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72화. 그 사람
크으으으!
북황의 언덕 외부에서 미친 듯이 요동치던 마의 기운 사이로 거대한 용이 나타났는데 용린에서 번쩍이는 금광이 마의 기운을 녹여 없앴고 무서운 용의 위압감을 형성했다.
그리고 하늘을 가릴 만큼 방대한 존재들이 덩달아 모습을 드러내자 순간 영력이 휘몰아쳐 천지를 가득 채운 마의 위압감이 사그라들었다.
“저분은 용족의 태상 대장로, 진룡제(真龍帝)네!”
“그리고 봉왕과 황왕도 왔군!”
“저기 곤붕노조(鯤鵬老祖)와 통천대원왕(通天大猿王)도 왔네!”
* * *
북황의 언덕에 모인 천지존들은 이내 화색이 되었다. 갑자기 이곳에 나타난 존재들은 대천세계에서 유명한 엄청난 신수들이었다.
일전에 언급했던 존재들은 성급 후기에 이른 최정예급 강자로 진천, 청삼검성, 불사의 주인 못지않은 실력자들이었다.
대천세계에는 수많은 종족들이 살고 있는데 인간 외에 신수 종족의 실력도 엄청났다. 게다가 신수 종족 중에서도 엄청난 신수 종족은 훨씬 강했고 그 전체적인 실력은 인간 못지않았다.
비록 인간과 신수 종족이 평소에 여러 가지 원한 관계를 맺고 있지만 역외사족 같은 강적을 상대할 때만큼은 뜻을 모아야 한다.
대천세계가 몰락하면 모두가 저들의 노예가 되어 죽기보다 못한 삶을 살아갈 수 있기 때문이다.
한편, 거대한 자금색 용과 그 뒤쪽에 있던 거물들의 육신이 점차 작아지더니 사람의 형태로 변했다. 그중, 최전방에 서 있는 사람은 자금색 도포를 입은 중년 사내로 투박하게 생겼는데 황금으로 만들어진 것 같은 그의 눈에서 무서울 정도로 강력한 위압감이 느껴졌다.
그리고 그 옆에 서 있는 남녀는 각각 봉왕과 황왕이었다.
황왕 황김은 목진과 구면이었다. 그들은 성급 중기밖에 안 되지만 봉황족이 일단 결합하면 실력이 폭등할 것이고 그럼 정예급 천마제 두 명도 상대할 수 있었다.
그 외, 그들 뒤쪽에 서 있는 엄청난 신수 종족의 기타 정예급 강자들도 상당히 강대했다.
“우리가 늦진 않았겠지?”
진룡제는 황금으로 빚은 것 같은 눈동자를 굴리며 진천을 바라봤다.
이에 진천, 청삼검성, 불사의 주인은 제 때에 나타난 구원병에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북황의 언덕에 천지존이 적은 건 아니었지만 영진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다들 섣불리 나설 수 없어 이들 셋만으로 대량의 역외사족을 막아내기란 어려웠다.
다행히 진룡제, 봉왕, 황왕 등이 왔으니 그들의 짐을 덜어줄 수 있게 되었다.
“하하, 같잖은 녀석들, 아직도 우리 대천세계를 포기하지 못한 건가!”
진룡제는 한기 어린 눈빛으로 멀리 떨어져 서 있는 마영들을 노려보며 씨익 웃었다.
“벌레만도 못한 것들이 함부로 입을 놀리다니, 우리 역외사족이 대천세계를 점령하면 당신들은 우리의 탈것이 될 것이네.”
“개자식들, 죽고 싶어 환장했나!”
성천마제가 힐끗 쳐다보며 한 말에 통천대원왕은 버럭 소리를 지르더니 굵직한 곤장을 소환해 힘껏 휘두르며 시뻘겋게 달아오른 눈으로 상대방을 쏘아봤다.
“암마, 저들을 없애게. 저 벌레만도 못한 것들을 더는 보고 싶지 않네.”
“허허, 저 벌레만도 못한 것들이 얄밉긴 하지만 육신이 상당히 맛날 것 같네. 녀석들은 우리한테 엄청난 보약이 될 것이네.”
성천마제의 말에 천마족 족장은 씨익 웃으며 말하더니 잠시 진룡제 등을 살피다가 손을 휘익 저었다.
잇따라 주위에 생긴 공간 균열에서 도천의 마의 기운이 휘몰아치더니 거대한 마영 몇 개가 뒤쪽에 나타나 무서운 마의 위압감을 형성했다. 녀석들도 천마제의 실력을 갖춘 강자들이었다.
역외사족은 이번 기회에 최강 전력을 동원했다.
“허허, 내가 여태껏 먹어본 녀석들도 상당히 맛있었지만 자네와 비교하면 아무것도 아닐 것 같네.”
암천마제가 씨익 웃으며 진룡제를 쳐다봤다.
“내 반드시 자네를 갈기갈기 찢어 죽여 백성들의 원한을 갚을 것이네!”
“자네가 과연 그럴 수 있을까?”
진룡제의 말에 암천마제는 바로 정색하며 외쳤다.
“저들을 죽이거라!”
쿵!
뒤에 서 있던 마영들은 도천의 마의 기운을 방출하며 진룡제 등에게 향했다. 그들은 전부 천마제 정도의 실력자였다.
“공격하라! 저것들을 모조리 없애라!”
통천대원왕은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더니 가장 먼저 나섰는데 수중의 굵직한 곤장이 공간을 가르며 날아가 그중 한 천마제를 공격했다.
그리고 곤붕노조, 봉왕, 황왕 등 엄청난 신수들도 영력을 한껏 끌어올린 채 공격을 개시했는데 엄청난 위압감을 형성하며 거대한 마영들과 힘껏 부딪쳤다.
쿠쿵!
쌍방이 싸우기 시작하자 순간 하늘이 무너지는 것 같았다. 웅장한 영력과 마의 기운이 충돌하자 이 세상이 발칵 뒤집어졌다.
그런데 진룡제는 바로 나서지 않고 황금색 눈으로 느긋하게 서 있는 암천마제를 뚫어져라 노려기만 했다. 그도 상대방한테서 지극히 위험한 기운을 느꼈기 때문이다.
“어이, 아직도 나서지 않고 뭘 하는 건가?”
암천마제가 히쭉거리며 묻자 진룡제는 안색이 확 어두워졌다. 대천세계에서 지위가 상당한 그를 향해 무시한 건 암천마제가 처음이었다. 녀석이 상당한 위협감을 준 것은 사실이지만 진룡제는 두렵지 않았다.
“그렇게 제자리에 서 있기만 할 거면 이만 죽게.”
암천마제가 말을 마치자 검은색 소용돌이 같은 눈동자가 갑자기 파르르 떨리더니 소용돌이가 검은색 광선을 이뤄 솟구쳤다.
파멸의 기운이 깃든 검은색 광선은 세상 만물의 생기를 전부 앗아갈 듯 무서워 보였다.
진룡제는 한껏 정색한 채 바로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다.
“진룡파조(真龍破爪)!”
그가 손을 내밀자 순식간에 거대한 용장으로 변하더니 표면에 덮인 자금색 용린에서 눈부신 빛이 번쩍였다. 그가 용장을 힘껏 휘두르자 주위의 공간이 와르르 무너져 공간 파편이 되었지만 용장에 상처를 주기는커녕 훨씬 무서워 보였다.
그의 공격에 일반 성급 천지존도 자칫 잘못하면 지존법상이 부서질 것이다.
치익!
용장은 결국 검은색 광선과 한데 부딪쳤는데 경천의 소리는 나지 않았지만 주위 공간이 빠르게 무너졌다.
잇따라 용장이 사라지고 진룡제는 온몸을 파르르 떨었으며 손에 자금색 혈액이 주르륵 흘러내렸다.
이에 암천마제는 상냥하게 웃더니 잔영만 남기며 상대방에게 향했는데 괴이한 검은색 눈동자의 회전 속도가 한껏 빨라졌다.
크으으으!
진룡제가 버럭 소리를 지르자 육신이 부풀어 오르기 시작했고 피부 표면에 용린이 나타났다. 그는 웅장한 힘을 끌어올려 암천마제를 정면으로 상대했다.
퍼퍼퍽!
대전 쌍방의 공격이 오갈 때마다 지진이 일어났고 하늘이 파르르 떨렸다.
성천마제는 신수 종족이 완전히 발목이 잡힌 걸 확인하고 나서야 진천, 청삼검성 등한테 고개를 돌렸다.
“우리가 이곳에 나타났을 때, 역외사족은 이미 대천세계에 대한 공격을 시작했으니 지원군이 또 나타날 거란 망상은 하지 말게.”
“그럼 역외사족에도 지원군은 없겠군.”
말을 마친 진천은 고개를 돌려 북황의 언덕을 감싼 대천화마진을 살폈다. 이제 영진은 장창을 40개도 넘게 만들어냈으니 50개 정도만 더 만들면 천사신의 생명 흔적을 철저히 없앨 수 있을 것이다.
하여 그들은 반드시 그때까지 시간을 끌어야만 했다.
“소천과 임동이 있었으면 녀석들이 저렇게까지는 우쭐거리지 못했을 텐데…….”
진천은 이내 한숨을 쉬었다. 그도 소천이나 임동과 같은 성급 후기지만 왠지 자신은 두 사람의 상대가 아닐 거란 확신이 들었고 자연스레 경외의 마음을 품게 되었다.
수만 년 사이, 대천세계에 천부적 재능이 뛰어난 존재는 수없이 많이 나타났지만 그가 이런 마음을 품을 만큼 대단한 사람은 소천과 임동 둘뿐이었다.
“염제와 무조는 확실히 호락호락하지 않더군. 두 사람의 발목을 잡기 위해 역외사족의 일부 최정예급 역량을 파견했으니 말이야.”
성천마제도 이내 감탄하며 말을 이어갔다.
“저들한테 시간이 조금만 더 주어지면 불후대제 같은 거장이 될 텐데 참 아쉽군…….”
성천마제는 입꼬리를 씰룩거리며 말했다.
“이제 더는 그럴 기회가 없을 것이네.”
“그거야 당신들이 화마진을 뚫을 수 있는지 두고 봐야 알 수 있지 않겠나?”
진천이 이내 정색하며 말했고 성천마제는 표독스러운 눈빛으로 그를 쳐다봤다.
“진천, 내가 화마진을 뚫을 수 없는 건 사실이네.”
“비록 나는 안되지만 되는 사람은 따로 있지.”
녀석의 말에 진천은 눈가를 파르르 떨며 청삼검성, 불사의 주인을 힐끗 쳐다보더니 바로 영력을 끌어오려 경계 태세를 취했다.
“과연 누가 그렇게 대단하단 말인가!”
진천이 피식 웃자 성천마제는 괴이한 눈빛으로 그를 노려보며 외쳤다.
“바로 자네 진천이네!”
성천마제의 괴이한 목소리가 울려 퍼지자 사람들은 순간 어리둥절해졌다.
대천궁은 역외사족을 물리치기 위해 만들어진 대천 연맹으로 전쟁이 일어나지 않으면 궁주도 없다. 그런데 지금은 역외사족에서 다시 대천세계에 찾아와 진천이 자연스레 신임 궁주가 되었다.
그의 신분과 지위로 대천화마진의 일부 조종권이 있는 건 사실이었다. 그런데 성천마제는 왜 저리 말했단 말인가?
목진도 미간을 확 찌푸린 채 성천마제를 쳐다봤다. 그는 상대방이 왜 그런 말을 했는지는 모르지만 분명 이유가 있을 거라 여겼다.
“그게 도대체 무슨 말인가?”
진천도 인상을 확 찌푸리며 예리한 눈빛으로 성천마제를 노려봤다.
“자네가 마역에서 마제를 여러 명 죽였고 천마제도 한 명 죽였는데도 운 좋게 대천세계에 돌아오지 않았나? 그건 자네가 평생 거둔 성과 중 가장 자랑스러운 일이 아닌가?”
성천마제는 미소를 지으며 진천을 바라보더니 입꼬리를 씰룩거렸다.
“그런데 설마 우리 구역에서 무사히 빠져나간 게 온전히 자네가 강해서 그렇다고 여겼던 건가? 그때까지만 해도 자넨 지금처럼 강하지 않았네.”
진천은 순간 불안해졌고 왠지 소름이 쫙 끼쳤다.
그때 성천마제가 옷깃을 휘날리자 그의 옆에 마의 기운이 휘몰아치다가 마영을 형성했다. 그는 창백하고도 음산한 눈으로 진천을 노려봤다.
“진천, 이 사람을 기억하는가?”
이에 진천은 바로 성천마제의 곁에 나타난 마영을 살폈는데 그는 진천이 마역에서 죽였던 천마제였다.
“그럴 리가! 저 녀석이 아직 살아있다니!”
“그는 역외사족 32개 종족 중 하나인 심마족(心魔族) 족장이네. 지금이라고 해도 자넨 그와의 대결에서 미세하게 우세를 차지할 수 있을 뿐이네. 그런데 그때의 자네가 과연 이 사람을 죽일 자격이 있었을까?”
“심마족?”
성천마제가 피식 웃으며 말했다. 진천은 순간 안색이 확 어두워져 청삼검성과 불사의 주인한테 눈길을 돌렸다.
“당장 나를 봉인하게!”
갑작스러운 변고에 다들 당황해했다. 하지만 청삼검성과 불사의 주인은 바로 마음을 가라앉히고 앞으로 나섰다.
청삼검성이 옷깃을 휘날리자 청색 검광이 공간을 가르며 진천에게 향했고 불사의 주인의 몸에서는 검은색 빛줄기가 휘몰아치며 순식간에 진천을 감쌌다.
비록 상황 파악은 제대로 하지 못했지만 진천한테 변고가 생긴 것이 분명했다. 하여 그들은 진천의 말을 따르는 수밖에 없었다.
이렇게 두 갈래 영광이 자신에게 향하는 것을 보면서도 진천은 아무런 반항도 하지 못하고 영력 방어막까지 없애며 자신을 봉인했다.
“허허, 참 독한 녀석이군. 감히 자신을 봉인할 생각을 하다니 말이야.”
그런데 두 갈래 빛이 내려앉기 직전, 성천마제의 괴이한 웃음소리는 다시 울려 퍼졌다.
활활!
이와 동시에, 흑백이 아우러진 화염이 내려앉아 두 갈래 빛을 공격했는데 ‘치익!’ 하는 소리와 함께 두 갈래 빛은 불에 타 완전히 사라졌다.
그 광경에 청삼검성과 불사의 주인은 이내 정색하며 나섰다.
“청선검(青仙劍)!”
청삼검성이 버럭 소리를 지르자 수중의 청색 장검은 하늘 높이 날아올랐는데 검망은 만 장의 거대한 검을 이뤄 하늘을 가르며 성천마제에게로 향했다.
그리고 불사의 주인이 메마른 두 손으로 신속하게 결인하자 회흑색 영력이 휘몰아쳐 손바닥만 한 회흑색 영주를 이뤘는데 표면에서 뇌광이 번쩍이는 영주는 파르르 떨더니 바로 성천마제 옆에 나타났다.
“염령현뢰(閻靈玄雷)!”
그러나 성천마제는 아무렇지 않았고 두 눈에서는 흑백의 화염이 활활 타올랐다.
“성마염갑(聖魔炎甲)!”
그가 버럭 소리를 지르자 체내에서 흑백의 화염이 피어올라 몸 표면에 도천의 위엄을 자랑하는 흑백염갑을 만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