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91화. 흑시와 다시 싸우다
북명룡곤과 태창 원장은 서로를 바라봤는데 일전에 낙리의 출현으로 인해 피어올랐던 희망이 완전히 사라졌다.
최정예급 천마제를 상대로 그들은 도망갈 생각조차 들지 않았다.
온청선 옆에 서 있던 당천아는 사색이 된 채 상황을 살피더니 목에서 옥패 하나를 취해 손에 꼭 잡았다.
일전에 목진은 위험한 상황이 벌어지면 그것을 깨뜨리라고 했었다.
그런데 목진에 관한 소식은 끊어졌고 그녀는 그가 어떤 상황에 처했는지 알 수 없어 옥패를 부술 수 없었다.
“령운이 곧 사라질 것이네!”
누군가 갑자기 무서운 듯 소리를 질렀다.
하늘에 떠 있는 령운이 점차 얇아지더니 결국 완전히 사라졌다.
이에 흑시천마제가 사악하게 웃으며 절망스러운 표정으로 서 있는 사람들을 바라보며 옷깃을 휘날렸다. 그러자 웅장한 흑우가 한데 모여 백 장 정도의 검은색 물방울을 형성했다.
그 속에 무서운 사망의 기운이 깃들어 있었다.
“이제 함께 죽거라…….”
흑시천마제가 가볍게 웃으며 손가락을 튕기자 검은색 물방울은 북창대륙의 모든 생명체를 없애려는 듯 사망의 힘을 내뿜으며 내려앉았다.
이에 당천아가 이를 꽉 깨물며 손에 힘을 주자 옥패가 부서졌다.
그때 안색이 한껏 창백해진 낙리는 휘몰아치는 검은색 물방울을 보더니 이를 악물고 파르르 떨리는 손으로 영력을 끌어올려 태령고도에 주입하려 했다.
현재 그녀의 실력으로는 태령고도를 들고 있어도 흑시천마제의 상대가 아니란 걸 알고 있었지만 말이다.
최전방에 서 있는 그녀의 모습은 더없이 처량해 보였다.
그녀의 모습에 북창령원에 모인 사람들은 절망스러운 듯 두 눈을 감고 죽기만 기다렸고 심창생, 이현통, 온청선 등도 한숨을 내쉬었다.
“북창령원이 정녕 이대로 멸망한단 말인가?”
태창 원장도 무기력해진 듯 나지막하게 중얼거렸다.
쿵!
암흑 마구는 북창령원 주위에서 폭발해 사해를 이뤘는데 이는 북창령원에 모인 사람들을 한순간에 없애고도 남았다.
이에 낙리가 태령고도를 꽉 잡고 최후의 발악을 하려고 하는데 앞쪽에 갑자기 천지의 영광이 모이더니 늘씬한 청년이 나타났다.
그가 손을 뻗어 사해를 향해 주먹을 가볍게 쥐자 사해는 전부 그의 손바닥에 스며들어 암흑 결정체를 이뤘다. 그리고 그가 두 손을 뻗어 암흑 결정체를 가볍게 만지자 미세한 소리와 함께 가루가 되어 부서졌다.
파멸의 기운이 깃든 사해가 이토록 쉽게 사라지다니.
북창령원에 모인 사람들은 순간 넋이 나갔다. 다들 죽을 준비를 하고 있었는데 갑자기 변고가 일어날 줄 누가 알았겠는가?
그런데 낙리 앞쪽에 나타난 늘씬한 사내는 도대체 누구기에 흑시천마제의 파멸의 기운이 깃든 공격을 이토록 쉽게 막아낸단 말인가?
“누구냐!”
흑시천마제는 흠칫 놀라 버럭 소리를 지르더니 영력 허상을 뚫어져라 쳐다봤다.
“흑시천마제, 북창령원에서 난동을 부리려면 내 허락부터 받아야 하는 거 아닌가?”
그때 청량한 웃음소리가 쩌렁쩌렁 울려 퍼졌다.
맑은 목소리가 울려 퍼지자 북창령원은 발칵 뒤집혔고, 다들 화들짝 놀란 채 허공에 떠 있는 늘씬한 청년을 바라봤다.
목진?
심창생, 이현통, 온청선 등도 두 눈이 휘둥그레진 채 상대방을 바라봤다. 그들은 여러 해 동안 종적을 감췄던 목진이 갑자기 이곳에 다시 나타날 줄 몰랐다.
더구나 목진은 일전에 흑시천마제의 공격을 아주 쉽게 무산시켰다. 이는 성급 후기의 강자도 쉽게 해낼 수 없는 일이었다.
사라진 몇 년 동안, 목진에게 무슨 일이 일어났단 말인가?
“목진 오라버니…….”
순아는 멍하니 목진을 바라보더니 너무 흥분된 나머지 얼굴이 발그레해졌다. 그녀는 넋 놓고 목진을 바라보는 낙신회 회원들한테 말을 건넸다.
“봤어? 저 사람이 우리 낙신회의 또 다른 창시인인 목진 선배야!”
“어…… 엄청나군요!”
다들 무슨 말을 하면 좋을지 몰라 버벅거렸다. 목진은 혼자서 흑시천마제가 형성한 무서운 마의 위압감을 막아냈다.
그건 목진의 실력도 무서운 수준에 이르렀다는 것을 의미했다.
“다들 무서워할 필요 없어. 목진 오라버니가 왔으니 저 악마는 더 이상 우리 북창령원을 해치지 못할 거야. 목진 오라버니가 녀석을 제대로 혼내줄 거야.”
순아의 자신만만한 말에 다들 머리를 긁적였다. 흑시천마제는 역외사족의 정예급 강자로 대천세계에서 염제와 무조를 제외하면 아무도 감히 그를 무시할 수 없을 텐데 말이다.
목진의 등장에 북창령원의 분위기는 한결 밝아졌다.
“목진?”
낙리도 눈앞에 나타난 늘씬한 청년을 멍하니 쳐다봤다.
목진이 수련하는 동안 그녀 역시 그의 구체적인 상황을 몰랐다.
낙리의 목소리를 들은 늘씬한 청년은 영력을 조금 거둔 채 돌아섰는데 역시나 목진이었다.
“소식을 듣자마자 달려왔어. 늦지 않아 다행이야.”
목진이 미소를 지으며 한 말에 낙리는 드디어 안심되었다. 그리고 체내의 영력이 순간 무질서해져 저도 모르게 몸에 힘이 풀렸다.
일전에 흑시천마제를 상대하기 위해 전력을 다했기 때문이다.
이에 목진은 바로 달려가 낙리의 가녀린 허리를 끌어안았는데 피곤한 기색이 역력한 그녀를 보자 마음이 아팠다.
“지금까지 네 곁에 없어서 미안해.”
“너도 우리를 살리기 위해 외롭게 혼자서 수련한 거잖아? 난 그렇게까지 억지를 부리는 사람이 아니야.”
목진이 외로움과 엄청난 압박을 감당하며 혼자서 수련했던 것은 전부 대천세계를 위해서였고 대천세계에서 살아가는 낙리를 위해서였다.
“그럼 지금부터는 나한테 맡겨.”
목진은 낙리의 정교한 얼굴을 쓰다듬으며 말했다.
“여기서 이러지 말고 녀석부터 해결해.”
낙리는 왠지 부끄러워 얼굴을 붉히며 목진을 뒤로 조금 밀어냈고 자신도 뒤로 물러났다.
목진은 떠나가는 낙리를 바라보더니 그녀의 얼굴을 쓰다듬었던 손의 촉감이 떠올라 마음이 쿵쾅거렸다.
“이제 유언을 말했으면 그만 죽거라.”
그때 살기 가득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목진이 돌아서자 흑시천마제가 음산한 눈빛으로 자신을 바라보며 살기를 내뿜고 있는 것이 보였다.
“흑시천마제, 또 만났군.”
목진은 흑시천마제를 바라보며 가볍게 웃었다.
목진은 하위면에서 천지존경에 이르자마자 흑시천마제의 공격을 받았는데 다행히 무조가 나서서 녀석을 물리쳤다.
“지난번에는 너를 구해주러 올 사람이 있었지만, 이번에는 더는 없을 테니 괜한 희망은 품지 말거라.”
흑시천마제의 말이 울려 퍼지자 주위가 순식간에 추워졌다.
“네가 내 아들을 죽였으니 네 연인과 친구들을 전부 죽이겠다.”
북창령원 사람들은 흑시천마제가 방출한 웅장한 살기에 흠칫 놀랐다. 그들은 목진이 상대방과 이미 원한 관계에 있을 줄은 꿈에도 몰랐다.
그러나 목진은 가볍게 웃더니 칠흑 같은 눈동자를 굴리며 상대방을 바라봤다.
“당신은 지금, 여기서 어떻게 살아남을지부터 고민해야 할 것 같네요.”
“하하, 겁 없는 녀석!”
흑시천마제는 피식 웃더니 목진을 쏘아보며 말을 이어갔다.
“성급에 이르렀다고 나를 상대할 자격이 있다고 여기는 것이냐?”
쿵!
말을 마친 흑시천마제가 표정을 한껏 일그러트리며 주먹을 쥐자 무한의 사망의 기운이 모여 흑마번을 이뤘다.
“시마번(屍魔幡)!”
흑시천마제가 버럭 소리를 지르자 마번이 휘날리며 억만 갈래의 허상이 나타났다가 한데 모여 검은색 사망의 하천을 이뤘는데 그 속에 억만 채의 시체가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며 둥둥 떠다녔다.
“시마명하(屍魔冥河)!”
사망의 명하는 거대한 용처럼 포효하며 목진에게 향했고 지나간 곳마다 공간이 와르르 무너져 사망의 기운으로 가득 찼다. 성급 강자라도 이에 닿으면 영력이 오염될 것이다.
“불후고하(不朽古河)!”
목진도 고개를 들더니 무덤덤하게 손가락을 내민 뒤, 앞쪽 허공에 가볍게 그었다.
쿠쿵!
목진은 손끝에서 오래된 하천을 내뿜었는데 하천은 만고의 세월을 뛰어넘어 온전히 존재해온 듯 보였다.
무엇이든 일단 그 속에 빠지면 세월의 침식으로 인해 부식될 것 같았다.
쿠쿵!
두 갈래 하천이 한데 부딪치자 주위의 공간은 계속해서 무너졌다.
흑시천마제는 순간 안색이 어두워졌는데, 그의 명하가 아무리 애를 써도 오래된 하천은 끄떡없었다. 오히려 오래된 하천 때문에 명하가 무너졌고 그 속에 깃든 수많은 시체들이 애처롭게 울부짖으며 부식되었다.
쿠쿵!
1각도 안 되는 사이, 난폭한 충격파와 함께 흑시천마제의 명하는 완전히 와해되었다.
“젠장!”
흑시천마제는 당황해 백골 왕좌에서 벌떡 일어나더니 음산한 눈빛으로 목진을 노려봤다. 그는 목진의 부쩍 늘어난 실력에 깜짝 놀랐다.
또한, 그는 목진의 공격에서 지극히 위험한 기운을 느꼈다.
그가 지금까지 대천세계에서 이토록 위험한 기운을 느낀 것은 두 사람뿐이었다.
그들은 바로 염제와 무조였다.
설마 5년 만에 염제와 무조만큼 강해졌단 말인가?
“그럴 리가!”
흑시천마제는 간신히 마음을 가라앉히고 표독스러운 눈빛으로 목진을 노려봤다. 그는 오늘, 목진의 진정한 실력을 끌어내기 위해 필살기를 사용하기로 마음먹었다.
“네가 언제까지 센 척하는지 보자꾸나!”
“천시신마상(天屍神魔像)!”
흑시천마제는 해와 달을 품은 듯 두 손을 부둥켜안고 온몸을 파르르 떨었다. 그러자 무한의 마의 기운이 휘몰아치며 뒤쪽에 거대한 마상이 나타났다.
사망의 기운으로 가득 찬 마상의 몸에 표독스럽게 생긴 얼굴이 잔뜩 박혀 있었고 녀석들의 비명에 체내의 영력이 무질서해져 육신이 폭발할 것 같았다.
이와 동시에, 지극히 무서운 마의 위압감이 형성되어 북창대륙 전체가 파르르 떨렸다.
북창령원 사람들은 사색이 된 채 허공에 떠 있는 거대한 마상을 바라봤다. 마상의 힘으로 북창대륙을 부수는 것은 식은 죽 먹기였다.
그 엄청난 힘에 낙리, 소소, 임정 등마저 두려움을 느꼈다.
목진을 쏘아보던 흑시천마제는 서서히 떠올라 천시신마상과 아우러졌다.
위잉!
마상이 커다란 눈을 번쩍 뜨자 마광이 휘몰아쳤고 무한의 살기가 깃든 포효가 쩌렁쩌렁 울려 퍼졌다.
“목진, 내 아들의 목숨값을 내놓거라!”
“오늘, 넌 반드시 내 손에 죽을 것이다!”
그런데 목진은 고개를 들고 거대한 마상을 살피더니 입꼬리를 씰룩거렸다.
“이게 당신의 최강 전력인가?”
목진은 이리 중얼거리며 앞으로 나섰다.
“그럼 이제 그만 죽어라…….”
목진은 모습을 드러내자마자 바로 천시신마상 앞쪽에 다가가 피식 웃었다.
“겁도 없는 녀석, 다시 한번 너를 상갓집 개 신세로 만들어주지.”
천시신마상은 목진의 표정에 순간 도천의 살기를 내뿜으며 나지막하게 외쳤다.
흑시천마제는 끓어오르는 화를 주체하지 못했다. 자신의 상대조차 안 됐던 존재가 자신을 무시하는 꼴을 보는 것은 여간 괴로운 일이 아니었다.
쿵!
웅장한 마의 기운이 요동치는 가운데 마상이 한기 어린 눈빛으로 상대방을 바라보며 괴이한 인법을 그렸다. 그러자 마의 기운이 모여 마수에 일그러진 무늬를 만들었는데 무서운 힘의 파동을 내뿜는 것이 성급 강자조차 두려워할 정도였다.
“천시귀마인(天屍鬼魔印)!”
음산한 소리가 울려 퍼지더니 천시신마상은 권인을 이뤄 힘껏 휘둘렀다.
으아악!
억만 시체의 모양을 이룬 그림자가 이내 포효하며 권인 주위를 맴돌았는데 그 음산한 기운에 주위에 서리가 끼기 시작했다.
흑시의 공격은 생과 사를 갈라놓고 모든 생기를 앗아갈 것만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