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대주재-983화 (982/1,000)

983화. 대제의 유택

잠시 고민하던 태명노조는 이내 한숨을 쉬며 입을 열었다.

“성녀의 말대로 지금 같은 상황에서 원시 법신의 수련법을 아껴봐야 무슨 소용이 있을까?”

그는 고개를 들고 염제와 무조, 목진을 번갈아 바라보며 말을 이어갔다.

“그럼 우리 태령고족에서 태령성체를 내놓겠네.”

“고맙습니다. 태명 장로님.”

목진은 정중하게 인사를 올렸다.

그 광경에 옆에 조용히 서 있기만 하던 흑천 족장과 황규 족장은 괜히 머쓱했다. 목진은 원시 법신이 탐나서 그러는 게 아니라 대천세계를 구하려고 이러는 것이었으니 말이다.

“더 필요하면 우리도 원시 법신의 수련법을 가르쳐줄 수 있단다.”

목진은 그들이 예의상 한 말인 것을 알았지만 가벼운 웃음으로 감사의 뜻을 전했다.

“3대 원시 법신을 혼자 수련해낸다는 건 전무후무한 일이니 부디 우리를 실망시키지 말아라.”

마하천은 목진이 질투가 나 미칠 지경이었다.

“당연하죠. 제가 실패하면 어떻게 되는지 잘 압니다.”

목진이 미소를 지으며 답했다. 그 말에 마하천은 궁시렁거리더니 더는 뭐라 하지 않았다. 그는 목진에게 질투가 났지만 대천세계의 생사가 목진한테 달렸다는 사실을 잘 알았다.

그도 한편으로 목진이 성공했으면 하고 바랐다.

“원시 법신에 관한 문제를 해결했으면…….”

염제와 무조도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이제 너를 성급으로 만들 방법을 생각해보자꾸나.”

대전에 모인 천지존들은 다시 미간을 살짝 찌푸렸다. 목진은 현재 겨우 선급 중기인데 아무리 천부적 재능이 뛰어나다고 해도 5년 사이에 선급에서 성급에 이른다는 것은 절대 쉬운 일이 아니었다.

대단한 존재가 남긴 유적 같은 것이 있으면 모를까…….

“목왕의 천부적 재능으로 외부의 도움을 받으면 성급에 이르지 못할 것도 없을 것 같네.”

“그게 뭐란 말인가?”

불사의 주인이 고개를 들고 목진을 바라보자 천지존들은 바로 눈길을 돌렸다.

“상고 시기, 불후대제께서는 천사신과의 결전에서 목숨을 대가로 그를 봉인하셨지.”

불사의 주인은 이내 감탄하며 손으로 북황의 언덕을 가리키며 미소 지었다.

“하지만 대제께서는 만고불후신의 수련자라 육신의 불후를 이뤄 육신이 보존되어 있다네.”

“또한, 대제께서 평생 수련한 영력도 불후의 육신에 보존되어 있으니, 난 그 웅장하기 그지없는 영력을 대제의 유택이라 부르고 싶네.”

이에 다들 이글거리는 눈빛으로 불사의 주인을 쳐다봤다. 불후대제가 평생 수련해 얻은 영력은 오랜 세월이 지나 어느 정도 소모되었다고는 하지만 여전히 지극히 방대한 힘이 깃들어 있을 것이다. 누구든 이를 흡수해 제련하면 성급에 이를 가능성이 있을 것이다.

“불후대제 체내의 영력에는 불후의 뜻이 깃들어 아무나 흡수할 수 있는 것이 아니네. 강제로 흡수하려 했다가는 오히려 본체에 큰 타격을 줄 수도 있네…….”

불사의 주인의 말에 다들 순간 시무룩해졌다.

“그러니까 만고불후신을 수련한 사람만이 대제의 유택을 받을 자격이 있네.”

불사의 주인은 목진을 바라보며 상냥하게 웃었다.

“허허, 대제의 유택은 처음부터 목왕의 몫이었으니 지금이 이를 건넬 최적의 시기인 것 같네.”

대전에 모인 천지존들은 부러움에 몰래 혀를 내둘렀다. 목진은 오늘, 대천세계의 진귀한 자원을 거의 다 건네받은 셈이었다.

“시대가 영웅을 낳는군.”

다들 이내 감탄했다. 다른 때 같았으면 원시 법신 두 채를 모으는 일도 쉽지 않았을 것이고 대제의 유택은 더 말할 나위 없었다.

하지만 그들은 받아들여만 했다. 목진만이 대천세계의 생사가 걸린 일에 선뜻 나섰으니 말이다.

진천 등 성급 후기마저 쉽게 나서지 못할 정로도 엄중한 일이었다.

왕관을 쓰려는 자, 그 무게를 버티란 말도 있지 않은가!

최정예급 자원을 누리는 대신, 목진은 그에 따른 책임도 짊어져야 했다.

“그럼 나머지는 온전히 너한테 달렸구나.”

염제와 무조는 이내 안도의 한숨을 내쉬더니 금세 숙연해져 목진을 바라봤다.

“최선을 다할게요.”

목진은 예리한 눈빛으로 두 사람을 바라보며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우리도 가만히 기다리고만 있지는 않을 것이네.”

염제와 무조도 고개를 끄덕이더니 자리에서 일어났는데 강력한 압박감이 형성되었다.

“지금부터 우리는 천사신의 멸세의 계획을 알리고 대천세계의 모든 힘을 끌어모아 역외사족과 싸울 것이네.”

“천사신이 실력을 되찾는 데 5년이나 걸린다면 우리는 녀석이 한시도 마음 편히 쉬지 못하게 건드리며 시간을 최대한 늘릴 것이네!”

두 사람의 말에 자리에 앉아있던 천지존들은 살기를 잔뜩 품은 채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역외사족이 대천세계를 없애려 한다면 그들도 목숨을 걸고 싸우는 수밖에 없었다.

이렇게 대천궁은 살기로 가득 찼다.

목진도 이러한 분위기에 흠뻑 젖어 정색하며 자리에서 일어났는데 염제와 무조가 미소를 지으며 그한테 말을 건넸다.

“넌 이 싸움에 참가하지 말거라. 넌 그동안 북황의 언덕에 남아 대제의 유택을 전수받고 다른 두 원시 법신의 수련에 집중하거라. 그리고 성급이 이르기 위해 최선을 다해야 한단다. 그래야 네가 창궁방에 이름을 남길 세 번째 강자가 될 수 있지 않을까?”

“그래야 대천세계에 최악의 상황이 닥쳐도 반항할 힘이 있을 것이다.”

목진은 대천세계의 강자들과 함께하지 못해 조금 아쉬웠지만 자신이야말로 5년 뒤의 결전에서 가장 중요한 존재란 걸 잘 알아 묵묵히 고개를 끄덕였다.

“다들 각자의 세력으로 돌아가게. 그리고 두 달 후, 끌어모을 수 있는 모든 역량을 동원해 대천세계의 변경에 모여 마역에 반격합시다!”

“알겠습니다!”

염제와 무조의 나지막한 외침에 대전에 모인 천지존들이 고함을 질렀다. 이에 궁전 전체가 격렬하게 진동했다. 잇따라 그들은 하늘 높이 날아올라 북황의 언덕을 떠났다.

염제와 무조는 가만히 천지존들이 떠나가는 뒷모습을 바라봤다.

소식이 전해지면 대천세계는 곧 발칵 뒤집힐 것이다.

천사신을 물리치기 전까지 대천세계에는 평화 따위는 없을 것이다.

북황의 언덕에서 벌어진 일은 돌풍처럼 대천세계에 휘몰아쳤다.

그리고 대천세계는 발칵 뒤집혔다.

상고 시기의 세계 대전은 지금의 대천세계 사람들한테는 아주 먼 옛날이야기라 역외사족이란 존재가 확 와닿지 않았다.

그런데 북황의 언덕에서 벌어진 일로 고적에 적혔던 역외사족에 관한 일들이 점차 퍼져나갔고 다들 녀석들이 얼마나 강대한 존재인지 알게 되었다. 염제와 무조가 나서도 천사신을 잠시 물리치기만 했으니 말이다.

역외사족은 대천세계의 모든 생명체를 노예로 만들 만큼 무서운 세력이었다.

또 5년만 있으면 천사신은 상상 이상으로 강해져 대천세계가 정말 멸망할 수도 있었다.

곧 닥칠 그 날을 생각하자 다들 저도 모르게 소름이 쫙 끼쳤다.

대천세계 전체가 공포에 떨며 어쩔 바를 몰랐다.

그러나 그것도 곧 잠잠해졌다. 무한의 화역과 무경을 포함한 대천세계의 정예급 세력이 모여 대천 연맹을 이뤘기 때문이다.

대천 연맹은 대천세계의 지지존 이상 경지에 이른 강자를 대천세계와 마역의 접경지대에 모아 대천세계를 수호하기로 했다.

이에 수많은 강자가 접경지대에 몰려들었다. 5년 뒤에 있을 멸세의 공포에 사람들은 오히려 용기를 냈다. 다들 조용히 앉아 죽기만 기다릴 바에 스스로 나서 역외사족을 공격하는 편이 훨씬 낫다고 여겼다. 그러다 대천세계가 정말 살아남을 수도 있으니 말이다.

5년 뒤에 죽을지라도 역외사족을 한 놈이라도 더 죽이는 것이 훨씬 가치가 있는 죽음이 아닐까?

이러한 생각에 한 달도 안 돼 대천세계와 마역의 접경지대에 모인 대천세계의 강자들은 부대를 이뤘고 주위 천만리까지 웅장한 영력 파동이 휘몰아쳤다.

더구나 그들은 염제와 무조가 있어 더 든든했는데 두 사람은 역시 대천세계의 최정예급 강자였다.

한편, 염제와 무조는 마의 기운이 요동치는 마역을 유심히 살폈다. 그들은 어둡고 음산한 곳에 몰래 숨어 있는 악마들을 발견하면 곧바로 손을 휘익 저으며 외쳤다.

“공격하라.”

* * *

북황의 언덕에 있는 목진은 불사의 주인과 함께 대지의 가장 깊숙한 곳으로 들어갔다.

그곳에는 아주 굵직한 쇠사슬이 있었는데 오래되어 녹슨 쇠사슬에는 특이한 부적이 가득 새겨져 있었다.

비록 쇠사슬은 무서운 흉수 같은 존재의 공격으로 인해 전부 부서졌지만 말이다.

“이곳이 바로 일전에 천사신을 봉인했던 장소였단다.”

불사의 주인은 부러진 쇠사슬을 보고는 눈가가 파르르 떨며 언짢은 듯 말했다. 그는 부하들과 함께 4만 9천 년 동안 이곳을 지켜왔고 이번만 잘 마무리 지으면 천사신을 완전히 죽일 수 있었는데 마지막 순간, 녀석이 도망갈 줄 누가 알았을까?

목진은 그의 말에 뭐라 대꾸하지 못했다. 녀석은 아마 봉인되기 전부터 모든 걸 예상하고 이곳을 벗어날 준비를 했을 것이다.

불사의 주인은 무의미한 말은 하지 않고 씁쓸하게 웃으며 앞으로 나아갔다.

가장 깊숙한 곳으로 들어가자 돌계단이 쭉 펼쳐졌고 그 위쪽에 제단이 놓여 있었다.

불사의 주인은 숙연해진 얼굴로 계단을 따라 석대에 올랐고 목진도 조용히 그 뒤를 따랐다.

잠시 후, 목진이 9,990개나 있는 돌계단을 전부 오르자 제단이 보였다. 그리고 그 중심에 놓인 석대에 영광을 발하는 방석이 하나 놓여 있었는데 그 위에 하얀색 도포를 입은 사람이 조용히 앉아있었다.

늘씬한 몸매에 장발을 드리운 채 앉아있는 사내는 이목구비가 뚜렷했다. 하지만 눈을 꼭 감고 있어 눈동자를 보지 못하는 게 아쉬울 뿐이었다. 그의 눈동자는 분명 상당히 그윽할 것이다.

그가 형성한 압박감만은 염제와 무조가 내뿜는 것 못지않았다.

그가 바로 대천세계에서 창궁방에 처음으로 이름을 남긴 불후대제였다.

불사의 주인은 그 앞에 무릎을 꿇고 공손하게 절을 올렸고 목진도 불후대제의 육신을 살피고는 허리를 굽혀 공손하게 인사를 올렸다. 불후대제의 실력이든, 대천세계를 위해 헌신한 일이든 그는 인사를 받아 마땅했다.

“역시 불후의 육신은 대단하군요. 수만 년이 지났는데도 끄떡없으니 말이에요.”

불후대제의 육신을 자세히 살피던 목진은 이내 감탄하며 말했다. 불후대제의 육신은 성급 후기의 강자가 전력을 다한 공격에도 끄떡없어 보였다.

더구나 목진은 그 육신에 웅장하기 그지없는 영력이 깃든 것이 느껴졌다. 해당 영력에도 불후의 기운이 가득 차 있었다. 하긴, 그러지 않고서야 수만 년이 지났는데도 사라지지 않을 리 없었다.

“목왕, 이제 시작합시다.”

불사의 주인이 자리에서 일어나 불후대제의 육신을 바라보며 말했다. 목진은 묵묵히 고개를 끄덕이더니 그 옆에 가서 앉아 상대방의 손과 자신의 손을 맞닿게 했다.

“선배님, 실례하겠습니다.”

말을 마친 목진은 이내 정색하며 깊게 숨을 들이켰다. 불후대제의 체내의 영력을 흡수한다는 것은 절대 쉬운 일이 아니었다. 상대방의 영력이 너무 강대해 선급은 물론이고 성급도 쉽지 않은 일이었다.

자칫 잘못하면 육신이 폭발할 수도 있었다.

하지만 목진한테는 별다른 수가 없었다. 5년 뒤, 창궁방에 이름을 남기려면 그는 반드시 이번 기회를 헛되이 해서는 안 되었다.

무언가를 얻으려면 그만큼 노력해야 하는 법, 시도도 해보지 않고 포기하면 얼마나 아쉽겠는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