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81화. 9목 사신
사색이 된 채 북황의 언덕에 서 있던 천지존들은 두 눈이 휘둥그레진 채 허공을 쳐다보더니 이내 환호했다.
“역시 대천세계에는 아직 희망이 있군. 이렇게 위급한 시기에 염제와 무조가 나서 애써주고 있으니 말이야!”
불사의 주인이 잔뜩 흥분해 파르르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그는 천사신의 등장으로 대천세계가 멸망할 줄 알았다. 그런데 염제와 무조의 실력이 어느새 불후대제 못지않은 경지에 이르러 있었다.
“그러게 말일세. 천사신이 상고 때보다 훨씬 강력해져 염제와 무조 중 한 명이라도 빠졌으면 절대 그를 상대하지 못했을 것이네.”
진천 등도 힘껏 고개를 끄덕이며 말을 덧붙였다.
천사신은 염제와 무조가 함께 상대해야 할 정도로 강했다.
안색이 조금 어두워진 채 허공에 서서 사악한 눈에서 흐르는 검은색 피를 닦아낸 천사신은 무덤덤하게 염제와 무조를 바라보며 말했다.
“너희는 상고 시기의 불후대제보다 훨씬 강하구나. 대천세계에 이렇게 뛰어난 존재가 또 나타날 줄 몰랐다.”
“당신도 충분히 강하네. 대천세계를 위해서라면 우리 두 사람은 끝까지 함께 할 것이네.”
염제의 말에 천사신은 괴이하게 웃었다. 그는 조금전의 실수에 전혀 낙심하거나 당황하지 않았다.
“오늘, 나와의 대결에서 반드시 이길 거라 확신하는 것이냐?”
“적어도 역외사족이 대천세계를 차지하고자 하는 목표는 이루지 못할 것이네.”
무조는 나지막하게 말을 이어갔다.
“우리 두 사람이 당신과의 대결에서 조금 밖에 우세를 차지하지 못하지만 백 년만 더 있으면 창궁방에 이름을 온전히 새기고 혼자서도 자네를 죽일 수 있을 것이네.”
무조는 어느새 살기를 품었다.
창궁방에 온전한 이름을 새기면 전혀 다른 경지에 이를 것이다. 그리고 그때가 되면 천사신 정도는 손쉽게 죽일 수 있을 것이다.
“너희가 정말 그 정도로 강해진다면 아무리 나라도 당해내지 못하겠지. 하지만…….”
천사신은 씨익 웃으며 고개를 돌려 상대방을 쳐다보며 말을 이어갔다.
“내가 너희한테 그럴 시간을 줄 것 같으냐?”
“당신이 뭘 할 수 있단 말인가?”
염제가 이내 정색한 채 묻자 천사신은 입꼬리를 씰룩거리며 조용히 서 있더니 한참 지나서야 다시 입을 열었다.
“이상하지 않더냐? 상고 시기, 난 분명 불후대제보다 강했는데 왜 녀석한테 나를 봉인할 기회를 줬다고 생각하는 것이냐?”
“사실 간단하단다. 봉인은…….”
“내가 원해서 당해준 것이었단다.”
이에 진천 등 천지존들은 화들짝 놀랐고 염제와 무조마저 눈가가 파르르 떨렸다.
불후대제는 목숨을 걸고 봉인했는데 천사신이 일부러 당해준 것이었다니!
“말도 안 되는 소리!”
염제는 버럭 소리를 질렀다.
“당신은 자칫 잘못하면 완전히 죽을 뻔했는데 뭘 얻고자 이토록 엄청난 대가를 치렀단 말인가?”
천사신은 다시 침묵하더니 가볍게 한숨을 쉬며 고개를 들고 하늘을 바라보며 답했다.
“혹시 세계의 억제란 것이 무엇인지 아느냐?”
염제와 무조는 바로 인상을 찌푸렸다.
“세계의 억제란 낯설고 강대한 존재가 다른 세계에 들어가면 자연스레 받는 배척과 억제란다. 우리 역외사족의 강자들이 대천세계에 오면 본연의 실력을 완벽히 끌어올릴 수 없는 것처럼 말이다.”
“실력이 강할수록 받는 억제도 강하지.”
“내가 불후대제의 봉인에 스스로 갇히기로 한 이유는 4만 9천 년 사이, 그의 봉인의 힘을 내 기운과 아우러지게 하기 위해서였단다. 그래야 내가 봉인을 뚫고 나왔을 때, 대천세계가 더 이상 세계의 억제를 행하지 않을 거라 생각했기 때문이지. 그럼 난 이 세상을 완벽히 장악할 수 있을 것이고 자연스레 이곳을 역외사족의 근거지로 쓸 수 있기 때문이다.”
“5목이 내 한계인 줄 아느냐? 너흰 역시 너무 단순하구나.”
천사신이 미소를 지으며 말했고 천지존들은 온몸에 소름이 쫙 돋았다. 그의 말이 사실이라면 일전에 염제와 무조가 차지했던 얼마 안 되는 우세는 금세 사라질 것이다.
“먼 옛날, 다들 나를…….”
“9목 사신이라고 했단다.”
천사신의 음산하고 괴이한 소리가 울려 퍼지자 북황의 언덕은 바로 쥐 죽은 듯 조용해졌고 천지존들은 사색이 된 채 온몸을 파르르 떨었다.
5목 상태의 천사신도 이렇게 무서운데…… 정말 그의 말대로 전성기 때의 실력이 9목이라면 얼마나 강하다는 소리란 말인가?
허공에 떠 있는 염제와 무조도 이내 정색한 채 인상을 쓰며 천사신을 뚫어져라 쳐다봤다. 그들은 상대방의 말이 진실인지 아직 파악할 수가 없었다.
“왜, 믿기지 않느냐?”
염제와 무조의 눈빛에 천사신이 미소를 지으며 온몸을 파르르 떨자 윗옷이 가루가 되어 사라졌다. 그리고 가슴팍 살이 가볍게 떨리더니 심장 쪽에 꼭 감고 있었던 눈이 서서히 떠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배꼽 쪽에도 사악한 눈 하나가 나타났다.
이와 동시에, 그가 손바닥을 벌리자 두 손바닥에도 꼭 감은 눈 두 개가 있었다.
현장에 있는 모든 천지존은 두 눈이 휘둥그레진 채 꼭 감고 있는 사악한 눈을 쳐다봤는데 사악한 눈들이 형성한 무서운 파동에 대천세계 전체가 파르르 떨렸다.
북황의 언덕에 숨 막힐 정도의 정적이 흘렀다. 아홉 개의 사악한 눈이 드러나자, 이 세상 모든 소리가 사라질 것 같았고 천사신의 체내에서 말로는 표현하기 어려울 정도로 막강한 마의 위압감이 형성되었다.
“설마…… 대천세계가 정녕 이렇게 멸망한단 말인가?”
천지존들은 절망스러운 듯 중얼거렸다. 9목 상태의 천사신을 보자 그들은 반항할 용기조차 나지 않았다.
“너희가 우리 역외사족에 충성을 맹세하면 가족과 벗들까지는 죽이지 않겠다. 그리고 너희가 대천세계를 장악하도록 도와줄 수도 있단다.”
천사신은 절망의 분위기에 휩싸인 북황의 언덕을 살피더니 미소를 지은 채 염제, 무조한테 말을 건넸다.
“언젠가 우리가 창궁방에 이름을 완전히 새기면 자네가 첫 번째 희생양이 될 텐데 정녕 우리 두 사람을 살려주겠단 말인가?”
염제가 피식 웃으며 말했다. 천사신은 멈칫하더니 가볍게 고개를 끄덕이며 한숨을 쉬었다.
“너희가 나한테 너무 위협적인 것만은 사실이구나…… 그러니 그냥 없애는 것이 좋겠다.”
“지금 자네는 절대 아홉 개의 눈을 전부 뜰 수 없을 것이네!”
무조는 한껏 예리해진 눈빛으로 천사신을 노려보며 말했다.
천사신의 꼭 감은 네 개의 사악한 눈에서 무서운 파동을 내뿜고는 있지만 무조는 상대방이 아직 그 눈들을 뜨게 하지 못할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그렇지 않으면 그는 절대 지금까지 참지 않았을 것이다.
“예리하군…… 지금의 난 확실히 아홉 개의 눈을 전부 뜰 수 없단다. 봉인을 뚫고 나온 지 얼마 되지 않은 내가 아홉 개의 눈을 전부 뜨려면 지극히 방대한 힘이 필요하기 때문이지. 한 5년쯤 지나면 그 힘을 비축할 수 있을 것 같구나.”
천사신은 미간을 살짝 찌푸리다가 금세 환하게 웃으며 말했다.
“그러니 너희한테 아직 5년이란 시간이 있다는 것을 다행이라고 생각하거라.”
천사신은 잔인한 빛을 발하는 눈으로 무조와 염제를 바라보며 말을 이어갔다.
“5년 뒤, 내가 다시 찾아왔을 때는 너희 모두가 나한테 머리를 조아려야 할 것이고 대천세계의 모든 이들이 역외사족의 노예가 될 것이다.”
북황의 언덕에 모인 천지존들은 안색이 어두워져 천사신을 쳐다봤다. 5년이란 시간은 눈 깜짝할 사이에 지나갈 것이고 염제와 무조처럼 천부적인 재능이 뛰어난 존재라도 창궁방에 온전히 이름을 남기기는 어려울 것이다.
적어도 50년은 흘러야 가능한 일이었다.
하여 천사신이 9목 상태가 되어 다시 찾아오면, 대천세계는 멸망할 것이다.
“그럼 오늘, 우리는 무슨 수를 써서라도 당신을 무사히 떠나보낼 수 없겠군.”
염제와 무조는 천사신이 9목 상태를 회복하지 못하도록 오늘, 그를 이곳에서 죽여야 한다고 생각했다!
“나를 말이냐? 너흰 그럴 실력이 안 된단다.”
천사신은 염제와 무조가 전혀 두렵지 않았다.
“그럼 어디 해봅시다!”
염제와 무조는 이내 정색하며 말했다.
위잉!
무조가 먼저 나섰다. 오래된 부적 여덟 갈래가 손바닥에 모였다가 한데 아우러져 오래된 유리발을 형성했는데 표면에 벼락, 화염, 한빙 등이 서서히 흘러내렸다.
“팔조유리발!”
무조가 나지막하게 외치자 유리발은 하늘 높이 날아오르며 신속하게 커져 천사신을 향해 날아갔다.
유리발은 공격과 방어가 동시에 가능한 존재로 일단 그 속에 갇히면 아무리 천사신이라도 쉽게 벗어날 수 없을 것이다.
“제염박마승(帝炎縛魔繩)!”
또한, 염제의 손이 한데 맞닿자 활활 타오르는 제염이 미친 듯이 모여 현란한 불의 노끈을 이룬 채 상대방에게 향했다. 제염승은 엄청난 구속력을 지니고 있었다.
염제와 무조는 천사신을 상대로 영력을 한껏 끌어올렸다.
한편, 천사신은 미간을 살짝 찌푸린 채 자신을 향해 다가오는 상대방의 공격을 살폈다. 그는 무슨 수를 쓰든 오늘, 반드시 이곳을 벗어나야만 했다. 염제와 무조가 불후대제처럼 목숨을 바치면서까지 그를 봉인하려 할 수 있기 때문이었다.
이러한 생각에 천사신은 손을 깨물어 까만 혈액이 흐르는 손으로 가슴팍에 있는 사악한 눈에 혈부적을 그려 넣었다.
잇따라 흑광이 번쩍이며 사악한 눈에 스며들더니 파르르 떨며 비스듬히 눈을 떴다.
비록 완전히 눈을 뜬 건 아니었지만 천사신 체내의 마의 기운이 폭등했다.
“분계마광(分界魔光)!”
천사신이 두 손을 휘두르며 버럭 소리를 지르자 그의 머리에서 칠흑 같은 마광이 솟구쳐 눈 깜짝할 사이에 하늘을 가르며 날아가 천지를 반으로 갈랐다.
그중, 한쪽은 북황의 언덕이고 다른 한쪽은 역외사족 군대가 차지했다.
그때 유리발과 제염승이 날아갔는데 분계마광을 아무리 공격해도 이를 뚫고 상대편으로 가지는 못했다. 마치 다른 세상에 격리된 것 같았다.
그러다 천사신의 심장에 박힌 사악한 눈은 다시 서서히 감겼고 폭등했던 마의 기운도 전보다 훨씬 쇠약해졌다.
밀법으로 여섯 번째 사악한 눈을 뜨게 해 천사신은 적잖은 대가를 치른 모양이었다.
천사신은 상당히 약해져 있었다.
지금이 바로 천사신을 죽이는 최적의 시기라는 것을 알고 있지만 염제와 무조는 아무런 방법이 없었다. 아무리 그들이라도 이 세상을 반으로 가른 듯한 마광을 없앨 수는 없었다.
“여섯 번째 눈을 뜬 것만으로도 실력이 이렇게까지 폭등하다니, 9목을 전부 뜨면 얼마나 무서울까?”
염제와 무조는 서로를 바라보며 말을 건넸다.
“5년만 지나면 내 오늘 받은 것은 반드시 갚아줄 것이다. 대천세계는 피바다가 될 것이고 모든 생명체가 살아남지 못할 것이다.”
천사신은 사악한 눈으로 염제와 무조를 바라보다 손을 휘익 저으며 역외사족 강자들한테 전했다.
“철수하라!”
천사신이 말을 마치자 웅장한 마의 기운이 휘몰아쳤고 역외사족 강자들은 빠르게 쩍 벌어진 공간 균열 속으로 들어갔다.
가장 뒤편에 서 있던 천사신과 천마제들은 입꼬리를 씰룩거리며 멍하니 서 있는 대천세계의 천지존들을 쳐다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