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78화. 세계의 의지
북황의 땅 밖, 두 사람의 출현에 도천의 마의 위압감이 순간 사그라든 것 같았다.
“염제, 무조!”
진천, 청삼검성 등은 이내 화색이 되었다. 그들은 똑같은 성급 후기로 실력 차이가 크게 나지 않을 것 같지만 그들은 누구보다 막강한 존재였다.
염제와 무조가 왔으니 형세는 조금이나마 좋아질 것이다.
“허허, 역외사족에서 우리 두 사람의 발목을 잡기 위해 제법 애를 썼더군. 그래도 늦어서 미안하네.”
염제가 미소를 지으며 진천 등한테 건넨 말에 다들 조금이나마 안심했다.
“그럴 리가.”
진천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더니 미안한 듯 말했다.
“나 때문에 상황이 이 지경이 된 것 같아 면목이 없네.”
“심마 종자에 관한 일은 자네 탓이 아니네. 그때 이상하다고 여겼지만 확신이 서지 않아 자네한테 불씨만 건넸던 것이네.”
염제가 가볍게 한숨을 쉬며 말했고 무조도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지금 가장 중요한 건 이 전쟁을 끝내는 것이네.”
그는 고개를 들더니 한기 어린 눈빛으로 멀리 떨어져 서 있는 천사신을 뚫어져라 쳐다봤다.
“염제, 무조…… 6대 종족을 파견했는데도 결국 당신들을 막아내지 못했군!”
깜짝 놀랐던 성천마제는 마음을 가라앉히더니 음산한 눈빛으로 두 사람을 쳐다봤다.
이에 염제와 무조는 서로 마주 보며 피식 웃었다.
“이들을 가리키는 건가?”
두 사람이 손을 내밀자 손바닥에 영광이 번쩍이며 광권이 형성되었는데 그 속에 세 갈래 마영이 포효하며 미친 듯이 발버둥 쳤지만 광권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
성천마제는 순간 눈가가 파르르 떨렸고 그 옆에 서 있던 다른 종족의 족장들도 안색이 확 어두워졌다. 여섯 마영은 32개 종족 중 5대 종족의 족장들이었다!
그들은 정예급 천마제로 성급 후기 못지않은 실력자들인데 전부 염제와 무조의 손에 갇혔다.
“천마제 여섯 명으로 무한의 화역과 무경을 차지하려 하다니, 우리를 너무 무시한 것 아닌가?”
무조의 나지막한 목소리에 무한의 위압감이 깃들었다.
“저들을 당장 풀어주지 못할까? 안 그럼 내 절대 무한의 화역과 무경을 가만두지 않을 것이네!”
성천마제가 눈가를 파르르 떨며 말했다. 염제와 무조는 미간을 살짝 찌푸린 채 한기 어린 눈빛으로 녀석들을 바라봤다.
잇따라 두 사람이 주먹을 꽉 쥐자 무서운 힘이 광권에 스며들어 그 속에 갇힌 여섯 명의 천마제는 비명조차 지르지 못한 채 사망했다.
여섯 명의 정예급 천마제가 너무 쉽게 죽었다.
그 광경에 성천마제, 암천마제 등 천마제들은 금세 안색이 어두워졌다.
“허허, 흥미롭군.”
성천마제 등의 앞쪽에 서 있던 하얀색 도포를 입은 천사신이 흥미진진한 얼굴로 상황을 살피더니 염제와 무조한테 눈길을 돌렸다.
“너희는 저들보다 훨씬 강하구나.”
성천마제 등은 염제와 무조의 실력을 가늠하기 어려웠지만 천사신은 두 사람 체내의 영력이 진천 등보다 훨씬 강하다는 걸 바로 알아챘다.
염제와 무조도 천사신을 자세히 살피더니 안색이 한껏 어두워졌다.
“당신이 바로 불후대제께서 목숨을 대가로 봉인한 천사신인가?”
염제의 말에 천사신이 가볍게 웃으며 답했다.
“그때는 내가 불후대제를 너무 쉽게 생각했었단다. 나도 대천세계 따위가 그런 인물을 낳을 줄은 몰랐구나.”
“대천세계에 천재들은 수도 없이 많네. 불후대제께서 당신을 봉인했듯 우리는 오늘도 분명 당신을 막아낼 것이네.”
“과연 그럴까?”
무조의 웅장한 목소리에 천사신은 눈가를 파르르 떨더니 입꼬리를 씰룩거리며 무조와 염제를 바라봤다.
“불후대제도 죽었는데 대천세계에서 또 누가 나를 상대할 수 있는지 궁금하구나.”
“당신은 대천세계에 불후대제 정도의 경지에 이른 사람이 더는 없을 거라 여겨 그리 말하는 것이 아닌가?”
염제가 호탕하게 웃자 천사신은 흠칫 놀라더니 염제를 노려보며 물었다.
“설마 그 경지에 대해 안단 말인가?”
“성급은 대천세계의 가장 높은 경지로 이를 초월하면 새로운 세상이 펼쳐지지.”
염제가 대수롭지 않게 말했지만 진천, 청삼검성 등은 흠칫 놀라더니 그의 말을 경청했다. 이미 성급 후기에 이른 그들은 한계치에 이른 듯 아무리 수련해도 실력이 더는 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그들은 말로만 듣던 성급을 초월한 경지에 여태껏 닿지 못했다.
“사실 성급을 능가하는 경지가 그렇게까지 신비로운 것은 아니네. 그저 계기가 필요할 뿐이지.”
염제는 가볍게 웃으며 말을 이어갔다.
“그 계기는 바로…….”
“세계의 의지라네.”
무조가 대수롭지 않게 한 말에 진천 등은 대천세계의 영력이 순간 강해진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세계의 의지라…….”
진천 등은 무언가 깨달은 듯하면서도 뭔가 어리둥절했다. 그들은 여전히 그 경지와 엄청난 거리가 느껴졌다.
“세계의 의지라…….”
목진은 고개를 들고 눈가를 파르르 떨며 천사신의 상대편에 서 있는 두 사람을 쳐다봤는데 눈에서 영광이 번쩍이더니 무언가 깨달은 것 같았다.
“수련이란 방법은 달라도 종착지는 결국 같은 법, 천지존은 천지의 영력으로 전투력을 강하게 만들 수 있으니…….”
“대천세계에도 의지가 있는데, 이를 느껴야 진령을 세계에 새겨 세계의 위력을 움직일 수 있고, 그 경지가 곧 성급을 초월한 경지라네.”
천지존들은 염제와 무조의 말에 흠뻑 빠져들었고 몸 둘 바를 몰랐다. 그들은 수련의 새로운 경지를 본 것 같았다.
이것이 바로 말로만 듣던 성급을 초월한 경지라니…….
“세상의 힘을 움직이다니…….”
목진은 이내 감탄했다. 하긴, 성급에 이르러 한 구역의 영력을 조종할 수 있고 천지와 온전히 아우러질 수 있다고 한들 한 구역은 대천세계와 비교하면 아무것도 아니었다.
그는 대천세계의 세계의 힘이 얼마나 강대할지 가늠이 가지 않았다.
“불후대제께서도 대천세계의 힘을 빌려 당신을 봉인하셨지.”
북황의 언덕 밖에 서 있는 염제는 안색이 한껏 어두워진 천사신을 바라보며 천천히 말했다.
“너희가 이런 비밀을 알고 있을 줄 몰랐구나. 그런데 이를 안다고 한들 뭐가 달라질까?”
염제와 무조를 뚫어져라 쳐다보던 천사신은 한참 지나서야 다시 입을 열었다.
“대천세계가 만들어진 후로 세계의 의지를 움직인 사람은 오직 불후대제뿐이었단다.”
“그러니 너희가 한 말이 아무리 현란한들 대천세계는 결국 내 손에 멸망할 것이다.”
말을 마친 천사신은 체내에서 마의 기운을 미친 듯이 내뿜었는데 그 기운은 주위의 대륙에까지 퍼져나갔다.
그러나 염제와 무조는 이상할 정도로 태연하게 서 있더니 서로 마주 보다가 서서히 눈을 감았다.
순간 대천세계의 곳곳에서 미세한 파동이 느껴졌다.
쿵!
잇따라 대천세계의 천지의 영력이 들끓더니 대량의 영력이 북황의 언덕을 향해 몰려오는 것이 느껴졌다.
성급 후기라도 그 막강한 영력에 위협감을 느낄 것이다.
목진 등은 고개를 들고 눈 하나 깜빡이지 않은 채 허공을 바라봤는데 미친 듯이 요동치던 마의 기운이 갑자기 파르르 떨리더니 쩍 하고 갈라졌다.
슈슉!
영력 빛줄기들이 마의 기운을 뚫으며 지나자 1각도 안 되는 사이에 주위의 여러 대륙을 감쌌던 대량의 마의 기운이 만신창이가 되었다.
무서운 힘이 깃든 영력 빛줄기는 일반 영력과는 전혀 달랐는데, 한 줄기만으로도 천지존들은 생명의 위협을 느꼈다.
“불후대제가 사망했어도 대천세계는 당신들 따위가 건드릴 수 있는 곳이 아니란 걸 직접 보여주지…….”
염제와 무조가 다시 눈을 뜨더니 한기 어린 눈빛으로 천사신을 노려보며 나지막하게 외쳤다.
염제와 무조의 나지막한 소리가 쩌렁쩌렁 울려 퍼지자 무궁무진한 영광이 광막처럼 쏟아져 내려 천지를 휩싸고 있는 마의 기운을 없앴다.
목진, 진천 등 천지존들은 깜짝 놀라 고개를 들었다. 천지에 요동치는 영력이 무서울 정도에 이르렀다.
이는 성급 후기라도 위협감을 느낄 정도였다.
또한, 현재의 천지의 영력에 말로는 표현하기 어려운 힘이 깃들어 있었는데 웅장하기 그지없는 힘은 대천세계가 형성한 본연의 압박감 같았다.
천사신은 안색이 어두워진 채 부단히 쏟아져 내리는 천지의 영력을 바라보더니 표정이 점차 일그러졌다.
그는 웅장하기 그지없는 힘을 느끼고는 무한의 허공을 바라봤다.
높은 하늘에서 쏟아져 내린 웅장한 영광이 한곳에 모여 북황의 언덕 밖에 거대한 영력 광막을 형성했다.
“저건 뭐지?”
진천, 청삼검성 등 성급 후기들은 두 눈이 휘둥그레진 채 허공에 서서히 펼쳐진 광막을 바라봤다. 몽롱하고도 신비로운 느낌을 선사하는 광막에는 수많은 산맥과 하천, 별이 새겨져 또 다른 세계를 이룬 것 같았다.
이와 동시에, 무서운 위압감이 형성되자 다들 두려워 자연스레 온몸을 파르르 떨었다.
염제와 무조도 고개를 들고 서서히 내려앉는 신비로운 광막을 쳐다보더니 이내 숙연해졌다.
“이것이 바로 대천세계의 세계 의지네.”
“대천세계의 세계 의지라…….”
다들 멈칫하더니 이글거리는 눈빛으로 영력 광막을 쳐다봤다. 이것이 바로 말로만 듣던 성급을 초월할 기회가 담긴 물건이란 말인가?
“대천세계에서 세계 의지를 처음으로 느낀 사람은 바로 불후대제였네.”
염제는 하늘을 가릴 만큼 거대하고도 신비로운 광막을 바라보며 이내 감탄했다.
“그리고 그는 이를…….”
“창궁방이라 부르셨지!”
“창궁방?”
천지존들은 순간 눈가가 파르르 떨렸다. 다들 창궁방 석 자에 수련의 최종 목표가 생긴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세계를 근거로 순위권을 매긴다…… 세계의 의지에 본명을 새길 수만 있다면 대천세계의 인정을 받고 세계의 힘을 장악할 수 있을 것이네.”
무조의 말에 다들 흠칫 놀라 고개를 들고 경외의 마음을 담은 채 영광이 번쩍이는 눈으로 신비로운 광막, 창궁방을 쳐다봤다.
몽롱하면서도 신비로운 창궁방을 자세히 관찰하자 영광이 모여 오래된 글자가 새겨진 것을 발견할 수 있었다.
“엽!”
“엽은 뭐란 말인가?”
진천 등이 흠칫 놀라 물었다.
“엽은…… 불후대제의 성씨라네.”
옆에 서 있던 불사의 주인이 파르르 떨리는 목소리로 답했다.
“그렇네. 이것이 바로 불후대제의 성씨네. 상고 시기, 그는 대천세계의 세계 의지를 느껴 창궁방의 강림을 이끈 뒤, 그곳에 성씨를 남겼다네.”
염제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을 이어갔다.
“그분이 창궁방에 본명을 전부 남기시지 못한 것이 아쉽군. 그렇지 않으면 그는 절대 목숨까지 바쳐가며 천사신을 봉인하지 않아도 됐을 텐데 말이네.”
사람들은 그제야 성급의 다음 단계가 무엇인지 깨달았다. 세계 의지를 느껴 창궁방을 소환한 뒤, 그곳에 본명을 완벽하게 새기면 세계의 힘을 장악해 성급을 초월하는 경지에 이를 수 있었다.
“불후대제도 창궁방에 성씨밖에 남기시지 못하였다니…….”
사람들은 순간 소름이 쫙 돋았다. 불후대제처럼 강대한 존재도 이름을 온전히 남기지 못한 것을 보면 창궁방에 본명을 새기는 것은 무척 어려운 일인 듯했다.
“너희 둘이 대천세계의 세계 의지를 느끼게 될 줄은 몰랐구나.”
멀지 않은 곳에서 무덤덤하게 상황을 살피던 천사신은 염제와 무조한테 말을 건넸다.
“그런데 느끼기만 한다고 뭐가 달라질까? 창궁방에 이름을 남기지 못하면 아무런 소용도 없단다.”
이에 무조와 염제는 서로 마주 보더니 호탕하게 웃으며 말했다.
“불후대제께서도 해내셨는데 우리라고 못 해낼 건 없지 않겠나?”
말을 마친 염제와 무조가 동시에 하늘 높이 날아올랐다.
활활!
그때 염제의 체내에서 갑자기 현란한 화염이 휘몰아쳤는데 오묘하기 그지없는 화염에 제왕의 기운이 깃든 것처럼 위엄이 넘쳤다.
이는 제염이었다! 말로만 듣던 화염의 황제였다!
제염의 출현에 그곳은 순식간에 화로처럼 뜨거워져 천지마저 녹아내릴 것 같았다.
“오늘, 나 소염은 창궁방에 내 이름을 남길 것이네!”
염제가 호탕하게 웃자 활활 타오르는 제염이 한데 모여 거대한 화염의 필을 이룬 뒤, 공간을 가르며 창궁방으로 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