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97화. 10목
“우리 셋이 함께 나서서야 겨우 그 정도 상처가 났군.”
염제는 가볍게 웃으며 말을 이어갔다.
“천사신은 역시 명불허전이군.”
무조도 천사신을 지그시 쳐다봤다.
“하지만 우리 대천세계를 없애려면 생각했던 것보다는 애써야 할 것 같군.”
일전의 대결로 천사신을 상대할 수 있다는 걸 증명한 이들은 상대방을 쓰러뜨릴 수는 없지만 상대방이 압도적인 우세로 승리하게 놔두지 않을 거라는 것을 일깨워 주었다.
역외사족은 천사신만 믿고 대천세계를 장악하려는 마음을 품었는데 그가 제압되면 다른 강자들의 힘만으로는 거의 불가능한 일이었다.
쌍방은 전처럼 오래도록 소모전을 벌여야 할 것이다.
“이대로라면 당신의 우세는 점차 약해질 겁니다.”
목진은 영광이 번쩍이는 눈으로 상대방을 바라보며 말했다.
그의 말대로 소모전을 진행하면 대천세계는 엄청난 대가를 치르겠지만 시간을 확보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다 몇십 년만 지나면 염제와 무조가 창궁방에 온전한 이름을 남길 수 있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하여 천사신은 어느새 이도 저도 아닌 어색한 경지에 처하게 되었다.
강제로 나서려 하면 목진 등이 막아 나설 것이 분명하고 계속해서 소모전을 펼치면 염제, 무조 등한테 반격의 기회를 주는 거나 다름없었다.
한편, 허공에 떠 있는 천사신은 태연한 척했지만 눈빛만은 미친 듯이 떨렸다.
“천사신, 대천세계에서 썩 물러나요. 대천세계는 당신이 넘볼 수 있는 곳이 아닙니다.”
목진이 나지막하게 말했다. 천사신은 눈가를 파르르 떨더니 피식 웃으며 고개를 들어 무조 등을 바라봤다.
“내가 대천세계 따위에 이토록 낭패를 보다니…….”
“그런데 이게 과연 내 한계일까?”
천사신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한 질문에 목진, 염제와 무조는 눈가가 파르르 떨렸다.
“일전에 내가 했던 말은 여전히 유효하단다. 너희가 나한테 충성을 맹세하면 가족과 친구들만은 지켜줄 수 있단다. 이건 내가 베푸는 마지막 호의이니 부디 신중하게 결정하거라.”
천사신의 말에 염제는 안색이 확 어두워진 채 예리한 눈빛으로 상대방을 쏘아봤다.
“그따위 망언은 그만하게. 뭐든 해보게, 기껏해야 목숨을 잃는 것밖에 더 있을까?”
목진과 무조도 영력을 끌어올린 채 경계 태세를 취했다. 천사신의 실력으로 이렇게 말했다는 건 분명 다른 방법이 있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미 9목 상태인 천사신한테 또 다른 방법이 있단 말인가?
“대가가 너무 커 이 방법을 사용하려 하지 않았는데 지금 보니 사용할 수밖에 없겠구나.”
천사신은 눈을 비비적거리더니 피식 웃으며 말을 이어갔다.
“그래도 대천세계를 장악할 수만 있다면 내가 아무리 큰 대가를 들였다고 한들 언젠가 돌려받을 수 있을 것이다.”
말을 마친 천사신이 손가락을 깨물자 흑혈이 주르륵 흘러내렸다.
잇따라 그가 두 눈과 미간에 난 세 번째 눈에 피를 묻히고 쭉 내리그어 손바닥, 심장 및 배꼽에 난 눈에까지 피를 묻혔다.
이렇게 아홉 개의 사악한 눈은 검은색 피로 연결되어 괴이한 모습이 되었다.
잠시 후, 천사신은 합장을 하며 괴이한 인법을 그리더니 씨익 웃었다.
“놀라지 말길 바란다…….”
“마제(魔祭), 9목!”
활활!
그때 천사신의 아홉 개의 사악한 눈에서 마염이 활활 타오르자 귀청을 찢는 듯한 소리와 함께 처량하고도 괴로운 고함이 울려 퍼졌다.
“하하, 전부 제물로 불타 없어지거라!”
아홉 개의 사악한 눈은 빠르게 타오르더니 존재한 적 없었던 것처럼 깔끔하게 사라졌다.
천사신은 모든 눈을 잃었고 얼굴에도 눈이 있어야 할 자리가 텅 비어 여간 괴이해 보이지 않았다.
그런데 아홉 갈래의 흑선이 그의 미간에 모이자 피부가 쩍 하고 갈라지더니 힐끗 보기만 해도 악마가 될 것 같은 사악한 눈이 서서히 형성되었다.
그 모습에 목진과 염제, 무조는 안색이 확 어두워졌다.
잇따라 천사신의 차가운 목소리가 대천세계 전체에 울려 퍼졌다.
“이것이 내 최후의 수단으로…….”
“아홉 개의 눈을 제물로 바쳐!”
“열 번째 눈을 이루는 것이란다!”
“10목이다!”
대천세계에 순간 정적이 흘렀고 다들 멍하니 하위면에 서 있는 마영을 쳐다봤다. 천사신의 눈 아홉 개는 어느새 사라지고 두 눈이 있어야 할 곳도 반듯해졌다. 그리고 미간에만 괴이하기 그지없는 사악한 눈이 세로로 나 있었다.
극악의 세계와 연결된 듯 사악하기 그지없는 모습이었다.
또한, 천사신은 은은한 마의 위압감을 형성했는데 하위면 전체가 파르르 떨리다가 부단히 무너졌다.
심지어 하위면에서 새어 나온 미세한 마의 위압감에 제일 가까운 곳에 있는 영마대륙마저 무너지기 시작했다.
대천세계 전체가 미세하게 떨렸다.
“10목이라…… 9목 상태가 천사신의 한계가 아니었군.”
진천 등 대천세계의 정예급 강자들은 안색이 창백해져 중얼거렸다. 9목 상태의 천사신을 상대하는 것만으로도 염제와 무조, 목존은 전력을 다해야 했는데 이보다 더 무서운 10목 상태는 도대체 어떻게 상대해야 한단 말인가?
그 광경에 사람들은 절망과 무기력함에 고개를 푹 숙였다.
“대천세계는 역시 멸망한단 말인가?”
누군가 처량하게 울부짖었다. 대천세계의 강자들이 그동안 애써 싸워왔는데 결국 아무런 소용도 없었단 말인가?
다들 10목 상태의 천사신에 놀라 말문이 막혔고 절망스러운 감정에 휩싸여 어쩔 바를 몰랐다.
하위면에 있는 목진, 염제와 무조도 안색이 확 어두워졌다. 미간을 한껏 찌푸린 채 서 있는 그들의 모습에 불안감이 가득했다.
그들도 이런 상황이 벌어질 줄 몰랐다.
현재, 천사신이 내뿜는 마의 위압감으로 보면 9목 상태일 때보다 훨씬 강력해진 것이 분명했다.
“어떡한단 말인가?”
무조가 나지막하게 물었다. 그는 갑작스러운 상황에도 당황하지 않고 마음의 안정을 유지했다.
“이제 어떡할 수 있단 말인가?”
염제가 무안한 듯 웃으며 한 말에 목진도 입을 열었다.
“목숨을 걸고 싸우는 수밖에요.”
말을 마친 목진 등은 이내 정색하더니 바로 다시 전력을 다해 공격을 개시했다.
“염신!”
“대건곤!”
“태초환!”
목진 등의 최강 공격은 신속하게 천사신을 향해 날아갔다.
천사신은 입꼬리를 씰룩거리더니 미간에 난 열 번째 눈에서 한 갈래 흑광을 내뿜었다.
그 속에는 극한의 어둠이 깃들어 모든 빛을 집어삼킬 것만 같았다.
양자의 공격이 부딪히자 목진은 깜짝 놀랐는데, 눈 깜짝할 사이에 어둠의 빛이 그들의 공격을 꿀꺽 집어삼켰다.
일전에 천사신을 다치게 했던 그들의 공격은 이제 녀석에게 아무런 타격도 주지 못했다.
그 광경에 다들 입이 떡 벌어졌다.
“난 열 번째 눈을 만들어내려고 9목을 제물로 바쳤을 뿐만 아니라 수명까지 공헌했단다. 엄청난 대가를 치렀는데도 대천세계를 수중에 넣지 못하면 얼마나 분할까?”
천사신은 미간에 난 괴이하기 그지없는 사악한 눈을 어루만지며 가볍게 웃었다.
“난 너희들한테 분명 기회를 줬었지만 아쉽게도 너희는 그 기회를 잡지 못했구나.”
천사신은 흑광이 요동치는 사악한 눈으로 목진 등을 바라보며 말을 이어갔다.
“대천세계는 이렇게 큰데 우리한테 퇴로는 없군.”
염제는 미간을 살짝 찌푸리며 천사신을 노려보더니 가볍게 한숨을 쉬며 말했다.
“그럼…… 녀석과 함께 죽는 것도 나쁘지만은 않겠군.”
염제의 결연한 발언에 무조도 동의하듯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들한테도 별다른 수가 없었다. 그들은 대천세계의 마지막 방패나 다름없었고 그들이 실패하면 친구, 가족, 기타 대천세계의 사람들마저 모두 마재(魔災) 때문에 목숨을 잃을 것이다.
“넌 그때 나를 위해 목숨까지 바쳤지? 그러니 오늘, 내가 너희를 지키기 위해 희생하는 것이 전혀 두렵지 않아.”
무조는 미소를 지으며 돌아서서 영마대륙에 있는 두 아내를 바라보며 말을 이어갔다.
“이제는 너희가 다치는 꼴을 더 이상 보지 않겠다고 했었지? 내가 죽기 전까지 말이야.”
영마대륙에서 상황을 살피던 무한의 화역과 무경의 안주인들은 안색이 확 어두워졌다.
“임동, 제발!”
응환환은 사색이 된 채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더니 바로 뛰쳐나가려 했는데 어느새 눈가가 촉촉해진 능청죽이 그녀를 막아 나섰다.
“자네가 가면 저들한테 방해가 될 뿐이네.”
능청죽은 입술을 꽉 깨물며 말을 이어갔다.
“저들마저 저런 선택을 했다면 우리가 가봐야 달라지는 건 없을 것이네. 저들이 희생하면 우리도 따라가면 그뿐 아니겠는가?”
“대신, 그 전에 역외사족 녀석들을 최대한 많이 죽이고 갑시다!”
말을 마친 능청죽은 이내 살기를 품었고 응환환도 제자리에 멈춰 서서 무서운 한기를 내뿜으며 차가운 눈빛으로 천사신을 뚫어져라 쳐다봤다.
소훈아도 안색이 한껏 창백해졌는데 옆에서 온몸을 파르르 떨고 있는 채린을 발견하고 그녀의 손을 살포시 잡아줬다.
“채린 언니, 무한의 화역과 소소, 소림(蕭霖) 등은 언니한테 맡길게요.”
“훈아야, 너만 그 사람을 따라가려는 거야? 나도 함께하자꾸나.”
채림이 오히려 자신의 손을 잡으며 한 말에 소훈아는 씁쓸하게 웃었다.
“음? 설마 불후대제처럼 나와 함께 죽으려는 것이냐?”
하위면에 서 있는 염제와 무조가 내뿜는 기운을 느끼던 천사신은 열 번째 눈을 끔벅이며 물었다.
“이번에는 절대 그럴 기회를 주지 않을 것이다.”
“그거야 해봐야 알 수 있지 않겠나?”
말을 마친 염제와 무조가 나서려 하자 갑자기 누군가 그들의 팔을 덥석 잡았다.
“목진?”
염제와 무조가 흠칫 놀라 고개를 돌려보니 목진이 입을 꼭 다문 채 두 사람을 바라보고 있었다.
“두 분의 희생정신은 높이 사야 마땅하나 이 일은 그렇게까지 할 필요가 없을 것 같네요.”
염제와 무조는 순간 어리둥절해졌다. 일전의 대결로 10목 천사신이 얼마나 강대한 존재인지 깨달은 그들은 함께 죽는 것이 유일한 방법이란 결론을 내렸다.
“뾰족한 수가 있나?”
염제가 묻자 목진은 잠시 고민하다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전혀 불가능한 건 아니에요.”
염제와 무조는 그 말이 쉽게 믿기지 않았지만 목진에 대한 믿음 때문에 고개를 끄덕였다.
“뭐든 해보거라. 정 안 되면 우리가 목숨을 바쳐서라도 천사신을 죽일 테니까.”
“저도 끝까지 선배님들과 함께할 겁니다.”
목진은 깊게 숨을 들이켜며 서서히 눈을 감았는데 하늘에서 갑자기 신비로운 광막이 내려앉아 하위면까지 닿았다.
“창궁방?”
염제와 무조는 낯익은 광막을 보더니 흠칫했다. 그들은 목진이 왜 또 창궁방을 소환했는지 알지 못했다. 설마 이름을 온전히 새기려는 걸까? 도대체 무슨 수로 이를 해낸단 말인가?
대천세계 사람들도 어리둥절하여 광막을 바라봤다.
정작 목진은 이를 무시한 채 흑백 목진과 함께 비스듬히 눈을 감고 서 있었으니, 다들 그가 뭘 하려는 건지 도무지 파악할 수가 없었다.
“허허, 네 이놈, 지금 상황에서 또 무슨 꼼수를 부리려고 그러는 것이냐? 네 실력으로 창궁방에 온전한 이름을 남기려면 시간이 필요하단다!”
목진은 천사신의 말에도 듣는 척도 하지 않았다.
잠시 후, 목진은 드디어 다시 눈을 떴는데 한시름 놓은 듯한 표정을 지으며 중얼거렸다.
“드디어 왔군.”
“뭐가 말이냐?”
염제와 무조는 전혀 갈피가 잡히지 않았다.
크으으으! 끼익!
바로 그때, 갑자기 맑은 용음과 봉황의 울음소리가 들리더니 하늘 저 끝에서 두 갈래 금광이 하위면으로 들어갔다. 그들은 거대한 황금색 용과 황금색 봉황이었다.
하위면으로 들어간 두 마리 신수는 서서히 사람의 모습으로 변했는데 다들 그 모습에 깜짝 놀랐다.
그들은 목진과 똑같은 모습을 하고 있었다.
염제와 무조도 순간 눈가가 파르르 떨렸다. 그들은 용과 봉황의 모습을 한 목진한테서 목진 본체와 똑같은 파동을 읽었다. 이 또한 최정예급 강자였다!
“이…… 이게 어찌 가능하단 말인가?”
정작 목진은 눈앞에 나타난 용봉 금포를 입은 목진을 보더니 피식 웃었다. 용봉천에서 용봉진경을 획득한 그는 체내의 혈맥으로 진정한 용과 진정한 봉황의 령을 만들어냈다. 어찌 보면 그들은 목진이 낳은 아이나 마찬가지였다.