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87화. 칼과 검, 피와 전쟁의 불씨
대전에는 진천, 청삼검성, 진룡제, 마하천, 청연정 등 5대 고족의 대장로와 족장들이 있었고 속세에 나오지 않던 늙은 강자들도 자리하고 있었다. 대천세계의 최정예급 역량이 한데 모인 셈이었다.
다들 긴장하며 영력을 한껏 끌어올렸다.
“여러분도 알다시피 역외사족이 반격을 시작했으니 대천세계의 생사가 걸린 전쟁도 시작된 거나 마찬가지라네.”
염제는 무조와 마주 보더니 먼저 입을 열었다. 다들 눈가를 파르르 떨며 살기를 품었다.
“염제, 무조, 하명하게. 우리는 대천세계를 위해서라면 목숨을 걸고 역외사족과 싸울 것이네!”
진천의 말에 다들 이글거리는 눈빛으로 염제와 무조를 바라봤다. 자신의 세력과 가족, 친구들을 위해서라도 다들 역외사족에 맞서야만 했다.
“다들 잘 듣게, 지금부터 각자 휘하의 강자들을 거느리고 전쟁터로 떠가게. 역외사족의 천마제를 상대하기 위해서는 매개 대륙에 성급 후기 천지존이 적어도 한 명씩은 있어야 하네.”
“알겠네!”
염제가 서서히 고개를 끄덕이며 소리치자 진천 등 성급 후기들은 바로 호응했다.
“역외사족은 하위면을 적잖게 차지했는데 일부 하위면은 대천세계 내부와 연결되어 있어, 순찰 소조를 이뤄 다른 곳들도 자세히 살펴야 하네. 그러다 역외사족을 발견하면 모조리 없애게!”
“알겠네!”
사람들은 이구동성으로 외쳤다.
“나와 염제는 이곳에 남아있을 것이네. 이번엔 우리가 나설 수 없으니 모든 건 당신들한테 달렸네.”
“무조, 왜 그러는가?”
무조의 말에 누군가 어리둥절하여 물었다. 최강 전력인 염제와 무조가 빠지면 싸움은 훨씬 어려워질 것이다.
“천사신이 우리 두 사람을 감시하고 있으니 우리도 녀석의 상황을 살펴야 하네.”
염제는 화염이 이글거리는 눈으로 공간 너머에 있는 어딘가를 바라보며 말했다.
천사신은 아직 모습을 드러내고 있지 않았지만 그 정도 경지에 이르면 멀리서 공격한다 해도 일반 성급 강자가 감당할 수 있는 정도가 아니었다.
하여 쌍방은 아직 섣불리 나서지 않고 있었다.
염제의 말에 다들 흠칫 놀라더니 온몸에 소름이 쫙 돋았다. 그들도 순간 사악한 눈의 감시를 당하고 있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염제, 무조, 걱정하지 말게. 우리의 터전인 대천세계를 지키기 위해서라도 목숨을 걸고 싸울 것이네.”
천지존들은 숙연해진 채 외쳤다.
역외사족의 압박에 대천세계 사람들은 한마음으로 뭉쳤다. 그들은 서로의 원한 따위는 전부 내려놓았다.
현재, 대천세계의 가장 큰 적은 역외사족이기 때문이었다.
한편, 대전 한편에 절세의 미모를 가진 여인 여러 명이 서 있었는데 각자 다른 매력을 지니고 있어 주위의 시선을 끌었다.
그들은 무한의 화역과 무경의 안주인들이었다.
“왠지 익숙한 장면이군.”
능청죽이 살기 가득한 대전을 살피며 이내 감탄했다. 그들의 고향에도 이런 장면이 펼쳐졌었기 때문이었다.
능청죽 옆에 서 있는 응환환은 파란색 장발을 드리운 채 눈에서 무한의 한기를 내뿜었으며 소녀의 모습을 하고 있었다. 그들이 처한 상황은 오래전, 난마해(亂魔海)에서 이마황(異魔皇)을 상대했을 때와 똑같았다.
하지만 그들의 상대는 이마족보다 훨씬 무서운 역외사족이었다.
“우리가 이마족을 물리쳤듯 이번에도 역외사족을 대천세계에서 쫓아낼 수 있을 것이네.”
응환환의 말에 능청죽이 가볍게 고개를 끄덕이더니 피식 웃으며 상대방을 바라봤다.
“이번에는 지난번 같은 어리석은 짓은 하지 말게. 임동이 또 어딜 가서 자넬 찾아와야 한단 말인가?”
응환환은 금세 얼굴이 발그레해졌는데 무한의 화역의 안주인이 피식 웃자 괜히 능청죽을 흘겨봤다.
“어머니, 우리도 뭔가 해야 하지 않을까요?”
갑자기 맑은 목소리가 들려오더니 무한의 화역 안주인 채린 뒤에 늘씬하고 아름다운 소녀가 나타나 두 여인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녀는 바로 소소였다.
“그러게. 우리도 뭔가를 해야 하지 않는가? 마냥 이곳에 숨어 있을 수만은 없네!”
소소가 말을 마치자 임정도 두 손을 들어 찬성했는데 그들의 어머니는 무안한 듯 서로를 바라봤다.
“걱정 말거라. 안 그래도 너희들 아버지한테 말씀드렸단다. 지금부터 너희 둘은 낙리와 함께 순찰대를 꾸려 대천세계 내부에서 역외사족을 발견하는 즉시 바로 없애야 한다.”
소훈아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임정은 실망스러운 듯 고개를 가볍게 드리웠다.
“네? 저도 이제 천지존경에 이르러 싸움터에 나갈 수 있어요. 순찰 소조라니요?”
이에 능청죽이 임정을 흘겨보며 답했다.
“대천세계 내부의 안정을 유지하는 것도 상당히 중요한 일이란다. 대천세계의 천지존들이 대부분 싸움터로 나갔으니 우리는 저들의 세력과 가족, 친구들의 안전을 지켜야 한단다.”
어머니의 말에 임정은 입을 삐쭉 내밀고 더는 뭐라 하지 않았다. 소소도 묵묵히 고개를 끄덕이기만 했다.
능청죽 등은 두 딸의 태도에 몰래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지금 전쟁터에 나가면 아무리 천지존이라도 언제든지 죽을 수 있었다. 게다가 경험이 턱없이 부족한 임정과 소소가 나갔다가는 죽을 확률이 상당했다. 그러니 순찰 소조에 가게 하는 편이 훨씬 나았다.
비록 대천세계의 생사가 걸린 싸움이지만 자신들이 직접 나가서 싸울지언정 절대 딸들은 보낼 수가 없었다. 어머니로서 자식의 안위를 위해서라면 목숨이라도 바칠 수 있었다.
“참, 어머니, 목진은 어디 갔나요? 왜 아무런 소식도 없을까요? 이건 목진답지 않은 행동이네요.”
임정이 부단히 대전을 살피며 물었다. 목진 정도 실력에 오늘 자리에 참석하지 않을 리 없었다. 더구나 목진은 이런 일에 가만히 있을 녀석이 아니었는데 여태껏 아무런 소식도 없는 것이 놀라웠다.
임정의 질문에 소소도 바로 고개를 돌렸다. 그녀도 목진에 관한 소식이 궁금했던 차였다. 그런데 목진의 정보에 대해 아는 사람이 거의 없을 뿐만 아니라 가끔 떠도는 소문들도 신빙성이 떨어졌다.
“걱정 말거라. 목진이 다시 모습을 드러냈을 때, 대천세계는 기쁨에 넘칠 거란다…… 녀석이 꼭 성공했으면 싶구나.”
능청죽 등은 이내 정색한 채 말했다. 그들은 정확한 정보를 파악하고 있었고 목진이 얼마나 중요한 존재인지 그 누구보다 잘 알았다.
* * *
대전의 수석에 앉아있던 염제와 무조도 자리에서 일어나 대전에 모인 천지존들을 쓰윽 훑으며 외쳤다.
“역외사족이 우리의 땅을 차지하려고 하면…….”
“녀석들을 맞이하는 건 오직 칼과 검, 피와 전쟁의 불씨일 뿐임을 깨닫게 할 것이네!”
* * *
전쟁으로 인해 곳곳에서 분쟁이 끊임없이 벌어졌고 생과 사의 순간도 빈번하게 발생했다.
한 달 사이, 대천세계의 변경 지대는 커다란 도살장이 되었다. 쌍방의 강자들은 벌떼처럼 몰려들어 서로를 물고 뜯느라 바빴다. 천지존들도 계속되는 전쟁에 상당히 약해져 매일 천지존과 마제급 강자가 죽어 나갔다.
전쟁은 역시나 잔혹했다.
그러나 아무도 이대로 멈추려 하지 않았다. 한쪽은 대천세계를 점령하려 하고 다른 한쪽은 자신이 살아가는 세계를 지키려 하고 있으니, 이는 한쪽이 죽지 않으면 끝날 수 없는 싸움이었다.
하여 대천세계의 내부도 더는 평화를 유지할 수 없게 되었다.
대천세계, 한 대륙의 위쪽 하늘이 갑자기 찢어지더니 웅장한 마의 기운이 연기처럼 피어올랐고 악마들의 포효와 함께 마영들이 사정없이 몰려들었다.
쿠쿵!
마영들이 나타나자 대륙에 처량한 종소리가 울려 퍼졌고, 수많은 영광이 번쩍이며 하늘 높이 날아올라 두려운 듯 마영들을 쳐다봤다.
“공격하라, 대천세계를 피바다로 만들어라!”
잔인한 마의 포효와 함께 마영들은 벌레떼처럼 몰려갔다.
“저들을 막아내야 하네! 당장 구원 신호를 보내게!”
누군가 소리치자 대륙에 있던 사람들은 전부 웅장한 영력을 끌어올려 상대방에게 향했다. 대륙의 모든 세력은 서로에 대한 편견과 원한을 내려놓고 함께 적을 물리치는 데만 집중했다.
쿠쿵!
대전 쌍방이 부딪치자 난폭한 파동이 폭발했다.
대륙은 순식간에 아수라장이 되었다.
이와 동시에, 대천세계 곳곳에서 공간 균열이 일어나 대량의 역외사족이 몰려들었다. 그들은 대천세계에 혼선을 주려고 하고 있었다.
대천세계의 내부에도 전쟁의 불씨가 붙었다.
한편, 웅장한 궁전에 강대한 영력 파동을 내뿜는 사람들이 모였는데 다들 안색이 확 어두워진 채 허공에 떠 있는 광막을 쳐다봤다. 광막은 역외사족이 나타난 대륙의 상황을 비추고 있었다.
“순찰대는 듣거라. 사람들을 소집해 대천세계 내부를 지키거라!”
대전의 최전방에는 두 사람이 서 있었는데 그중 한 명은 백발노인이었고 다른 하나는 여인처럼 수려하게 생긴 사내로 예리한 눈빛으로 사람들을 쓰윽 훑었다.
대전에 모인 사람들은 전부 대천세계 각 지역의 정예급 강자지만 두 사람의 말에 불만을 품은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그들은 각각 염제의 스승인 약진과 무조의 의형제, 임초로 지위가 상당하기 때문이었다.
그들은 각각 순찰대의 통령과 부통령이 되어 전쟁터에 있는 대군이 적을 물리치는 데 집중하도록 대천세계 내부에 일어난 상황을 신속하게 처리했다.
“서천전황을 조장으로 한 1조는 서남 구역으로 가거라!”
“네.”
서천전황이 이내 정색한 채 고개를 숙였다.
“2조는…….”
“3조는…….”
약진과 임초의 명령에 다들 신속하게 사람들을 끌어모은 뒤, 전송 영진을 통해 최대한 빨리 역외사족이 나타난 지역으로 향했다.
“30조는…….”
약진은 대전에 한데 모여있는 낯익은 세 여인을 바라보며 말했다.
“낙리를 대장으로, 소소와 임정을 부조장으로 한다. 너희는 당장 사람을 끌어모아 서북 구역으로 가거라!”
“네!”
장검을 쥐고 서 있는 낙리의 맑은 목소리에 다들 그녀한테 눈길을 돌렸다. 아름답고 강인한 여인한테 마음이 움직이지 않을 사내는 거의 없을 것이다. 비록 그녀의 짝은 이미 정해졌지만 말이다.
소소와 임정도 이글거리는 눈빛으로 약진과 임초를 바라봤다. 그들은 역외사족과 싸우고 싶어 몸이 근질거렸다.
그렇게 낙리 등은 수백 명의 강자들과 함께 서북 지역으로 향했다.
* * *
낙리 등이 도착했을 때, 현장은 이미 아수라장이 되었고 마영들은 계속 도성을 공격해 주위에 피비린내가 진동했다.
“여기는 세 명의 역외사족 마제가 이끌고 있군.”
낙리는 주위를 쓰윽 훑더니 해당 대륙에 나타난 역외사족 중, 실력 최강자가 누구인지 실력은 또 얼마나 되는지 바로 알아챘다.
“세 명의 마제는 내가 처리할 테니 너희는 다른 도성을 도와줘.”
“좋아!”
낙리가 돌아서 건넨 말에 임정은 바로 고개를 끄덕였고 소소도 이내 정색하며 말했다.
“네!”
기타 조원들도 바로 낙리의 말에 응했다.
“공격하라!”
낙리의 말이 끝나기 바쁘게 수백 갈래의 빛줄기가 솟구쳤고 낙리도 온몸을 파르르 떨더니 공간을 가르며 날아가 대륙에서 실력이 가장 뛰어난 마제에게 향했다.
그는 현마제(玄魔帝)로 선급 천지존 정도의 실력자였는데 이 정도 실력이면 해당 대륙에서 무적이나 마찬가지라 대천세계의 강자들은 쉽게 무너졌다.
하지만 녀석도 곧 실패의 쓴맛을 보게 될 것이다. 그는 낙리의 시선에 엄청난 위협감을 느꼈다.
이에 그는 바로 도망가려고 하늘 높이 날아올랐다.
위잉!
그런데 그때, 주위의 공간이 일그러지더니 오래된 족자가 나타나 영광을 내리쬐어 그 구역을 봉쇄했다.
잇따라 마의 기운이 모이더니 현마제가 모습을 드러냈는데 안색이 확 어두워져 있었다. 그는 봉쇄한 영력 광막을 쳐다봤는데 영력 광막에서 지극히 위험한 파동이 느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