁘게 나머지 31개의 왕좌에 앉아있던 악마들이 마광을 번쩍이는 눈으로 그를 쳐다봤다.
“드디어 그날이군!”
흑시천마제의 주위를 맴돌던 시체의 기운이 격렬하게 요동치며 수많은 해골의 모습이 드러났다.
“수만 년 동안 조용히 지냈으니 이제 슬슬 나가볼 때가 되지 않았는가? 대천세계 사람들이 우리 역외사족을 보고 공포에 떨도록 해야 하지 않겠나?”
다른 왕좌에 앉아있던 마영이 입을 열었다. 그는 길쭉한 손을 가진 사내로 손톱이 까만색이었는데 가볍게 휘두르자 앞쪽 공간이 바로 찢어졌다. 그의 손톱에서 지극히 무서울 정도의 예리한 기운이 맴돌았다.
그는 32개 종족 중 하나인 도마족 족장인 참천마제(斬天魔帝)였다.
잇따라 만마전에 모인 다른 마영들도 살기를 품은 채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다.
이에 가장 중심에 앉아있던 마염을 뒤집어쓴 존재가 손을 내밀자 다들 순식간에 조용해졌다. 그는 바로 32개 종족의 우두머리인 성마족(聖魔族) 족장 성천마제(聖天魔帝)였다. 불후대제가 목숨을 바쳐서야 겨우 봉인한 천사신이 바로 성마족 출신이었다. 하여 성마족은 역외사족에서 우두머리 자리를 차지했고 천사신이 봉인된 동안 역외사족 전체를 이끌었다.
“절대 대천세계의 실력을 무시하면 안 되네. 비록 불후대제처럼 강력한 존재가 더는 나타나지 않았지만 강자들은 충분히 많다네. 특히 염제와 무조가 역외사족의 가장 큰 위협이 될 것이네.”
서천마제는 흑백 마염이 이글거리는 눈으로 악마들을 쓰윽 훑으며 말했다.
“자네는 일전에 염제와 싸운 적이 있지 않은가? 어떻던가?”
검은색 소용돌이가 회전하는 눈동자를 지닌 천마족(天魔族) 족장이 서서히 입을 열었다.
천마족은 32개 종족 중에서도 알아줄 정도로 실력이 막강한 종족이었고 천마족의 족장은 성천마제 못지않은 실력자로 암천마제(暗天魔帝)라고도 불렸다.
역외사족에서의 지위가 상당히 높아 암천마제는 십수 년 전, 성천마제가 몰래 염제와 싸웠었다는 걸 알고 있었지만 여태껏 언급하지 않았었다.
“염제는 확실히 대단한 존재더군. 특히 화염 방면의 조예는 무서울 정도였네. 심지어 내 성마염(聖魔炎)도 쉽게 막아낼 수 있었네.”
성천마제가 눈가를 파르르 떨며 답했다. 그 말에 만마전의 마영들은 흠칫 놀랐고 32개 종족 족장 뒤쪽에 아른거리던 그림자조차 파르르 떨렸다.
“성마염조차 아무런 소용이 없단 말인가?”
마영들은 한껏 정색하며 서로 마주 봤다. 그들은 성천마제의 성마염의 위력이 어느 정도인지 잘았다. 이는 같은 등급의 강자라도 쉽게 막아내지 못할 정도의 공격인데 염제한테는 아무런 소용도 없었다.
“대천세계, 제법이군…… 그럼 염제와 실력이 비슷한 무조도 상대하기 쉽지 않겠군.”
그때 흑시천마제가 서서히 입을 열었다.
“무조는 내가 만난 적이 있는데 제법 압력을 느꼈었네. 본체와 싸우면 아무리 나라도 그 상대가 안 될 것이네.”
흑시천마제는 음산한 눈빛으로 만마전의 한구석을 바라보며 말을 이어갔다.
“듣기로 무조는 하위면 출신이라던데 이마족이 해당 위면을 발견하고 차지하려 했다가 멍청한 부하들 때문에 오히려 그놈을 대천세계에 끌어들이지 않았는가? 정말 도움이 안 되는군!”
만마전의 마영들은 자연스레 흑시천마제의 눈길을 따라 고개를 돌렸는데 상대방은 당황한 듯 온몸을 파르르 떨었고 온몸을 감싼 마의 기운도 요동치기 시작했다.
그는 현재, 이마족의 족장이지만 역외사족에서 실력이 보통으로 32개 종족의 족장들과 비교하면 실력 차이가 컸다. 그래서 흑시천마제가 호통을 치자 그는 감히 말도 못 하고 고개를 푹 숙이기만 했다.
그러나 그는 상대방의 말이 썩 마음에 들지 않았다. 역외사족이라면 누구든 하위면을 차지하려 하는데 이마족이 노린 곳에 무조 같이 무서운 존재가 나타날 줄 누가 알았을까? 더구나 그는 대천세계에 세력을 키워 역외사족의 강적으로 거듭났으니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